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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역사적 사건 by 임지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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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9-03 01:07: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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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조선- 연 전쟁</title>
         <author>170103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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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br>고조선-연 전쟁</strong>(古朝鮮-燕 戰爭)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9B%90%EC%A0%84_4%EC%84%B8%EA%B8%B0">기원전 4세기</a> 후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7%B0_(%EC%B6%98%EC%B6%94_%EC%A0%84%EA%B5%AD)">연나라</a>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A1%B0%EC%84%A0">고조선</a>을 침공한 사건이다. 군사 작전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A%B0%9C">진개</a>가 주도했으며 침공은 당시 고조선의 영토였던 랴오둥 지역이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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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03 01:10: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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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00년 고조선의 영토와 수도의 이동 </title>
         <author>1702194</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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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고인돌과 비파형 청동검 등의 청동기 유물을 토대로 생각하건대 고조선의 영토는 난하와 대릉하 유역에서 출발하여 전성기에는 요서, 요동은 물론 만주와 한반도 남부까지 이르는 세력들을 제후국으로 임명하였다.<br><br>&nbsp; &nbsp; &nbsp;비파형 청동검의 출토 연대에 따라 요서에서 요동 그리고 한반도로 이동했다고 보는 학자도 있고, 고인돌을 중심으로 생각해서 평양에서 시작해서 힘이 강해지면 중국으로 진출했다가 힘이 약해지면 다시 한반도로 돌아왔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br><br>&nbsp; &nbsp;그러면 고조선의 이동에 영향을 준 사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형진의 저서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상왕조 당시 중국강역지도<br><br>&nbsp; &nbsp;무정이 점령한 땅에 단군조선은 기록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휴의 서사시 제왕운기에는 조선이 무정왕 때 망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br><br>&nbsp; 한편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는 21세 단군소태 재위 47년경에 은나라왕 무정이 대군을 이끌고 단군조선을 영토에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내용은 중국에서 발굴된 갑골문에도 나타나 있다고 한다.<br><br>&nbsp; &nbsp;유물로 볼 때도 은의 유물은 요서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아 단군조선 점령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며 토방 강방 귀방 등의 북방민족이 고조선으로 몰려들었을 가능성은 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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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03 01:14: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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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은나라 멸망과 기자의 이동</title>
         <author>1702194</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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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lt;윤내현이 주장하는 요서지역 고조선의 수도 조양, 대전자. 기자는 단군조선의 옛 영토였던 이곳으로 이동하였다.&gt;&nbsp;</div><div><br><br></div><div>&nbsp;상왕조 말에&nbsp; 주왕의 폭정으로 상나라는 망하고 주나라가 건국된다. 주 무왕은 간언을 하다가 갇혀 있었던 기자를 신하로 삼고자 하지만 기자는 상나라는 왕족으로서 주무왕의 제안을 물리치고 상나라 유민을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한다.<br><br>&nbsp; &nbsp;중국역사서에 따라 진술이 엇갈리나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때 기자가 옛 단군조선의 영토로 이동하였고 주 무왕이 제후로 봉하였으나 받지 않았다고 기록되어있다.<br><br>&nbsp; 삼국유사에는 단군이 1500세에 기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장당경으로 옮긴 후 1908세에 아사달로 돌아와서 산신령이 되었다고 한다.<br><br>&nbsp;그러나 이것은 역사적으로 기자의 이동과 200년의 시간 차이가 있어 그 전에 단군조선이 지형적으로 비좁은 요서를 떠나 요동으로 수도를 옮기고 세력확장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후 옛 단군조선 땅이었던 고죽국에 기자와 은나라 유민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br><br>&nbsp; 기자가 옛 단군조선의 영토로 이동한 것은 사실이고 기자는 군사적 문화적으로 단군조선을 압도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구전되어 내려온 삼국유사의 연도를 무시하고 내용을 들여본다면 기자는 요서지역에 기자조선을 세웠고 단군조선은 장당경(요동 심양이나 황해도 당장경)으로 도읍을 하여&nbsp; 400년을 지낸 후 아사달(조양이 아닌 평양)로 돌아와 산신이 된 것으로 보인다.<br><br>&nbsp; &nbsp;신채호는 기자는 단군조선의 신하라고 보았다.&nbsp; 기자는 고조선의 변방에서 고조선의&nbsp; 제후국 번조선이 되었는데 기자를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사람들이 의미를 크게 확대하여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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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09-03 01:18: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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