<?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인천은 어떻게 발전했을까?(인물편) by 경윤이</title>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4-06 22:49:30 UTC</pubDate>
      <lastBuildDate>2026-03-18 23:51:50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https://padlet.net/icons/png/1f600.png</url>
      </image>
      <item>
         <title>연개소문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096274</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연개소문</strong>(淵蓋蘇文,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594%EB%85%84">594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665%EB%85%84">665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5%EC%9B%94">5월</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고구려</a> 말기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A%B5%B0">장군</a>이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9%98%EA%B0%80">정치가</a>이다. 일명 <strong>개금</strong>(蓋金)으로도 불린다.<br>제가 이 인물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천시의 인물을 잘 알지 못하고 있는데 이 때 이 인물을 소개해서 자부심을 가지게 해 주고 싶기 때문입니다.<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A%B0%9C%EC%86%8C%EB%AC%B8">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A%B0%9C%EC%86%8C%EB%AC%B8</a></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steemitimages.com/0x0/https://steemitimages.com/DQmVvhxGvWMHLnUmSVJuP1y2egR1q2j6m2n9a9mc9wrSN7U/1.jpg" />
         <pubDate>2021-04-13 02:07: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096274</guid>
      </item>
      <item>
         <title>비류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0363</link>
         <description><![CDATA[<div>&nbsp;<strong>비류</strong>(沸流,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3%9D%EB%AA%B0%EB%85%84_%EB%AF%B8%EC%83%81">생몰년 미상</a>)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D%83%9C">우태</a>(優台)의 장남 혹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고구려</a>의 시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AA%85%EC%84%B1%EC%99%95">동명성왕</a>(東明聖王)의 차남으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A0%9C_%EC%98%A8%EC%A1%B0%EC%99%95">온조왕</a>(溫祚王)의 형이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B6%94%ED%99%80%EA%B5%AD">미추홀국</a>의 초대 왕이기도 하다.<br>제가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nbsp;<br>저희 2조가 조사하는 구역이 미추홀구 인데 이 인물이 미추홀구에 나라를 세웠고 또 지금의 인천이 해상도시 인 것은 그 비류부터 내려온 꿈 이기 때문입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09: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0363</guid>
      </item>
      <item>
         <title>-주명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4183</link>
         <description><![CDATA[<div>주명기는일제시대 몇안되는 인천에 대지주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11: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4183</guid>
      </item>
      <item>
         <title>고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5867</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11: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05867</guid>
      </item>
      <item>
         <title>민성-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036</link>
         <description><![CDATA[<div>민성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출전하여 적의 침공에 완강히 맞서 요새를 지키다가 다음 해(1637년) 전가족 13인과 함께 순절하였습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13: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036</guid>
      </item>
      <item>
         <title>황광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311</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13:4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311</guid>
      </item>
      <item>
         <title>비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354</link>
         <description><![CDATA[<div>비류는 졸본부여(卒本夫餘)에서 남하하여 당시 미추홀(彌鄒忽)인 인천에 부족국가를 건설했다는 백제(百濟) 설화상의 인물이다.<br>&nbsp;제가 비류를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인천에 있는 미추홀을 개선하였기 때문입니다.<br>박준희</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2:13:4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110354</guid>
      </item>
      <item>
         <title>하상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3618</link>
         <description><![CDATA[<div>하상훈은 동학(東學) 농민봉기 때 부친이 해주(海州)에서 옮겨와서 답동 터진개 근방에서 객주업을 시작하여 번창시켰다. 영화초등학교 초기 졸업생으로 1920년대 인천물산객주조합의 부조합장을 맡아 민족상권을 지키는 데 공헌했다.&nbsp;<br>제가 하상훈을 소개하고싶은 이유는 우리 민족ㅇ<br><br>박준희</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89992/59725ea2b0f3cc45e2f7c46603ec0a0f/unnamed.jpg" />
         <pubDate>2021-04-13 03:10:5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3618</guid>
      </item>
      <item>
         <title>조수일-이채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6982</link>
         <description><![CDATA[<div>조수일은 서울 태생으로 인천에서 성장했다.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하여 언론계로 자리를 옮겼다. 그 이전부터 문학에 뜻을 두고 있었던 관계로 소설 창작에 매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지역 예술문화계 일원으로 광복 후와 6·25 전란 이후의 지역 문단 기반을 구축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국문인협회 초대지부장이라는 직함과 예총 경기도 지부 이사를 지낸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하겠다.내가 이수일을 조사한이유는 에전부터관심가조 알고있었기때문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080112332/86879c9aeaaeb5e6b894b2908a85e571/2.png" />
         <pubDate>2021-04-13 03:12: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6982</guid>
      </item>
      <item>
         <title>이광사- 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7807</link>
         <description><![CDATA[<div>50세 되던 해인 영조 31년(1755) 소론 일파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진도로 귀양가서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습니다. 강화학파의 원조인 정제두에게 양명학을 배웠고, 윤순의 문하에서 필법을 배웠고. 시·서·화에 모두 능하였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2:4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7807</guid>
      </item>
      <item>
         <title>최영 -정민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8167</link>
         <description><![CDATA[<div>최영은 고려 말의 명장이다.양광도도순문사의 휘하에서 왜구들을 자주 토벌해 그 공으로 우달치가 되었다.공민왕 8년 홍건적 4만 명이 쳐들어 오자 다른 장수들과 공을 세워 승리하여 공을 세워 승진했다.또한 홍산에서 왜구들을 크게 무찌르기도 했다.<br>이후 그는 요동 정벌을 주도 했으나 우왕의 요청으로 신흥 무인 새력인 이성계를 대신 보냈다.<br>그러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 한 뒤 처형되었다.내가 최영을 소개한 이유는 나라가 왜구,홍건적등의 외침이 잦을 때 나라를 구한 인물이 인천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file.mk.co.kr/meet/neds/2018/05/image_readtop_2018_297199_15259184363306659.jpg" />
         <pubDate>2021-04-13 03:12:5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48167</guid>
      </item>
      <item>
         <title>권율-정연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2165</link>
         <description><![CDATA[<div>권율은 강화 선원연동에서 출신했다.(사실)선조 15년(1582)<br>46세에 비로소 식년문과에 급제했다.(사실)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광주목사사로 있었던 권율은 남원에서 1000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금산에서 전주로 밀고올라오는 고바야가와의 정예부대를 맞아 이치에서 크게싸워 호남을 지킬수있었으며 그공로로 전라감사로 승진하였다.(의견)<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5: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2165</guid>
      </item>
      <item>
         <title>-박두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2866</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왜박두성을 조사하고 싶다.왜냐하면 박두성은 강화 교동 태생으로 교동봉산의숙(喬桐鳳山義塾)을 졸업하고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어의동보통학교(於義洞普通學校 : 후의 孝悌普通學校)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1913년 제생원 맹아부(濟生院 盲啞部 : 서울맹학교의 전신) 교사로 자리를 옮겨, 이 때부터 맹인 교육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일어(日語) 점자(點字)로만 교육을 해야 하는 일에 아쉬움을 느끼고 1926년부터 한글 점자 연구에 착수하였다. 이미 1923년 1월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7년 간의 연구를 거쳐 1929년에 이른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는 이름의 한글 점자를 완성하였다. <br>김도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5: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2866</guid>
      </item>
      <item>
         <title>고일은 서울 태생이다.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6929</link>
         <description><![CDATA[<div>한 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이주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양정고보 학생이면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 했다&lt;김민겸&gt;<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7: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6929</guid>
      </item>
      <item>
         <title>곤우-허제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7590</link>
         <description><![CDATA[<div>삼국시대 백제 고목성에서 말갈족과의 전투에서 참전한 장수 입니다. 서기 31년 8월 고목성에 있으면서 말갈과 더불어 싸워 적군 200여명을 죽이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7: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7590</guid>
      </item>
      <item>
         <title>승윤-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8232</link>
         <description><![CDATA[<div>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사가 부평 고을에도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부평부 청사와 향교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쌓인 향교로 뛰어들어 공자를 비롯한 열성의 위패를 모시고 탈출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위패들을 공촌동 벌판에 은밀히 안치시켜 두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 향교 자리에 가막을 짓고 봉안하여 크게 찬사를 받았고, 그는 인조 26년(1648)에 생원이 되었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18: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58232</guid>
      </item>
      <item>
         <title>주명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0868</link>
         <description><![CDATA[<div>주명기는 일제시대 몇 안 되는 인천의 대지주였다. 내동(內洞)에 포목점을 차려 크게 번창시켰다. 그리하여 당시 인천의 10대 부호에 들어갔다.<br>인천에 미두(米豆) 경기가 한창일 때 미상조합상(米商組合長)을 지냈으며, 일본인과 상공회의소를 합병하게 된 후 부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의 형제들인 봉기(奉基), 정기(定基), 원기(元基)들도 각 방면에서 많은 활동을 했는데, 정기는 상공회의소 상무의원을 지냈고 1960년 민주당 정권 때에는 한국미창(韓國米倉) 사장으로 발탁되어 수완을 보이기도 했다.</div><div><br><br></div>]]></description>
         <pubDate>2021-04-13 03:19: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0868</guid>
      </item>
      <item>
         <title>연개소문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1817</link>
         <description><![CDATA[<div>연개소문은 인천시에서 태어난 사람이고 고구려에서 가장 높은 벼슬인 대막리지에 올라 인천지역을 향해 북쪽에서 처들어오는 당나라 군을 막으셨다.<br>이분이 인천시에 도움을 주신 점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가 자존감을 일어갈 때 역사책으로 편찬되어 인천시, 크게 우리나라에 용기를 심어주셨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90360/f7357493a506def4a777d3de385956fb/______1_.jpg" />
         <pubDate>2021-04-13 03:19: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1817</guid>
      </item>
      <item>
         <title>송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3565</link>
         <description><![CDATA[<div>제가 송윤 이라는 인물을 왜&nbsp; 선택했냐면 송윤이라는 인물은 부평부 청사와 향교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쌓인 향교로 뛰어들어 공자를 비롯한 열성의 위패를 모시고 탈출해 나왔으므로 제가 선택했습니다.그리고 송윤이라는 분은 인조 26년(1648)에 생원(生員)이 되고, 이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청부부총관’이 되었다. 또한 향교 재건에도 공을 세워 ‘청금록(靑衿錄)’ 제1호에 등재되어서 제가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4110김채린}</div>]]></description>
         <pubDate>2021-04-13 03:20:4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3565</guid>
      </item>
      <item>
         <title>-황광수-김나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3934</link>
         <description><![CDATA[<div>황광수는 서울 출신으로 1920년 인천문학소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여러 학교의 교장과 선생님으로 있었다. 1960년 잠시 교육계를 떠나기도 했으나, 1962년에 인천시 교육위원으로 선임되어 1964년에는 인천시교육청 교육장으로 복귀했다. 제가 이 분을 소개한 이유는 이 분은 인천의 교육이 더 좋아지고 발달되게 힘써주셨기 때문에 이 분을 소개했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0: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3934</guid>
      </item>
      <item>
         <title>비류 김지윤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5043</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1: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5043</guid>
      </item>
      <item>
         <title>박준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6325</link>
         <description><![CDATA[<div>진우촌은 인천 태생으로 본명은 종혁이고 우촌은 예명이다. 일본 물산장려회 희곡 작품 모집에 응모한 희곡 「암탉」이 당선되어 희곡작가로 등단하였다. 조부 학명이 구한국 시대의 관비 유학생으로 도일한 바 있었고, 부친 진수는 1895년 신학제 포고와 함께 설립된&nbsp; 독일어를 배우고 인천해관의 통역을 맡아 했다. 그리고 1926년 배우이다.<br><br>제가 이분을 소개하고 싶은 이유는 엄청 많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89992/ea0b4f3b40906df4a4142cc44503da7e/295e0ebae9150974b66fbcc0847117003c314e42.jpg" />
         <pubDate>2021-04-13 03:22: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6325</guid>
      </item>
      <item>
         <title>장석우 (이지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7771</link>
         <description><![CDATA[<div>강화 출신으로 1900년에 주명서(朱命瑞), 김용태(金鏞泰) 등과 주단포목전인 ‘서흥태(瑞興泰)’를 일으켜 번창 일로를 걷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천 상업계에 중추 인물로 떠올라 정치국(丁致國), 정영화(鄭永化), 최승우(崔承宇) 등과 함께 인천조선인상업회의소(仁川朝鮮人商業會議所)를 이끌어 나갔다. 한일합방이 되면서 조선인상의(商議)가 일인상의(日人商議)에 합쳐지자 조선인 의원(議員) 중 특별회원으로 뽑혔으며, 1920년에는 조선인에게 유일하게  남아있었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080111061/41e5a01ff5e8ea01be63cb9c2e121e88/______.png" />
         <pubDate>2021-04-13 03:22: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67771</guid>
      </item>
      <item>
         <title>황광수.송율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3039</link>
         <description><![CDATA[<div>황광수는 서울 출신으로 1920년 인천문학소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1945년 부평동소학교로 부임하기 전까지 1937년부터 약 8년 간 왕징(旺澄) 소학교와 시흥소학교 교장으로 외유하기도 했다.&lt;br/&gt; 또한 1945년 광복 후 인천시 초대 학무과장으로 부임하여 공백기의 인천 교육을 수습하는 데 진력하였고, 1951년 전란시에는 사회과장까지 겸하기도 하였다. 1952년 교육청이 시로부터 분리되면서 초대 교육감으로 취임, 제2대까지 역임했다. 1960년 잠시 교육계를 떠나기도 했으나, 1962년에 인천시 교육위원으로 선임되어 1964년에는 인천시교육청 교육장으로 복귀, 1965년 정년 때까지 복무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5: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3039</guid>
      </item>
      <item>
         <title>최승달-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4632</link>
         <description><![CDATA[<div>최승달은 북면 본영 출신으로 기미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3년 간 옥고를 치렀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6:3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4632</guid>
      </item>
      <item>
         <title>부평의 세 유생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6673</link>
         <description><![CDATA[<div>부평 고을에 사는 이언복(李彦馥)과 동면 박촌동의 임무영(林茂榮), 계산동 박대양(朴大陽)은 부평 향교의 학생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은 부평 고을로 침투해 와서 부평부 청사와 향교에 불을 질러 그 일부가 소실되었다. / 그분들이 인천에 공헌하신 것: 그 당시 이언복을 비롯하여 임무영, 박대양 등은 향교에 모셔진 공자와 열성들의 위패를 계양산성(桂陽山城) 산정에 있는 장사굴 속으로 옮겼다가 나라가 평정을 되찾은 후 다시 향교에 봉안한 공로가 인정되어 세 사람 모두에게 생원(生員)의 벼슬이 내려지고 부역을 면제받았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7:4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6673</guid>
      </item>
      <item>
         <title>조봉암   4116유하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7509</link>
         <description><![CDATA[<div>제가 왜 조봉암을 선택했냐하면 조봉암은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셨기 대문 입니다.&nbsp;<br>&nbsp;1919년 3·1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하여 1년 간 복역하였으며, 출옥 후 일본에 건너가 도쿄중앙대학에서 1년 간 정치학을 공부하고 비밀결사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이념에 의한 독립 쟁취를 목표로 항일운동을 하다가 귀국했다. 일본 경찰에 잡혀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 간 복역했다.<br>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image&amp;query=%EC%A1%B0%EB%B4%89%EC%95%94&amp;sm=tab_etc</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90416/b0b4a38674a0f808f556578780fcef68/__.PNG" />
         <pubDate>2021-04-13 03:28:0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7509</guid>
      </item>
      <item>
         <title>고일{이나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8294</link>
         <description><![CDATA[<div>고일은 서울 태생이다. 한 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이주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양정고보 학생이면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양정을 졸업한 후 조선일보 인천지국 기자가 되었다가, 1924년 최남선를 창간하자 시대일보 인천지국 기자로 자리를 옮겼다. 이 때부터 그는 본격적으로 기자 활동을 하면서 민족운동과 사회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 유치장 출입이 다반사가 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4년 간 영어생활을 하기도 했다. 1932년에는 ‘신간회(新幹會)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북만주로 망명을 떠나기도 했다.<br>1945년 광복이 되자 다시 언론계에 복귀, 대중일보 편집국장을 위시하여 조선·고려·한국통신 등 여러 통신사의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6·25 동란이 일어나자 충남으로 피난을 떠났다. 1954년 「주간인천」의 주필로 활약했으며, 1960년 인천신문 논설위원으로 사설(社說)을 집필했고, 경기일보에 ‘인천사(仁川史)’를 연재했다. 1956년부터 인천시사 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되어 활동하였고, 1964년 재위촉되어 1971년 「인천시사(仁川市史)」가 간행되어 나오기까지 인천 향토 언론계의 원로(元老)로 활동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8: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8294</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8947</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B6%94%ED%99%80%EA%B5%AD" />
         <pubDate>2021-04-13 03:28: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78947</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0244</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90134/0c77d5590616a70310ab42dee49392f9/________________________Chrome_2021_04_13____12_27_10.png" />
         <pubDate>2021-04-13 03:29: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0244</guid>
      </item>
      <item>
         <title>황광수 송율하</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0246</link>
         <description><![CDATA[<div>황광수는 서울 출신으로 1920년 인천문학소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1945년 부평동소학교로 부임하기 전까지 1937년부터 약 8년 간 왕징(旺澄) 소학교와 시흥소학교 교장으로 외유하기도 했다.&lt;br/&gt; 또한 1945년 광복 후 인천시 초대 학무과장으로 부임하여 공백기의 인천 교육을 수습하는 데 진력하였고, 1951년 전란시에는 사회과장까지 겸하기도 하였다. 1952년 교육청이 시로부터 분리되면서 초대 교육감으로 취임, 제2대까지 역임했다. 1960년 잠시 교육계를 떠나기도 했으나, 1962년에 인천시 교육위원으로 선임되어 1964년에는 인천시교육청 교육장으로 복귀, 1965년 정년 때까지 복무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29: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0246</guid>
      </item>
      <item>
         <title>심혁성-허제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1659</link>
         <description><![CDATA[<div>심혁성은1919년&nbsp; 3·1 운동을 주도하였고, 만세 시위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고 합니다. 출감 후 가산을 어려운 가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준 다음 자신은 삼속으로 은심하여 약초를 캐먹으며 연명해 갔습니다.그 뒤 만주로 건너가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가담하였습니다. 광복이 되어 고향에 돌아와 살았으나 정계에 진출하지 않고 조용히 생애를 보냈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0: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1659</guid>
      </item>
      <item>
         <title>임요우-한승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1838</link>
         <description><![CDATA[<div>임용우는  3·1 운동 때 김포 지역에서 동지들과 만세시위를 벌인 후, 김포군청을 습격하고 향리인 덕적으로 도망해 와서 이재관, 이동응, 차경과 주동하여 만세운동을 재개하였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0: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1838</guid>
      </item>
      <item>
         <title>서호성-김동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4893</link>
         <description><![CDATA[<div>쓴이유는 힘도쎄고 광선보가 위험해지자 단신으로 적을 향해 돌진해 격투 끝에 장렬 하게 전사한게 멋있기 떄문입니다.&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서호성은 어릴 때 강화 화도면 문산리에서 생장하였다. 힘이 남달리 세고, 성격이 호탕하였으며, 지략이 높고 성품이 강직하였다. 고종 8년(1871) 신미양요 때 전부천총(前部千摠)이 되어 덕진진을 지키게 되었다. 그는 그곳의 지세를 살펴본 다음, 중군에 권하기를 대모산 아래에 진지를 구축하고 오는 적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으나, 중군은 듣지 않고 배수진을 치는 것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본진으로 돌아갔다가 광성보가 위태로워지자 단신으로 적을 향해 돌진해 들어가 격투 끝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1: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4893</guid>
      </item>
      <item>
         <title>박세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6237</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 박세림도 조사하고 싶다 왜냐하면박세림은 강화 출신으로 사숙(私塾)에서 한학(漢學)과 서예를 수학했고, 1947년 단독으로 ‘대동서연회(大同書硏會)’를 조직했기 때문이다.<br>김도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2: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6237</guid>
      </item>
      <item>
         <title>고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9571</link>
         <description><![CDATA[<div>고일은 서울 태생이다. 한 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이주했다. 1919년 3·1 독립만세운동 때는 양정고보 학생이면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대중일보 편집국장을 위시하여 조선·고려·한국통신 등 여러 통신사의 편집장을 역임하다가 6·25 동란이 일어나자 충남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리고 저는 왜 이분을 선택한이유는 “나는 인천의 아들, 인천은 나를 키우고 나에게 희망과 야심을 주었으며 또 가난과 버림까지 주었다”라는말이 어떻게 보면 슬프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마음의 와닸기 때분입니다.그래서 저는 이분이 좋습니다.^_^<br><br>이나연</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89992/6bbddb1166e17fac2e865e8949f2d6da/240784_95735_820.jpg" />
         <pubDate>2021-04-13 03:34: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9571</guid>
      </item>
      <item>
         <title>비류가 세운 나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9918</link>
         <description><![CDATA[<div>비류가 세운 나라의 이름은 미추홀구가 아닌 비류국입니다.오류 정보를 알려 드려 죄송합니다.-민성<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4: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89918</guid>
      </item>
      <item>
         <title>이원옥 (이지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0376</link>
         <description><![CDATA[이원옥은 인천 태생으로 인고(仁高)의 전신인 인천일어학교(日語學校)를 졸업했다. 이 학교가 실업학교로 바뀌기 전인 1908년에 학교의 직원으로 들어가 1949년 정년퇴임 때까지 42년 간 봉직한 인천고등학교의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평직원에서 교장으로 승진된 보기 드문 인고의 터주대감이기도 하다. 광복 직후인 1945년에는 정태영(鄭泰永), 권정석(權正奭) 등과 함께 인천향교(仁川鄕校)를 복구하고 향교복구기성회 초대 부회장을 맡았으며, 제2대 전교(典校)까지 맡아 인천향교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080111061/8ab2af02356f34de9356ca090002ecfb/______.png" />
         <pubDate>2021-04-13 03:34:5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0376</guid>
      </item>
      <item>
         <title>정용복 {이서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3777</link>
         <description><![CDATA[<div>정용복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어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왔다. 경동 싸리재에서 미곡상을 하여 부자가 된 부친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평생을 청빈한 생활로 일관했다. 한편생을 체육계에 투신하여 보이스카웃과 체육계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br>우선 1954년에서 1955년에 걸쳐 한미친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도원동에 위치한 인천공설운동장과 야구장의 재건, 보수공사를 단행하여 운동장의 면모를 소생시켜 놓았다. 1950년대 초반부터 인천체육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에서 1960년까지는 경기도체육회 이사장으로 경기도의 체육 진흥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6:4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3777</guid>
      </item>
      <item>
         <title>오택관-정연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4895</link>
         <description><![CDATA[<div>오택관은 북면 종소리종소리출신으로 백범김구선생님이 이끄는 독립립단에&nbsp;<br>가입하여 선생님의 뒷바라지뒷바라지를 한 탓으로 황해도 전역에걸쳐일본 경찰에의한 체포체포령이 내린 바 있다.그리하여 서울로피신하여 피어슨 성경학교에 도움으로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동경중앙교회 목사가 되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37: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4895</guid>
      </item>
      <item>
         <title>어재연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8652</link>
         <description><![CDATA[<div>어재연은 헌종 7년(1841)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을 두루 거친 끝에, 고종 3년(1866) 프랑스 로즈 제독이 이끄는 극동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한 병인양요 때 군사를 이끌고 광성진을 수비하였다. 고종 8년(1871), 이번에는 미국 아시아함대의 강화도 침공으로 신미양요가 발발하였다. 6월 1일 손돌목 포격사건의 개시로 한미간 최초의 군사 충돌이 발생했다. 위급이 고해지자 어재연은 진무중군(鎭撫中軍)에 임명되어 광성포로 급히 달려나가 6백여 군사를 이끌고 광성보에 이르러 미군과 대치하였다. 6월 10일 드디어 미군이 강화도 상륙작전을 전개하면서 격전 끝에 초지진을 점령하였고, 11일에는 덕진진까지 함락시키고, 마지막으로 광성보 공략에 나섰다. 이 때 어재연은 광성보에 수자기(帥字旗)를 게양하고 침공해오는 미군을 격퇴할 태세를 취하였다. 미군은 광성보에 대한 수륙 양면작전을 개시하여 해상에서는 함포 사격으로, 지상에서는 야포 사격으로 초토화 작전을 전개하였다. 끝내는 광성보로 돌입해 온 미군과 어재연 군이 육박전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어재연은 임전무퇴의 결의로 손에 칼을 잡고 적을 무찔렀으며, 포탄 10여 개를 양손으로 받쳐들고 적군에 던지며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했다. 전쟁이 끝난 후, 그의 불타는 충성심과 애국열의를 높이 추앙하여 병조판서 지삼군부사(兵曹判書 知三軍府事)를 추증받았고, 시호는 ‘충장(忠壯)’이었다. 강화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90360/d1f3312f049304bfc10a02324eaed102/______2_.jpg" />
         <pubDate>2021-04-13 03:39: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298652</guid>
      </item>
      <item>
         <title>김봉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0058</link>
         <description><![CDATA[<div>제가 김봉구 라는 인물을 왜 선택했냐면 김봉구라는 인물은 3·1운동의 동남면 대표가 되어 1919년 3월 16일을 전후한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지휘한 사람이고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대주에 압송되었을 때에는 같은 신도이면서 친구인 이종식의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단독 주동자임을 자처하면서 홀로 처벌받겠다고 했다는 마음이 정말 따뜻하셔서 제가 선택한 이유입니다.  {4110김채린}</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0:1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0058</guid>
      </item>
      <item>
         <title>이훈익 (이지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4412</link>
         <description><![CDATA[이훈익은 인천 서구 연희동 출신으로 옛 서곶(西串)의 토박이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지 30여 년 간 인천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서곶 출장소장을 끝으로 정년을 맞은 뒤 원예협동조합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생애 전반기는 일반 직장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향토사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대로 살아온 서곶 지역 향토사의 맥을 찾아 탐구해 가던 끝에 인천 전역에 걸친 지명 유래를 더듬어 정리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5년부터 인천향토문화연구소장에 임하여 그의 저술 작업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인천충효록』, 『인천지지(地誌)』, 『인천지방 향토사담』, 『인천의 성씨인물고』, 『인천지방의 전통제례』, 『인천금석비명집』, 『근세인천지방의 전란사』등의 저서로 향토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남다른 향토사 업적이 인정되어 1983년 인천교육대상, ’84년 인천시민상(문화부문), ’96년 인천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했다.]]></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2: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4412</guid>
      </item>
      <item>
         <title>송윤[김지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5221</link>
         <description><![CDATA[<div>송 윤은 부평 검암동에서 살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사가 부평 고을에도 침입해 들어왔다. 부평부 청사와 향교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쌓인 향교로 뛰어들어 공자를 비롯한 열성의 위패를 모시고 탈출해 나왔다. 그리고 이 위패들을 공촌동 벌판에 은밀히 안치시켜 두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 향교 자리에 가막을 짓고 봉안하여 크게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인조 26년(1648)에 생원생원과 과서시첨 합격이 되고, 이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청부부총관’이 되었다. 또한 향교 재건에도 공을 세워  제1호에 등재되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3:0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5221</guid>
      </item>
      <item>
         <title>유승민-이훈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7262</link>
         <description><![CDATA[<div>1945년부터 1972년까지 30여 년 간 인천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서곶 출장소장을 끝으로 정년을 맞은 뒤 원예협동조합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생애 전반기는 일반 직장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했으나, 후반기로 접어들면서 향토사학자로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대대로 살아온 서곶 지역 향토사의 맥을 찾아 탐구해 가던 끝에 인천 전역에 걸친 지명 유래를 더듬어 정리하게 되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1985년부터 인천향토문화연구소장에 임하여 그의 저술 작업이 출판되기 시작했다.<br>『인천충효록』, 『인천지지(地誌)』, 『인천지방 향토사담』, 『인천의 성씨인물고』, 『인천지방의 전통제례』, 『인천금석비명집』, 『근세인천지방의 전란사』등의 저서로 향토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남다른 향토사 업적이 인정되어 1983년 인천교육대상, ’84년 인천시민상(문화부문), ’96년 인천광역시 문화상을 수상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4: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7262</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9156</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www.google.com/url?sa=i&amp;url=http%3A%2F%2Fnews.kmib.co.kr%2Farticle%2Fview.asp%3Farcid%3D0923573821&amp;psig=AOvVaw083FWQJlvvdrlWWn-9Ic3m&amp;ust=1618371816952000&amp;source=images&amp;cd=vfe&amp;ved=0CAIQjRxqFwoTCIDNkIGn-u8CFQAAAAAdAAAAABAJ" />
         <pubDate>2021-04-13 03:45:3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9156</guid>
      </item>
      <item>
         <title>최승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9932</link>
         <description><![CDATA[<div>최승달은 북면 본영 출신으로 기미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3년 간 옥고를 치렀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서울 내수동에서 수동한약방을 경영했는데 특히, 위장병 치료에 명성을 떨쳤고 아들 최규식 또한 의사가 되어 서울 해정병원 원장으로 명성이 자자했다.<br><br>이나연</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5:5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09932</guid>
      </item>
      <item>
         <title>정제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0403</link>
         <description><![CDATA[<div>나는또 조사하고 싶은 인 물이 있다버로 정제두이다~정제두는정제두는 몇 차례 과거 시험에 실패한 뒤, 과거 준비를 그만두고 학문 연구에만 열중하였다.&nbsp;<br>김도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6:1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0403</guid>
      </item>
      <item>
         <title>하상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2349</link>
         <description><![CDATA[<div>하상훈은 동학 농민봉기 때 부친이 해주에서 옮겨와서 답동 터진개 근방에서 객주업을 시작하여 번창시켰다. 영화초등학교 초기 졸업생으로 1920년대 인천물산객주조합의 부조합장을 맡아 민족상권을 지키는 데 공헌했다. 초기 동아일보 인천지국장을 역임했고, 서병훈, 이범진 등과 국악 동호회인 ‘이우구락부’를 조직하여 활약했다. 1927년 민족운동단체인 ‘신간회’가 만들어지자 인천지회장에 추대되어 활약했으며,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되자 ‘신정회’를 조직하고 그 회장을 맡았다.<br>8·15 광복 후 한국민주당 인천지부의 발기인이 되었으며, 민주의원과 입법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46년 인천상공회의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1952년 제3대까지 3차에 걸쳐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1948년에 인천시 고문회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952년 초대 인천시의회의 의원으로 당선되어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제2공화국 민주당 정권 당시 참의원 의원으로 출마, 당선됐다. 1964년 작고하자 인천 최초의 사회장으로 장례가 모셔졌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080112332/afb2c6eb297096a4a06b0111fb4d8589/commonMNSC11U0.jpg" />
         <pubDate>2021-04-13 03:47: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2349</guid>
      </item>
      <item>
         <title> 이의(李倚) 는 부평 이씨로 고려 말에 벼슬을 한 사람인데, 고려가 망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하여 절개를 지키고자 두문동으로 들어가 은둔 생활을 하였다. 조선 태조는 새 나라 조선에 출사를 권하고 불러내었으나 그는 끝내 이를 거절했다. 태조는 불응자의 거역에 역정을 내고 이 의의 가산을 몰수함과 아울러 자연도( 영종도)로 귀양을 보냈다. 이 의는 자연도에서 고려를 향한 충절을 보이며 생을 마쳤다. 그의 고고한 절개를 본받아 부평 이씨 문중에서는 충신과 효자가 많이 배출되는 계기가 되었다.{김지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4158</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8: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4158</guid>
      </item>
      <item>
         <title>조봉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4612</link>
         <description><![CDATA[<div>4116 유하린</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90416/6c4845acf66a4f245eab7b03d20d9264/1__.PNG" />
         <pubDate>2021-04-13 03:49: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4612</guid>
      </item>
      <item>
         <title>연개소문-김영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5096</link>
         <description><![CDATA[<div>연개소문은&nbsp;강화도에서태어나 고구려말기를 대표하는 장군이다.  연개소문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큰활약을하여 승리하렸다.   내가이인물을소개하고싶은이유는 사람들은 그냥연개소문이라는 이름만알고 자세히는 모르는사람이 많기때문입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49: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15096</guid>
      </item>
      <item>
         <title>박광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1045</link>
         <description><![CDATA[<div>박광성은 충북 제원군 백운면 출신이다. 대구사범을 거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충주사범학교 사학 담당 교사로 10여 년 근무하던 끝에 1960년대에 인천교육대학 교수가 되었다. 인천교대에서 10년 근무하고 1980년대 초에 인하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그곳에서 정년을 맞고 대우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교육자로서의 경력보다도 사학자로서 괄목할 만한 활약과 업적을 남겼다.<br>경기도사 편찬위원, 경기도 정책자문위원을 거쳐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한 이후로는 인천시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 인천시 문화재위원, 인천시 행정자문위원 등 폭 넓은 활동을 했다<br><br>_박준희_</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34289992/fab89ec6e5e9b202424ba13ed6f32b81/174_0.jpg" />
         <pubDate>2021-04-13 03:53: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1045</guid>
      </item>
      <item>
         <title>황광수&lt;김민겸&gt;</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1972</link>
         <description><![CDATA[<div>황광수는 서울 출신으로 1920년 인천문학소학교에 부임하면서 인천 교육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1945년 부평동소학교로 부임하기 전까지 1937년부터 약 8년 간 왕징(旺澄) 소학교와 시흥소학교 교장으로 외유하기도 했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53:4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1972</guid>
      </item>
      <item>
         <title>정세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3372</link>
         <description><![CDATA[<div>정세규는 사마시에 합격하고 문음(門陰)으로 의금부도사를 거쳐 여러 관직을 옮겨다녔다. 인조 14년(1636)에는 조신(朝臣)들의 추천을 받아 충청도 관찰사로 특진되었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54: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3372</guid>
      </item>
      <item>
         <title>권율</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4109</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ncc_clk.top&amp;where=nexearch&amp;ie=utf8&amp;query=%EA%B6%8C%EC%9C%A8">권율</a>은 거의 멸망할 뻔한 나라를 구하는데 중요하게 기여한 대표적 장수였다. 그가 지휘한 행주대첩은 임진왜란의 3대 승전의 하나로 손꼽힌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03:55: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0324109</guid>
      </item>
      <item>
         <title>유수 이병상과 그 뒤를 이은 김광세는 부역을 면제하는 특혜를 내렸으며 조정에 품의했다. 영조 48년(1772) 특명으로 그의 집에 ‘해동검루(호) 김창구지문’이라고 정문을 내리고, 아버지를 중추원 직책에 특임하여 효행을 기리었다. 이 밖에도 아버지가 돌아간 후, 금강산을 가보고 싶어했던 소망을 풀어드리기 위하여 아버지의 옷을 입고 일부러 금강산에 가서 산을 둘러보고 소리를 외쳤다고 한다. 그의 두 손자국이 남아 있는 묘소가 지금 선원면 선행리 노적봉 밑에 있으며 강화의 효행 가운데에도 가장 기이한 사건으로 알려져 내려오고 있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184159</link>
         <description><![CDATA[<div>{김지윤}</div>]]></description>
         <pubDate>2021-04-13 10:03: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184159</guid>
      </item>
      <item>
         <title>김창구는 서울에서 살다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고조부가 강화에 정착하여 살게 된 집안 자손이다. 그의 부친이 38세에 중병으로 기절하였다가 깨어난 후, 58세밖에 못 산다는 꿈을 꾼 것을 비통하게 여겨 쌀독에 성미를 저장하며 장수를 비는 기도를 해 온 이래 20년이 지났을 때, 마리산과 고려산에 올라 각 3일씩 천지신명께 기도를 올렸다. 눈보라가 심하였는데도 밝은 촛불이 꺼지지 않았고,    {김지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207828</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10:14: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20782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213373</link>
         <description><![CDATA[<div>&nbsp;마지막 기도 날 어머니의 꿈에 무지개가 기도처인 향교앞 우물에 꽂혔다. 해몽하는 이가 우물 정자는 80세를 산다는 뜻이고, 사흘 기도를 올려 3년을 더했으니 83세로 수명이 연장되리라 풀이하였는데, 실제로 83세로 수를 마감했다고 한다.어머니 병환 때도 역시 백약이 무효라는 진단을 받고 찬물에 목욕재개한 후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올렸는 바, 얼음이 손가락 모양으로 솟아났으며 갑자기 어머니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 하여 얼음 깨고 잡아들이니 병이 낫기 시작, 3년 간을 더 사시다 돌아가셨다 한다.이 소문을 접한 강화&nbsp; &nbsp; &nbsp; &nbsp; &nbsp;&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10:17: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1213373</guid>
      </item>
      <item>
         <title>               단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13468</link>
         <description><![CDATA[<div>단군은<br>단기 51년(서기 전 2283년) 운사와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nbsp; 마리산에 천제단을 쌓게 하고, 장정 8천 명을 동원하여 정족산에 삼랑산성을 쌓았다.&nbsp;<br>마리산 정상에는 참성단을 쌓았으며, 단기 54년(서기 전 2280년)에 참성단을 완공하고 하늘에 제사지냈다.<br>김지원G1</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02275751/e80d373f5572454de9889602b030bded/______2021_04_13_232202.png" />
         <pubDate>2021-04-13 14:04: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13468</guid>
      </item>
      <item>
         <title>안경구</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66851</link>
         <description><![CDATA[<div>안경구는 천도교인으로 1919년 3·1운동 때 최의항과 함께 만세시위운동 주모자로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다<br>김지원G1</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14:13:1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66851</guid>
      </item>
      <item>
         <title>            이담</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79584</link>
         <description><![CDATA[<div>이담 역시 계양면 사람으로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하여 심혁성, 이은선, 이공우 등과 함께 황어장날 시위를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 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br>김지원G1</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02275751/6042da1e8c4f503e8d51049c590b53e0/______2021_04_13_232539.png" />
         <pubDate>2021-04-13 14:15: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2079584</guid>
      </item>
      <item>
         <title>비류(김나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220833</link>
         <description><![CDATA[<div>비류는 동명성왕 혹은 우태의 장남이며 어머니인 소서노와 동생인 온조가 있다. 동명성왕의 또 다른 자식 유리가 고구려로 찾아오자 유리가 고구려의 왕이 될까 두려워 비류, 온조 형제가 어머니와 자신의 부족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떠났다.&nbsp; 그리고 형제가 서울 북한산에 올라 지형을 살펴보았는데 이 때, 비류가 지금의 인천인 미추홀에 비류국을 세웠다. 제가 이 분을 조사한 이유는 우리 인천(미추홀)을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3 22:54:3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220833</guid>
      </item>
      <item>
         <title>최영</title>
         <author>1802154</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589652</link>
         <description><![CDATA[<div>고려 말의 명장이다. 처음에 양광도도순문사(揚廣道都巡問使) 휘하에서 왜구(倭寇)를 자주 토벌하여 그 공으로 우달치[于達赤 : 司門人]가 되었다. 최영의 군인으로서의 경력은 왜구와 홍건적 퇴치로 점철되었다. 우선 공민왕 8년(1359) 홍건적 4만 명이 침입하여 서경이 함락되자, 다른 장수들과 함께 이를 여러 방면에서 무찔러 공을 세우고 승진했으며, 1361년 홍건적 10만이 다시 침입하여 개성을 함락시키자 이듬해 안 우, 이방실(李芳實) 등과 이를 격퇴하여 개성을 수복하고 그 공으로 ‘벽상공신(壁上功臣)’이 되어 전리판서(典理判書)에 올랐다.<br>왜구를 물리친 경우를 보면, 공민왕 6년(1357) 배 4백여 척으로 오예포(吾乂浦)에 침입한 왜구를 복병을 이용하여 격파하였다. 공민왕 13년(1364)에는 왜구가 교동(喬桐), 강화에 침입하자 동서강도지휘사(東西江都指揮使)가 되어 동강에 진주하였는데, 이때 신돈의 무고로 귀양을 갔다가 신돈이 처형된 후 복귀되었다. 다음해 다시 왜구가 연산(連山) 개태사(開泰寺)에 침입했을 때, 원수(元帥) 박인계(朴仁桂)가 패배하자 노구를 이끌고 자원하여 홍산(鴻山 : 扶餘)에서 크게 무찔러 그 공으로 ‘철원부원군(鐵原府院君)’이 되었다. 우왕 3년(1377)에는 도통사가 되어 강화·통진 등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한 다음, 왕에게 상주하여 교동·강화의 사전(私田)을 혁파하고 군자금에 충당하게 했다. 이어 1378년 왜구가 승천부(昇天府)에 침입하자 이성계(李成桂), 양백연(楊伯淵) 등과 함께 적을 크게 무찌르고 그 공으로 ‘안사공신(安社功臣)’이 되었다. 이무렵, 명나라가 철령위(鐵嶺衛)의 설치를 통고하여 철령 이북과 이서, 이동을 요동(遼東)에 예속시키려 하므로, 요동 정벌을 결심하고 왕과 함께 군사를 출동시켰다. 그러나 3만 8,8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민수(曺敏修) 좌군도통사와 함께 떠난 우군도통사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 사건으로 요동 정벌은 무위로 돌아가고 역성혁명을 일으킨 이성계에게 참살당했다. 이성계는 새 왕조를 세우고 6년 만에 ‘무민(武愍)’이라는 시호를 내려 그의 넋을 위로하기도 했다.<br>강화에는 최영 장군과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으며, 고기잡이 어부들은 해양신으로 믿어 왔다고도 한다. 무속에서는 당굿의 수호신으로 전하고 있다고 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4 01:31:2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589652</guid>
      </item>
      <item>
         <title>천도교</title>
         <author>1802154</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595217</link>
         <description><![CDATA[<div>천도교는 동학의 3대교주가 동학의 이릅을 바꾼 것 이다.<br>대표적인 천도교인:방정환<br>중심 뜻:인내천 사상<br>사람이 곧 하늘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4-14 01:33:3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14595217</guid>
      </item>
      <item>
         <title>남동구 장수동  은행나무-김동현남동구 장수동  은행나무-김동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71547055</link>
         <description><![CDATA[<div>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 있는 수령 800년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div><div><br></div><div>인천 남동구는 인천시 기념물 제12호인 장수동 은행나무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62호로 승격 지정됐다고 8일 밝혔다. 이 은행나무는 높이 28.2m, 둘레 9.1m, 가지와 잎이 무성한 부분의 폭이 동서 27.1m, 남북 31.2m에 이른다. 뿌리 부분부터 다섯 개의 굵은 가지가 갈라져 높게 솟아올라 있고, 가지의 끝은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형태로 자라고 있다. 수령은 800년으로 추정된다.도심 속에서 농경시대의 나무 숭배의식인 당제가 오늘날도 지속돼 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등 자연·학술적·민속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은 것으로 전해졌다.<br><br>원문보기:<br><a href="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82292.html#csidx894cb6d5ef19da2810b0071ea813ce1">http://www.hani.co.kr/arti/area/capital/982292.html#csidx894cb6d5ef19da2810b0071ea813ce1&nbsp;</a></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166372637/ab055e69a7ab48223af5931355e3a05a/________.PNG" />
         <pubDate>2021-04-29 00:27: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71547055</guid>
      </item>
      <item>
         <title>어재연 장군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25519</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삶)어재연</strong>(魚在淵,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23%EB%85%84">1823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71%EB%85%84">1871년</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 말기의 무신이다.<br><strong>(사실)</strong><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71%EB%85%84">1871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AF%B8%EC%96%91%EC%9A%94">신미양요</a>가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어재연을 순무중군에 임명하여 광성진을 수비케 하였다. 이에 그는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우세한 무기를 가진 미군에게 패했고 동생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6%B4%EC%9E%AC%EC%88%9C&amp;action=edit&amp;redlink=1">어재순</a>과 함께 미 해병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A0%9C%EC%9E%84%EC%8A%A4_%EB%8F%84%ED%97%88%ED%8B%B0&amp;action=edit&amp;redlink=1">제임스 도허티</a>의 총검에 찔려 전사하였다.<br><strong>(업적) </strong>우리 나라에서 사람들이 외국 사람들에게 강탈을 당하지 않게 우리나라의 입구인 강화도를 지켜주었다.<br><strong>(의견) </strong>이렇게 우리나라에는 여러가지 위인들이 많고 특히 강한 서양 세력에 맞어 싸운 용감한 인물들을 보고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postfiles1.naver.net/20150312_176/2000happy__1426143539646vnUuW_JPEG/2683119960527%A1%DA.jpg?type=w1" />
         <pubDate>2021-05-06 00:54:4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25519</guid>
      </item>
      <item>
         <title>비류 왕자 - 김민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38340</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삶)비류</strong>(沸流,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3%9D%EB%AA%B0%EB%85%84_%EB%AF%B8%EC%83%81">생몰년 미상</a>)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D%83%9C">우태</a>(優台)의 장남 혹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고구려</a>의 시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AA%85%EC%84%B1%EC%99%95">동명성왕</a>(東明聖王)의 차남으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A0%9C_%EC%98%A8%EC%A1%B0%EC%99%95">온조왕</a>(溫祚王)의 형이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C%B6%94%ED%99%80%EA%B5%AD">미추홀국</a>의 초대 왕이기도 하다.<br><strong>(사실) </strong>미추홀구에 나라를 세웠는데 땅이 소금기가 많아 후회하다 죽었다.<br><strong>(관련 위치) </strong>문학산<br>비루가 문학산에 비류나라를 세웠다고 한다<br><strong>(의견) </strong>이렇게 인천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도시이기 때문에 인천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649511365/c9e52fcfa37c56bc89d39ea9d96c3b44/______2_.jpg" />
         <pubDate>2021-05-06 01:00: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38340</guid>
      </item>
      <item>
         <title>윤윤용은 강화 양도면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서울 선린상업학교 1학년이었던 그는 3월 1일 서울 탑골 공원에서 독립선언문 낭독의 집회가 있은 후, 수천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합창하는 시위 행진에 가담했다. 그리고 끝내 일본 경찰과 헌병의 무력 제지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대한문 방향으로 행진하다가 체포되었다. 같은 해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그 공훈을 기리어 1992년 대통령 포장을 추서하였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48635</link>
         <description><![CDATA[<div>&nbsp;               &lt;김지원&gt;</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04: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48635</guid>
      </item>
      <item>
         <title>세종대왕 (김민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1687</link>
         <description><![CDATA[<div>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85387&amp;ref=y">활자</a>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85102&amp;ref=y">주조</a>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785329&amp;ref=y">한글</a>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div><div><strong><br></strong><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1687</guid>
      </item>
      <item>
         <title>주원기(정연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570</link>
         <description><![CDATA[<div>주원기는 앞의 주명기를 필두로 한 주씨 가문의 4형제 중 막내로, 인천상업학교(현 인고)를 졸업한 뒤 일찍부터 가업인 정미소 경영에 임했다. 타고난 경영 수완으로 환일정미소와 그 후의 협신정미소를 불황 속에서도 지속 유지시켜 가는 데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다. (사실)뿐만 아니라, 가업에 혼신을 다하면서도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는데, 초대 인천시의회에 진출하여 교육문화분과 위원장을 맡아 했고, 이어 경기도의회에도 진출하여 부의장으로 선출되어 활약하기도 했다.(사실) 또한 소년군(보이스카웃)의 간부로 활약해 온 주원기는 해방 후 곽상훈 선생이 정계에 진출하자 보이스카웃 운동을 인계받아 중앙본부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으며, 해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대표로서 인솔해 가기도 해서 그 공로로 국민훈장을 포상받기도 했다.(사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2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570</guid>
      </item>
      <item>
         <title>조진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738</link>
         <description><![CDATA[<div>조진만은 인천 태생으로 1920년대 인천에서 서울로 기차 통학을 한 곽상훈(郭尙勳), 고유섭(高裕燮) 등과 함께 ‘경인기차통학생 친목회’의 일원으로 활약했고, 1927년 해주지방법원 판사를 출발로 전국 각지방의 판사 직을 역임했다. 1939년에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되었으며, 1943년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했다.&nbsp;    김도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73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986</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3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2986</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024</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3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024</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02</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02</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49</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49</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1</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6</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6</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8</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5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2</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2</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4</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4</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7</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67</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70</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7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71</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77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805</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805</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842</link>
         <description><![CDATA[한편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여 새 활자를 만들고 판짜기를 개량하여 인쇄 능률을 올렸는 바, 새로 주조한 활자는 동활자인 경자자(庚子字), 갑인자(甲寅字)와 납활자인 병진자(丙辰字)와 효시의 한글 활자가 그것이며, 이 중 갑인자와 한글 활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활자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세종대왕 [世宗大王] (한글글꼴용어사전, 2000. 12. 25., 세종대왕기념사업회)

]]></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0:5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3842</guid>
      </item>
      <item>
         <title>이순신 장군(김민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6278</link>
         <description><![CDATA[<div>1589년(선조 22) 이산해의 추천으로 다시 관직에 나서게 된 이순신은 감사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34161&amp;ref=y">이광</a>의 군관으로 전라도로 파견되었다. 그리고 그 해에 조방장과 <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12048&amp;ref=y">선전관</a> 등을 거쳐 정읍현감이 되었으며, 1591년(선조 24)에는 진도군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부임하기도 전에 다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전라<a href="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142641&amp;ref=y">좌수영</a>으로 부임한 이순신은 전함을 건조하고 군비를 확충하며 왜군의 침략에 대비하였다.</div><div><strong><br></strong><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1:5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66278</guid>
      </item>
      <item>
         <title>정용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79081</link>
         <description><![CDATA[<div>정용복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어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왔다. 경동 싸리재에서 미곡상을 하여 부자가 된 부친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평생을 청빈한 생활로 일관했다. 한편생을 체육계에 투신하여 보이스카웃과 체육계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7: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79081</guid>
      </item>
      <item>
         <title>정용복(정연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81761</link>
         <description><![CDATA[<div>정용복은 충남 서산 출신으로 어릴 때 부친을 따라 인천으로 왔다. (사실)경동 싸리재에서 미곡상을 하여 부자가 된 부친의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으나 평생을 청빈한 생활로 일관했다.(의견) 한편생을 체육계에 투신하여 보이스카웃과 체육계를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다.(사실)<br>우선 1954년에서 1955년에 걸쳐 한미친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도원동에 위치한 인천공설운동장과 야구장의 재건, 보수공사를 단행하여 운동장의 면모를 소생시켜 놓았다. 1950년대 초반부터 인천체육회 이사장으로 활동하였으며, 1957년에서 1960년까지는 경기도체육회 이사장으로 경기도의 체육 진흥을 위해 많은 공헌을 하였다.(사실)https://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amp;query=%EC%A0%95%EC%9A%A9%EB%B3%B5&amp;sm=tab_etc&amp;ie=utf8&amp;key=PeopleService&amp;os=327239정용복 보러가기.</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18: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81761</guid>
      </item>
      <item>
         <title>이민창</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85651</link>
         <description><![CDATA[<div>이민창은 서울 태생으로 한일합방 전의 초창기 서울의대(醫大)인 한성병원(漢城病院) 부속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개업을 하였으나, 한일합방이 된 후 ‘큰 의사는 나라의 병을 고치고 그 다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친다(上醫救國 其次救人)’라는 고전(古典)의 뜻에 따라 해삼위(海蔘衛 : 블라디보스톡)로 떠나가 구국운동을 감행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20:0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85651</guid>
      </item>
      <item>
         <title>서정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93346</link>
         <description><![CDATA[<div>서정익은 인천 출신으로 민족지(民族誌) 육성에 공헌한 서병훈(徐丙薰)의 아들이다. 1932년 일본 나고야[名古屋] 고등공업학교 방직과(紡織科)를 졸업하고, 1933년 인천의 도요방직[東洋紡織]에 창설 사원으로 입사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5-06 01:23:1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futuregoed/aucxa30seb6teisj/wish/1496293346</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