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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역사 연표 제작하기 및 유적지, 문화유산, 명소 정리 by 권용호</title>
      <link>https://padlet.com/hyunilhs1/7o7l8tuy1o5hteas</link>
      <description>구미시, 김천시의 지역사 연표를 제작해보세요. 지역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 시기에 전국사를 비교해보세요. 그리고 지역의 유적지, 문화유산, 명소를 찾아 보고서를 작성해주세요.</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01 01:53:05 UTC</pubDate>
      <lastBuildDate>2025-09-01 10:49:27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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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미시 문화 관광 사이트 링크</title>
         <author>geoman94_</author>
         <link>https://padlet.com/hyunilhs1/7o7l8tuy1o5hteas/wish/3562470867</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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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01:57: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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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천시 역사 정보 링크</title>
         <author>geoman94_</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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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02:01: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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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천시 역사관련 정보</title>
         <author>geoman94_</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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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02:14: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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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지털구미문화대전</title>
         <author>geoman94_</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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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02:17: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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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송수경</title>
         <author>bzw9bsfcgt</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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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선사시대:</strong></p><ul><li><p><strong>청동기시대:</strong> 구미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 및 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활발한 인간 거주와 사회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p></li><li><p><strong>삼한시대:</strong> 변진 24개국 중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이 현재의 인동동 일대에 비정되었다. 인동 지역은 진한 12개 소국 중 군미국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p></li></ul><p><strong>고대 (삼국시대 ~ 통일신라):</strong></p><ul><li><p><strong>3~4세기경:</strong> 인동 지역의 군미국이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된다.</p></li><li><p><strong>5세기경:</strong> 신라가 인동 지역에 대한 위무를 행하고 있었다.</p></li><li><p><strong>삼국시대:</strong>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 각축장이 되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다.</p></li><li><p><strong>신라 시대 (초기):</strong>**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되었다 (현재 구미시·선산군).</p></li><li><p><strong>사동화현(斯同火縣)</strong>이 설치되었다 (현재 인동동 일대).</p></li><li><p>눌지왕 때 묵호자, 소지왕 때 아도가 일선군 모례의 집에 불교를 전파하였다. (신라 불교 초전지, 도리사의 유래와 관련)</p></li><li><p><strong>614년 (진평왕 36년):</strong> 일선군이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되었으며, 상주(上州)의 주치소(州治所)가 사벌과 감문에서 이곳으로 이동해 왔다.</p></li><li><p><strong>687년 (신문왕 7년):</strong> 상주가 사벌주로 옮겨가면서 일선주가 폐지되었다.</p></li><li><p><strong>757년 (경덕왕 16년):</strong>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일선군이 숭선군(嵩善郡)으로 개칭되고, 군위현·효령현·이동혜현을 속현으로 두었다. 사동화현은 수동현으로 개칭되었다.</p></li></ul><p><strong>고려시대:</strong></p><ul><li><p><strong>907년 (효공왕 11년):</strong> 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여 후백제 영역으로 편입시켰다.</p></li><li><p><strong>936년 (태조 19년):</strong> 일리천(一利川)에서 후백제와 고려의 최후 결전이 벌어져 고려가 승리하여 후삼국을 통일하였다. 당시 호족 김선궁이 왕건에게 귀부하여 큰 공을 세웠다.</p></li><li><p><strong>995년 (성종 14년):</strong> 숭선군이 선주(善州)로 개편되고 자사(刺史)가 임명되었다.</p></li><li><p><strong>1018년 (현종 9년):</strong> 선주가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인동 지역은 경산부(京山府: 현재 성주)의 속현이 되었다.</p></li><li><p><strong>1143년 (인종 21년):</strong> 일선현이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어 해평군·군위현·효령현·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되었다.</p></li><li><p><strong>1235년 (고종 22년):</strong> 이유정이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 크게 패하였다.</p></li><li><p><strong>1380년 (우왕 6년) &amp; 1383년:</strong> 왜구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p></li><li><p><strong>1390년 (공양왕 2년):</strong> 인동현에 처음으로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독립 행정단위가 되었으며, 약목현을 편입시켰다.</p></li></ul><p><strong>조선시대:</strong></p><ul><li><p><strong>1413년 (태종 13년):</strong> 지방제도 개편 때 선주가 선산군으로 개명되었다. 인동현은 현명을 유지한 채 군수·현감이 파견되었다.</p></li><li><p><strong>1415년경:</strong> 선산군이 주민 수 1,000호 이상이 되어 선산도호부로 승격되었다.</p></li><li><p><strong>선조 때 (연도 미상):</strong> 곽재우가 천생산성(天生山城)을 축조하였다.</p></li><li><p><strong>1604년 (선조 37년):</strong>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었고, 천생산성 조방장을 도호부사가 겸임하였다. (임진왜란 시 곽재우의 활약이 배경)</p></li><li><p><strong>조선 후기:</strong> 장현광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다.</p></li></ul><p><strong>근대:</strong></p><ul><li><p><strong>1895년 (고종 32년):</strong> 갑오개혁 직후 소지역주의가 채택되어 23부제가 실시되면서, 선산도호부가 선산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하였고, 인동군은 대구부 소관의 인동군이 되었다.</p></li><li><p><strong>1896년:</strong> 13도제 실시에 따라 선산군과 인동군 모두 3등군으로서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다.</p></li><li><p><strong>1914년 3월 1일:</strong> 인동군이 폐지되고 인동군 관할의 9개 면(읍내면·북면·동면·장곡면·문량면·석적면·북삼면·약목면·기산면)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p></li><li><p><strong>1914년 4월 1일:</strong> 읍내면과 북면을 병합하여 인동면으로 개칭되었다.</p></li><li><p><strong>1914년 7월 15일:</strong> 인동면 중동 일부가 선산군 산동면 성수동에 편입되었다.</p></li><li><p><strong>1914년 (행정구역 개편):</strong>동내면·독동면·무래면 일부, 고남면 일부, 개령군 고성면 일부가 병합되어 선산면이 되었다.</p></li><li><p>망장면, 평성면 일부, 내서면 봉산리가 병합되어 고아면이 되었다.</p></li></ul><p><strong>현대:</strong></p><ul><li><p><strong>1963년:</strong> 구미면이 구미읍으로 승격되었다.</p></li><li><p><strong>1968년 3월:</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시작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 중점 육성).</p></li><li><p><strong>1969년:</strong> 구미공업단지 조성으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하였다.</p></li><li><p><strong>1973년 7월 1일:</strong> 칠곡군 북삼면 낙계동이 구미읍에 편입되고 산동면 도산동이 군위군 소보면에 편입되었다.</p></li><li><p><strong>1977년 3월 2일:</strong> 인동이 경상북도 구미지역출장소 관할로 되었다.</p></li><li><p><strong>1978년 2월 15일:</strong>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하여 구미시로 승격되면서 선산군에서 분리되었다.</p></li><li><p><strong>1979년:</strong>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되었다.</p></li><li><p><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되어 현재의 구미시가 되었다.</p></li><li><p><strong>1997년 11월 1일:</strong> 고아면이 고아읍으로 승격되었다.</p></li></ul><p>등장인물 (Cast of Characters)</p><ul><li><p><strong>아도화상 (阿道和尙):</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인물 중 한 명.</p></li><li><p><strong>설명:</strong>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도리사(桃李寺)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소지왕 때 일선군 모례의 집에 불교를 전하기도 했다.</p></li><li><p><strong>묵호자 (墨胡子):</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인물 중 한 명.</p></li><li><p><strong>설명:</strong> 눌지왕 때 일선군 모례의 집에 와서 불교를 전파했다.</p></li><li><p><strong>길재 (吉再):</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성리학자.</p></li><li><p><strong>설명:</strong>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성리학은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며 영남 학파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p></li><li><p><strong>김선궁 (金宣弓):</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고려 초 선산 지역의 호족.</p></li><li><p><strong>설명:</strong> 936년 후백제와 고려의 최후 결전에서 왕건에게 귀부하여 큰 공을 세워 중용되었다. 이후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p></li><li><p><strong>이유정 (李裕貞):</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고려 후기 인물.</p></li><li><p><strong>설명:</strong> 1235년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하였다.</p></li><li><p><strong>곽재우 (郭再祐):</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조선 선조 때 의병장.</p></li><li><p><strong>설명:</strong>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크게 무찔렀으며, 천생산성을 축조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공로로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는 배경이 되었다.</p></li><li><p><strong>김숙자 (金叔滋):</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조선 초 성리학자.</p></li><li><p><strong>설명:</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아 후학을 양성했다.</p></li><li><p><strong>김종직 (金宗直):</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조선 초 성리학자.</p></li><li><p><strong>설명:</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김숙자를 통해 이어받아 영남 학파의 핵심 인물이 되었다.</p></li><li><p><strong>장현광 (張顯光):</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조선 후기 성리학자.</p></li><li><p><strong>설명:</strong> 조선 후기 선산 지역에서 배출된 유명한 성리학자 중 한 명이다.</p></li><li><p><strong>박정희 (朴正熙):</strong></p></li><li><p><strong>역할:</strong> 대한민국 전 대통령.</p></li><li><p><strong>설명:</strong> 구미공단 조성의 배경이 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한 인물. 구미시는 그의 생가와 관련된 중요한 지역으로 언급된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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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0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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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24 황예린</title>
         <author>maria8048</author>
         <link>https://padlet.com/hyunilhs1/7o7l8tuy1o5hteas/wish/3563184830</link>
         <description><![CDATA[<p>고대 (삼국시대 이전 - 668년)</p><ul><li><p><strong>청동기 시대:</strong> 구미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 및 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인간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 소국(小國: 성읍국가)인 군미국(軍彌國)과 변군미국이 인동 지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p></li><li><p><strong>삼국시대 초기:</strong> 선산 지역은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된다.</p></li><li><p><strong>5세기경:</strong> 인동 지역의 군미국이 신라에 흡수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때 사동화현(斯同火縣)이 설치된다.</p></li><li><p><strong>눌지왕 시기:</strong> 묵호자가 선산 일선군의 모례의 집에서 불교를 전한다.</p></li><li><p><strong>소지왕 시기:</strong> 아도가 선산 일선군의 모례의 집에서 불교를 전한다.</p></li><li><p><strong>614년 (진평왕 36):</strong> 일선군(一善郡)이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되고, 사벌과 감문에 있던 상주의 주치소(州治所)가 이곳으로 이동한다.</p></li></ul><p>고려시대 (918년 - 1392년)</p><ul><li><p><strong>907년 (효공왕 11):</strong> 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여 후백제의 경상도 북부 진출 발판을 마련한다.</p></li><li><p><strong>936년 (태조 19):</strong> 후백제와 고려의 최후 결전이 선산읍 동쪽 일리천에서 벌어져 고려가 승리하며 후삼국을 통일한다.</p></li><li><p><strong>995년 (성종 14):</strong> 선산 지역이 선주(善州)로 개편되고 자사가 임명된다.</p></li><li><p><strong>1018년 (현종 9):</strong> 선주가 상주의 속현이 된다. 인동현이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된다.</p></li><li><p><strong>1143년 (인종 21):</strong> 선산 지역이 일선현으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고, 이후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된다.</p></li><li><p><strong>1235년 (고종 22):</strong> 이유정이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 크게 패한다.</p></li><li><p><strong>1380년 (우왕 6) &amp; 1383년:</strong> 인동현이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다.</p></li><li><p><strong>1390년 (공양왕 2):</strong> 인동현에 감무(監務)가 처음 설치되어 독립 행정 단위가 되고, 약목현을 편입시킨다.</p></li><li><p><strong>고려 후기:</strong> 금오산성이 축조된다.</p></li></ul><p>조선시대 (1392년 - 1897년)</p><ul><li><p><strong>1413년 (태종 13):</strong> 지방제도 개편 때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고, 인동현은 현명을 유지한다.</p></li><li><p><strong>1415년:</strong> 선산군이 1,000호 이상의 주민을 확보하여 선산도호부로 승격된다.</p></li><li><p><strong>1604년 (선조 37):</strong> 인동현이 인동도호부로 승격된다.</p></li><li><p><strong>임진왜란 시기:</strong> 곽재우가 천생산성을 축조하고 왜적을 크게 무찌른다.</p></li><li><p><strong>조선 후기:</strong> 장현광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된다.</p></li></ul><p>근대 (1897년 - 1945년)</p><ul><li><p><strong>1895년 (고종 32):</strong> 갑오개혁 직후 23부제 실시로 선산군은 대구부에 속하고, 인동군도 대구부 소관이 된다.</p></li><li><p><strong>1896년:</strong> 13도제 실시에 따라 선산군과 인동군이 경상북도 소관의 3등군이 된다.</p></li><li><p><strong>1914년 3월 1일:</strong> 인동군이 폐지되고 인동군 관할 9개 면이 칠곡군에 병합된다.</p></li><li><p><strong>1914년 4월 1일:</strong> 읍내면과 북면이 병합되어 인동면으로 개칭된다.</p></li><li><p><strong>1914년 7월 15일:</strong> 인동면 중동 일부가 선산군 산동면 성수동에 편입된다.</p></li><li><p><strong>1914년:</strong>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러 면이 통합되어 선산면과 고아면이 된다.</p></li></ul><p>현대 (1945년 - 현재)</p><ul><li><p><strong>1963년:</strong> 구미면이 구미읍으로 승격된다.</p></li><li><p><strong>1968년 3월:</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된다.</p></li><li><p><strong>1969년:</strong> 구미공업단지 조성으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한다.</p></li><li><p><strong>1973년 7월 1일:</strong> 칠곡군 북삼면 낙계동이 구미읍에 편입되고 산동면 도산동이 군위군 소보면에 편입된다.</p></li><li><p><strong>1977년 3월 2일:</strong> 인동이 경상북도 구미지역출장소의 관할이 된다.</p></li><li><p><strong>1978년 2월 15일:</strong>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고 선산군에서 분리된다.</p></li><li><p><strong>1979년:</strong> 선산면이 선산읍으로 승격된다.</p></li><li><p><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선산군이 구미시에 통합되어 현재의 구미시가 된다.</p></li><li><p><strong>1997년 11월 1일:</strong> 고아면이 고아읍으로 승격된다.</p></li></ul><p>캐스트 오브 캐릭터</p><ul><li><p><strong>묵호자(墨胡子):</strong> 눌지왕 때 선산 일선군의 모례의 집에 와서 불교를 전한 인물. 신라 불교 전파에 기여했다.</p></li><li><p><strong>아도(阿道):</strong> 소지왕 때 선산 일선군의 모례의 집에 와서 불교를 전한 인물. 신라 불교 전파에 기여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설화에 따르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길지에 절을 세웠는데 이것이 도리사의 유래가 되었다고 전해진다.</p></li><li><p><strong>견훤(甄萱):</strong> 후삼국시대 후백제를 세운 왕. 907년(효공왕 11)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여 후백제의 경상도 북부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p></li><li><p><strong>왕건(王建):</strong> 고려를 세운 태조. 936년(태조 19) 선산읍 동쪽 일리천에서 후백제와의 최후 결전에서 승리하여 후삼국을 통일했다.</p></li><li><p><strong>김선궁(金宣弓):</strong> 고려 태조 왕건에게 귀부하여 큰 공을 세워 중용된 호족. 이후 그의 후예들이 선산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 그의 신도비와 유허비가 남아있다.</p></li><li><p><strong>이유정(李裕貞):</strong> 1235년(고종 22)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한 인물.</p></li><li><p><strong>길재(吉再):</strong>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명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의 태상박사 임명을 거절하고 고향인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 그의 성리학은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며 많은 인재 배출에 영향을 미쳤다. 길재 정려비가 있다.</p></li><li><p><strong>김숙자(金叔滋):</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은 인물로, 많은 인재 배출에 기여했다.</p></li><li><p><strong>김종직(金宗直):</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은 인물로, 많은 인재 배출에 기여했다.</p></li><li><p><strong>곽재우(郭再祐):</strong> 조선 선조 때의 의병장. 임진왜란 시 인동 지역에서 왜적을 크게 무찌른 공로로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천생산성을 축조했다.</p></li><li><p><strong>장현광(張顯光):</strong> 조선 후기 선산 지역에서 배출된 성리학자.</p></li><li><p><strong>박정희(朴正熙):</strong> 대한민국 전 대통령. 구미 출신으로, 그의 생가가 구미에 있다.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p><p>구미는 풍부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지닌 도시로, 다양한 유적지와 명소들이 있습니다. 다음은 출처에서 언급된 구미의 주요 문화유산, 유적지, 명소들을 정리한 내용입니다.</p></li><li><p><br></p><p><strong>구미시 주요 자연 경관 및 역사적 장소</strong></p><ul><li><p><strong>금오산 (Geumo Mountain)</strong>: 구미의 대표적인 산으로, 칠곡군과 김천시의 경계에 걸쳐 있습니다. 구미의 상징으로도 불립니다. 이 산에는 <strong>금오산성</strong>이라는 고려 후기 이중 석축 산성이 축조되어 있습니다. 또한, <strong>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strong>도 위치하고 있습니다.</p></li><li><p><strong>구미국가산업단지 (Gumi National Industrial Complex)</strong>: 1968년 3월부터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의 중점 육성, 수출 진흥, 지역 균형 발전, 국민 경제 향상을 목표로 조성된 곳입니다.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를 만드는 데 기여했습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구미공단'으로도 불립니다.</p></li><li><p><strong>선산 (Seonsan)</strong>: 구미시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어지는 지역입니다. 인기 검색어에도 포함될 만큼 알려져 있습니다. 고려 말 삼은(三隱) 중 한 명인 <strong>길재</strong> 선생이 조선 건국 후 관직을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던 곳입니다. '선산땅에 자리 잡은 안동 양반마을, <strong>일선리</strong>'도 언급됩니다.</p></li></ul><p><strong>주요 사찰 및 불교 유적</strong></p><ul><li><p><strong>도리사 (Dorisa Temple)</strong>: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절을 세운 데서 유래된 사찰입니다. <strong>신라 불교의 초전지</strong>로 불리기도 합니다. 도리사에는 <strong>극락전</strong>, <strong>석탑</strong>, <strong>목조아미타여래좌상</strong>, 그리고 <strong>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strong> 등 다양한 문화유산이 있습니다.</p></li><li><p><strong>수다사 (Sudasa Temple)</strong>: <strong>「수다사 대웅전 석가모니 후불탱화」</strong>, <strong>「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strong>, <strong>「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strong>, <strong>「수다사 명부전」</strong> 등의 문화재가 있습니다. <strong>무을농악</strong>은 수다사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이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한 풍물놀이로 전승되었습니다.</p></li><li><p><strong>황상동 마애여래입상</strong>: 구미시 황상동의 속칭 석현(石峴)이라 불리는 고갯길 왼쪽 암벽 앞면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입니다.</p></li><li><p><strong>기타 사찰 및 불상 관련 유적</strong>:</p><ul><li><p><strong>구미 금강사</strong>: <strong>금동관음보살입상</strong>, <strong>금동약사여래입상</strong>, <strong>금란가사</strong>, <strong>석조석가여래좌상</strong>, <strong>소장전적</strong>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p></li><li><p><strong>구미 남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strong></p></li><li><p><strong>구미 대둔사 대웅전</strong></p></li><li><p><strong>구미 대원사 석조여래좌상</strong></p></li><li><p><strong>구미 문수사 소장 『묘법연화경』</strong></p></li><li><p><strong>구미 약사암 석조여래좌상</strong></p></li><li><p><strong>구미 용수암</strong></p></li><li><p><strong>구미 원각사 목조보살좌상</strong></p></li><li><p><strong>구미 자비사 『묘법연화경』 및 소장전적</strong></p></li><li><p><strong>선산 궁기동 석불상</strong></p></li><li><p><strong>미륵당 석조미륵입상</strong></p></li></ul></li></ul><p><strong>고택 및 건축 문화유산</strong></p><ul><li><p><strong>구미 쌍암 고택 (Ssanggam Gotaek)</strong>: 집 앞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쌍암고택' 또는 주인의 성함을 따 '최상학 가옥'이라고도 불립니다. 본래 안채, 대문채, 안대문채, 사랑채, 사당 등 다양한 부속채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대문채와 일부 부속채는 소실되었습니다.</p></li><li><p><strong>박정희 대통령 생가</strong>: 박정희 대통령의 출생지입니다. 구미와 박정희 대통령의 인연은 '구미와 박정희'라는 특별한 이야기로도 언급됩니다.</p></li><li><p><strong>기타 고택 및 건축물</strong>:</p><ul><li><p><strong>근암 고택</strong></p></li><li><p><strong>망천동 임당댁</strong></p></li><li><p><strong>수남위 종택</strong></p></li><li><p><strong>용와종택 및 침간정</strong></p></li><li><p><strong>임하댁</strong></p></li><li><p><strong>전 모례가정</strong></p></li><li><p><strong>해평동 북애고택</strong></p></li><li><p><strong>호고와 종택</strong></p></li></ul></li></ul><p><strong>서원, 향교 및 기타 유적</strong></p><ul><li><p><strong>금오서원 (Geumo Seowon)</strong></p></li><li><p><strong>동락서원 강당 (Dongnak Seowon Gangdang)</strong></p></li><li><p><strong>낙봉서원 (Nakbong Seowon)</strong></p></li><li><p><strong>구미 선산향교 (Seonsan Hyanggyo)</strong></p></li><li><p><strong>구미 인동향교 대성전 (Indong Hyanggyo Daeseongjeon)</strong></p></li><li><p><strong>구미 낙산리 고분군</strong></p></li><li><p><strong>구미 황상동 고분군</strong></p></li><li><p><strong>의구총 (Uiguchong)</strong>: 충성스러운 개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기 검색어에도 포함됩니다.</p></li><li><p><strong>의우총 (Uuichong)</strong></p></li><li><p><strong>천생산성 (Cheonsaengsanseong Fortress)</strong></p></li><li><p><strong>기타</strong>:</p><ul><li><p><strong>경은 이맹전 유허비 및 묘비</strong></p></li><li><p><strong>길재 정려비</strong></p></li><li><p><strong>김선궁 신도비 및 유허비</strong></p></li><li><p><strong>김종무 충신 정려비</strong></p></li><li><p><strong>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strong></p></li><li><p><strong>구미 도중리 동신상</strong></p></li><li><p><strong>박진환 정려비 및 정려편액</strong></p></li><li><p><strong>배숙기 정려편액</strong></p></li><li><p><strong>봉곡동 효열비각</strong></p></li><li><p><strong>선산 삼강정려</strong></p></li><li><p><strong>선산객사</strong></p></li><li><p><strong>양주조씨 정려편액</strong></p></li><li><p><strong>오로2리 불당 동제</strong></p></li><li><p><strong>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strong></p></li><li><p><strong>인동입석</strong></p></li><li><p><strong>주륵사 폐탑</strong></p></li><li><p><strong>지주중류비</strong></p></li><li><p><strong>함종어씨 정려편액</strong></p></li><li><p><strong>구미 채미정</strong></p></li><li><p><strong>구미 척화비</strong></p></li><li><p><strong>구미 낙산리 삼층석탑</strong></p></li><li><p><strong>구미 죽장리 오층석탑</strong></p></li></ul></li></ul><p><strong>문헌 및 무형 유산</strong></p><ul><li><p><strong>「구미 발갱이들소리」</strong></p></li><li><p><strong>「달개 노래」</strong></p></li><li><p><strong>「박록주제 흥보가」</strong></p></li><li><p><strong>『동인시화』</strong></p></li><li><p><strong>『몽산 화상 법어 약록(언해)』</strong></p></li><li><p><strong>선산 노진환 소장 전적</strong></p></li></ul><p><strong>축제 및 행사</strong></p><ul><li><p><strong>엘지소년드림페스티벌</strong></p></li><li><p><strong>구미축제</strong></p></li><li><p><strong>무을풍물축제</strong></p></li><li><p><strong>경북과학축전</strong></p></li><li><p><strong>금오산 꽃길축제</strong></p></li><li><p><strong>구미 아시아연극제</strong></p></li></ul><p>이 외에도 구미시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 활발한 인간 거주가 이루어졌으며,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strong>군미국</strong> 및 <strong>변군미국</strong> (현재 인동동 일대)과 같은 소국들이 일찍이 형성되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strong>일선군</strong> (현재 구미시·선산군)과 <strong>사동화현</strong> (현재 인동동 일대)이 설치되기도 했습니다.</p><p>구미의 문화유산은 지리, 역사, 문화, 종교,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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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16: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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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준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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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상고 시대 (청동기 시대 ~ 삼국 시대 초기)</p><p>청동기 시대: 구미시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인간 거주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사회 분화가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p><p>소국 형성: 청동기 시대를 바탕으로 소국(성읍국가)이 형성되었다. 변진 24개국 중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 현재의 인동동 일대)이 이곳에 비정된다.</p><p>삼국 시대 초기: 백제와 신라 양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 되기 시작했으며, 점차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기 시작한다.</p><p>일선군 설치: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된 후, 일선군(一善郡, 현재의 구미시·선산군)이 설치된다.</p><p>사동화현 설치: 신라 시대에 사동화현(斯同火縣, 현재의 인동동 일대)이 설치된다.</p><p>고려 시대</p><p>고려 후기: 금오산에 이중의 석축 산성인 금오산성이 축조된다.</p><p>길재의 활동: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인 길재가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p><p>조선 시대</p><p>길재의 귀향 및 후학 양성: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다.</p><p>『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 「불우조」에 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절을 세웠다는 도리사의 유래 설화가 전해진다.</p><p>근대/현대</p><p>1968년 3월: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된다. 전자산업, 반도체, 섬유업종의 중점 육성과 수출 진흥, 지역 간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p><p>구미공단 조성: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공단이 조성되면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 산업 단지를 보유한 도시가 된다.</p><p>무을농악 전승: 수다사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농사의 마디마디에 있던 풍물놀이인 무을농악이 전승된다. (정확한 시기는 특정되지 않으나, 문화유산으로 현대까지 전승됨)</p><p>등장인물 캐스팅</p><p>아도화상 (阿道和尙)</p><p>생몰년: 미상 (신라 시대)</p><p>설명: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도리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인물. 신라 불교의 초전과 관련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p><p>길재 (吉再)</p><p>생몰년: 1357년 ~ 1419년 (고려 말, 조선 초)</p><p>설명: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을 지키며 거절하고 고향인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했다.</p><p>태종 이방원 (太宗 李芳遠)</p><p>생몰년: 1367년 ~ 1422년 (조선 초)</p><p>설명: 조선의 제3대 왕. 길재에게 태상박사 직책을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언급을 통해 길재와의 관계가 나타난다.</p><p>최상학 (崔象鶴)</p><p>생몰년: 미상 (시대 불명확, 고택 소유주)</p><p>설명: 구미 쌍암 고택의 주인이었던 인물. 고택이 그의 이름을 따 '최상학 가옥'이라고도 불린다.</p><p>박정희 (朴正熙)</p><p>생몰년: 1917년 ~ 1979년 (대한민국)</p><p>설명: 대한민국 제5~9대 대통령. 구미시와 관련된 '구미와 박정희'라는 콘텐츠와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언급되어 구미시 역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특히 구미공단 조성과 관련이 깊을 것으로 추정)</p><p>이색 (李穡)</p><p>생몰년: 1328년 ~ 1396년 (고려 말)</p><p>설명: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p><p>정몽주 (鄭夢周)</p><p>생몰년: 1337년 ~ 1392년 (고려 말)</p><p>설명: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 충신.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p><p>권근 (權近)</p><p>생몰년: 1352년 ~ 1409년 (고려 말, 조선 초)</p><p>설명: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언급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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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0: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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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혜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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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선사시대</strong></p><ul><li><p><strong>시기 미상:</strong> 구미 지역에서 구석기시대 및 신석기시대 유적이나 유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변 지역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향후 발견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p></li><li><p><strong>청동기시대:</strong> 작은 물길을 따라 형성된 충적대지나 얕은 구릉에서 고인돌, 석관묘, 직장묘 등의 무덤 유적과 붉은간토기, 간돌살촉, 간돌검 등의 유물이 확인된다.</p></li></ul><p><strong>고대 (삼국시대 ~ 통일신라시대)</strong></p><ul><li><p><strong>시기 미상 (삼한시대):</strong> 인동 지역은 진한의 12개 소국 중 군미국의 관할 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p></li><li><p><strong>5세기경:</strong> 군미국이 신라에 흡수되어 사동화현이라 불리게 된다.</p></li><li><p><strong>삼국시대:</strong> 선산 지역이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다가 신라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이 설치된다.</p></li><li><p><strong>614년 (진평왕 36년):</strong> 일선군에 상주(上州)의 주치소(州治所)가 이동해 오면서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된다.</p></li><li><p><strong>시기 미상 (눌지왕 때):</strong> 묵호자가 모례의 집에 불교를 전파한다.</p></li><li><p><strong>시기 미상 (소지왕 때):</strong> 아도(阿道)가 모례의 집에 불교를 전파한다.</p></li><li><p><strong>687년 (신문왕 7년):</strong> 상주가 사벌주로 옮겨가면서 일선주가 폐지된다.</p></li><li><p><strong>757년 (경덕왕 16년):</strong> 지방제도 개편 때 일선군이 숭선군(嵩善郡)으로 개칭되고, 군위현, 효령현, 이동혜현을 속현으로 둔다. 사동화현은 수동현으로 개칭된다.</p></li><li><p><strong>907년 (효공왕 11년):</strong> 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여 후백제의 경상도 북부 진출 발판이 된다.</p></li></ul><p><strong>고려시대</strong></p><ul><li><p><strong>936년 (태조 19년):</strong> 후백제와 고려의 군대가 선산읍 동쪽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 결전을 벌여 고려가 승리하며 후삼국을 통일한다.</p></li><li><p><strong>995년 (성종 14년):</strong> 선주(善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된다.</p></li><li><p><strong>1018년 (현종 9년):</strong> 선주가 상주의 속현이 된다. 인동 지역은 인주목(仁州牧)이 되며 인동(仁同)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인동현은 경산부(京山府)의 속현이 된다. (전국적)거란의 3차 침입, 강감찬의 귀주대첩</p></li><li><p><strong>1143년 (인종 21년):</strong> 선주가 일선현으로 승격되어 주현(主縣)이 되고, 해평군, 군위현, 효령현, 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된다. (전국적)이자겸의 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 직후</p></li><li><p><strong>1235년 (고종 22년):</strong> 이유정(李裕貞)이 해평에서 몽골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한다. (전국적)강화도 천도</p></li><li><p><strong>1380년 (우왕 6년):</strong> 왜구의 침입으로 큰 피해를 입는다.</p></li><li><p><strong>1383년 (우왕 9년):</strong> 왜구의 침입으로 다시 피해를 입는다.</p></li><li><p><strong>1390년 (공양왕 2년):</strong> 인동현에 처음으로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독립 행정단위가 되고 약목현을 편입시킨다.</p></li></ul><p><strong>조선시대</strong></p><ul><li><p><strong>1413년 (태종 13년):</strong> 지방제도 개편 때 선주가 선산군으로 개명되고, 인동현은 현명을 유지한 채 군수/현감이 파견된다. (전국적)태종의 6조 직계제확립, 호패법 시행</p></li><li><p><strong>1415년 (태종 15년):</strong> 선산군이 주민 1,000호 이상이 되어 선산도호부로 승격된다.</p></li><li><p><strong>1604년 (선조 37년):</strong> 인동현이 인동도호부로 승격된다. 도호부사가 천생산성(天生山城)의 조방장을 겸임한다.</p></li></ul><p><strong>근대</strong></p><ul><li><p><strong>1895년 (고종 32년, 5월 25일):</strong> 갑오개혁 직후 소지역주의 채택 및 23부제 실시로 선산도호부가 선산군으로 개칭되고 대구부에 속한다. 인동현도 인동군이 되어 대구부에 속한다.</p></li><li><p><strong>1896년 (8월 4일):</strong> 13도제 실시로 선산군이 3등군으로서 경상북도에 속하게 된다. 인동군도 경상북도에 속한다.</p></li><li><p><strong>시기 미상:</strong> 상구미면이 상고면(上古面)으로, 하구미면이 하고면(下古面)으로 개명된다.</p></li><li><p><strong>1914년 (3월 1일):</strong> 인동군이 폐지되고 인동군 관할의 9개 면이 칠곡군에 병합된다. 부군면 폐합으로 선산군의 행정구역이 9개 면으로 개편된다.</p></li><li><p><strong>1914년 (시기 미상):</strong> 상고면과 하고면이 통합되어 구미면을 형성한다.</p></li><li><p><strong>1914년 (4월 1일):</strong> 칠곡군에 병합된 인동군 읍내면과 북면이 병합되어 인동면으로 개칭된다.</p></li><li><p><strong>1914년 (7월 15일):</strong> 인동면 중동 일부가 선산군 산동면 성수동에 편입된다.</p></li><li><p><strong>1914년 (시기 미상):</strong> 고아면이 본래 망장면(網障面)과 평성면, 내서면 일부를 병합하여 옛 고아부곡의 이름을 따서 고아면이 된다.</p></li><li><p><strong>1919년 (4월 8일):</strong> 임은동 출신 의병장 허위의 항일의식이 이어져 동민 3백여 명이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한다. (전국적)3.1운동 전국확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p></li></ul><p><strong>현대</strong></p><ul><li><p><strong>1963년 (1월 1일):</strong>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된다. (전국적)박정희 정권,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p></li><li><p><strong>1969년:</strong> 구미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기지로 발전한다. (전국적)중화학공업 육성, 새마을운동 전개</p></li><li><p><strong>1973년 (7월 1일):</strong> 칠곡군 북삼면 낙계리가 구미읍에 편입되고, 산동면 도산리가 군위군 소보면으로 편입된다.</p></li><li><p><strong>1977년 (3월 2일):</strong>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된다.</p></li><li><p><strong>1978년 (2월 15일):</strong>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합쳐져 구미시로 승격되고 선산군에서 분리된다.</p></li><li><p><strong>1979년 (5월 1일):</strong>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된다.</p></li><li><p><strong>1983년 (2월 15일):</strong> 칠곡군 북삼면 오태리가 구미시에 편입되고, 금릉군 감문면 소재·봉남리가 선산읍에 편입된다.</p></li><li><p><strong>1987년 (1월 1일):</strong> 의성군 단밀면 용산리가 도개면에 편입되고, 도개면 청산리가 의성군 구천면으로, 장천면 석우리가 칠곡군 가산면으로 편입된다.</p></li><li><p><strong>1988년 (7월 1일):</strong> 해평면 일선리가 신설된다.</p></li><li><p><strong>1989년 (1월 1일):</strong>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장천면에 편입된다.</p></li><li><p><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도농통합형 구미시가 설치되고 구미시선산출장소가 설치된다.</p></li><li><p><strong>1995년 (3월 1일):</strong> 도산동이 지산동과 도량동으로, 형곡동이 형곡1동과 형곡2동으로 분동된다.</p></li><li><p><strong>1995년 (7월 1일):</strong> 초대 민선시장이 취임하며 지방화시대가 개시된다.</p></li><li><p><strong>1997년 (11월 1일):</strong>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된다.</p></li><li><p><strong>1999년 (3월 2일):</strong> 선주·원남동이 선주원남동으로, 원평2·3동이 원평2동으로, 사곡·상모동이 상모사곡동으로 통합된다.</p></li><li><p><strong>2021년 (1월 1일):</strong> 산동면이 읍으로 승격되고, 비산동·공단1동은 비산동으로 통합되며, 공단2동은 공단동으로 명칭이 변경된다. (전국적)코로나19 팬데믹, 지방행정 디지털화 가속</p></li></ul><p><strong>주요 인물</strong></p><ul><li><p><strong>묵호자 (墨胡子):</strong> 신라 눌지왕 때 선산 일선군 모례의 집에 찾아와 불교를 전파한 인물.</p></li><li><p><strong>아도 (阿道):</strong> 신라 소지왕 때 선산 일선군 모례의 집에 찾아와 불교를 전파한 인물.</p></li><li><p><strong>김선궁 (金宣弓):</strong>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던 936년, 선산읍 동쪽 일리천 전투에서 왕건에게 귀부하여 큰 공을 세워 중용된 호족.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p></li><li><p><strong>이유정 (李裕貞):</strong> 고려 고종 22년(1235년),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했던 인물.</p></li><li><p><strong>길재 (吉再):</strong>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성리학자로, 그의 성리학이 김숙자, 김종직으로 이어지며 영남 지역 인재 배출에 큰 영향을 미쳤다.</p></li><li><p><strong>곽재우 (郭再祐):</strong>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천생산성에서 왜군과 수많은 전투를 치렀던 의병장. 그의 활약으로 인동현이 도호부로 승격되는 계기가 되었다.</p></li><li><p><strong>김숙자 (金叔滋):</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은 학자 중 한 명.</p></li><li><p><strong>김종직 (金宗直):</strong> 길재의 성리학을 이어받아 영남학파를 형성한 학자.</p></li><li><p><strong>장현광 (張顯光):</strong> 조선 후기에 배출된 저명한 성리학자.</p></li><li><p><strong>허위 (許蔿):</strong> 구미 임은동 출신의 항일의병장으로, 그의 항일의식은 1919년 3.1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동민 만세시위운동으로 이어졌다.</p></li><li><p><strong>박정희 (朴正熙):</strong> 전 대통령 (사진에 언급).</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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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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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509 나영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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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구미시 역사 브리핑 문서</p><p>본 문서는 구미시의 역사를 조선시대, 근대, 현대 세 시기로 나누어 주요 테마와 사실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합니다.</p><p>1. 조선시대 (1392년 ~ 1897년)</p><p>구미 지역의 조선시대는 농업 중심의 사회, 유교 및 불교 문화의 발달, 그리고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이 주요 특징입니다.</p><ul><li><p><strong>구미 명칭의 시작과 행정구역 변천:</strong></p></li><li><p>1413년(태종 13년) 선산도호부 설치와 함께 '상구미면(上龜尾面)'과 '하구미면(下龜尾面)'이라는 이름에서 현재 '구미' 명칭이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유지하며 각기 군수·현감이 파견되었습니다. 선산군은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습니다.</p></li><li><p>「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 따르면, 구미시는 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시로 승격하면서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성립되었습니다.</p></li><li><p><strong>농업 중심 사회와 인구 증대:</strong></p></li><li><p>낙동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토지로 인해 쌀과 보리 등 농경지 및 특산물 생산이 활발했습니다.</p></li><li><p>1450년경 선산에 809호, 해평에 196호가 기록될 정도로 인구가 증대했습니다.</p></li><li><p>18세기에는 상품농업이 발달하며 쌀, 면화, 면포 등이 경상도를 넘어 서울, 강원도, 충청도, 함경도까지 판매되었습니다. 이러한 상업적 농업의 발달은 농민 항쟁을 야기하기도 했습니다.</p></li><li><p><strong>문화와 사상:</strong></p></li><li><p>도리사, 대둔사, 수다사 등 불교 문화가 발달했으며, 유교 또한 이 지역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p></li><li><p>고려말 야은 길재가 정몽주의 학통을 이어 선산으로 돌아와 후학을 가르쳤고, 선산김씨 김종직 부자가 그 학통을 계승하면서 선산은 15세기 영남사림파 형성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영남의 인재 가운데 반은 선산에 있다(村半在一善)."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문적 연원이 깊은 곳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p></li><li><p>금오서원, 동락서원, 선산향교, 인동향교 등의 유적이 남아 선비문화의 본거지로서의 면모를 보여줍니다.</p></li><li><p><strong>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strong></p></li><li><p>금오산성, 천생산성 등 군사 요충지로 성장했으며, 임진왜란 당시 이들 산성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어 수축이 계속 이루어졌습니다.</p></li><li><p>낙동강은 중요한 수로 역할을 했으며, 육로로는 한양과 영남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역(驛)과 원(院)이 설치되어 교통·통신 기관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했습니다. 양원역(현 구미시 진평동), 구며역(현 구미시 선산읍 화조리) 등이 대표적입니다.</p></li><li><p>임진왜란 시기 인동 전투가 일어나는 등 중요한 군사적 거점이었습니다.</p></li></ul><p>2. 근대 (1897년 ~ 1945년)</p><p>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포함하는 근대 시기 구미는 행정구역 개편, 일제의 수탈, 그리고 항일 운동의 전개로 특징지어집니다.</p><ul><li><p><strong>행정구역 개편과 '구미면'의 탄생:</strong></p></li><li><p>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선산도호부가 군으로 개칭되었고, 1896년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선산군이 되었습니다.</p></li><li><p>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상고면(上古面, 옛 상구미면)과 하고면(下古面, 옛 하구미면)이 '구미면'으로 통합·개칭되었습니다. 이는 현재 구미시가 형성되는 시작점이 되었습니다.</p></li><li><p>이 시기에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습니다.</p></li><li><p><strong>일제 강점과 수탈:</strong></p></li><li><p>일제는 낙동강을 이용한 농업 수탈을 강화했습니다.</p></li><li><p>경부선 구미역 개설로 교통 중심지로 변모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후 산업단지 조성의 밑바탕이 됩니다.</p></li><li><p><strong>항일 의병 투쟁 및 독립 만세 운동:</strong></p></li><li><p>구미 지역은 항일 의식이 강한 지역으로, 한말 의병장 허위(許蔿)는 이곳 임은동 출신으로 눈부신 항일 의병 투쟁을 전개했습니다.</p></li><li><p>1919년 3·1운동 시 구미 지역에서는 다양한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p></li><li><p><strong>진평동 독립만세운동:</strong> 3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 동안 4차례에 걸쳐 20~200여 명이 참여했습니다.</p></li><li><p><strong>임은동 독립만세운동:</strong> 4월 8일 강용준, 유시동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벌어졌습니다.</p></li><li><p><strong>선산장터 독립만세운동:</strong> 4월 12일 권오환을 중심으로 선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벌였습니다.</p></li><li><p><strong>무관학교 모집사건:</strong> 1919년 6월 최재화가 주동이 되어 경상북도 청년들을 만주 신흥무관학교로 보낸 사건이 있었습니다.</p></li><li><p>1927년에는 장진홍이 조선은행 대구지점에 폭탄을 배달시킨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 발생했습니다.</p></li></ul><p>3. 현대 (1945년 ~ 현재)</p><p>해방 이후 구미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도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대한민국 산업 발전의 핵심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p><ul><li><p><strong>한국전쟁의 경험:</strong></p></li><li><p>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경험했으며, 1950년 8월에는 국군이 북한군의 낙동강 도하를 저지하기 위한 '비산진 전투'가 벌어졌습니다.</p></li><li><p><strong>산업화의 중심지 구미:</strong></p></li><li><p>1963년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나, 당시에는 "농업 중심의 한적한 시골읍에 지나지 않았다."</p></li><li><p>1969년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사업이 시작되면서 국내 최대 내륙 공업 기지로 급부상했습니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개발 계획 일환으로, 섬유, 전자 산업을 중심으로 한 수출 중심 산업단지로 개발되었습니다.</p></li><li><p><strong>도시의 성장과 행정구역 변화:</strong></p></li><li><p>1978년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었습니다. 이는 구미가 농업 중심지에서 산업도시로 탈바꿈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p></li><li><p>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 구미시'가 출범했으며, 구미시 선산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p></li><li><p>이후에도 지속적인 행정 변화를 겪었으며, 최근 2021년에는 산동면이 읍으로 승격되는 등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p></li><li><p><strong>첨단 산업 도시로의 발전:</strong></p></li><li><p>2000년대 이후 구미시는 IT,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첨단 전자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LG디스플레이,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들이 입주하여 구미 경제를 견인하고 있습니다.</p></li><li><p>현재 구미시는 대한민국 IT 산업의 핵심 거점으로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신산업 육성 및 도시 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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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1: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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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12 윤경준</title>
         <author>xfy6ry9zgg</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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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구미시 역사 연표</p><p>구미시는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했으며, 고대 소국 형성기를 거쳐 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거치며 중요한 역사적 변천을 겪었습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산업화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현대 도시로 성장했습니다.</p><p><strong>선사 시대</strong></p><p>*   <strong>청동기 시대:</strong> 구미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인간 거주와 사회 분화가 활발히 진행되었음을 보여줍니다.</p><p>*   <strong>원삼국 시대:</strong> 진한의 소국인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이 지금의 인동동 일대에 비정됩니다. 이들 소국은 구미의 어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넓은 지역에 고인돌과 삼국 시대를 전후로 형성된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습니다.</p><p><strong>삼국 시대 및 통일신라 시대</strong></p><p>*   <strong>백제와 신라의 각축장:</strong> 백제와 신라 양국의 영토 확장에 따른 각축장이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p><p>*   <strong>일선군과 사동화현 설치:</strong>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구미시·선산군)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지금의 인동동 일대)이 설치되었습니다.</p><p>*   <strong>614년(진평왕 36년):</strong> 일선군이 군사적 성격의 일선주(一善州)로 개편되고 군주가 설치되었습니다.</p><p>*   <strong>687년(신문왕 7년):</strong> 통일 직후 일선주가 폐지되었습니다.</p><p>*   <strong>757년(경덕왕 16년):</strong>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일선군은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은 인동현(仁同縣)으로 개명되었습니다. 이때 '인동(仁洞)'이라는 이름이 바뀌어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p><p>*   <strong>불교 전래의 시발점:</strong> 눌지왕 때 묵호자(墨湖子)가, 소지왕 때 아도(阿度)가 모례(毛禮)의 집에 와서 불교를 포교했습니다. 고구려 승려 묵호자(아도화상)가 도개면 도개리 일대에서 신라에 불교를 처음 포교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지역의 마을 이름 '도개(道開)'도 불교 발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해평면 송곡리 냉산 중턱의 <strong>도리사</strong>는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로 전해집니다.</p><p>*   <strong>후삼국 시대:</strong> 후백제와 고려 양대 세력의 대표적인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strong>907년(효공왕 11년)</strong> 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며 후백제 영역에 들어갔습니다.</p><p><strong>고려 시대</strong></p><p>*   <strong>995년(성종 14년):</strong> 숭선군이 선주(善州)로 승격되었습니다.</p><p>*   <strong>1018년(현종 9년):</strong> 인동현이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습니다.</p><p>*   <strong>1143년(인종 21년):</strong> 선주가 일선현으로 강등되었습니다.</p><p>*   <strong>1390년(공양왕 2년):</strong> 인동현이 경산부에서 분리되어 감무(監務)가 처음 배치되었습니다.</p><p><strong>조선 시대</strong></p><p>*   <strong>1413년(태종 13년):</strong>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일선현이 <strong>선산군(善山郡)</strong>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유지한 채 군수와 현감이 파견되었습니다. 선산군의 중심지가 선기동(선주원남동)에서 선산읍 동부리, 서부리로 이동했습니다.</p><p>*   <strong>1415년(태종 15년):</strong> 선산군이 도호부로 승격되었습니다.</p><p>*   <strong>선비 문화의 본거지:</strong> 고려 말부터 길재, 김숙자, 김종직, 하위지 등 사림의 주요 인물이 다수 배출되며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학문적 연원이 깊은 곳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길재 선생 이후 조선 성리학은 지역 출신 학자들에 의해 영남 사림파의 큰 줄기를 형성하며 발전했습니다. 금오서원, 동락서원, 선산향교, 인동향교 등의 교육기관 유적이 남아있습니다.</p><p>*   <strong>금오산성 및 천생산성:</strong> 임진왜란 시기 금오산성과 천생산성의 역할이 중요시되어 계속 수축되었으며, <strong>1604년(선조 37년)</strong> 곽재우(郭再祐)에 의해 천생산성의 외성이 축조되었습니다. <strong>1605년(선조 38년)</strong> 인동이 도호부로 승격되었습니다.</p><p>*   <strong>1735년(영조 11년):</strong> 금오산성에 독진(獨鎭)이 설치되었습니다.</p><p>*   <strong>1872년:</strong> 대동여지도에 상·하구미면이 표시되었고, 지방 지도에는 구미역(九尾驛)이 기록되었습니다.</p><p>*   <strong>1895년 5월 25일:</strong> 23부제 실시에 따라 도호부가 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p><p>*   <strong>1896년 8월 4일:</strong> 13도제 실시에 따라 선산군, 인동군이 경상북도에 속하게 되었습니다.</p><p><strong>일제강점기</strong></p><p>*   <strong>1914년 3월 1일:</strong> 부군면 통폐합으로 행정 구역이 개편되어 선산군이 존속하고 인동군이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습니다.</p><p>*   <strong>1920년:</strong> 구미공립보통학교(박정희 대통령 모교)가 4년제로 개교했습니다.</p><p><strong>대한민국 (근현대)</strong></p><p>*   <strong>1945년 10월 16일:</strong> 장천면 유지 매암 김동석이 지역 첫 사립학교인 오상(五常) 학원을 개교했습니다.</p><p>*   <strong>1946년 6월 11일:</strong> 김우동이 선산중학교를 설립했습니다.</p><p>*   <strong>1946년 10월 1일:</strong> 대구 10·1 사건 이후 <strong>구미 사건</strong>이 발생했습니다.</p><p>*   <strong>1946년 10월 3일:</strong> 박상희를 중심으로 2천여 명의 군중이 구미경찰서와 구미면사무소를 습격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박상희는 경찰의 총에 맞아 사망했습니다.</p><p>*   <strong>1963년 1월 1일:</strong> 선산군 구미면이 <strong>구미읍</strong>으로 승격했습니다.</p><p>*   <strong>1968년 3월:</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되었습니다.</p><p>*   <strong>1973년 7월 1일:</strong> 칠곡군 북삼면 낙계리가 구미읍에 편입되었습니다.</p><p>*   <strong>1977년 2월 15일:</strong>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p><p>*   <strong>1978년 2월 15일:</strong>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strong>구미시</strong>가 설치, 승격되었습니다.</p><p>*   <strong>1979년 5월 1일:</strong>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했습니다.</p><p>*   <strong>1979년 10월 27일:</strong> 구미시청사가 개청했습니다.</p><p>*   <strong>1983년 2월 15일:</strong> 양계동과 포전동이 양포동으로, 신구동과 인동동이 인동동으로 통합되는 등 행정 구역 조정이 있었습니다.</p><p>*   <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구미시와 선산군이 다시 합쳐져 <strong>도농통합형 구미시</strong>가 설치되고, 구미시선산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 통합 당시 수출액은 92억 달러였습니다.</p><p>*   <strong>1997년 11월 1일:</strong>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했습니다.</p><p>*   <strong>1998년:</strong>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주관 '세계적 지방자치 우수단체' 금상 수상 등 성과를 거두었습니다.</p><p>*   <strong>1999년 3월 2일:</strong> 사곡동과 상모동이 상모사곡동으로, 선주동과 원남동이 선주원남동으로 통합되는 등 행정 구역 조정이 있었습니다.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전국 단일공단 최초로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했습니다.</p><p>*   <strong>2003년:</strong> 수출 200억 달러를 달성했습니다.</p><p>*   <strong>2005년:</strong> 구미시가 전국 기초지자체 최초로 수출 <strong>300억 달러</strong>를 달성했습니다.</p><p>*   <strong>2007년 6월 1일:</strong> KTX가 구미역에 정차하기 시작했습니다.</p><p>*   <strong>2010년:</strong> 김천(구미)역이 완공·개통되었으며, 구미역을 경유하는 KTX는 폐지되었습니다.</p><p>*   <strong>2018년 6월 13일:</strong>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세용 후보가 구미시장에 당선되며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던 구미시에서 최초의 민주당 시장이 탄생했습니다.</p><p>*   <strong>2020년대:</strong> 구미역이 대구·경북권 광역전철망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으며 새로운 전철 시대를 열었습니다.</p><p>*   <strong>2021년 1월 1일:</strong> 산동면이 <strong>산동읍</strong>으로 승격되었습니다.</p><p>*   <strong>2021년 7월 1일:</strong> 원평1동과 원평2동이 <strong>원평동</strong>으로 통합되었습니다.</p><p>*   <strong>2022년 6월 1일:</strong> 국민의힘 김장호 후보가 구미시장에 당선되며 4년 만에 시장직을 탈환했습니다.</p><p>*   <strong>2025년 3월 17일:</strong>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한국 2035' 정책에 <strong>구미산업화역사관</strong> 건립 방침이 포함되어, 구미시의 산업화 역사를 조명할 국립문화기관 유치에 청신호가 켜졌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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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2: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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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준서</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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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구미시 지역사 연표</p><ul><li><p>﻿﻿청동기 시대</p></li><li><p>﻿﻿이 지역 및 인근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회 분화가 착실히 이루어졌습니다.</p></li><li><p>﻿소국(1) 시대 (삼한시대)</p></li></ul><p>국(4)토) 시대 (삼한시대) 찍부터 소국(섬색국가&gt;이 형성되었는데.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물 및 •년군미국 (3 평※(3: 지금의 인동동 일대 14| 이주</p><ul><li><p>﻿﻿청동기 시대를 바탕으로 일찍부터 소국(성색국가)이 형성되었는데,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투료) 및 <strong>변군미국(#품: 지금의 인동동 일대)</strong>이 이곳 에 비정됩니다. 1</p></li><li><p>﻿﻿삼국시대 (신라 시대)</p></li><li><p>﻿﻿백제와 신라 양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었다가, 점점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습니다.</p></li><li><p>﻿﻿이후 <strong>일선군(-#: 지금의 구미시•선산군)</strong>과 <strong>사동화현(FA: 지금의 인동동 일대)</strong>이 설치되었습니다.2</p></li><li><p>﻿﻿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도리사를 세웠다는 설화가 전하며, 도리사는 신라 불교의 초전지입니다.</p></li><li><p>﻿﻿고려 시대</p></li><li><p>﻿﻿고려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이중의 석축 산성인 금오산성이 축조되었습니다.</p></li><li><p>﻿﻿고려 말 삼은(=B)의 한 사람인 길재가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습니다.</p></li><li><p>﻿﻿조선 시대</p></li><li><p>﻿﻿조선 건국 후, 길재는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 습니다. 4</p></li><li><p>﻿﻿근현대</p></li><li><p>﻿﻿1968년 3월: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 산업의 중점 육성 및 수출 진흥, 지역 간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5</p></li><li><p>﻿﻿정부의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공단이 조성되면서 구미는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3</p></li></ul><p><br/></p><p>구미 지역의 역사</p><ol><li><p>﻿﻿﻿상고 시대 (청동기 시대 및 초기 소국 형성) 구미시의 역사는 현재의 구미시뿐만 아니라 과거 선산군과 인동 지역의 역사 변천을 함께 다루어야 합니다. 구미 및 인근 지 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많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청동기 시대부터 활발한 인간 거주와 사회 분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반 위에 일찍이 작은 국가 (소국, 성색국가)가 형성되었는데, 특히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루태)과 변군미국(#후로, 현재 인동동 일대)이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p></li><li><p>﻿﻿﻿삼국 시대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 및 신라 편입) 삼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구미 지역은 백제와 신라 양국의 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점차 신라의 영역으 로 편입되었으며, 이후 일선군(-}, 현재 구미시•선산군)과 사동화현(WTE/M, 현재 인동동 일대)이 설치되었습니다. 또한, 구미의</p></li></ol><p>2 도리사는 아도화상이 복숭아</p><p>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사찰로, 신라 불교의 초전지로 언급됩니다.</p><ol><li><p>﻿﻿﻿고려 시대 (금오산성 축조 및 길재) 고려 후기에는 경상북도 구미 지역의 금오산에 이중의 석축 산성인 금오산성이 축조되었습니다. 또한, 고려 말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삼은(=를) 중 한 명인 길재가 이색, 정동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운 인물로 구미 지역과 연관이 깊습니다.</p></li><li><p>﻿﻿﻿조선 시대 (길재의 은거와 다양한 문화유산) 조선 건국 후, 길재는 친교가 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이 시기부터 후대에 걸쳐 구미 쌍암 고택(최상학 가옥), 구미 선산향교, 구미 인동향교 대성전 등 다양한 고택과 향교를 비롯한 문화유산이 구미 지역에 자리 잡았습니다.</p></li><li><p>﻿﻿﻿근대/현대 (구미공단의 조성과 산업 발전) 구미는 1968년 3월부터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되면서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이 산업단지는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 유 업종의 중점 육성, 수출 진흥, 지역 간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는 6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 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구미에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도 위치해 있습니다.</p></li></ol><p><br/></p><p><br/></p><p>구미 지역 유적지, 문화유산 및 명소 보고서</p><p>이 보고서는 구미 지역의 풍부한 역사적 유적지, 다채로운 문화유산,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인상 깊은 명소들을 종합하여 제시합니다.</p><p>서론: 구미의 역사적 배경</p><p>구미시는 선산군 지역과 최근 편입된 인동 지역의 역사 변천을 함께 아우르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부터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이루어져 사회 분화가 착실히 진행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찍부터 소국(/), 즉 성읍 국가가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포토)과 변군미국(#표, 지금의 인 동동 일대)이 이곳에 비정됩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되었고, 이후 일선군(-#3, 지금의 구미시·선산군)과 사동화현 (#×#, 지금의 인동동 일대)이 설치되었습니다. 2</p><p>1. 유적지 (Historical Sites)</p><p>구미에는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p><ul><li><p>﻿﻿선사/고대 시대 유적: 이곳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많이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활발한 거주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p></li><li><p>﻿﻿고분군:</p></li><li><p>﻿﻿구미 낙산리 고분군</p></li><li><p>﻿﻿구미 황상동 고분군</p></li><li><p>﻿﻿산성:</p></li><li><p>﻿﻿금오산성: 고려 후기 구미 지역 금오산에 축조된 이중의 석축 산성입니다.</p></li><li><p>﻿﻿천생산성</p></li></ul><p>II. 문화유산 (Cultural Heritage)</p><p>구미 지역은 불교, 유교, 민속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풍부한 문화유산을 자랑합니다.</p><p>1. 불교 유산</p><ul><li><p>﻿﻿사찰:</p></li><li><p>﻿﻿도리사: 『신증동국여지승람」「불우조」의 설화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세운 사찰로, 신라불교의 초전지로 알려져 있습 니다.</p></li><li><p>﻿﻿수다사: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한 풍물놀이(무을농악)가 전승되는 곳입니다.</p></li><li><p>﻿﻿그 외 구미 대둔사 대웅전, 구미 용수암 등이 있습니다.</p></li><li><p>﻿﻿불상 및 석탑:</p></li><li><p>﻿﻿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p></li><li><p>﻿﻿구미 황상동 마애여래입상: 구미시 황상동의 속칭 석현이라 불리는 고갯길 왼쪽 암벽 앞면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입니다.</p></li><li><p>﻿﻿선산 궁기동 석불상, 미륵당 석조미륵입상.</p></li><li><p>﻿﻿구미 낙산리 삼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주륵사 폐탑, 구미 도리사 석탑.</p></li><li><p>﻿﻿사찰 소장 문화재:</p></li><li><p>﻿﻿구미 금강사: 금동관음보살입상, 금동약사여래입상, 금란가사, 석조석가여래좌상, 소장 전적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p></li></ul><p>0 구미 남화사 석조약사여래좌상.</p><p>0 구미 대원사 석조여래좌상.</p><ul><li><p>﻿﻿구미 도리사 극락전,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시주질비.</p></li><li><p>﻿﻿구미 문수사 소장 「묘법연화경」.</p></li><li><p>﻿﻿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수다사 건릉37년명 동종, 수다사 명부전, 수다 대웅전 석가모니 후불탱화.</p></li></ul><p>0 구미 약사암 석조여래좌상.</p><ul><li><p>﻿﻿구미 원각사 목조보살좌상.</p></li><li><p>﻿﻿구미 자비사 「묘법연화경」, 구미 자비사 소장전적.</p></li></ul><p>0 구미 해평리 석조여래좌상.</p><p>2. 유교 및 교육 유산</p><ul><li><p>﻿﻿향교 및 서원:</p></li><li><p>﻿﻿구미 선산향교, 구미 인동향교 대성전.</p></li><li><p>﻿﻿금오서원, 동락서원 강당, 낙봉서원.</p></li><li><p>﻿﻿정려 및 유허비:</p></li></ul><p>0 길재: 고려 말 삼은(=) 중 한 명으로, 이색, 정몽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습니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의 태상박사 임명을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p><p>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으며, 길재 정려비가 남아있습니다.</p><ul><li><p>﻿﻿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p></li><li><p>﻿﻿김선궁 신도비 및 유허비.</p></li><li><p>﻿﻿김종무 충신 정려비.</p></li><li><p>﻿﻿박진환 정려비, 박진환 정려편액.</p></li></ul><p>0 배숙기 정려편액.</p><p>0 봉곡동 효열비각.</p><ul><li><p>﻿﻿용암 박운 효자 정려비.</p></li><li><p>﻿﻿선산 삼강정려.</p></li><li><p>﻿﻿양주조씨 정려편액, 함종어씨 정려편액.</p></li><li><p>﻿﻿누정 및 고택:</p></li><li><p>﻿﻿구미 쌍암 고택: 집 앞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쌍암고택이라 불리며, 원래 다양한 부속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대문채와 부속채들은 소실되었습니다.</p></li></ul><p>0 구미 채미정.</p><ul><li><p>﻿﻿근암 고택, 망천동 임당댁, 수남위 종택, 용와종택 및 침간정, 임하댁, 전 모례가정, 해평동 북애고택, 호고와 종택.</p></li><li><p>﻿﻿대야정, 대월재, 동암정, 만령초당, 매학정 일원, 모원당, 삼가정.</p><p><br/></p></li><li><p>3. 기타 중요 문화유산</p><ul><li><p>﻿﻿구미 도중리 동신상.</p></li><li><p>﻿﻿경은 이맹전 유허비 및 묘비.</p></li><li><p>﻿﻿구미 척화비.</p></li><li><p>﻿﻿의구총, 의우총.</p></li><li><p>﻿﻿인동입석, 지주중류비.</p></li><li><p>﻿﻿박정희 대통령 생가.</p></li><li><p>﻿﻿오로2리 불당 동제,</p></li><li><p>﻿「구미 발갱이들소리」, 「달개 노래」, 「박주제 흥보가.</p></li><li><p>﻿『동인시화,,「몽산 화상 법어 약록(언해)..</p></li></ul><p>III. 명소 및 주요 관광지 (Famous Places &amp; Tourist Attractions)</p><p>구미시는 자연경관과 산업시설, 그리고 다채로운 축제가 어우러진 명소들을 제공합니다.</p><p>1. 자연 경관</p><p>• 금오산: 구미의 대표적인 산이자 상징으로, 칠곡군과 김천시의 경계에 걸쳐 자리하고 있습니다.</p><p>2. 산업 및 문화 복합 공간</p><ul><li><p>﻿﻿한국의 실리콘밸리 구미공단: 전자산업 중점 육성과 수출 진흥, 지역 간 균형 발전을 목적으로 1968년 3월부터 조성된 산업단지로, 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구미를 성장시켰습니다. 6</p></li><li><p>﻿﻿도리사: 신라불교의 초전지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명소입니다. 5</p></li></ul><p>3. 주요 축제 및 행사</p><p>구미에서는 다양한 축제가 연중 개최되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p><ul><li><p>﻿엘지소년드림페스티벌.</p></li><li><p>﻿﻿구미축제.</p></li><li><p>﻿﻿무을풍물축제: 수다사 소유의 토지에서 농사짓던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한 풍물놀이가 전승되어 축제로 발전했습니다. 4</p></li><li><p>﻿﻿경북과학축전.</p></li><li><p>﻿﻿금오산 꽃길축제.</p></li><li><p>﻿구미 아시아연극제. 3</p></li></ul></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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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3: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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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06 류하나</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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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strong>📜 구미시 역사·문화유산 연대표</strong></p><p><br/></p><p><br/></p><p><br/></p><p><strong>🏺 청동기 시대 (기원전 약 1000년경 추정)</strong></p><p><br/></p><p><br/></p><ul><li><p>유물·유적: 구미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 다수 발견 → 인간의 정착 생활 활발.</p></li><li><p>역사적 사건: 변진 24국 중 군미국(軍美國), <strong>변군미국(弁軍美國)</strong>이 현재 구미 인동 일대에 자리한 것으로 추정됨.</p></li><li><p>의의: 구미가 고대 국가 형성의 기반이 된 지역임을 보여줌.</p></li></ul><p><br/></p><p><br/></p><p><br/></p><p><br/></p><p><br/></p><p><strong>🏯 삼국 시대 (4~6세기 중심)</strong></p><p><br/></p><p><br/></p><ul><li><p>4세기경: 구미 지역, 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 경쟁의 각축장.</p></li><li><p>5세기경: 신라에 편입 → <strong>일선군(一善郡, 구미·선산)</strong>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인동) 설치.</p></li><li><p>5세기 후반 추정: 도리사 창건 –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복숭아꽃·오얏꽃이 만발한 곳을 길지로 여겨 세운 절. 신라 불교 초전지로 전해짐.</p></li><li><p>6세기~7세기: 금오산성 축조(정확한 시기는 불명, 삼국~고려로 추정). 신라가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p></li></ul><p><br/></p><p><br/></p><p><br/></p><p><br/></p><p><br/></p><p><strong>📖 고려 시대 (14세기)</strong></p><p><br/></p><p><br/></p><ul><li><p>1353년생: 길재(吉再), 구미 선산 출생.</p></li><li><p>14세기 후반: 길재, 이색·정몽주·권근에게 성리학을 배우며 학문 수련.</p></li><li><p>1392년(고려 멸망, 조선 건국): 길재, 새 왕조의 벼슬(태상박사)을 거절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 양성.</p></li><li><p>의의: 구미 지역이 성리학과 충절의 상징적 고장이 되는 기반 마련.</p></li></ul><p><br/></p><p><br/></p><p><br/></p><p><br/></p><p><br/></p><p><strong>📚 조선 시대 (15~19세기)</strong></p><p><br/></p><p><br/></p><ul><li><p>15세기 초: 길재, 선산에서 후학 교육 시작 → 조선 성리학 학문 전통 정착.</p></li><li><p>조선 중기~후기:<br></p><ul><li><p>무을농악 전승 – 수다사 토지를 경작하는 농민들의 삶 속에서 풍물놀이로 계승.</p></li><li><p>쌍암 고택(최상학 가옥) 형성 – 조선 후기 양반가옥, 구미 지역 전통 건축물로 보존.</p></li></ul></li><li><p><br/></p></li></ul><p><br/></p><p><br/></p><p><br/></p><p><br/></p><p><br/></p><p><strong>🏭 근현대 (20세기 이후)</strong></p><p><br/></p><p><br/></p><ul><li><p>1917년: 박정희 대통령 구미 출생.</p></li><li><p>1968년 3월: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시작 – 전자·반도체·섬유 중심, 수출산업 도시로 성장.</p></li><li><p>1970~1980년대: ‘수출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구미공단, <strong>‘한국의 실리콘밸리’</strong>로 불림.</p></li><li><p>현재: 내륙 최대 규모의 첨단 수출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전.</p></li></ul><p><br/></p><p><br/></p><p><br/></p><p><br/></p><p><br/></p><p><strong>✅ 정리</strong></p><p><br/></p><p><br/></p><ul><li><p>청동기 시대 (~기원전 1000년경): 군미국·변군미국 → 성읍국가 형성</p></li><li><p>삼국 시대 (4~6세기): 도리사 창건(아도화상), 금오산성 축조, 신라 편입</p></li><li><p>고려 시대 (14세기): 길재의 성리학 학문 수련 및 절의</p></li><li><p>조선 시대 (15~19세기): 길재의 후학 양성, 무을농악 전승, 쌍암 고택 보존</p></li><li><p>근현대 (1917~현재): 박정희 대통령 출생,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1968), 산업화 중심지 성장</p></li></ul><p><br/></p><p>구미시 주요 역사 연표</p><ul><li><p><strong>청동기 시대:</strong></p></li><li><p>구미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이 시기부터 인간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고 사회 분화가 이루어졌음.</p></li><li><p>이를 바탕으로 초기 소국(성읍국가)이 형성되었으며, 변진 24개국 중 <strong>군미국(軍美國)</strong>과 <strong>변군미국(弁軍美國)</strong>(현재 인동동 일대)이 이곳에 비정됨.</p></li><li><p><strong>삼국 시대:</strong></p></li><li><p>백제와 신라의 영토 확장 경쟁의 각축장이 됨.</p></li><li><p>점차 신라의 영역으로 편입됨.</p></li><li><p><strong>일선군(一善郡)</strong>(현재 구미시·선산군)과 <strong>사동화현(斯同火縣)</strong>(현재 인동동 일대)이 설치됨.</p></li><li><p><strong>도리사 창건:</strong>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 설화에 따르면, <strong>아도화상</strong>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곳을 길지로 여겨 절을 세움. 이는 신라 불교 초전지(初傳地) 중 하나로 여겨짐.</p></li><li><p><strong>금오산성 축조:</strong> 이 시기 또는 고려 후기에 금오산에 이중의 석축 산성이 축조됨. (자료에 "고려 후기"로 명시되어 있으나, '금오산성'이 문화유산 목록에 있어 이른 시기부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음을 시사).</p></li><li><p><strong>고려 시대:</strong></p></li><li><p><strong>길재 활동:</strong>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strong>이색, 정몽주, 권근</strong> 등에게 성리학을 배움.</p></li><li><p><strong>조선 시대:</strong></p></li><li><p><strong>길재:</strong>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침.</p></li><li><p><strong>무을농악 전승:</strong> 수다사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농사의 마디마디에 풍물놀이가 전승됨.</p></li><li><p><strong>1968년 3월:</strong></p></li><li><p><strong>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시작:</strong>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의 중점 육성, 수출 진흥, 지역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조성 시작. 이는 '한국의 실리콘밸리' 구미공단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됨.</p></li><li><p><strong>근현대:</strong></p></li><li><p><strong>박정희 대통령 생가</strong> 존재 (구미와 관련된 주요 인물로 언급됨).</p></li><li><p>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 보유 도시로 성장.</p></li></ul><p>주요 인물 캐스트</p><ul><li><p><strong>아도화상 (阿道和尙):</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신라 시대 고승으로, 구미 도리사의 창건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한 곳을 길지로 여겨 도리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신라 불교 초전지(初傳地)와 깊은 관련이 있다.</p></li><li><p><strong>길재 (吉再):</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고려 말 삼은(三隱: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중 한 명.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성리학을 배웠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이를 거절하고 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양성하며 절의를 지켰다.</p></li><li><p><strong>이색 (李穡):</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성리학을 가르쳤다.</p></li><li><p><strong>정몽주 (鄭夢周):</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고려 말 문신이자 학자.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성리학을 가르쳤으며 고려에 대한 충절로 유명하다.</p></li><li><p><strong>권근 (權近):</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 길재의 스승 중 한 명으로, 성리학 발전에 기여했다.</p></li><li><p><strong>태종 이방원 (太宗 李芳遠):</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조선의 제3대 임금. 길재가 조선 건국 후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한 일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된다.</p></li><li><p><strong>박정희 대통령 (朴正熙 大統領):</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대한민국의 제5~9대 대통령. 구미에 그의 생가가 존재하며,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에 큰 영향을 미친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주역이다. 구미가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p></li><li><p><strong>최상학 (崔相學):</strong></p></li><li><p><strong>설명:</strong> 구미 쌍암 고택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인물. 고택이 그의 이름을 따 '최상학 가옥'이라고도 불린다고 언급되어 있다</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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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4: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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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11 양서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yunilhs1/7o7l8tuy1o5hteas/wish/3563194309</link>
         <description><![CDATA[<p><strong>구미 지역의 명소, 유적지 및 역사적 인물 보고서</strong></p><p>구미시는 한반도의 고대사부터 현대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온 지역으로, 그 역사적 깊이와 문화적 가치를 보여주는 다양한 유산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p><p><strong>1. 구미의 주요 역사적 인물</strong></p><p>*   <strong>길재(吉再)</strong> [1]</p><p>    <em>   고려 말 </em>*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strong>성리학을 배웠습니다</strong> [1].</p><p>    <em>   조선 건국 후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em>*고향인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쳤습니다** [1]. 그의 정려비도 존재합니다 [2].</p><p>*   <strong>아도화상(阿道和尙)</strong> [3]</p><p>    <em>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승람)』에 전하는 설화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곳을 길지로 여겨 </em>*도리사(桃李寺)를 세운 데서 사찰의 유래가 시작**되었습니다 [3]. 도리사는 <strong>신라 불교의 초전지</strong>로 알려져 있습니다 [1].</p><p>*   <strong>이심지(李深之)</strong> [1]</p><p>    <em>   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 </em>*'이심지' 항목이 등록**되어 있으며, 관련 답변 기록도 존재합니다 [1].</p><p><strong>2. 구미의 주요 명소 및 유적지</strong></p><p>구미 지역은 고대부터 중요한 거점이었으며, 이는 다양한 유적지로 증명됩니다.</p><p>*   <strong>금오산(金烏山)</strong> [3]</p><p>    *   <strong>구미의 대표적인 산</strong>으로, 칠곡군과 김천시의 경계에 걸쳐 자리하고 있습니다 [3]. '구미의 상징'으로도 불립니다 [1].</p><p>*   <strong>금오산성(金烏山城)</strong> [3]</p><p>    *   <strong>고려 후기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축조한 이중의 석축 산성</strong>입니다 [3].</p><p>*   <strong>도리사(桃李寺)</strong> [1, 3]</p><p>    <em>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em>*신라 불교의 첫 전파지**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큽니다 [1, 3].</p><p>    *   도리사 극락전, 도리사 석탑, 도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의 문화유산도 있습니다 [2].</p><p>*   <strong>수다사(水多寺)</strong> [2, 3]</p><p>    *   <strong>1771년(건륭 37년)의 명문이 있는 동종(銅鐘)</strong>인 '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이 존재합니다 [2].</p><p>    <em>   수다사 소유 토지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의 고된 노동을 위로하기 위한 </em>*무을농악(舞乙農樂)의 전승지**이기도 합니다 [3].</p><p>*   <strong>구미국가산업단지(龜尾國家産業團地)</strong> [3, 4]</p><p>    *   <strong>1968년 3월부터 조성이 시작</strong>되었습니다 [4].</p><p>    *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 산업의 중점 육성, 수출 진흥을 통한 지역 간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3, 4].</p><p>    <em>   '</em>*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며, <strong>내륙 최대의 첨단 수출산업단지</strong>를 보유한 도시로 구미를 성장시켰습니다 [1, 3].</p><p>*   <strong>황상동 마애여래입상(凰上洞磨崖如來立像)</strong> [1]</p><p>    *   구미시 황상동의 고갯길 옆 암벽에 조각된 마애여래입상입니다 [1].</p><p>*   <strong>구미 쌍암 고택(龜尾雙巖古宅)</strong> [1]</p><p>    *   집 앞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어 '쌍암고택'이라 불리며, 주인의 성함을 따 '최상학 가옥'이라고도 합니다 [1].</p><p>*   <strong>기타 유적 및 문화유산</strong> [2]</p><p>    *   <strong>구미 낙산리 고분군</strong>, <strong>구미 황상동 고분군</strong> 등 고분군을 통해 고대사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2].</p><p>    *   <strong>선산향교</strong>, <strong>인동향교 대성전</strong> 등 지역 교육 및 유교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도 있습니다 [2].</p><p>    *   <strong>채미정</strong>, <strong>천생산성</strong>, <strong>지주중류비</strong> 등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 및 비석들도 구미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이룹니다 [2].</p><p><strong>3. 구미의 역사적 배경</strong></p><p>구미는 고대부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p><p>*   <strong>청동기시대</strong>: 이 지역에서 <strong>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strong>되어 인간 거주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5]. 이를 바탕으로 <strong>소국(小國)인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현재의 인동동 일대)</strong>이 형성되었습니다 [5].</p><p>*   <strong>삼국시대</strong>: 백제와 신라의 <strong>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strong>이었으며, 점차 <strong>신라의 영역으로 편입</strong>되었습니다 [6].</p><p>*   <strong>삼국시대 이후</strong>: <strong>일선군(一善郡)(현재의 구미시·선산군)과 사동화현(斯同火縣)(현재의 인동동 일대)이 설치</strong>되었습니다 [6]</p><p><br/></p><p><br/></p><p>*   <strong>청동기시대</strong>: 구미시 및 인근 지역에서 <strong>청동기 유물·유적이 다수 발견</strong>되어 이 시기부터 인간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사회 분화가 이루어졌습니다 [1]. 이를 바탕으로 <strong>소국(小國), 즉 변진 24개국에 속하는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현재의 인동동 일대)이 형성</strong>되었습니다 [1].</p><p>*   <strong>삼국시대</strong>: 백제와 신라 양국의 <strong>영토 확장을 위한 각축장</strong>이었으며, 점차 <strong>신라의 영역으로 편입</strong>되었습니다 [2].</p><p>*   <strong>삼국시대 이후</strong>: <strong>일선군(一善郡, 현재의 구미시·선산군)과 사동화현(斯同火縣, 현재의 인동동 일대)이 설치</strong>되었습니다 [2].</p><p>*   <strong>고려 후기</strong>: 경상북도 구미 지역 금오산에 이중의 석축 산성인 <strong>금오산성</strong>이 축조되었습니다 [3].</p><p>*   <strong>고려 말</strong>: <strong>길재</strong>가 이색, 정몽주, 권근 등에게 <strong>성리학을 배웠으며</strong>, 그는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불렸습니다 [4].</p><p>*   <strong>조선 건국 이후</strong>: 길재는 친교가 있던 태종 이방원에 의해 태상박사로 임명되었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며 거절하고 고향인 구미시 선산읍으로 돌아가 <strong>후학을 가르쳤습니다</strong> [4].</p><p>*   <strong>1771년 (건륭 37년)</strong>: <strong>수다사 건륭37년명 동종</strong>이 존재합니다 [5].</p><p>*   <strong>1968년 3월</strong>: <strong>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이 시작</strong>되었습니다 [6]. 이는 전자산업과 반도체, 섬유업종 산업의 중점 육성, 수출 진흥을 통한 지역 간 균형 발전 및 국민 경제 향상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6].</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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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8: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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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13 윤승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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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구미 지역사 연표</p><p>1. 상고시대 (선사 ~ 삼국시대 초기)</p><p>• 시기 미상: 구미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 및 유적이 다수 발견되어 소국(小國:城色國家)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이 이곳에 비정됩니다.</p><p>• 신라 초기: 구미는 일선군으로 불렸습니다. 인동 지역은 **사동화현(斯洞火縣)**으로 불렸으며, 이후 수동현으로 개칭되었습니다.</p><p>• 시기 미상: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파하기 위해 구미시 도개면 도개2리 모례장자의 집에 숨어 3년간 불법을 전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후 신라불교초전지마을로 불리게 됩니다.</p><p>• 시기 미상: 아도화상이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를 창건했습니다.</p><p>• 신라시대: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켰던 역사적 장소인 대둔사가 창건되었습니다. 대둔사는 대웅보전(보물 1578호)과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1636호)을 간직하고 있습니다.</p><p>• 법흥왕 14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에서 불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p><p>• 진평왕 36년 (614년): 일선군이 일선주로 승격되었습니다.</p><p>• 경덕왕 재위 (742~764년): 사동화현이 지금의 인동으로 개칭되었습니다.</p><p>• 경덕왕 16년 (757년): 일선주가 숭선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p><p>2. 고려시대</p><p>• 918년 (태조 1년): 고려 건국 당시 구미 지역에는 후백제의 일선군이 있었습니다.</p><p>• 936년 (태조 19년): 일리천 전투를 통해 고려가 후백제를 정복하면서 일선군이 고려의 영토가 되었습니다.</p><p>• 995년 (성종 14년): 일선군이 **선주(善州)**로 개칭되었고, 자사가 파견되어 백성을 통치했습니다.</p><p>• 1018년 (현종 9년): 선주가 상주의 속현이 되었습니다. 인동은 경산부(현재의 성주)의 속현이 되었습니다.</p><p>• 1143년 (인종 21년): 일선현으로 승격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었으며 해평군 등을 속군현에 포함시켰습니다.</p><p>• 고려 말: 다시 선주로 승격되어 지선주사가 파견되었고, 고려 말까지 존속했습니다. 도리사, 수다사, 옥림사, 진남사, 대둔사, 미봉사 등의 사찰이 고려시대에도 불교 융성에 기여했습니다. 금오산성 및 천생산성이 국방 요충지로서 존재했습니다.</p><p>• 1390년 (공양왕 2년): 인동이 경산에서 분리되어 지방수령인 감무(監務)를 처음 두었습니다.</p><p>3. 조선시대</p><p>• 태종 13년 (1413년): 선주가 선산군으로 개칭되고 도호부가 설치되었습니다. 인동에도 지방제도 개정에 따라 현감(종6품)이 두어졌습니다.</p><p>• 1572년: 선산 사림의 건의와 조정의 지원으로 금오산 아래 금오서원이 창건되었습니다.</p><p>• 1575년: 금오서원이 사액서원으로 국가의 공인을 받았습니다.</p><p>• 선조 37년 (1604년) 4월: 찰리사 곽재우에 의해 천생산성 외성이 축조되었습니다.</p><p>• 선조 38년 (1605년) 7월: 인동이 도원수 한준겸의 계청에 의해 도호부로 승격되었습니다.</p><p>• 임진왜란 시기: 사명대사가 대둔사에서 승병을 훈련시켰습니다.</p><p>4. 근현대 (1800년대 이후)</p><p>• 1895년 5월 25일: 23부제 실시에 따라 선산도호부가 선산군으로 개칭되었습니다.</p><p>• 1895년 5월 26일: 지방제도 개정(칙명 제98호)에 따라 인동도호부가 인동군으로 변경되었습니다.</p><p>• 1896년 8월 4일: 13도제 실시에 따라 경상북도 선산군이 되었습니다 (18면).</p><p>• 1914년 3월 1일: 부군면 폐합으로 행정구역이 개편되어 선산군이 9개면으로 조정되었고, 인동군 9개면은 칠곡군에 병합되었습니다.</p><p>• 1917년: 박정희 대통령이 경상북도 구미 상모동에서 출생했습니다.</p><p>• 1937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구미에 거주했습니다.</p><p>• 1970년대: 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구미공단이 형성되었고, 도시화가 가속화되었습니다.</p><p>• 1976년: 권영숙 씨가 구미공단에 취업했습니다.</p><p>• 1977년: 권영숙 씨가 구미도시산업선교회 활동에 참여했습니다.</p><p>• 1977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p><p>• 1978년: 임하댐 건설로 인해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 거주하던 전주 류씨 집성촌 수몰민 70여 가구가 구미 해평면으로 이주하여 일선리 문화재마을을 이루었습니다.</p><p>• 1978년 2월 15일: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이 통합되어 구미시로 승격되었습니다.</p><p>• 1979년: 권영숙 씨가 구미공단에서 노동자 의식 실태조사와 부당해고 저항 운동 등 노동운동을 전개했습니다.</p><p>• 1979년 5월 1일: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p><p>• 1980년대: 권영숙 씨가 대구에서 노동운동을 지속했습니다.</p><p>• 1987년 1월 1일: 의성군 단밀면 용산리가 도개면에 편입되는 등 일부 행정구역 개편이 있었습니다.</p><p>• 1988년 7월 1일: 해평면 일선리가 신설되었습니다.</p><p>• 1989년 1월 1일: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장천면에 편입되었습니다.</p><p>• 1995년 1월 1일: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도농복합형 구미시가 설치되었고, 구미시 선산출장소가 설치되었습니다.</p><p>• 1995년 3월 1일: 도산동이 지산동과 도량동으로, 형곡동이 형곡1동과 형곡2동으로 분동되었습니다.</p><p>• 1995년 7월 1일: 초대 민선시장이 취임하며 지방화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p><p>• 1997년 11월 1일: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습니다.</p><p>• 1999년 3월 2일: 선주·원남동이 선주원남동으로 통합되는 등 일부 행정동이 통합되었습니다.</p><p>• 2005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을 위한 심포지엄 디지털 구미향토대전의 편찬과 과제'가 경북구미문화원에 의해 기획/제작되었습니다. 구미 도개면 신라불교초전지마을이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었습니다.</p><p>• 2010년: 경상북도 3대 문화권사업으로 선정되어 230여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폐교된 송도초등학교 부지에 신라불교초전지마을이 조성되었습니다. 구미성리학역사관 건립 사업이 문화체육관광부의 3대 문화권 문화관광기반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습니다.</p><p>• 2019년: 신라불교초전지 정보화마을이 전국 정보화마을 운영평가에서 명품마을로 선정되었습니다.</p><p>• 2020년 10월 23일: 구미성리학역사관이 개관했습니다.</p><p>• 2020년 10월 24일: 구미시 관광진흥과와 대구사학회가 공동으로 **'2020년 전국 학술대회'**를 개최했습니다.</p><p>• 2020년 12월: 금오서원의 정학당(正學堂, 보물 제2102호)과 상현묘(尙賢廟, 보물 제2103호)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p><p>• 2021년 1월 1일: 산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비산동과 공단1동이 비산동으로 통합되었으며, 공단2동은 공단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p><p>• 2021년 3월: 구미성리학역사관에서 성리학 아카데미, 서예, 서각 등 6개 교육·체험 프로그램이 새로 개강되었습니다.</p><p>• 2021년 4월 ~ 12월: 구미시가 '구미지역 독립운동사' 책자 300부를 발간했습니다.</p><p>• 2021년 7월 1일: 원평1동과 원평2동이 원평동으로 통합되었습니다.</p><p>5. 진행 중 / 예정된 행사</p><p>• 2022년 3월 18일: 구미독립운동사 발간 소식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시민보고회가 개최될 예정입니다.</p><p>• 2025년 9월 14일: 구미 대둔사에서 산사음악회 '뮤지컬 사명대사 갈라쇼'가 열릴 예정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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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29: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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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13 윤승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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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구미 지역 유적지·문화유산·명소 보고서</p><p><br/></p><p>1. 서론</p><p><br/></p><p>경상북도 구미시는 산업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오랜 역사와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고장이다.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다양한 유적과 명소는 구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산이다. 본 보고서에서는 구미의 대표적인 유적지, 문화유산, 명소를 살펴보고 그 가치와 의의를 정리하고자 한다.</p><p><br/></p><p><br/></p><p>---</p><p><br/></p><p>2. 본론</p><p><br/></p><p>(1) 주요 유적지</p><p><br/></p><p>1. 선산읍 도개리 고인돌군</p><p><br/></p><p>청동기시대의 대표적 무덤 양식으로, 구미의 선사문화를 보여준다.</p><p><br/></p><p>지역의 생활상과 장례 풍습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이다.</p><p><br/></p><p><br/></p><p><br/></p><p>2. 금오산성</p><p><br/></p><p>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축성·보수된 산성.</p><p><br/></p><p>구미의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하였으며, 군사적·역사적 가치가 크다.</p><p><br/></p><p><br/></p><p><br/></p><p>3. 도리사</p><p><br/></p><p>신라 시대 창건된 고찰로, 구미 불교문화의 원류를 확인할 수 있다.</p><p><br/></p><p>‘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사찰’로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유명하다.</p><p><br/></p><p><br/></p><p><br/></p><p><br/></p><p><br/></p><p>---</p><p><br/></p><p>(2) 문화유산</p><p><br/></p><p>1. 채미정(採薇亭)</p><p><br/></p><p>고려 말 충신 **길재(吉再)**가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한 정자.</p><p><br/></p><p>성리학 정신의 계승지로, 조선 유학 발전의 근거지가 되었다.</p><p><br/></p><p><br/></p><p><br/></p><p>2. 금오서원</p><p><br/></p><p>조선 시대 구미의 대표 서원으로, 길재를 배향하였다.</p><p><br/></p><p>지방 유림의 교육과 교화 중심지로 기능하였다.</p><p><br/></p><p><br/></p><p><br/></p><p>3. 구미 낙동강 변 문화경관</p><p><br/></p><p>강을 따라 자리한 마을과 논밭, 그리고 유적지들은 전통적인 생활문화의 흔적을 잘 보여준다.</p><p><br/></p><p><br/></p><p><br/></p><p><br/></p><p><br/></p><p>---</p><p><br/></p><p>(3) 명소</p><p><br/></p><p>1. 금오산(976m)</p><p><br/></p><p>구미의 상징적 산으로,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p><p><br/></p><p>기암괴석, 금오지, 약사암, 대혜폭포 등 명승지가 많아 관광객에게 사랑받는다.</p><p><br/></p><p><br/></p><p><br/></p><p>2. 구미 금오지</p><p><br/></p><p>조선 중기에 축조된 저수지로, 금오산 자락의 대표적인 휴식처이다.</p><p><br/></p><p>현재는 시민들의 산책 및 휴양 공간으로 활용된다.</p><p><br/></p><p><br/></p><p><br/></p><p>3. 낙동강 체육공원 및 생태공원</p><p><br/></p><p>산업도시 구미의 현대적 명소.</p><p><br/></p><p>하천 환경 복원을 통해 시민들에게 여가와 생태 학습의 공간을 제공한다.</p><p><br/></p><p><br/></p><p><br/></p><p><br/></p><p><br/></p><p>---</p><p><br/></p><p>3. 결론</p><p><br/></p><p>구미는 단순한 산업 도시가 아니라, 선사시대의 고인돌부터 조선의 서원과 정자, 현대의 생태공원까지 다양한 문화적 층위를 품은 도시이다. 이러한 유적지와 문화유산, 명소들은 구미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미래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앞으로 구미시는 산업과 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로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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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35: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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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소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yunilhs1/7o7l8tuy1o5hteas/wish/3563201777</link>
         <description><![CDATA[<p>김천시 역사 연표 및 인물</p><p><br/></p><p><strong>1. 선사 시대 (신석기시대 ~ 청동기문화단계)</strong></p><ul><li><p><strong>시기 불명:</strong> 성면 송국리에서 신석기시대 유적 발견. 감문면 송북리, 구성면 상거리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유적 발견. 구성면 송죽리에서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의 취락지 및 묘지 발굴. 감문면 송북리, 보광리·송북리, 봉산면 예지리, 구성면 상원리·송죽리에 고인돌 조성.</p></li></ul><p><strong>2. 삼한 시대 (삼한시대 무렵)</strong></p><ul><li><p><strong>시기 불명:</strong> 감문국(甘文國)이라는 소국이 자리 잡음.</p></li></ul><p><strong>3. 신라 시대</strong></p><ul><li><p><strong>231년(조분이사금 2):</strong> 감문국이 신라에 편입.</p></li><li><p><strong>418년(눌지왕 2):</strong>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직지사(直指寺) 창건.</p></li><li><p><strong>557년(진흥왕 18):</strong> 백제와의 전쟁 대비를 위해 감문주(甘文州) 설치, 상주(上州)의 치소(治所)가 됨.</p></li><li><p><strong>614년(진평왕 36):</strong> 상주의 주치가 일선주(一善州)로 옮겨진 후 군현체제 성립. 금물현, 김산현, 지품천현, 무산현을 거느림.</p></li><li><p><strong>757년(경덕왕 16):</strong> 지방제도 개편. 감문군은 개령군(開寧郡)으로, 금물현은 어모현(禦侮縣)으로, 지품천현은 지례현(知禮縣)으로, 무산현은 무풍현으로 개명.</p></li></ul><p><strong>4. 고려 시대</strong></p><ul><li><p><strong>후삼국 통일 이후 (시기 불명):</strong> 개령군의 속현이던 무풍현이 진례현의 속읍이 됨. 김산현·지례현은 경산부(京山府: 성주)의 속읍으로 편입.</p></li><li><p><strong>1018년(현종 9):</strong> 현종 대 지방제도 개편. 개령군과 어모현이 상주목에 내속되어 정치·군사적 비중 약화. <strong>김산현에 김천역(金泉驛)이 설치</strong>되어 교통 중심지 기능 유지.</p></li><li><p><strong>1172년(명종 2):</strong> 개령군에 감무(監務) 파견.</p></li><li><p><strong>1390년(공양왕 2):</strong> 지례현과 김산현에도 감무 파견. 행정 단위로서 중요성 재인정.</p></li></ul><p><strong>5. 조선 시대</strong></p><ul><li><p><strong>조선 건국 이후 (시기 불명):</strong> 김산현 관내에 정종(定宗)의 태가 묻히면서 김산군으로 승격, 어모현 통합.</p></li><li><p><strong>1392년:</strong> 김산향교(金山鄕校) 창건 (임진왜란 중 소실 후 1634년 중건, 1871년 중수).</p></li><li><p><strong>1413년(태종 13):</strong> 개령군이 개령현으로 강등되어 현감 파견. 지례현에도 현감 파견.</p></li><li><p><strong>1426년(세종 8):</strong> 지례면 교촌리에 지례향교(知禮鄕校) 창건 (임진왜란 중 소실 후 1690년 중수).</p></li><li><p><strong>1473년(성종 4):</strong> 개령향교(開寧鄕校) 창건 (1522년 수축, 1563년 중수, 1837년 개령면 동부리로 이건).</p></li><li><p><strong>조선 초기 (시기 불명):</strong> 토지 비옥으로 농업 생산력 증가, 제언(堤堰) 축조 등으로 물산 풍부. 김산·개령·지례 향교 설립. 사림파 등장 이후 경렴서원(景濂書院)·경양서원(鏡陽書院) 등 서원 건립.</p></li><li><p><strong>1592년(선조 25):</strong> 임진왜란 발발. 정경세·권경호 등이 의병 모집. 개령·김산 등지의 사족(士族)들이 호응하여 왜적 물리침.</p></li><li><p><strong>1625년:</strong> 구성면 상원리에 방초정(芳草亭) 건립.</p></li><li><p><strong>1648년(인조 26):</strong> 성내동에 경렴서원 설립.</p></li><li><p><strong>1669년(현종 10):</strong> 아포읍 대신리에 덕림서원(德林書院) 설립.</p></li><li><p><strong>1756년(영조 32):</strong> 춘천서원, 구성면 광명리에 경양서원 설립.</p></li><li><p><strong>1802년(순조 2):</strong> 대덕면 조룡리에 섬계서원(剡溪書院) 설립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61년 복원).</p></li><li><p><strong>1862년(철종 13):</strong> 삼정(三政) 문란 극심. 김규진 주도로 <strong>개령민란</strong> 발생, 반봉건 투쟁의 계기.</p></li></ul><p><strong>6. 대한제국 ~ 일제강점기</strong></p><ul><li><p><strong>1895년(고종 32):</strong> 지방제도 개혁에 따라 김산군·개령현·지례현이 모두 군으로 승격.</p></li><li><p><strong>1905년:</strong> 증산면이 성주군에서 지례군으로 편입.</p></li><li><p><strong>1906년:</strong> 성주군 신곡면과 황간군 남면이 김산군으로 편입.</p></li><li><p><strong>1907년:</strong> <strong>김천공립보통학교 개교</strong>. 허위(許蔿) 의병부대가 김천·지례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p></li><li><p><strong>1908년:</strong> 지례군에 속했던 지역이 대덕산 이름을 따 대덕면으로 칭하고 김천군에 편입.</p></li><li><p><strong>1909년:</strong> 개령공립보통학교 개교.</p></li><li><p><strong>1911년:</strong> 경부선 철도 추풍령 구간 개통.</p></li><li><p><strong>1914년:</strong> <strong>행정구역 개편</strong>. 개령군·김산군·지례군이 <strong>김천군으로 통폐합</strong>. 현재의 아포읍, 감문면, 감천면, 개령면, 구성면, 남면, 농소면, 대덕면, 대항면, 봉산면, 부항면, 어모면, 조마면, 증산면, 지례면 등 면 단위 행정구역 재편.</p></li><li><p><strong>1919년:</strong> 3·1운동 전개. 김천면에서 3월 24일과 4월 5일 만세시위. 개령면에서 3월 24일부터 4월 6일까지 만세시위.</p></li><li><p><strong>1929년:</strong> 김천소년회·청년회가 만주 동포 탄압 문제에 대해 배일·배중국운동(排日排中國運動) 추진.</p></li><li><p><strong>1931년:</strong> 김천면이 읍으로 승격. 김천고등보통학교 사립으로 개교, 일제에 의해 공립화되었다가 광복 후 사립으로 환원.</p></li><li><p><strong>1935년:</strong> 김천여자고등보통학교(김천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 설립.</p></li></ul><p><strong>7. 현대 (광복 이후)</strong></p><ul><li><p><strong>1949년:</strong> <strong>김천시로 승격</strong>되며 시와 군 분리. 김천군은 금릉군으로 개편.</p></li><li><p><strong>1950년:</strong> 6·25전쟁 이후 지리산 지역 잔존 공비들의 습격으로 많은 피해.</p></li><li><p><strong>1960년대 이후:</strong>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 발달. 정기시장은 감소하고 상설 점포 증가.</p></li><li><p><strong>1970년:</strong>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구간 개통.</p></li><li><p><strong>1971년:</strong> 직지사 지정관광지로 지정.</p></li><li><p><strong>1983년:</strong> 금릉군 농소면 덕곡동, 개령면 대광동, 어모면 응명동, 감천면 양천동이 김천시로 편입.</p></li><li><p><strong>1993년:</strong> 교동 연화지가 농업용수 관개지에서 시민 휴식 공간으로 이용 시작.</p></li><li><p><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strong>도농통합에 따라 김천시와 금릉군이 새로운 김천시로 통합</strong>.</p></li><li><p><strong>1995년 3월 1일:</strong> 아포면이 읍으로 승격.</p></li><li><p><strong>1998년:</strong> 김천시 13개 동이 9개 동으로, 이후 8개 동으로 통폐합.</p></li><li><p><strong>2000년:</strong> 성내동과 남산동이 성남동으로 통합되어 1읍 14면 7동 체제. 4월 <strong>김천문화예술회관 개관</strong>. 어모면에 주민자치센터 시범 실시.</p></li><li><p><strong>2003년:</strong> 김천시립도서관 평화동에 신축·개관.</p></li><li><p><strong>2008년:</strong> 김천1·2차 산업단지 등 총 5개 산업단지에 86개 업체 입주, 4,001명 종사.</p></li><li><p><strong>2015년:</strong> 김천시 면적 1,009.50㎢, 인구 14만 132명. 초등학교 31개교, 중학교 15개교, 고등학교 10개교, 김천대학교, 경북보건대학교 소재.</p></li></ul><p>등장인물 (Cast of Characters)</p><ul><li><p><strong>아도화상 (阿道和尙):</strong> 신라 시대의 승려. 418년(눌지왕 2)에 직지사(直指寺)를 창건한 인물로 언급됨.</p></li><li><p><strong>정종 (定宗):</strong> 조선의 제2대 왕. 그의 태(胎)가 김산현 관내에 묻혔다는 이유로 김산현이 김산군으로 승격되었다고 언급됨.</p></li><li><p><strong>정경세 (鄭經世):</strong> 조선 시대 인물. 임진왜란(1592년) 당시 권경호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고 언급됨.</p></li><li><p><strong>권경호 (權慶浩):</strong> 조선 시대 인물. 임진왜란(1592년) 당시 정경세와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고 언급됨.</p></li><li><p><strong>김규진 (金奎鎭):</strong> 조선 철종 13년(1862년) 개령민란을 주도한 인물. 삼정의 문란에 대항하여 민중의 반봉건 투쟁을 이끌었다고 언급됨.</p></li><li><p><strong>허위 (許蔿):</strong> 대한제국 시기 의병장. 1907년 그의 의병부대가 김천·지례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했다고 언급됨.</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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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38: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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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천 지역 연표 및 사건과 문화유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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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선사시대</p><p><br></p><p>한반도의 선사시대</p><p>머나먼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는 주기적으로 빙하기와 따뜻한 간빙기가 번갈아 찾아왔음. 특히 마지막 빙하기(약 7만 년 전~1만 년 전) 때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훨씬 낮아져서 한반도가 중국, 일본과 육지로 연결되기도 했음. 이 시기 사람들은 혹독한 추위를 피해 동굴에 살며 사냥과 채집으로 생계를 이어갔음.</p><p><br></p><p>약 1만 년 전,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신석기 시대가 열렸음. 인류는 조, 기장 같은 밭작물을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식량을 직접 생산하게 된 혁명적인 변화라 ‘신석기 혁명’이라고 부름. 이 덕분에 한곳에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살 수 있게 됐음.</p><p><br></p><p>기원전 1500년경부터는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됨. 고인돌, 비파형동검 같은 유물들은 지배 계급이 등장했음을 보여줌. 평등했던 신석기 사회와 달리,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나뉘는 계급 사회, 즉 국가의 초기 형태로 발전한 것임. 기원전 5세기경 철기가 보급되면서 더 강력한 무기와 농기구가 만들어졌고, 이는 부족 간의 전쟁을 심화시키고 여러 국가의 탄생을 촉진했음.</p><p><br></p><p>선사시대의 김천</p><p>김천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음. 그 증거가 구성면 송죽리 고목마을에서 대량으로 발견된 주거지와 토기, 동검 등임. 이 발굴은 김천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만큼 중요한 발견이었음. 감문면과 봉산면, 구성면 등지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인 고인돌이 다수 발견되어, 이 지역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중요한 삶의 터전이었음을 알려줌.</p><p><br></p><p>삼한시대에 이르러, 낙동강의 지류인 감천 유역에는 변한을 이루던 12개의 작은 나라 중 하나인 **감문국(甘文國)**이 자리 잡고 있었음. 감문면 문무리 일대에 무수히 남아있는 고인돌들은 감천이 김천 역사의 젖줄, 즉 모태천(母胎川)이었음을 입증하는 중요한 유적임.</p><p><br></p><p>삼국시대</p><p><br></p><p>삼국의 발전과 통일</p><p>4세기경, 고구려, 백제, 신라는 각각 율령(오늘날의 헌법)을 반포하고 불교를 수용하며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음. 5세기는 광개토대왕을 앞세운 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아우르는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던 시기였음.</p><p><br></p><p>고구려의 강력한 남진 정책에 위협을 느낀 백제와 신라는 약 120년간 군사 동맹(나제 동맹)을 맺고 대항했음. 하지만 6세기 중반,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와 연합해 차지한 한강 유역을 독차지하면서 동맹은 깨지고 신라는 삼국 통일의 주도권을 잡게 됨.</p><p><br></p><p>7세기, 고구려는 수나라와 당나라의 연이은 침략을 살수대첩, 안시성 전투 등에서 막아내며 저력을 과시했지만,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이 쇠약해짐. 이 틈을 타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나당 연합군)하여 백제(660년)와 고구려(668년)를 차례로 멸망시킴. 이후 당나라가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이자,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과 힘을 합쳐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매소성, 기벌포 전투에서 승리하며 대동강 이남의 삼국 통일을 완수했음(676년).</p><p><br></p><p>삼국시대의 김천</p><p>김천 지역에 있던 감문국은 231년, 신라의 전신인 사로국에 의해 정복되어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음. 이때 감천이 갑자기 불어나 신라군이 퇴각했다는 흥미로운 기록도 남아있음.</p><p><br></p><p>신라 눌지왕 때는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화상이 **직지사(直指寺)**를 창건했음.  557년, 신라는 삼국 통일을 위한 전략적 거점으로 이곳에 **감문주(甘文州)**를 설치하고 상주의 중심지로 삼았음. 614년에는 군현제가 성립되면서 감문주는 금물현(지금의 김천), 지품천현(지금의 지례면) 등을 거느리는 행정 중심지가 되었음. 757년(경덕왕 16년) 지방제도 개편 때 감문군은 개령군으로, 금물현은 어모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음.</p><p><br></p><p>고려시대</p><p><br></p><p>고려의 흥망성쇠</p><p>후삼국의 혼란을 끝낸 왕건은 936년 고려를 세우고 민족의 재통일을 이룸. 하지만 고려의 역사는 순탄치 않았음. 북방의 거란(요나라)이 세 차례나 침략해왔고, 서희의 외교 담판과 강감찬의 귀주대첩 같은 영웅적인 활약으로 이를 막아냈음.</p><p><br></p><p>내부적으로는 문신을 차별하던 것에 불만을 품은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켜 약 100년간 권력을 장악하는 무신정권 시대가 열리기도 했음. 13세기에는 세계를 정복하던 몽골(원나라)이 7차례에 걸쳐 침략해옴. 고려는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40여 년간 끈질기게 항전했지만, 결국 원나라의 간섭을 받는 부마국이 됨. 이 고난의 시기에 부처의 힘으로国난을 극복하려는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을 만들었음.</p><p><br></p><p>고려 말, 요동 정벌에 나섰던 이성계 장군이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위화도 회군) 정권을 장악했고, 1392년 새로운 나라인 조선을 건국하면서 500년 역사의 고려는 막을 내림.</p><p><br></p><p>고려시대의 김천</p><p>고려 건국 후, 김천 지역은 행정구역 상 변화를 겪었음. 김산현과 지례현은 성주의 속현으로 편입되었고, 1018년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는 개령군과 어모현이 상주목에 속하게 됨.</p><p><br></p><p>이 시기 김천의 가장 큰 특징은 교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는 점임. 전국적인 역원(驛院) 제도가 정비되면서 김산현에 **김천역(金泉驛)**이 설치되었음. 김천역은 관리들의 숙소이자 교통, 통신의 중심지로서 지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함. 1172년에는 개령군에 감무(지방관)가 파견될 정도로 행정적 중요성도 인정받았음.</p><p><br></p><p> 조선시대</p><p><br></p><p>조선의 500년 역사</p><p>조선은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음.</p><p><br></p><p>전기: 한양을 도읍으로 삼고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국가의 기틀을 다졌음. 특히 세종대왕 때 훈민정음이 창제되는 등 민족 문화가 꽃을 피웠음. 하지만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의 난, 공신과 신진 사림 세력 간의 대립인 '사화'가 연이어 발생하며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음.</p><p><br></p><p>중기: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과 1636년의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국가 체제가 크게 흔들림. 이후 특정 학파나 가문이 정권을 잡고 다투는 붕당 정치가 심화되었음. 영조와 정조는 탕평책을 통해 붕당 간의 대립을 완화하고 개혁 정치를 펼치며 나라를 안정시키려 노력했음.</p><p><br></p><p>후기: 정조 사후, 안동 김씨 같은 특정 외척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왕권이 약화되고 삼정의 문란(세금 제도의 부패)이 극에 달함. 이에 저항하는 홍경래의 난, 임술농민봉기 등 민중의 저항이 거셌음. 19세기 후반에는 서양 세력의 통상 요구를 거부하는 쇄국 정책을 폈으나, 결국 일본의 무력 시위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1876년)을 맺고 문호를 개방함. 이후 열강의 침탈 속에 국권을 상실하고 1910년, 일제에 강제 병합되는 비운을 맞이함.</p><p><br></p><p>조선시대의 김천</p><p>조선 건국 후, 정종의 태(胎)가 김산현에 묻히면서 이곳이 김산군으로 승격되는 경사를 맞음. 조선 초기에는 토지가 비옥하여 농업 생산력이 크게 늘었고, 향교와 서원이 곳곳에 세워져 문풍(文風)이 크게 성행했음.</p><p><br></p><p>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정경세, 권경호 같은 인물들이 의병을 일으켰고, 개령과 김산의 선비들도 이에 호응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음. 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김천도 찰방으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김천은 교통이 편리하고 시장이 발달하여 살기 좋은 곳"이라고 평가했음.</p><p><br></p><p>특히 18세기 후반, 상평통보라는 화폐가 널리 유통되면서 **김천장(金泉場)**의 성장은 가속화되었음. 김천장은 평양장, 강경장 등과 함께 전국 5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거대한 상업 중심지로 번성했음.  1862년에는 삼정의 문란에 저항하는 개령민란이 발생하는 등 역사의 소용돌이를 비켜 가진 않았음.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김산군, 개령현, 지례현이 모두 군으로 개편되어 근대를 맞이할 준비를 함.</p><p><br></p><p>근대 및 일제강점기</p><p><br></p><p>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p><p>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은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청나라와 일본 등 외세의 간섭은 더욱 심해졌음.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갑오개혁 등 혼란 속에서 고종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선포하며 국호를 대한제국(1897년)으로 바꾸었음.</p><p><br></p><p>하지만 일본의 침략 야욕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을사늑약(1905년)으로 외교권을 빼앗기고, 1910년 한일병합조약으로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경술국치를 당함. 이후 35년간 이어진 일제강점기는 무단 통치와 민족 말살 정책으로 가득한 암흑기였음.</p><p><br></p><p>그럼에도 우리 민족은 굴하지 않았음. 1919년,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렸고, 이를 계기로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됨.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이 이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은 독립 전쟁의 위대한 승리였음. 끊임없는 투쟁 끝에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마침내 광복을 맞이함.</p><p><br></p><p>근대의 김천</p><p>1905년, 일제에 의해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고 김천에 역이 생기면서 김천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음. 철도는 전통적인 김천역(驛)의 기능은 쇠퇴시켰지만,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근대 도시로 성장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됨.</p><p><br></p><p>1914년 3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기존의 김산군, 개령군, 지례군이 김천군으로 통합되어 오늘날 김천의 기본 골격이 형성됨. 3·1 운동 당시 김천면에서는 3월 24일과 4월 5일, 개령면에서는 3월 24일부터 4월 6일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격렬한 만세 시위가 전개됨.</p><p><br></p><p>1931년에는 김천면이 김천읍으로 승격되었고, 김천고등보통학교(김천고 전신), 김천여자고등보통학교(김천여중·고 전신) 등 근대 교육기관이 설립되어 인재를 양성하기 시작함. 1936년에는 큰 홍수(병자년 수해)로 많은 마을이 물에 잠겨, '신기', '새터' 같은 새로운 이주 마을이 생기기도 하는 아픔을 겪었음.</p><p><br></p><p>김천의 문화유산</p><p>선사/고대 유적: 구성면 송죽리 유적지, 감문국 관련 유적인 감문산성과 궁궐터, 김효왕릉으로 전해지는 고분 등이 김천의 유구한 역사를 증명함.</p><p><br></p><p>유교 건축: 조선시대 지방 교육을 담당했던 김산향교, 지례향교, 개령향교가 남아있음. 특히 구성면 상원리에 있는 **방초정(方壺亭)**은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정자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음.</p><p><br></p><p>불교 문화: 신라 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 직지사와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유명한 청암사가 있음. 직지사 대웅전(보물), 문경 도천사지 동·서 삼층석탑(국보) 등 수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품고 있음.</p><p><br></p><p>무형문화유산: 경상도 특유의 씩씩하고 다채로운 가락이 특징인 금릉빗내농악(경북 무형문화재), 조선 3대 명주 중 하나로 꼽히는 전통 민속주 김천과하주(경북 무형문화재) 등이 장인들의 손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음.</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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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42: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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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217 이준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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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선사시대 이전:</strong></p><ul><li><p><strong>천지개벽 신화:</strong> 금오산은 천지개벽 때 물에 잠기지 않고 남은 산으로 여겨지며, 꼴뚜바위와 쇠말뚝에 배를 맸다는 전설이 전해짐.</p></li></ul><p><strong>청동기 시대:</strong></p><ul><li><p>구미시 및 인근 지역에서 청동기 유물과 유적이 다수 발견.</p></li><li><p>군미국(軍美國) 및 변군미국(弁軍美國)과 같은 초기 소국(성읍국가)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추정.</p></li></ul><p><strong>삼국 시대 (기원전 57년 ~ 668년):</strong></p><ul><li><p><strong>417년 (눌지왕 2년):</strong> 아도화상이 도리사 창건. (신라 최초의 사찰)</p></li><li><p><strong>483년 (소지왕 5년):</strong> 선산지역에 큰 수재가 발생하자 왕이 행차하여 백성을 위문하고 곡식을 하사함.</p></li><li><p><strong>614년 (진평왕 36년):</strong> 일선군이 일선주로 승격, 사벌과 감문에 있던 상주의 주치소(州治所)가 이곳으로 이동.</p></li><li><p><strong>신라에 불교 전래:</strong> 묵호자(아도화상)가 신라에 불교를 처음 포교한 곳으로, 모례의 집에서 경전을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음.</p></li><li><p>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선산지역)과 사동화현(인동지역)이 설치됨.</p></li><li><p>금오산성 축조 (고려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수축)</p></li></ul><p><strong>통일신라 시대 (668년 ~ 935년):</strong></p><ul><li><p><strong>687년 (신문왕 7년):</strong> 일선주가 폐지되고 상주가 사벌주로 이전.</p></li><li><p><strong>757년 (경덕왕 16년):</strong> 지방제도 개편으로 일선군이 숭선군(嵩善郡)으로, 사동화현이 인동현(仁同縣)으로 개칭.</p></li></ul><p><strong>후삼국 시대 (892년 ~ 936년):</strong></p><ul><li><p><strong>907년 (효공왕 11년):</strong> 견훤이 일선군과 남쪽 10여 성을 점령하여 후백제의 경상도 북부 진출 발판 마련.</p></li><li><p><strong>936년 (태조 19년):</strong> 일리천(一利川)에서 고려와 후백제의 최후 결전. 고려가 승리하여 후삼국 통일.</p></li></ul><p><strong>고려 시대 (918년 ~ 1392년):</strong></p><ul><li><p><strong>995년 (성종 14년):</strong> 숭선군이 선주(善州)로 개편되고 자사(刺史)가 임명됨.</p></li><li><p><strong>1018년 (현종 9년):</strong> 선주가 상주의 속현이 됨. 인동현은 경산부(성주)의 속현이 됨.</p></li><li><p><strong>1143년 (인종 21년):</strong> 일선현으로 승격되어 현령(縣令)이 임명되고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 해평군, 군위현, 효령현, 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림.</p></li><li><p><strong>1235년 (고종 22년):</strong> 이유정이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 패함.</p></li><li><p><strong>1380년 (우왕 6년):</strong>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를 입음.</p></li><li><p><strong>1383년:</strong> 왜구의 침입으로 피해를 입음.</p></li><li><p><strong>1390년 (공양왕 2년):</strong> 인동현에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독립 행정 단위가 됨.</p></li><li><p>금오산성과 선주 읍성이 축조되어 백성들의 안주를 도모.</p></li></ul><p><strong>조선 시대 (1392년 ~ 1910년):</strong></p><ul><li><p><strong>1413년 (태종 13년):</strong> 지방제도 개편으로 선주가 선산군으로 개칭.</p></li><li><p><strong>1415년:</strong> 선산군이 1,000호 이상이 되어 도호부로 승격.</p></li><li><p><strong>1570년 (선조 3년):</strong> 금오서원 건립. (1575년 사액, 임진왜란 중 소실)</p></li><li><p><strong>1592년 (임진왜란 발발):</strong> 금오산성에서 곽재우 등이 활약. 금오산성 및 천생산성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수축 지속.</p></li><li><p><strong>1600년:</strong> 선산향교 중건 (임진왜란 중 소실 후)</p></li><li><p><strong>1602년:</strong> 금오서원 선산읍 원리로 이건.</p></li><li><p><strong>1609년 (광해군 1년):</strong> 금오서원 사액.</p></li><li><p><strong>1623년 (인조 1년):</strong> 선산향교 중건.</p></li><li><p><strong>1630년:</strong> 월암서원 건립 (무을면 월암리)</p></li><li><p><strong>1635년:</strong> 인동향교 중건 (임진왜란 중 소실 후)</p></li><li><p><strong>1647년:</strong> 낙봉서원 건립 (해평면 낙성리)</p></li><li><p><strong>1655년 (효종 6년):</strong> 동락서원 건립.</p></li><li><p><strong>1680년 (숙종 6년):</strong> 인동향교 중수.</p></li><li><p><strong>1725년 (영조 1년):</strong> 인동향교 중수.</p></li><li><p><strong>1735년 (영조 11년):</strong> 금오산성에 독진(獨鎭)이 설치됨.</p></li><li><p><strong>1787년 (정조 11년):</strong> 낙봉서원 사액.</p></li><li><p><strong>1830년경:</strong> 읍내장, 해평장, 두천장, 구미장, 인동부내장, 대교장 등의 5일장이 개시.</p></li><li><p><strong>흥선대원군 시기:</strong> 서원철폐령으로 많은 서원과 사우가 훼철되었으나 금오서원은 현존.</p></li><li><p><strong>1872년:</strong> 지방 지도의 선산읍성 일대에 '구미역(九尾驛)'이 표기됨.</p></li><li><p><strong>1895년 (고종 32년, 갑오개혁 직후):</strong> 소지역주의 채택, 23부제 실시로 선산군이 대구부에 속함. 인동군이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됨.</p></li><li><p><strong>1896년:</strong> 13도제 실시로 3등군인 경상북도 선산군이 됨.</p></li><li><p><strong>1908년:</strong> 선산공립보통학교(선산초등학교 전신) 설립.</p></li></ul><p><strong>일제강점기 (1910년 ~ 1945년):</strong></p><ul><li><p><strong>1912년:</strong> 인동공립보통학교 설립.</p></li><li><p><strong>1914년:</strong>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선산군과 인동군 일부가 병합되어 고아면, 선산면, 산동면 등으로 재편.</p></li><li><p><strong>1919년:</strong> 3·1 운동 이후 4월 3일 해평면, 4월 12일 선산면에서 만세 시위 운동 전개.</p></li><li><p><strong>1920년:</strong> 구미공립보통학교 개교.</p></li><li><p><strong>1931년:</strong> 낙봉서원 복원.</p></li><li><p><strong>1937년:</strong> 박정희 대통령 대구사범학교 졸업 (이때까지 생가에서 거주).</p></li></ul><p><strong>현대 (1945년 ~ 현재):</strong></p><ul><li><p><strong>1945년 10월 16일:</strong> 매암 김동석이 지역 첫 사립학교 오상 학원 개교.</p></li><li><p><strong>1946년 6월 11일:</strong> 김우동이 선산중학교 설립.</p></li><li><p><strong>1960년대 후반:</strong> 구미공단 조성 시작.</p></li><li><p><strong>1962년:</strong> 황상동 고분군 일부 발굴 조사.</p></li><li><p><strong>1963년:</strong>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p></li><li><p><strong>1964년:</strong> 박정희 대통령 생가 안채 개축.</p></li><li><p><strong>1967년:</strong> 구미농업고등학교가 공업고등학교로 전환.</p></li><li><p><strong>1968년:</strong> 구미 금오산 마애여래입상, 구미 해평리 석조여래좌상, 구미 낙산리 삼층석탑,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도리사석탑 보물 지정.</p></li><li><p><strong>1968년 3월:</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 시작.</p></li><li><p><strong>1969년 1월:</strong> 구미공업단지 설립추진대회 개최.</p></li><li><p><strong>1970년:</strong> 구미 농소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지정.</p></li><li><p><strong>1970년 3월:</strong> 경북도에서 일반단지 조성사업 추진.</p></li><li><p><strong>1971년 5월:</strong> 한국전자공업공단 설립.</p></li><li><p><strong>1971년 11월:</strong> 전자단지 1공구 조성사업 착공.</p></li><li><p><strong>1972년 11월 15일:</strong> 금오공업고등학교 설립 인가.</p></li><li><p><strong>1973년:</strong> 도산1,2리가 군위군 소보면에 편입 (산동면).</p></li><li><p><strong>1974년:</strong> 천생산성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 매학정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p></li><li><p><strong>1975년:</strong> 구미공업단지 수출 1억 달러 돌파.</p></li><li><p><strong>1976년:</strong> 일선교 준공.</p></li><li><p><strong>1977년:</strong>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구미지구출장소 설치. 구미농업고등학교가 국립 전자공업고등학교로 전환.</p></li><li><p><strong>1978년 2월 15일:</strong> 구미읍과 인동면을 합쳐 <strong>구미시 설치 및 승격</strong>. (선산군으로부터 독립)</p></li><li><p><strong>1978년 10월 5일:</strong> 구미시청 청사 신축 공사 시작.</p></li><li><p><strong>1979년:</strong> 선산면이 읍으로 승격. 구미 쌍암고택 중요민속자료 지정. 선산궁기동석불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p></li><li><p><strong>1979년 10월 6일:</strong> 구미시청 청사 신축 공사 완료.</p></li><li><p><strong>1979년 10월 27일:</strong> 구미시청 개청.</p></li><li><p><strong>1979년 11월 29일:</strong> 구미시청 준공식.</p></li><li><p><strong>1982년:</strong> 대둔사 대웅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p></li><li><p><strong>1983년:</strong> 해평동북애고택 경상북도 민속자료 지정. 지주중류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 선산약주 토속주 지정.</p></li><li><p><strong>1985년:</strong> 금오서원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 동락서원강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수남위종택, 호고와종택, 임하댁, 삼가정, 대야정, 동암정, 만령초당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구미척화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p></li><li><p><strong>1986년:</strong> 금오산성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 선산객사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지정.</p></li><li><p><strong>1987년:</strong> 해평면 낙산동 고분군에서 3세기~4세기 가야 고분 20기 발굴. 인동입석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p></li><li><p><strong>1988년:</strong> 구미 독동리 반송 천연기념물 지정. 선리가 신설되어 해평면 15개 리로 편성.</p></li><li><p><strong>1989년:</strong> 구미문화예술회관 건립. 낙봉서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칠곡군 가산면 신장리가 장천면에 편입.</p></li><li><p><strong>1990년:</strong> 선산 낙산동 고분군 사적 지정. 동아백화점 구미점 개점.</p></li><li><p><strong>1991년 8월 14일:</strong>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와 자매결연.</p></li><li><p><strong>1992년:</strong> 구미황상동마애여래입상 보물 지정.</p></li><li><p><strong>1993년:</strong> 박정희 대통령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지정.</p></li><li><p><strong>1994년:</strong> 시립민속관 개관 (원평동). 의구총, 의우총 경상북도 민속자료 지정.</p></li><li><p><strong>1995년 1월 1일:</strong> 구미시와 선산군이 통합되어 <strong>도농복합형 구미시 설치</strong>. (구미시선산출장소 설치). 구미 수다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p></li><li><p><strong>1996년:</strong> 무을 풍물, 제37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농악 부문 최우수상 수상.</p></li><li><p><strong>1997년:</strong> 선산문화의 집 건립. 고아면이 읍으로 승격. 중국 선양시와 자매결연.</p></li><li><p><strong>1998년:</strong>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세계적 지방자치 우수단체’ 금상 수상. 중국 창사시, 멕시코 메히칼리와 자매결연.</p></li><li><p><strong>1999년:</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전국 단일 공단 최초 수출 100억 달러 돌파. 선주원남동, 원평2동, 상모사곡동 통합. 구미 발갱이 들소리 지방 무형문화재 지정.</p></li><li><p><strong>2000년:</strong> G.플렉스(영화관) 개관 (현재 폐관).</p></li><li><p><strong>2001년:</strong> 롯데시네마 구미 개관 (원평동).</p></li><li><p><strong>2002년:</strong> 이마트 구미점 개장. 구미국가산업단지 4단지 착공.</p></li><li><p><strong>2003년:</strong> 금오민속박물관 개관. 구미국가산업단지 수출 200억 달러 돌파. 네덜란드 에인트호번과 자매결연.</p></li><li><p><strong>2004년:</strong> 신라불교초전지 마을 조성 (도개면). 구미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 방안 마련 시작.</p></li><li><p><strong>2005년:</strong> 구미국가산업단지 수출 300억 달러 돌파. 홈플러스와 롯데마트 개점 (광평동). 구미시 시내버스 노선 개편 시행. 봉곡 분관과 선산 제2분관 착공.</p></li><li><p><strong>2006년:</strong> 프리머스 구미 개관 (원평동). 롯데시네마 공단 개관 (공단동). CGV 구미 개관 (원평동). 남유진 구미시장 취임, '일천만그루 나무심기 운동' 시작.</p></li><li><p><strong>2007년 1월:</strong> 구미시청 담장 허물기 사업 설계 심의.</p></li><li><p><strong>2007년 6월 1일:</strong> KTX가 김천역과 구미역에 하루 상·하행 각 2회 정차 시작.</p></li><li><p><strong>2007년 6월 28일:</strong> 캐나다 토론토와 자매결연.</p></li><li><p><strong>2007년 11월 1일:</strong> 봉곡 분관과 선산 제2분관 정식 개관.</p></li><li><p><strong>2008년 1월:</strong> 구미역 경유 KTX 운행 편수 하루 상·하행 각 4회로 증편.</p></li><li><p><strong>2010년:</strong> 김천(구미)역 완공 및 개통, 구미역 경유 KTX 폐지.</p></li><li><p><strong>2011년 12월:</strong> 이마트 동구미점 개장.</p></li><li><p><strong>2012년 8월 13일:</strong> 중국 광안시와 자매결연.</p></li><li><p><strong>2013년:</strong> 도리사 극락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인동향교대성전, 선산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지정.</p></li><li><p><strong>2015년:</strong>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1천21만6천본 식재 달성.</p></li><li><p><strong>2015년 11월 4일:</strong>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달성 기념행사 개최 및 '제2 일천만그루나무심기운동' 선포.</p></li><li><p><strong>2018년 6월 13일:</strong>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장세용 후보 (더불어민주당) 구미시장 당선 (최초의 민주당 소속 시장).</p></li><li><p><strong>2020년 초:</strong> 코로나19 팬데믹 확산, 구미시 유통업계에 큰 영향.</p></li><li><p><strong>2020년:</strong> 산동면이 산동읍으로 승격.</p></li><li><p><strong>2022년 6월 1일:</strong>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김장호 후보 (국민의힘) 구미시장 당선.</p></li><li><p><strong>2022년:</strong> 한국 옵티칼 하이테크 화재로 공장 전소, 청산 절차 및 근로자 해고 발생.</p></li><li><p><strong>2025년 (예상):</strong> 구미4산단 외투기업 '먹튀' 논란 지속, 박정혜 수석부의장 고공농성 600일째 이어짐.</p></li></ul><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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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1 10:49: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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