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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8 수행주제 연계 작성 by 정연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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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학반 번호 이름) 제목, 내용을 타이핑합니다. 1학기 세특 연계될 내용을 작성합니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5-29 22:58: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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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8신우진(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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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저는 이순신 장군님에 대한 책 이순신을 선정하였다.</p><p>이순신은 임진왜란때 단 한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아서 모든전투에서 승리를 따냈다. 이순신장군님은 정말 위대하시고 모든 전투에서 갑진 승리를 따냈고 또 수많은 업적을 남겼으며 죽기전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일본군이 쏜 조총에 맞아 쓰러졌을때도 전투에서 지면안되니깐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마라 라는 엄청난 명언을 남겨서 정말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말에 걸 맞게 정말 위대하시고 대한민국의 수군의 본보기 우리는 충무공의 후예이다 라는 말에 아주 완벽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대단한거같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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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48: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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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2 이하율(반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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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내가 롤모델로 삼은 인물은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자 외교가인 최명길이다.</p><p>그는 병자호란이라는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신념과 책임을 다한 인물이었다.</p><p>많은 사람들은 전쟁에서 용감히 싸운 사람들을 영웅으로 기억하지만,</p><p>나는 현실을 직시하고 백성을 먼저 생각했던 최명길의 용기 있는 선택이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p><p>최명길이 활동하던 시기는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 무렵이었다.</p><p>그때 조선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을 받아들이고 청나라와 화친을 맺어야 한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었다.</p><p>이 가운데 최명길은 청과의 화친을 주장하며 조선을 지키는 현실적인 길을 택했다.</p><p>그의 주장은 많은 반발에 부딪혔고, 사람들은 그를 비겁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p><p>하지만 그는 백성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길이라면 자존심보다 생명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다.</p><p>그는 청나라에 직접 사신으로 다녀오며 수차례 협상을 시도했고,</p><p>그 결과 조선은 완전한 멸망을 피하고 체면은 잃었지만 생명은 지킬 수 있었다.</p><p>당시 조선에는 최명길과 정반대 입장을 가진 김상헌이라는 인물도 있었다.</p><p>김상헌은 끝까지 청과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고, 명분과 의리를 중요시했다.</p><p>많은 사람들은 그를 정의로운 충신으로 칭송하지만,</p><p>나는 오히려 최명길의 선택이 조선을 더 실질적으로 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p><p>비판을 감수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끝까지 실천한 최명길의 행동은</p><p>진정한 책임감과 용기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다.</p><p>나는 평소에 어떤 일이 닥쳤을 때 쉽게 주변의 시선이나 감정에 흔들릴 때가 많다.</p><p>하지만 최명길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도 소신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p><p>비록 주변의 평가가 나쁘더라도, 내가 옳다고 믿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끝까지 해내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p><p>최명길은 당대에는 욕을 먹었지만, 훗날에는 그의 선택이 옳았다는 평가를 받는다.</p><p>이처럼 진짜 가치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나는 법이고, 그 가치를 믿고 지켜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p><p>또한 나는 최명길처럼 큰 결정을 내릴 때 나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p><p>그는 자신의 명예보다 조선 백성의 생명을 중요하게 여겼고,</p><p>그 덕분에 조선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p><p>나 역시 언젠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될지 모른다.</p><p>그럴 때 이기적인 판단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p><p>이 글을 쓰며 최명길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게 되었고,</p><p>그의 삶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큰 교훈을 주었다.</p><p>앞으로도 역사 속 인물들을 더 많이 알고, 그들의 삶을 통해</p><p>나만의 가치관과 신념을 세워가고 싶다.</p><p>그래서 나는 최명길을 나의 롤모델로 삼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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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49: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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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23 이재서(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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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저는 이순신장군님을 주제로 선정하였습니다 선정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영웅중 한명이자 이순신이 이룬 업적 해낸 우리나라를 위해 희생한 그 희생정신이 닮고싶고 위기에 쳐햇을때도 포기하지않는 책임감과 리더쉽이 보고 배울점 같아서 그리고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싸워 좋은 결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드는것같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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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1: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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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7최민기(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46308</link>
         <description><![CDATA[<p>오늘 제가 알아보고자한 전근대사 인물인 롤모델은 조선의 4대 왕인 세종대왕입니다. 제가 이 인물을 롤모델로 선택한 이유는 세종대왕이 한국 역사중에서도 손에꼽는 성군인 이유도 있지만 주된 이유는 세종대왕이 항상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백성들의 곁에서 살아가려 했던 그런 세종대왕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저는 그런 마음가짐을 본받기위해 세종대왕을 롤모델로 결정했습니다. 어렸을때의 세종은책읽기를 매우 좋아하는 책벌래였습니다. 이에대한 여러 일화도 있을 정도이죠. 이러한 세종대왕의 어린시절 덕분인지 그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경연,서연등 신하들과 자신의 지식을 갉고닦았고 집현전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세종은 유학뿐만 아니라 실학에도 관심을 두어 전국의 유명한 공학자들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백성들이 글을 읽을수 있게 훈민정음을 만들어 반포하기도 했죠. 이러한 세종대왕은 다른 왕들이 신경쓰지 못한 세세한 민생을 신경쓰던 참된 왕이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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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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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학년 8반 19번 함정현(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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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제가 이번에 역사 수행평가에서 쓴 것은 무령왕을 존경하는 점과 무령왕의 업적입니다.이번 수행평가를 위해서 조사하면서 깨달은 것은 왕들은 생각보다 큰일들을 이루신 분들이라는겁니다. 비록 혼자의 힘이 아니지만 자기만의 업적처럼 표현될 것일 수도 있지만 왕이 이런 사항을 반려하지 않고 허하여 실행시킨 것들만으로 충분히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왕의 자리에 취해서 제대로 된 왕이 아니게 되거나 업무와 지위의 무게에 도망을 칠수도 있을 것입니다.이외에도 학문의 발전을 이루거나,나라의 안정,재정 확보는 어려운 사항이며,전쟁은 중대한 사항으로 받아치는 판단만으로도 굉장히 많은양의 업무가 필요할 것이라 추측하기에 왕들은 존경스러운 분들이 맞는거 같습니다.이외에도 지금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고 저도 기여하고 싶다고 느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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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4: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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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근형 10824(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50640</link>
         <description><![CDATA[<p><br></p><p><strong>안중근 의사 조사 보고서: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통해 만난 시대와 그 뜻</strong></p><p>안중근 의사께서 살아가셨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정말이지 대한제국이 일본의 무자비한 침략 야욕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던, <strong>너무나도 가슴 아픈 격동의 시대</strong>였습니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나신 안중근 의사는 어린 시절부터 나라 잃을 위기에 처한 민족의 고통과 외세에 맞서 싸우려는 저항 의식을 자연스럽게 보고 들으며 자라셨죠.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그리고 이듬해 아관파천 같은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 행위들은 대한제국의 국권을 뿌리째 흔드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특히 1905년 <strong>을사늑약</strong>이 강제로 체결되면서 외교권마저 빼앗기고 통감부가 설치되자, 우리 민족의 분노와 저항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 운동의 횃불이 타오르고, 애국계몽운동이 확산되는 등 다양한 형태로 나라를 되찾기 위한 간절한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이러한 시대의 아픔 속에서 <strong>선각자적인 혜안으로 국난의 본질을 꿰뚫어 보셨고, 망국으로 치닫는 나라를 구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하셨습니다.</strong> 처음에는 삼흥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쓰고, 석탄 사업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려 했던 그의 모습에서, 당시 지식인들이 가졌던 다양한 구국 노력의 단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이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지면서, 평화적인 방법만으로는 나라를 되찾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셨죠. 특히 1907년 고종 황제의 강제 퇴위와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은 안중근 의사에게 크나큰 충격과 결단을 안겨주었고, 그는 이제 직접 무기를 들고 일본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으셨습니다. 이 무렵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하여 <strong>의병 부대에 합류, 일본군과 직접 전투를 벌이며 실질적인 항일 투쟁의 선봉에 서셨죠.</strong>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거사 결심과 행동에 결정적인 불씨가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한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strong>풍전등화 같았던 나라를 지키려 했던 민족의 절박한 염원과 불굴의 저항 정신을 온몸으로 보여준 것</strong>이나 다름없습니다.</p><p>안중근 의사님의 가장 널리 알려진 업적은 역시 <strong>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대한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strong>하신 것입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하고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려 획책한 인물로, 우리 민족에게는 침략의 상징 그 자체였습니다. 안중근 의사께서는 이토의 침략 행위 15가지를 조목조목 짚어가며 그의 죄를 만천하에 밝히고, 민족의 이름으로 그를 심판하셨습니다. 이 거사는 당시 침체되어 있던 우리 국민들에게 <strong>강력한 자주 독립의 의지를 다시금 불어넣어 주었으며, 국제 사회에 대한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strong>가 되었습니다. 단 한 발의 총성으로 안중근 의사께서는 대한제국이 결코 죽지 않았음을 온 세상에 당당히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strong>이토 처단은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망국의 위기에 처한 대한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침략의 부당함을 규탄하는, 역사적인 상징 행위였습니다.</strong></p><p>거사 이후 안중근 의사께서는 러시아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일본 관할권으로 넘겨지셨고, 뤼순 감옥에 갇혀 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재판 과정에서 그는 자신의 행위가 <strong>개인적인 원한이 아니라, 동양 평화를 수호하고 대한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의로운 행동이었음</strong>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의 당당하고 논리적인 진술은 일본에 의해 왜곡된 재판의 부당함을 낱낱이 폭로했고, 일본의 침략 야욕을 국제 사회에 고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비록 일본은 안중근 의사께 사형을 선고하고 1910년 3월 26일 그를 순국시켰지만, 그의 의거는 <strong>국내외 항일 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독립운동가들에게 깊은 영감</strong>을 주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님의 업적은 단순한 이토 처단을 넘어, 대한 독립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하고 동양 평화를 간절히 염원한 선구자적인 면모를 보여준 것이죠.</p><p><strong>‘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통해 만난 안중근의 정신</strong></p><p><strong>『안중근 재판정 참관기』(최봉룡 역)</strong>는 안중근 의사님의 뤼순 재판 과정을 직접 지켜본 일본 언론인들이 기록한 내용을 엮은 책이에요. 이 책을 읽다 보면 당시 재판 현장의 긴박함과 안중근 의사님의 꼿꼿한 면모를 정말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안중근 의사께서 <strong>재판정에서 보여주신 당당함과 흔들림 없는 신념을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strong>가 되어줍니다.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안중근 의사님의 사상과 거사 배경, 그리고 치열했던 재판 과정과 동양평화론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p><p>이 책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깊이 감동받았던 점은, 안중근 의사께서 재판정에서 자신을 변호하기보다 <strong>일본의 침략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고, 동양 평화를 위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하는 데 모든 힘을 쏟으셨다는 것</strong>입니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의 죄상을 조목조목 밝히면서, 자신의 거사가 정당한 행위였음을 법정에서 역설했습니다. 예를 들어, 책에는 안중근 의사께서 이토를 <strong>"동양 평화를 어지럽히고 한국의 독립을 침해한 가장 큰 원흉"</strong>으로 지목하며, <strong>"내가 죽는 것은 대한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한 길"</strong>이라고 굳건히 말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어요. 손글씨 내용에도 언급된 것처럼, 그는 <strong>"이토를 죽인 것은 개인적 복수가 아니며, 한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한 것"</strong>임을 재판정에서 일관되게 주장하셨습니다. 또한, <strong>"나는 이토의 생명을 빼앗았을 뿐, 그 이상의 악의는 없었다. 이는 동양의 평화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strong>라고 밝히며, 그의 행위가 단순한 개인적 원한이 아니라 대의를 위한 것임을 명확히 합니다. 이러한 진술들은 그가 단순한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strong>확고한 사상과 철학을 가진 독립운동가였음</strong>을 너무나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strong>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관철하려 했던 그의 굳건함</strong>이 책 곳곳에서 생생하게 느껴집니다.</p><p>특히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는 안중근 의사님의 <strong>‘동양 평화론’</strong>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는 일본, 한국, 중국이 서로 손을 맞잡고 협력하여 동양의 평화를 지키고 서구 열강의 침략에 함께 맞서야 한다는 놀라운 비전을 제시했어요. <strong>"동양 삼국이 합심하여 서양의 침략을 막고 평화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파멸할 것"</strong>이라는 그의 주장은 당시로서는 매우 선구적인 사상이었음을 책을 통해 느낄 수 있습니다. 단순히 일본을 적대하는 것을 넘어, 미래 지향적인 연대와 협력을 꿈꾸셨던 그의 사상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재판정에서 안중근 의사께서는 쉼 없이 자신의 동양 평화 사상을 설파하며, 자신이 결코 범죄자가 아님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처벌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자리를 자신의 뜻을 펼칠 마지막 기회로 삼았던 것이죠. 이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으로, 그의 재판이 단순한 법정 공방이 아닌 <strong>사상과 신념의 뜨거운 대결</strong>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입니다.</p><p>이 책은 또한 안중근 의사께서 사형 선고를 받고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간절히 염원하셨던 그의 <strong>강인한 정신력과 불타는 애국심</strong>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옥중에서도 『동양평화론』을 집필하려 했던 그의 열정은 그가 얼마나 깊이 있는 사상가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그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 그리고 <strong>"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strong>라는 그의 유언들이 책 속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될 때마다, 독자는 안중근 의사께서 왜 오늘날까지도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받는지 그 이유를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통해 안중근 의사님의 삶과 사상을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그의 업적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훨씬 더 풍부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책에서 접한 안중근 의사님의 인간적인 고뇌와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신념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p><p><strong>결론: 시대를 초월하여 빛나는 영웅, 안중근</strong></p><p>안중근 의사께서는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의사를 넘어, <strong>국권을 잃을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려 했던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이자 깊은 평화 사상을 지닌 위대한 사상가</strong>였습니다. 그는 암울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민족의 독립 의지를 활활 타오르게 했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 그 뜻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안중근 재판정 참관기』를 통해 그의 재판 과정과 그가 보여주신 불굴의 정신, 그리고 동양 평화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p><p>안중근 의사님의 업적은 단순히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뜨거운 애국심과 숭고한 희생정신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strong>자주 독립의 중요성과 평화의 소중함</strong>을 끊임없이 일깨워주며, 진정한 용기와 신념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귀감이 됩니다. 그의 삶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어,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정신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영웅으로 기억될 것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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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5: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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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5주인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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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광해군은 조선 제15대 왕으로, 혼란한 시대에 실리 외교와 내정 개혁을 통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한 인물이다. 그의 즉위는 임진왜란 이후 국토가 황폐해지고 민심이 극도로 흔들린 상황에서 이루어졌으며, 나라 안팎으로 위기 상황이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복잡하고 불안정한 시기에 그는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을 통해 국가의 생존과 회복을 시도했다. 이는 경영학에서 강조하는 위기관리, 자원 배분, 조직 운영의 통찰과 맞닿아 있다.</p><p>광해군은 외교에서 실리를 중시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끼어 있었고, 그는 명분보다는 현실을 고려한 중립 외교 정책을 펼쳤다. 명과 후금 어느 쪽에도 완전히 의존하지 않으면서 조선의 안전을 꾀했던 그의 전략은, 자원이 제한된 상황에서의 합리적인 선택으로 현대 경영에서 말하는 리스크 분산 전략과 유사하다. 특히 후금과의 외교를 통해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고 백성의 피해를 최소화한 점은 위기 상황에서 조직을 보호하는 경영자의 역할과 연결된다.</p><p>내정에서는 대동법 확대 시행이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힌다. 대동법은 기존의 불합리한 공납 제도를 개혁해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고 조세 체계를 합리화한 제도로, 지역 간 세금의 형평성을 높였다. 이는 오늘날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비용 효율성과 시스템 개혁의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는 또한 은과 동전의 유통을 확대하고, 광산 개발을 장려하여 재정 기반을 다졌다. 물자와 자원을 활용해 국가 경제를 회복시키려 했던 노력은 자본의 효율적 운용이라는 현대 경영의 핵심과 닿아 있다.</p><p>문화와 의료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업적이 있다. 그는 허준의 『동의보감』 편찬을 적극 후원하여 백성의 건강 증진에 기여했고, 전쟁으로 파괴된 궁궐과 도로, 성곽 등을 정비하며 사회 기반시설 재건에도 힘썼다. 이는 공공 복지나 인프라 구축을 중시하는 현대 경영의 사회적 책임 개념과도 연결된다.</p><p>이러한 광해군의 업적과 리더십은 이덕일의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에서 잘 드러난다. 이 책은 광해군을 단순한 패배자가 아닌, 복잡한 현실 속에서 실용적인 판단을 내리려 했던 인물로 그린다. 저자는 그의 외교, 내정, 개혁적 시도를 통해 오늘날 경영자가 직면하는 이해관계 조정, 전략적 선택, 그리고 도덕적 고민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한편, 광해군이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폐위된 사실은 조직 내 신뢰와 공감이 부족할 경우, 아무리 탁월한 전략이라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p><p>결론적으로 『광해군, 그 위험한 거울』은 광해군의 정책과 삶을 통해 오늘날의 경영자가 고민해야 할 리더십의 본질과 전략적 판단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나의 진로인 경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이 책은 과거의 지도자가 오늘날의 경영자에게 보내는 생생한 메시지이자, 시대를 뛰어넘는 교훈이 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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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5: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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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8-11-이서준(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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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내가 선택한 인물은 최충헌이다. 최충헌은 프랑스 근세 시대에 살던 인물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속도 조절 장치'라는 발명품을 만든 사람이다. 그는 원래 경영을 하던 사람이었지만,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이어갔고 결국 훌륭한 발명가가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늦지 않도록 돕기 위해 이 발명품을 고안했다고 한다.

이 기계는 사람들이 아침에 늦지 않도록 도와주는 유용한 장치로, 특히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이 인물의 발명품에 감명받은 이유는, 사람들이 이 기계를 통해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을 지키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최충헌은 국민을 위한 도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목표를 향한 집념이 있었다. 처음부터 대단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일을 실행에 옮겼고, 그것이 곧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당시에 많은 이들이 영웅을 찾고 있을 때, 최충헌은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발명이라는 도전적인 길을 선택했고, 결국 커다란 성과를 이루었다. 그의 도전과 성취는 단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프랑스 사회에는 여러 유익한 발명품들이 생겨났고,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그는 자기가 세운 목표를 60년 동안 변함없이 지켜나갔고, 이는 놀라운 정신력의 결과였다. 세월이 흐르면서도 그는 점점 더 강해졌고, 그 정신력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졌다. 그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큰 교훈을 준다. 단순한 욕심이 아닌, 사회를 위한 마음으로 행동했던 그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된다.

나는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따를 것이다. 최충헌처럼 나도 꾸준한 목표 의식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책을 통해 읽은 최충헌의 이야기는 단순한 발명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의 선택과 도전정신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이며, 나는 그를 통해 진정한 용기와 책임감을 배울 수 있었다.]]></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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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5: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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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학년 8반 5번 박지석(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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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나의 진로는 컴퓨터공학 관련 길을 가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왜 이직업을 가지려 하는지 물어보면 할 말이 없던 도중 나는 안중근 의사의 삶과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정의감, 책임감, 치밀한 계획력은 컴퓨터공학의 길을 걸으려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안중근 의사의 행동과 철학을 통해 컴퓨터공학 진로에 필요한 윤리의식, 사회에서 가져야 할 가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p><p> 먼저, 안중근 의사는 개인의 안위보다 조국과 민족의 미래를 우선시하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였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한 후, 그의 재판 과정에서 남긴 "동양 평화를 위한 결단이었다"는 발언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태도를 분명히 보여준다.<br> 이러한 모습은 컴퓨터공학에서 요구되는 정보 윤리의식과도 닮아 있다. 개발자는 기술로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항상 공공성과 책임감을 갖고 기술을 다뤄야 한다. 가장 대표적 예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사회적 편향을 재생산하지 않도록 고민하고 설계하는 윤리적 태도가 필요하다.</p><p> 또한, 안중근 의사는 단순한 저항운동가가 아닌 동양 전체의 평화를 꿈꾸는 사상가였다. 특히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동양평화론’이라는 저술을 완성하려 했던 그의 태도는 목표를 향한 집념과 지속적으로 지식을 추구하려는 끈기를 보여준다.<br> 나는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목표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는 컴퓨터공학의 길을 걸으며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도 해결할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더 나은 알고리즘을 찾기 위한 끈기,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런 태도는 사이버보안, 공공 데이터 보호, 접근성 높은 플랫폼 개발 등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개발자로서의 나의 진로의식과도 연결된다.</p><p> 안중근 의사의 철학과 행동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강한 메시지를 준다. 특히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동양의 평화를 위한 글을 집필하고자 했으며, 그 집념과 끈기는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br> 안중근 의사의 삶은 나에게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윤리적 가치관과 사회적 책임을 갖춘 기술인이 되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앞으로 안중근 의사에게서 배운 도덕적 태도와 사회 기여 의식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이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개발자가 되고싶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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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6: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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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8 최현곤(반영)</title>
         <author>cgs25224</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54482</link>
         <description><![CDATA[<p>인조는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즉위 후 폭정으로 인한 민심을 수습하고, 서인 세력의 주도로 인조 반정을 일으킨 만큼, 폐비 시키고 왕이 되었던 그의 정통성에 대한 정치적·개념적 위협에 민감했다. 따라서 광해군의 정책들을 부정하고, 새롭게 정통성을 강화하려는 정치적 노력이 뒤따랐다.</p><p>명분 정치를 강화한 인조는 대외적으로는 명나라와의 사대관계를 강화하려 했으며, 1600년대부터 인조 시기의 1623년까지 조선의 병력은 7만6천여 명에서 약 10만 명으로 약 31.5% 이상 증가하였다. 이러한 군사력 증강은 주로 북방에 집중되었는데, 이는 정묘·병자호란과 맞물려서 인조가 병력을 중점 배치한 것이기도 했다.</p><p>이처럼 인조는 병력을 늘리며 민심을 수습하고, 사대 질서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펼쳤다.</p><p>인조 반정 직후에는 세력들의 사병을 청규한 후 중앙군으로 정통화했고, 1624년에는 어영청을 설치해 후방을 방어하려 했다.</p><p>1624년에는 이괄의 난을 겪으면서 기존의 군사 체계를 새롭게 정비하였다.</p><p>기존의 훈련도감 외에 새롭고 강력한 군사력을 양성하려고 했다. 또한 병조의 거정으로 내응사 등을 설치하고, 강화도의 군사력을 정비했으며, 1627년 어영청을 기반으로 한 산성의 수비 체계를 강화시키기 위해 수어청을 설치하고 어영청과 함께 도성의 외곽을 담당시키는 등 조선의 5군영 체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등 조선의 국방력과 군사력은 정비되었다.실제로 거듭된 여진의 침입으로써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던 그 다음 여진은 청으로 국호를 선포하고 시시각각 명나라를 위협하는 국가로 성장하였다. 이에 조선은 백성을 보호하고, 새로운 질서를 확립해, 성리학적 명분을 지키려 하며 조선의 경제·사회 체제를 재정비하려 했다.</p><p>그러나 인조는 세력들의 개입으로 명분과 체면을 중시해야 했기에 군사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며, 그러기에 그의 명분 중심의 정치는 오히려 정묘·병자호란을 불러일으킨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p><p>물론, 조선은 병자호란의 패배 이후, 삼전도의 치욕을 겪으며 조선 전체에 굴욕적인 패배감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인조는 조선의 정통을 위해 끝까지 명에 노력을 다한 인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p><p>결국, 외세의 침입에도 쉽게 국복되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려던 모습은 후세에 긍정적 스토리로 남았으며, 그는 조선 왕조의 다음을 남긴 성리적 군주였다고 나는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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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7: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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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3김동균</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55842</link>
         <description><![CDATA[<p>저는 태조 이성계로 선정한 이유가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인물이기 때문이다.태조 이성계는 1335년에 태어나 고려 말기의 혼란 속에서 무장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무예 실력과 지도력을 보여, 왜구와 홍건적 등 외침에 맞서 여러 차례 전투에서 활약하였다. 당시 고려는 내부 분열과 외부 침입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이성계는 이런 혼란을 틈타 신흥 무인 세력으로 성장하며 점차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워나갔다.</p><p>1392년, 이성계는 결국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조선 왕조를 세웠다. 그는 조선의 초대 왕으로 즉위하며 ‘태조’라는 존호를 받았다. 태조 이성계는 수도를 한양으로 정하고, 유교를 국시로 삼아 정치와 사회 제도를 정비하는 데 힘썼다. 특히 정도전 등 유능한 신하들과 함께 중앙집권적 통치 체제를 구축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p><p>태조 이성계는 권문세족과의 갈등을 해결하며 새 왕조의 안정적인 통치를 가능하게 했고, 1408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선 왕조의 초석을 놓은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으며, 그의 후손들은 약 500년간 조선을 다스렸다. 이처럼 태조 이성계는 우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이렇게 나라를 위해 헌신하던 분이 멋져서 태조 이성계의 책과 주제로 선정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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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8: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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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807 서주현 (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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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정약용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다. 그는 불합리한 사회 구조와 정치적인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정조의 탕평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노력을 하였고, 세도 정치 시기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조선을 좋은 나라로 만들고자 힘썼다. 그는 공부만 하는 일반적인 학자가 아닌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 실현시키고자 했던 실천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철학은 그가 썼던 수많음 저서를 통해 알 수 있다. 내가 읽은 책에 따르면 그의 대표적인 저서 목민심서에서는 지방 관리가 백성을 어떻게 잘 다스려야 하는 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고, 백성을 중심으로 한 행정, 즉 민본주의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의 백성에 대한 애정을 알 수 있다. 이 저서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행정의 기본 정신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또다른 저서인 흠흠신서에서는 형벌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역울한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법을 시행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오늘날의 정책들에도 반영되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저서에 담긴 내용을 보고 난 후 법을 시행하거나 만들 때 차별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의 업적은 저술 활동으로만 긔지 않는다. 그는 수원 화성 건설에 참여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여 건축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처럼 정양용은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나는 정약용을 나의 롤모델로 삼고 있다. 그에 대해 깊이 알아보면서 그가 학문만을 연구한 사람이 아니라 과학, 기술, 행정, 법 등에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을 가지고 활동한 실천적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는 조선사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바로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점과 민본주의적 개혁을 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존경심을 느꼈다. 이런한 그의 삶에서 그가 백성을 많이 아꼈따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18년동안의 긴 유배 기간에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학문을 이어나가면서 많은 책을 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안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나도 앞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 이러한 그의 정신은 오늘날에도 가져야할 정신이고 미래에도 이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정약용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을 하면서 살 것이다.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며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여 사람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러한 이유로 정약용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존경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강의나 책을 많이 만들어서 사람들이 정약용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많은 분야에서 지금보다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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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2:59: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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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8반 13번 임정헌(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59644</link>
         <description><![CDATA[<p>이번 수행평가를 하면서 선정한 롤모델은 이순신입니다.</p><p>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때, 조선 수군의 장군으로 군을 지휘하였으며,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도 여러가지 지략을 세워서 일본군을 물리쳤습니다. 이순신은 불리한 상황을 지형과 기후로 뒤집었는데, 남해의 지리와 바람이 바뀌는 때를 잘 알고있었던 이순신은 일본군을 유인하고 유리한 위치로 몰아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도 수차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으며, 일본군의 물자 보급로를 끊어서 일본육군이 수도에서 고립되게 하는등 업적을 세웠습니다. 제가 이순신을 롤모델로 선정한 이유는 그의 멋진 모습때문이였습니다. 이순신은 불리한 상황속에서도 용감하고 " 살고자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하면 살 것이다" 라는 명언을 남기는 등 두려운게 없는 것같은 모습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저는 원래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근데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조사하며 그의 성격을 본받고 싶어졌습니다. 저도 그를 본따서 성격을 고치고 가치관과 신념을 세워서 살 것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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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0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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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802 김도훈(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65205</link>
         <description><![CDATA[<p>저는 전봉준을 롤모델로 선정하였습니다. 전봉준을 선정하게 된 동기는 리더십과 백성을 위해 싸운 지도라는 모습이 인상깊었기에 선정하게되었습니다.</p><p>전봉준이라는 인물은 조선 말기의 농민 운동가로, 동학농민운동(1894년)을 이끈 지도자입니다. 그는 '녹두장군'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전라도 고부 출신입니다. 당시 탐관오리의 횡포와 외세의 침입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봉기를 결심하게 됩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으로는 19세기 조선은 내부적으로 부패한 관료 체제, 외적으로는 일본과 청나라의 간섭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착취, 불공평한 제도 아래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학이라는 민중 종교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전봉준은 그 사상을 바탕으로 운동을 일으키게 됩니다 1894년, 고부군수 조병갑의 부정과 횡포에 맞서 전봉준은 농민들과 함께 봉기했습니다. 이 운동은 단순한 민란이 아닌 개혁을 요구하는 조직적인 항쟁으로 발전했습니다. 전봉준은 농민군을 이끌고 전주성을 점령했으며, 이후 정부와 전주화약을 맺고 '집강소'라는 민중 자치 기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p><p>그러나 일본과 청나라의 개입, 그리고 관군과의 충돌로 인해 결국 농민군은 패배했고, 전봉준은 체포되어 1895년 처형당했습니다 책에서 이러한 전봉준의 인생과 재판을 논리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나타냅니다. 이러한 부분에서 저도 전봉준에게 리더십을 본받고 싶다고 느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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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02: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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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804 김형찬(반영)</title>
         <author>cgs25070</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69279</link>
         <description><![CDATA[<p> 안녕하세요 저는 청구고등학교에 재학중인 김형찬이라고 합니다. 제가 선정한 롤모델은 태조 이성계입니다. 롤모델을 태조로 선정한 이유는 바로 이성계의 리더십과 선구안 때문입니다. 저는 리더십과 선구안이 부족하다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닮고 싶은 사람을 태조로 정하였습니다.</p><p> 저의 롤모델인 태조는 여러 업적들을 세웠습니다, 그중에 좋지 않은 사건들도 여럿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좋은 모습만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조는 고려말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후 고려를 유지하고 개편하자는 온건파와 고려를 치우고 조선을 세우자는 급진파로 나뉘었습니다. 급진파 세력인 태조는 정도전, 신진 사대부들이 힘을 얻어 조선을 개국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온건파 정몽주는 눈엣가시가 되었고 왕자의난을 일으킨 태종 이방원이 온건파인 정몽주를 살해하게 됩니다. 태조는 고려를 없애고 조선을 개국한데에 큰공이 있는 태종 이방원을 후계자로 내세우지 않고 태조 이성계의 막내아들인 방석을 후계자로 내세워 왕자의 난이 일어났다고 볼수 있습니다. 그러해서 태종이 태조에게 검을 겨누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태조는 나라운영은 잘했지만 가족에게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였고 후계자 선정또한 실수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롤모델로 선정한만큼 태조는 여러 업적들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태조는 고려를 조선으로 개국한후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 것을 걱정하였습니다 위화도 회군을한 역적이라는 비하를 피하기 위해 통지의 정당성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기에 성리학을 통치의 기반으로 삼아서 통치의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후 나라의 국고가 부족하고 혼란하자 통치체제를 개편하기위해 수도를 한양으로 옮겨서 왕권을 강화할려고 노력하였고 또한 국고와 재정 그리고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서 과전법을 실시해서 국고와 재정 그리고 백성들의 삶을 안정시켰습니다. 여러 실수또한 있었지만 업적만 본다면  좋은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읽은 책에서 여러 내용들을 알게되었습니다. 태조와 태종의 업적과 태조와 태종의 관계 그리고 태종이 왜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에게 칼을 겨누었는지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p><p> 태조 이성계는 여러업적들과 조선을 개국한 리더십 정도전과 함계 여러 통치체제를 개편하고 과전법을 실시한 선구안까지 이러한 업적들에 의해서 제가 롤모델로 선정한 좋은 왕이라고 생각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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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05: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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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9 신희성(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473372900</link>
         <description><![CDATA[<p>제가 롤모델로 삼은 인물은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입니다.</p><p>홍범도 장군은 일제강점기 당시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끈 인물로, 특히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에서 큰 승리를 거두신 분입니다. 그때는 나라가 힘을 잃고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을 때였지만, 홍범도 장군은 목숨을 걸고 싸우며 희망의 불씨를 지켰습니다.</p><p>제가 이분을 롤모델로 삼은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와 나라를 위한 희생정신 때문입니다. 홍범도 장군은 원래 평범한 삶을 살던 분이었지만,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직접 행동에 나서셨고, 끝까지 독립을 위해 싸우셨습니다.</p><p>저도 홍범도 장군처럼,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용기 있게 행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려고 합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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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07: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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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6 방지훈(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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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선의 제22대 왕, 정조대왕은 백성을 향한 깊은 사랑과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리더십으로 수많은 업적을 남기셨습니다. 저는 정조대왕의 다음과 같은 면모를 본받아 미래를 설계하고 싶습니다.</p><p>정조대왕은 극심한 붕당 정치 속에서도 탕평책을 통해 당파를 가리지 않고 능력 있는 인재를 과감히 등용하셨습니다. 이는 분열된 국가 역량을 하나로 모으고, 오직 실력과 재능을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줍니다. 특히, 왕실 도서관이자 학문 연구 및 정책 자문 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여 학문 발전을 도모하고, 초계문신제를 통해 젊고 유능한 문신들을 재교육하여 미래 시대의 주역으로 성장시키는 데 힘쓰셨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단순한 학문 연구를 넘어, 개혁을 위한 인적 기반을 탄탄히 다지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정조대왕의 깊은 통찰력을 보여줍니다.</p><p>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건설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옮기는 동시에, 화성을 단순한 왕릉 도시가 아닌 상업과 국방의 요충지이자 새로운 이상 도시로 육성하셨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고 경제적 부흥을 꾀하는 동시에, 강력한 왕도 정치의 상징을 세우려는 정조대왕의 원대한 비전을 보여줍니다. 또한, 국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창설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개혁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기반을 마련하셨습니다. 백성을 위한 개혁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는 정조대왕의 굳건한 실행력이 돋보이는 부분입니다.</p><p>정조대왕은 백성들의 고통을 직접 듣기 위해 격쟁이나 상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억울함을 해소해주셨습니다. 이는 형식적인 소통을 넘어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진정한 노력이었습니다. 또한, 서얼이나 노비 등 신분과 관계없이 능력 위주로 인재를 등용하려 노력하신 점은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정조대왕의 깊은 뜻과 백성에 대한 진정한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p><p>이러한 정조대왕의 업적을 깊이 탐구하면서, 저는 강력한 실행력과 백성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고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려는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며 개혁을 추진했던 모습은 제가 앞으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좌절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끈기 있게 나아가며, 주변 사람들과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큰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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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12: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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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20 황지우(반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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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는 보고서 주제로 이순신을 선정했다. 왜냐하면 이순신은 불굴의 의지, 애국심, 탁월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그중에서도 탁월한 리더십이 가장 뛰어난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을 이끌어 일본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순신이 위기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과 강한 도덕적 신념은 현대 사회에서도 좋은 덕목이 될 거라고 생각하여 현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서 더더욱 이순신을 보고서에 담고 싶었다.</p><p>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이순신에 대해서 설명하기 전에 이순신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자. 책에서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느꼈을 감정들과 사건들만 자세히 나와 있어서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려고 우리역사넷 같은 역사 사이트에서 이순신의 시대적 배경이 어떤지 자료를 찾아봤다.</p><p>이순신이 활약한 조선 중기에는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당파 싸움이 심해지고 국력이 쇠약해졌다. 명나라는 우호 관계를 유지했지만,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 후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목표로 조선을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이 시작돼 버렸다.</p><p>지금부터는 임진왜란 당시에 이순신이 참여한 전투, 즉 업적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업적에 대한 내용들은 책에서 중요한 사건이 뭔지 구분해서 그 업적들을 위주로 설명하고, 책과 비슷하게 시간 흐름 순서를 잘 고려해서 이해를 도울 것이다.</p><p>본격적으로 시작해 보자. 1592년 임진왜란 터지고 처음으로 일어난 바다 싸움인 당포 해전이 있다. 결과는 일본군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였고, 같은 해에 있었던 한산도 대첩에서는 이순신의 학익진을 활용해서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찔렀다. 다음 전투는 1597년에 일어난 명량 해전이다. 조선 수군이 거의 전멸한 상태에서 배 13척으로 일본 수군 배 133척을 무너뜨린 엄청난 전투였다. 마지막으로 노량 해전이 있는데, 일본군을 상대로 크게 이겼지만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돌아가셨다.</p><p>여기까지가 이순신이 이룬 업적들이라고 볼 수 있으며 나는 보고서를 쓰기 전에도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보고서를 쓰면서 다시 한번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느끼게 된 것 같다. 왜냐하면 이순신은 조선 수군을 이끌고 일본군이 바다로 들어오는 걸 막았기도 하고 여러 전투에서 이순신은 불굴의 의지와 전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불굴의 의지와 전술적 능력은 조선 말고도 동아시아 전체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고, 그래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p><p>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이순신의 업적은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고 백성들을 구하려 했던 훌륭한 지도자의 모습 역시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순신 말고도 다른 위대한 역사적 인물들이 많이 있으니까, 내 보고서를 보고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서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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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14: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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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0 안준현(반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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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지금 우리는 AI의 발달을 비롯한 기술의 혁신으로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이러한 시대에서 살기 위한 신기술의 수용과 혁신과 같은 해법을 역사속에서 찾아보았다. 그래서 역사속에서 지금과 같이 세계가 급변하였던 시기는 조선 후기에 있었던 개화기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개화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인물임과 동시에 과감한 개혁을 단행해 조선의 부국강병을 추진한 김옥균에 대해 알아봤다. 당시 일찍이 산업혁명을 이뤄 우수한 과학 기술을 갖춘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조선을 포함한 아시아에 진출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개항해서 이들과 교류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라는 근대화 정책을 진행해 개항을 가장 먼저 함과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화를 이룩했고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국이 되었다. 당시 청에 많이 갔다온 스승 박규수의 영향으로 김옥균은 개화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김옥균은 개화의 중요성을 깨닫고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에게 근대화에 대해 묻고 조선의 근대화는 어떻게 추진하면 좋을지 견해를 들었다. 이를 통해 김옥균은 메이지 유신을 조선 근대화의 롤모델로 삼고 조선에 돌아왔다. 조선에 돌아온 후 박규수 문하에서 같이 가르침을 받았던 박영효와 서재필 등을 모아 개화파를 모았고 조선 근대화에 앞장서게 되었다. 김옥균은 고종에게 개화의 중요성을 알리고 조선에 신식 무기를 들여오기 위해 일본에서 차관도 얻어오는 등 자주독립을 위한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했지만 권력 상실에 두려워 하던 민비와 외척 세력들에 의해 번번이 가로막혔다. 이들은 청을 등에 업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는데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그 진압을 위해 청군을 끌어들여 조선에 청의 영향력이 커지게 하였다. 민비 세력이 끌어들인 청도 김옥균에게 개화 정책을 하지 못하도록 압박을 주고 있었기 때문에 김옥균은 민비 아래의 조선에선 근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정변을 일으키기로 했다. 마침 프랑스의 베트남 침공으로 인해 베트남에서의 영향력을 잃고 싶지 않았던 청이 조선에 주둔한 청군을 일부 철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것이 정변에 천재일우의 기회라 생각했다. 곧바로 개화파를 모아 정변의 계획을 세우고 일본 공사에게도 군사적 도움을 요청해 정변을 준비했다. 그리고 정변 당일 우정국에는 민씨 일가와 각국의 외교 대표단이 참석했고 개화파는 별궁에 불을 질러 이들을 당황하게 만든 다음 고종과 민비를 경덕궁에서 경우궁으로 모신 다음 일본군에게 궁수비를 맡겼다. 그러고 차례로 민씨 일가를 경우궁으로 불러 처단했다. 이에 불안함을 느낀 민비는 고종을 설득해 방어에 불리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다음 청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곧 창덕궁에 청군이 들이닥쳐 청군과 개화파, 일본군 사이에 교전이 일어났다. 위기를 느낀 일본은 곧바로 군을 철수시켰고 결국 개화파는 진압당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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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30 03:22: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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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0 안준현(반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7cgxoeb37ltognij/wish/3516688050</link>
         <description><![CDATA[<p>주제: 대한제국의 식산흥업 정책(전기, 통신)&nbsp; 안준현</p><p>현재 우리가 일상에서 마음껏 사용 중인 전기, 우리나라에서의 이 전기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또 일상에서 우리가 항상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통신 기술의 시작은 어땠을까? 나는 이런 우리나라의 전기, 통신 기술의 시작과 발전에 대해 궁금하여 이런 주제를 선정하게 되었다. 마침 교과서에서도 대한제국의 근대화 정책으로 대표적인 식산흥업 정책이 실려 있어 그중 전기와 통신의 시작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탐구를 시작하게 되었다.</p><p><br></p><p>대한제국 황제 고종은 왜 식산흥업 정책을 시행했을까? 먼저 정의부터 알아보자. 식산흥업 정책이란 자주적인 경제 발전을 위해 도로, 철도, 전기 등 근대 산업기반 시설과 공장, 광산의 설립, 상업적 농업의 확대를 추진했던 정부와 민간의 경제운동이다. 식산흥업 정책이 처음 등장한 때는 갑오개혁이다. 당시 개혁의 중심 기관인 군국기무처에서 주요 사무 중 하나로 ‘식산흥업 및 상행위 소관 일체의 사무’를 장정에 명시했다. 그리고 관제개혁을 통해 농상아문 아래 농상국, 공상국, 산림국, 수산국 등 경제 각 분야를 담당하는 부서를 만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분야 중 조선 및 대한제국은 산업발전에 필요한 공장과 기반시설이 돌아가려면 에너지 즉 전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전기에 대한 산업적 가치를 크게 평가했다. 이를 통해 전기를 산업 동력원으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전기 생산 및 사용 정책을 적극 도입했다.</p><p><br></p><p>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기를 활용한 빛이 들어온 곳은 어디일까? 바로 1887년 경복궁 내의 건천궁에 설치된 가로등에서 우리나라 전기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는 1883년 보빙사가 미국을 다녀오면서 당시 전등 및 전차 산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었던 미국의 전력사업 발전을 몸소 체험하게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 가로등은 워낙 귀했기 때문에 궁궐과 같은 곳에 제한적으로 설치되었다. 이후 1898년 고종의 자본금과 미국의 기술 지원으로 우리나라에 최초로 근대 전기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설립되었다. 한성전기회사는 1899년 동대문 일대에 발전소도 세우면서 전기 공급량도 늘릴 수 있었다. 이 발전소는 석탄을 활용한 화력발전소로 석탄보일러를 때워 증기기관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력의 한계로 생산한 전기를 현재처럼 멀리 보내지 못해서 전기 사용 지역이 한성 도심 일부에만 제한되었다.</p><p><br></p><p><br></p><p><br></p><p>한성전기회사는 생산된 전기로 주로 전차 사업, 전력 공급 사업, 기술자 양성 등을 실시했다. 먼저 1889년 서울 서대문-청량리 간에 전차를 개통했다. 이는 아시아에서 일본 교토에 이어 두 번쨰로 개통된 전차였다. 당시의 전차는 트램 형식이었는데 트램 위쪽에 집전봉이 달려 있어 집전봉과 상공에 설치된 가공선과 접촉해서 전기를 받아와 작동했다. 쉽게 생각하면 놀이동산에 있는 범퍼카를 생각하면 된다. 전차는 집선봉을 통해 전달된 전기(직류)가 자기장과 도선 사이에서 발생하는 회전력이 기어와 축을 회전시켜 바퀴가 돌아가면서 작동되었다. 제동할 때는 모터의 전류 방향을 바꿔 회전력이 생기지 않게 하거나 물리적인 힘을 사용하는 기계식 제동을 사용했다. 전차가 개통된 후로 서울 시민들의 이동성과 편의성이 커지고 당시 동대문 중심으로 상업 활동이 발전하면서 전차 이용객 수는 급증하였다고 한다.</p><p><br></p><p>당시에 전차 운행에 제기된 문제점은 무엇이 있었을까? 기술적으로는 1899년 설립된 중림동 발전소의 규모가 작아서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데 부족함이 있었다. 또한 전차선의 전압이 일정하지 않아 출발이 느리거나 운행 도중 갑자기 멈추는 일이 발생했다. 그리고 제동 시스템이 부족해 제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아서 운행 도중 사람이나 동물을 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전차는 익숙하지 않은 이동수단이었기 때문에 관련된 안전 의식이 미비했고 전차 전용 도로나 정류장이 부족해 지나가던 보행자와의 충돌위험이 있었다. 또한 한성전기회사의 전차 운영권은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이 독점했기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전차를 통제하거나 관리할 수 없이 외국에 의존해야 했고 전차 노선이 서울의 중심지 위주로 개통되어 서민거주 지역은 소외되었다.</p><p><br></p><p>다음으로 통신 기술은 어땠을까? 조선과 대한제국에 도입된 대표적인 통신기술은 전신 기술과 전화였다. 먼저 전신부터 알아보자면 전신이란 전기 신호를 통해 먼 거리로 문자를 전달하는 통신수단이다. 당시에는 주로 모스 부호를 활용했다. 송신자가 모스 부호를 전신 키로 눌러 전기 신호를 발생시키고 이 신호는 연결된 전선을 타고 멀리 떨어진 곳까지 전달된다. 그러고 수신자 쪽의 전신기에서 소리나 점으로 찍힌 종이가 출력되면 이것을 사람이 해독해서 문장으로 바꿔 읽으면 통신이 되는 것이다. 전신의 장점은 먼저 정보 전달 속도가 매우 빨랐다. 전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빛의 속도로 전달되어 사람이 오가는 것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원거리 통신 가능했다. 대륙을 가로지르거나 해저 케이블을 통해서 정보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1885년 조선은 전신의 중요성을 깨닫고 청나라와의 조약을 통해서 의주-서울 간의 전신선이 개통되었다. 고종도 이런 전신을 활용해서 지방의 소식을 듣고 실제로 통치하는데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문제점으로 전신 기술은 외국 기술력의 의존도가 매우 높았기 때문에 후에 전신이 대한제국에 대한 열강들의 이권침탈 대상이 되기도 했다.</p><p><br></p><p>다음으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화가 당시에는 어땠을까? 우리나라에서 전화는 1898년 경운궁과 주변 관공서에 전화선이 가설된 것이 시작이었다. 주로 황실과 고위 관료들의 업무용으로만 사용되었다. 전화선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부서로 궁내부 소속의 통신사가 설치되었다. 대표적으로 개항장 인천과 전화선이 연결되었다가 당시 김구가 을미사변을 일으킨 낭인들 중 한명을 살해했다가 감옥에 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는데 고종이 이 소식을 듣고 전화를 통해 인천감리에게 당장 사형을 정지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당시 전화기는 지금의 전화기와 마찬가지로 아날로그 신호인 음성 진동이 디지털 신호로 바뀌었다가 수신자에게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전환되어 정보를 전달한다. 전화기는 주로 벽걸이용 전화기를 사용했는데 전화국 교환원이 중간에서 연결해줘야 상대방과 통화가 가능했다.&nbsp;</p><p><br></p><p>전신과 전화의 전파는 조선과 대한제국에 큰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에는 문서나 정보를 다른 지역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파발과 같이 직접 사람이 오가야 했었는데 전신과 전화를 통해 실시간으로 통신이 가능해서 즉시 다른 지역에 명령이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행정 명령 체계가 빠르고 정확해졌고 중앙집권적 행정을 강화시켜 고종이 전제적인 황권을 행사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작은 엘리트 주의도 형성되었다. 당시 전화기와 전신기는 정말 고가였기 때문에 정부의 고위관료나 재별가, 외국 공사관 등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전화기와 전신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기도 했었다.</p><p><br></p><p>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전기, 통신 기술의 전래와 초기발전에 대해서 알아봤다. 조사를 진행하면서 지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전기를 활용한 전차나 전화가 실제로는 구한말 고종의 근대화 정책으로 처음 도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이었던 식산흥업 정책은 단순한 산업 진흥이 아니라, 자주적인 국가 운영과 기술발전을 위한 중요한 시도였음을 알 수 있었다. 전기는 한성전기회사의 경복궁에 처음 가로등 설치부터 시작해 발전소 건립과 전차 운행으로 서울에 전기를 활용한 편리한 기술들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통신 분야에서는 전신과 전화의 도입이 인상깊었는데, 모스 부호를 이용한 전신망은 지방 행정 통제와 정보 전달을 실시간으로 가능하게 했고, 전화는 행정, 군사, 사회 전반의 의사소통 구조를 바꾸었다. 전기와 통신의 발전은 근대화를 향한 대한제국의 마지막 시도이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모든 곳에 전기를 활용한 기술 기반 사회가 형성되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탐구를 통해 나는 기술의 시작이 곧 사회 변화의 시작임을 느낄 수 있었고, 역사를 통해 현재 우리가 모든 분야에 사용하는 전기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p><p><br><br><br><br><br><br></p><p>출처: 우리역사넷, 한국민족대백과사전</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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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7-11 03:24: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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