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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난쟁이의 담벼락 by 2학년2반 담임[문학]이규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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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따뜻한 포옹을 담아 만듦</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8-24 04:45: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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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난쏘공 학습활동 안내</title>
         <author>kaywont20025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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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교과서 73쪽 3번&nbsp;<br>교과서 74쪽 4-(2)번&nbsp;<br>둘 중에 하나를 택해서 자신의 생각을 적어주세요.&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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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0 03:46: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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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7 정다해 활동 3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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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em>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br><br><br></em>‘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공간의 사회 빈민층들이 겪는 고되고 부조리한 일들을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반영한 소설이다.</div><div>&nbsp;1970년대에 발전을 위해 일어났던 산업화와 도시화는 도시 빈민층을 만들어내는 근본적 원인이 되었다. 소설 속 ‘난쟁이 가족’이 바로 이 빈민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난쟁이 가족 내에서도 각자 성격이 다르게 묘사되어나타나기 때문에 당대 빈민층들이 현실을 대응한 방법들을 알 수 있었다.</div><div>&nbsp; 크게 두가지 유형이 나오는데, 사회상에 순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현실 순응적 유형, 끝까지 저항하는 영호는 현실 저항적 유형으로 나타난다.</div><div>&nbsp; 이 두 유형을 비교해보며 들었던 생각이, 만약 영호가 난쟁이 ‘아버지’의 입장이었더라도 현실에 순응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일 수 있었을까?&nbsp;</div><div>개인적으로 어린 영호는 이러한 부조리함을 많이 겪어보지 않았기에 저항적인 의지 표현이 가능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의 주장은 현실에 통하지 않는 철없는 투정이다.<br>&nbsp;반면에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노비 가문) 지금까지 수많은 차별을 겪어 왔기에 거대 자본에 맞설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집을 철거하는 일이 최선이라는 선택을 내린것이 아닌가? 소설의 내재적인 측면에서는 가족을 포기한 것처럼 보여도, 현실적으로는 ‘순응’보다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은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현실 대응 유형의 대비는 모순적인 사회에서 내리게 되는   ‘선택’의 안타까움을 부각 시키며, 빈민층의 고된 삶을 더욱 서글프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 요소인듯 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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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0 09:3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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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35 박수연 활동 4-(2)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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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가진 자들에게 속절없이 당하는 가지지 못한 자들의 애환과 삶을 볼 수 있다. 특히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유명인과 국회위원 등 기득권층 자녀들의 '특혜' 논란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nbsp; 청년들은 계속해서 저항하고 있지만 기득권층 자녀들의 특혜 논란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자녀의 혜택을 합리화하는 기득권층을 보면 청년들은 허탈감만 늘어간다. 그럼에도 매번 청년들은 이러한 불공정함에 당하는 처지이다.<br>&nbsp;'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창작된 시대에는 한창 도시화와 재개발 문제가 떠올랐던 시대였다면, 요즘 시대에는 청년들의 일자리와 취업 문제가 떠오르는 시대인 만큼 '가진 자들과 가지지 못한 자들 간 갈등'이라는 공통점에서 오늘날에는 이 소설을 '기득권층 자녀 특혜 논란' 문제와 관련지을 수 있을 것 같다.&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211007000308" />
         <pubDate>2021-10-20 14:44: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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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01 강서진 활동 4 - (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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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br>&nbsp;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오늘날 심각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빈부격차 문제와 가난한 도시빈민의 생활문제가 떠올랐다. 최근 한 뉴스에서 보도된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의 제목은 &lt;" 생수 살&nbsp; 돈도 없었다.".. 전단지 알바하던 21살 기초 생활 수급자 청년의 죽음&gt; 이었다. 기사의 내용은 지난 8월 인천 한 버스 정류장에서 전단지 알바를 하던 청년이&nbsp; 쓰러져, 응급실로 갔지만 결국엔 열사병으로 숨져 안타까운 소식을 담고 있었다. 청년이 숨진 그 날의 기온은 30도로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청년이 한 아르바이트는 헬스장 전단지 광고로 500장당 7만원을 받는 열악한 임금 수준의 아르바이트였다. 또한 청년의 아버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아버지 또한 청년처럼 전단지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부자는 경기도&nbsp; 부천에 거주하고 있으나 경기도, 인천, 심지어 서울에서까지 전단지 알바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소에 아버지가 생수를 싸줬지만 그 날 하필 생수를 싸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청년의 지갑속에는 교통카드 외에 생수하나도 넉넉히 살만큼의 돈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두 부자는 생계,주거 급여를 매달 105만원 정도 받았지만, 둘의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nbsp;<br>또한 소득이 생기면 생계 유지비가 깎여 그마저도 줄어들어, 몰래 전단지 알바로 전전긍긍하며 생활해왔다고 한다. 또한 청년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교 진학을 하지 않아 마땅한 소득을 구할 직장을 얻을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에 청년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냉장고에 받아놓은 물을 갖고 갔으면 됐을텐데..물만 가져갔음 됐을 텐데.." 라며 안타까워하고 "(아들)사망신고를 하면 생계 급여가 깎인다"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기사를 보고서 난쟁이 가족이 떠올랐다. 이 기사속 부자가&nbsp; 궁핍한 삶속에서 뾰족한 수 없이 전전긍긍하며 살아가는 모습에서 난쟁이 가족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nbsp; 소설 속 내용과 같이 &nbsp; 궁핍한 도시빈민의 삶이 현재까지 지속되어 문제가 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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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0 16:24: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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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532 백민하_활동 4-(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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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에서의 난쟁이와 거인처럼&nbsp;<br>오늘날에는 계층 재생산의 결과로 흙수저와 금수저로&nbsp;<br>나뉘게 된다.&nbsp; 금수저와 관련한 기사를 찾아보았다.<br>.<br>.<br>.</div><h1><strong>'개천의 용' 없었다…</strong></h1><h1><strong>의대 새내기 80%가 금수저</strong></h1><h1>-매일경제 김제림 기자</h1><div>의대 신입생 중에서 저소득층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소득과 입시 성적 간 상관관계가 강해지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이 불리한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 전형 비율이 다른 학과에 비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의대와 같이 사회적 책무가 중요한 학과에서는 상대적 고려가 더욱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장학재단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0학년도에 입학한 전국 39개교 의대 신입생 2977명 중 소득 1~8구간에 해당하는 학생은 577명으로 전체의 19.4%에 불과했다. 국가장학금 1유형은 소득 1~8구간에게만 주어지는데, 월 소득인정액 920만원 미만이 소득 8구간에 해당한다. 즉 2020학년도에 의대에 입학한 신입생 중 80.6%가 국가장학금 대상이 되지 않은 소득 9~10구간 고소득층 출신이었다는 얘기다. 이는 작년 4년제 대학과 전문대 신입생 중 42.5%가 소득 9~10구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nbsp;<br>의대 신입생 중 소득 1~8구간 비율은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 2017년에는 24.9%였는데 2019년에는 20.4%, 2020년엔 19.4%로 떨어졌다. 특히 2017년에 43명은 되던 기초수급자·차상위 계층 출신은 전체 모집인원이 20% 늘어날 동안 작년에 41명으로 감소할 정도로 의대 신입생에서 저소득층 출신을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입시학원가에서는 가구소득에 따라 입시 결과가 좌우되는 현재 입시 판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오종운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2000년도 초반부터 가계소득과 대학 진학 성과의 연관 관계가 더욱 강해졌다"면서 "최상위권 학생들이 지원하는 의대인 만큼 가계소득이 높은 학생이 많이 들어오게 되고, 이는 다른 상위권 대학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고소득층이 사교육에 쓰는 비용이 훨씬 큰 폭으로 증가하면서 소득과 입시 성적 간 연관 관계가 더 커진 측면도 있다. 통계청의 2019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월 소득 300만~400만원 가정에서는 월평균 사교육비가 2015년 21만2000원에서 23만4000원으로 2만2000원 늘었지만 같은 기간 월 소득 700만원 이상 가정에서는 42만원에서 51만5000원으로 9만5000원 늘었다.&nbsp;<br>의대의 고소득층 비율이 높게 나오는 데에는 높은 정시 비율과 재수 비율도 한몫한 것으로 풀이된다. 2021학년도 대입에서 국내 4년제 대학 전체의 수시 선발 인원 비율이 77%인 것에 비해 의대는 60%로 낮은 편이다. 수시전형은 지방 일반고 학생들이 내신 경쟁력이 있는 학생부전형으로 의대 입학을 노려볼 기회가 많은데, 의대는 이를 통해 선발하는 학생이 많지 않다는 의미다. 또 의대는 수시전형에서도 수능 최저 등급 기준 역시 매우 높은 편이라 가정 소득이나 학교 환경에서 불리한 학생들이 수능 최저 등급에 걸쳐 탈락되기도 한다. 수능 위주의 정시 전형은 '정시형' 자율형사립고나 학원가가 밀집한 지역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성적을 얻는 경우가 많아 가정 소득과 학생 성적 간 연관성이 강한 편이다. 또한 의대는 학과 특수성 때문에 n수생도 많다 보니 결국 저소득층 학생들에게는 벽이 높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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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4 14:02: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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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19 정시연 활동3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aywont200252/7q3tc8wgz89q7zz6/wish/1841643573</link>
         <description><![CDATA[<div>&nbsp;이 작품은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소외된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삶과 그들의 좌절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문제점을 비판하고자 하는 작품이다.&nbsp;<br>비슷하게 나타나는 오늘날의 문제점으로 "수저 계급론"이 생각 났다. 수저 계급론이란 말 그대로 부유한 부모를 만나면 금수저, 가난한 부모를 만나면 흙수저라는 것을 뜻한다. 상대적으로 금수저들은 부모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으로 수월하게 교육,입시,취업,결혼을 통과하고 비교적 쉽게 사회적 성공을 손에 쥔다.&nbsp;<br>&nbsp;반면에 흙수저는 이러한 금전적인 도움 하나 없이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하는데 어렸을 때 부터 힘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성공으로 가는 길은 매우 험난 할 것이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위 작품에서 나온 것 처럼 부모의 부나 지위와 같은 것들은 대물림 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보통 사람 누구나 힘이 빠질 것이다.<br> 물론 금수저가 다 성공하거나 흙수저는 다 실패한다는 내용은 아니다. 금수저도 불행 할 수도 있고 흙수저 중에서도 피나는 노력으로 성공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부의 격차를 보면서 경쟁을 해야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이야기 같지는 않다.<br>&nbsp;“현재 2020년 기준 한국 소득 상위 20%의 평균 순자산은 11억2500만원으로 소득 하위 20%의 166.64배에 달했다.”라는 내용의 기사를 봤는데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이 사회를 보면서 이러한 사회구조적 문제는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닌 정부가 이러한 빈부격차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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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5 13:26: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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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03 서예원 활동 3번</title>
         <author>kaywons200160</author>
         <link>https://padlet.com/kaywont200252/7q3tc8wgz89q7zz6/wish/1841937618</link>
         <description><![CDATA[<div>&lt;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gt;은 주인공 가족의 삶을 통해 산업화 시기 도시 빈민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1970년대 서울의 재개발 지역을 배경으로 하여 철거 위기에 놓인 도시 빈민들의 비참한 삶과 좌절을 표현하였다. 이 작품에서는 수동적으로 철거에 순응하는 아버지,어머니와 철거에 거부하며 저항하려는 그들의 자식들이 등장한다. 첫째 아들 영수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 운동에 뛰어들고, 둘째 아들 영호는 철거 위기에 놓인 상황에 맞서려는 저항 의지를 가지고, 막내 영희는 철거 과정에서 좌절하지 않고 입주권을 되찾아 와 가족들에게 희망을 품어주려고 한다.</div><div>부모의 입장이든 자식들의 입장이든 어느 쪽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나는 현실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어 저항해보려는 자식들의 입장에서 ‘아버지’,‘어머니’에게 비판적인 마음이 들었다. 우선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본인이 바뀌려고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거 계고장을 받고나서도 체념하는 모습만 보이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없이 철거에 순응했다. 집안을 이끌어갈 사람들이 위기가 다가왔을 때 체념만 하는 모습에서 나는 굉장히 안타까웠다. 노비계급이 대대로 내려져 왔으면 그것에 익숙해지기보다는 언젠가는 그것을 꺾고 저항해나가야 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nbsp;</div><div>이는 독일의 학자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계급 투쟁설과도 연관지을 수 있다. 급진주의의 관점에서 재산의 대물림, 세습, 빈부의 고착화를 사회 불평등이라고 말하며 근본적 변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빈부격차를 싫어해서 노동자와 무산계급같은 빈곤한 계층이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봤다. &lt;난쏘공&gt;을 읽으면서 나는 난쟁이 가족이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을 알았으면 어떨까 싶었다. 물론 산업화가 전체적인 사회에 주는 장점, 그리고 난쟁이 가족의 어려운 형편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었다고 해도 본인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과 의지를 인식했으면 했다. 자식들도 가족에게 힘을 주기 위해 그렇게 위험을 무릎쓰고 노력하는데 정작 가족의 기둥이 되는 부모는 희망이 되어주지 못하고 현실에 순응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난쟁이 가족의 ‘어머니’,‘아버지’가 저항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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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5 14:45: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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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27 장채연 74쪽 4-(2)</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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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이 작품을 빈부격차와 연결지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된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에 한국의 빈부격차에 대해 잘 나타나있는 것 같아서 오징어 게임에서의 빈부격차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았다.<br><br><strong>NYT '오징어게임' 흥행요인? "집값폭등 빈부격차 한국경제 불평등이…"</strong><br>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배경에는 집값폭등과 실업문제로 인한 부의 불평등이 심화하는 등 한국 경제불안이라는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br>뉴욕타임스는 6일(현지시간) "'오징어 게임'의 전세계적 흥행 뒤엔 국가적 경제 불안이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br>'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을 걸고 펼쳐지는 서바이벌 게임을 그린 작품으로, 지난달 17일 공개된 후 넷플릭스가 서비스 중인 83개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br>NYT는 황동혁 감독의 말을 인용해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이 가진 문제들은 매우 개인적이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반영하기도 한다"며 "'오징어 게임'과 한국 청년들의 현실이 가진 유사점이 예상 밖의 국제적인 돌풍을 이끌고 있다"고 전했다.<br>이어 "한국의 가계 부채는 올라 경제 성장을 저지할 수 있는 수준이고, 서울의 집값은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는 동안 50% 상승했다"면서 "'오징어 게임'의 등장 인물들은 사회에서 나아갈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한국 청년들을 연상시킨다"고 분석했다.<br>신문은 '오징어 게임'이 가난과 부유층을 대조시키는 내용으로 지난 2019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 등과 궤를 같이한다고 봤다.&nbsp;<br>또 한국은 한국 전쟁 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뤄 현재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꼽히지만,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부의 격차가 점점 악화하고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br>NYT는 "'오징어 게임'은 불평등과 기회상실이라는 한국의 뿌리 깊은 감정을 활용해, 세계의 관객을 끌어모은 '최신 한국문화 수출품'일 뿐"이라고 평가했다.<br><br></div><div>맹성규 매경닷컴 기자(sgmaeng@mkinternet.com)</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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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0-27 12:4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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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09 곽수민 활동 3</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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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조되는 모습은 1970년대의 빈부격차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에 나왔듯이 난장이네는 대대로 노비집안이다가 해방된 이후로도 계속된 경제적 소외계층의 삶을 살고 있었다. 심지에 노비신분으로 부터 해방이 되었을 때도 자신을 내쫓지 말아달라 빌던 난장이네집안 이였다. 이런 끊임없는 가난의 대물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공부만이 신분상승의 길이라고 하지만 빈민층에 있어서는 공부는 환상에 불과했다. 그들은 결국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공장에 일을 나가는 일 이 되풀이되며 가난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 전 책에서 읽었던 전태일 사건이 생각났다. 전태일 열사는 재단사로 일하며 열악항 노동조건에 맞서 싸운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이다. 그가 남긴 마지막 편지에도 '근로 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나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는 말이 담겨있다. 1970년대 노동자들이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 환경에서 인권을 침해당해왔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인상깊게 보았던 문구이다.반면에 많은 부를 누리고 있는 상위층들은 더욱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정당한 대가없이 착취해가며 더 많은 돈을 늘렸다. 또한 빈민촌의 재개발은 오롯이 상위층들을 위한 것 이였고 이러한 구조가 쌓이고 쌓여 빈부격차가 극대화 된 것이다. 이렇듯 그들의 처지는 그들 자신도, 집안도, 능력도 아닌 사회구조로부터 내려온 것이였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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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1-03 09:17: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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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14 성유진 활동 3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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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 산업화로 인해 소외된 도시 빈민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작품을 어렸을 때 처음 접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나도 어렸고 아직 세상의 모순에 대해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문제점과 어떤 것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 매체를 통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을 배웠고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이 작품을 배우면서 암담하다고 느껴졌던 부분은 1970년에서 약 5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는 변한 점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서는 대대로 힘들고 가난하게 살아왔던 빈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들의 상황 속에서 사회는 그들의 편이 아닌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 하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사회에 굴복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모습이 최근 영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그리고 웹툰 원작인 ‘신과 함께’ 등을 통해서 아직까지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가깝게 알 수 있다.&nbsp;<br>&nbsp;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절대 둘을 비판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사회에 순응하고 체념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가정에 무책임 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들에게는 최선의 방법이였을 것이다. 당시 시대는 1970년대이다. 아직까지도 세상은 소수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점점 작은 목소리를 뱉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것이 당연하고 들어주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에 도시 빈민의 목소리는 정말 힘 없는 작은 소리였을 것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던 어른들은 결국 체념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 점을 무능하다고 보기에는 너무 각박하다라는 생각이든다. &nbsp;<br>반대로 ‘영호’의 태도는 조금 달랐는데 나는 ‘영호’에 입장에서는 오히려 ‘영호’가 이해가 되었다. 내가 ‘영호’ 였어도 영호와 같이 이야기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미 모순적인 사회를 경험하고 세상에 많은 아픔을 겪은 어른들과는 달리 ‘영호’는 아직 어리다. 그렇기 때문에 ‘영호’는 본인의 입장을 주저 없이 이야기 할 수 있고,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이다.&nbsp;<br>&nbsp;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장과 ‘영호’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영호’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할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nbsp;‘영호’와 같은 태도로 부조리한 현실에 맞서고, 주장하고 , 목소리를 내뱉기 시작하면 언젠가는 우리 사회도 모순적이지 않은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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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1-20 04:42: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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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116 이두형 활동 3</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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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란 소설은 흔히<br>우리가 겪어왔던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비판이 들어간 글이기도 하면서 반대로 그에 저항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글이다.특히 이 글에선 현실을 순응하면서 받아들이는 '서술자' , '아버지'와 '어머니' , 반대로 현실을 저항하려는 '영호' 의 갈등이 주되었다고 본다.근데 과연 이 등장인물들의 선택을 비판할 수가 있을까? 학습활동 3번에서는 '아버지' 와 '어머니'의 현실 순응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둘을 중심으로 글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것인데 저는 그 둘이 아닌 '영희'를 통해 작품을 비판하고자 한다. 우선 '영희'라는 등장인물은 이 소설에서 가장 순수한 성품을 지녔다고 나타났는데 결국에는 그 순수함이 져버리게 된다.특히 영희는 입주권을 산 남자를 따라가 그 남자의 집에서 돈과 입주권을 훔쳐 도망쳐나온다.이 부분에서 우리는 사회적 약자들의 발악이라는 표면적으로 연민의 시선을 느끼게 할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소유물을 훔치는것 그 행동 자체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라해도 인정이 될 수 없는 것이다.그리고 이 소설의 전체적인 틀은 사회적 부조리의 비판이라 알고 있는데 그러한 큰 틀에 묻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의 부조리함을 덮어버리는건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것이 옳은 행동이 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인식이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이와 같은 이유로 나는 이 작품이 잘못된 인식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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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1-12-25 09:06: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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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30 권민경 활동 4-(2)</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aywont200252/7q3tc8wgz89q7zz6/wish/1970515396</link>
         <description><![CDATA[<div>‘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속 큰 주제인 ‘빈부격차’와 관련된 영화인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알아보았다.&nbsp;<br>'기생충'과 '오징어게임'두 콘텐츠의 공통점은 전 세계가 주목한 우리나라 영화와 드라마다.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수상했고 '오징어게임'은 전 세계 넷플릭스시장에서 46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미국 영화·TV쇼 시상식인 골든글로브 3개 부문 후보까지 올랐다. 두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은 배경에는 뛰어난 각본과 연출력이 있다. 하지만 이 것만으로 세계적인 성공을 설명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넘어 글로벌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바로 불평등과 양극화.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와 자본주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여전히 존재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전세계적인 사회 모순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는 점이 세계인들의 반향을 일으켰다.</div><div>불평등과 양극화. 세계적 공통 화두이자 해묵은 난제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는 있었다. 하지만 격차는 커지고 벌어지고 있다. 자본주의의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지만 역으로 보면 시장경제의 모순이다. 땀 흘린 대가 만큼 돈을 버는 것은 맞다. 하지만 부자들은 과연 노력한 만큼 수입을 올리고 있는가? 가난한 사람에게는 노력할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가? 돈 있는 사람만 더 배부르고 돈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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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1-02 07:43: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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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641 성수민 활동 4-(2)</title>
         <author>kaywons20034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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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는 &lt;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 작품에 있어서,<br>당대 기득권층과는 달리 사회적 약자나 사회적 소외 계층에게는<br>주거권조차 보장되지 않아 인간으로서의 '인간다운 삶' 조차도<br>보장받지 못하는 난쟁이 가족의 모습을 보고,<br>21세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br>기득권층과 사회적 취약 계층의 불평등과<br>이러한 불평등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직접적인 폭력을 포함한,<br>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폭력과<br>취약 계층에게 부여되는 여러 불이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br><br>위의 뉴스 기사는,<br>최근 진주교육대학교에서 일어난<br>장애인 입시생과 비장애인 입시생에 대한 점수에 차등을 주어<br>차별한 것이 아니냐는 논란에 관한 내용이다.<br><br>위와 같이 장애를 가졌다는, 다시 말하면,<br>사회적 취약 계층이라는 이유만으로 점수에 차등을 주어<br>취약 계층에게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인<br>교육의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기득권층의 몰상식한 행동은,<br>&lt;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gt; 작품 속에 나타나는<br>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에 따른 폭력과 관련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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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1-02 12:38: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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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317 유지연</title>
         <author>kaywons20024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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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election2022/2022/01/07/QLQU6JJ2KBCS7NH6C7QBT7JWNE/<br><br>'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에서 어머니 아버지는 사회에 순응하고 자신이 살던 집을 버리고 강제로 떠나게 된다. 본문에 아버지의 말 중 "그들 옆엔 법이 있다."라는 말을 한다.&nbsp;<br><br>권력을 가진자 또는 갑의 위치에 있는자가 개인의 이윤이 아니 공익을 위한 정책이라면 공동체의 일부인 개인은 강요된 희생이라도&nbsp; 희망을 가지고 감당할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nbsp;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정책일 경우 이러한 사회적 모순을 보완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 균형잡힌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br><br>우리 사회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nbsp; 아직도 비슷한 문제가 뉴스로 접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nbsp;<br><br>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이나 불균형을 보완하기 위해&nbsp; 감시와 시스템을 보완해 왔지만 여전히 법망을 피해 갑의 위치에서 그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발생하며 그로인한 을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음이 뉴스를 통해 알려지고 있다<br><br>'난쟁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요근래에 큰 이슈가 됐던 대장동사건이 떠올랐다. 대장동 사건에서도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처럼 그곳에 살던 사람들이 누구의 보호도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 곳을 잃는 피해를 똑같이 당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고 아픔만 커져갔다. 권력자들은 이미 가진것이 많았지만 더 많은 이익을 취하기위해 부당하게 그들의 것을 빼앗아갔다.&nbsp;<br><br>역사적으로 볼 때<br>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허술함을 피해<br>이런 부당함들이 있었고&nbsp;<br>피해자들을 늘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br>이러한 사회적 모순이나 부당함을 지켜만 보고&nbsp;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nbsp; 어필하며 싸워온 노동자, 농민&nbsp; 등의 약자들이 있었고&nbsp;<br>여기에는 예술가들도 포함되어 있었다.<br>그 대표적 사례로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이름 없는 농민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던 사람들있다. 동학농민운동에 참여했던 전봉준의 마음을 기리어 전봉준이 죽은 후 100여 년 후에 구본주 작가가 동학농민군 조각상을 제작했다. 사회의 부조리함에 맞서 싸운 사람을 잊지 않고 기리기위해서였다.구본주는 1980년대 말 한국노동자들의 삶과 사회의 부조리함을 풍자하고조각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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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1-07 15:27: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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