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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국사 8반 by 신성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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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10-21 00:37:4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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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6 김태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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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한국의 독립운동가 ‘김기권‘은 당시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성진회라는 학생 항일 단체르 모교인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고등학교의 학생들과 함께 조직했다. 성진회에서는 정기적으로 모여 독립운동과 민족교육에 대해 연구•토의했다. 1928년 6월 학교가 이경채를 퇴학 시키자 김기권은 동맹휴교 운동을 이끌었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았다. 동맹휴교 이후 김기권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그후로도 김기권은 22살에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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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0:5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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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20 조승준</title>
         <author>fqbdbdsgb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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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조선여성동우회, 근우회 등 <strong>여성 사회운동 단체를 이끌며 여성의 권리와 평등</strong>을 주장했다.</p><p><br></p><p>2.일제강점기 때 여성이 배울 기회가 거의 없던 시절, 여성들이 스스로 자립하고 배울 수 있도록 <strong>여성 교육기관 설립과 여성 교육 운동</strong>에 힘썼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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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0:50: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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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3안승진</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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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내가 정세권을 선정한 이유는 먼저 정세권을 화폐에 넣은 이유는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라 그는 <strong>문화로 저항한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strong>그는 일본의 토지 수탈과 도시 침탈이 가속화되던 1920년대에 경성 북촌 일대에 전통 한옥 주택단지를 조성했다. 이는 일본식 도시 개발에 맞서 조선인의 주거권과 전통 건축양식을 지켜낸 실천적 민족운동이었다. 또한 정세권은 물산장려운동의 정신을 건축과 산업에 적용했다. 그는 한옥 자재와 기술을 모두 조선인들과 함께했고 <strong>조선인의 삶과 문화는 우리가 지킨다</strong>는 메시지를 남겼다.</p><p>정세권과 물산장려운동, 북촌 한옥마을을 화폐 도안에 담는 것은 문화와 산업으로 나라를 지킨 독립의 정신을 기념하는 의미가 있어서 선정했고 민족의 독립성과 문화 보존의 가치를 우리들에게 전하는 상징이 되기 때문에 선정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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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0:55: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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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4 유호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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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그의 의거는 매우 용감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립운동 중 하나입니다.</p><p>조명하 의사의 의거 (타이중 의거)</p><p>• 배경: 조명하 의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가기 위해 중간 기착지였던 <strong>대만(타이완)</strong>에 머물던 중,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 구니요시가 타이완에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를 처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구니노미야는 일본 황실의 일원(왕족)이자 육군 대장으로, 일제의 상징적인 거물이었습니다.</p><p>• 거사일 및 장소: 1928년 5월 14일, 대만 타이중에서 구니노미야의 환영식 행렬이 지나갈 때였습니다.</p><p>• 거사 내용: 조명하 의사는 군중 속에 숨어 있다가,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지붕이 없는 차)에 뛰어들어 독을 묻힌 단검을 던졌습니다.</p><p>• 결과: 단검은 구니노미야의 목과 어깨를 스쳐 가벼운 상처를 입히는 데 그쳤으나, 현장에서 체포되기 전 조 의사는 "나는 대한을 위해 복수하는 것이다!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구니노미야는 이 상처와 독의 영향으로 이듬해 1월에 사망했습니다.</p><p>• 순국: 체포된 조 의사는 고문을 당한 후 사형을 선고받았고, 1928년 10월 10일 향년 23세의 나이로 타이베이 형무소에서 순국했습니다.</p><p><br></p><p>뒤에 배경으로 쓰인 서대문형무소는 조명하 의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체포, 수감되었던 장소이기에 조명하 의사와 관련한 장소라고 볼 수 있기에 추가하였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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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0:57: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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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22최성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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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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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1:05: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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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2김리건</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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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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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1:06: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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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6 이주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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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독립운동가 <strong>송철 </strong>선생은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고 미주 한인 사회를 통합하는 데 크게 기여한 <strong>교육자, 사업가, 독립운동가</strong>입니다.</p><p>1.독립운동 자금 지원 및 사업가 활동</p><p><strong>사업을 통한 독립운동 후원:</strong> 미국 캘리포니아 중가주 다뉴바에서 <strong>과일 패킹하우스와 도매상</strong>을 설립하여 크게 성공했습니다. 이 <strong>사업으로 번 막대한 자금을 독립운동에 아낌없이 출연</strong>하며 재정적 기반을 담당했습니다.</p><p>2. 대한인동지회 및 조직 활동</p><p><strong>대한인동지회 총회장 역임:</strong> 192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임병직 등과 함께 <strong>대한인동지회 북미총회</strong>를 조직하고 재무를 맡았으며, 이후 <strong>총회장</strong>까지 역임했습니다. </p><p><strong>북미총회관 건립 주도:</strong> 대한인동지회 북미총회 회관 건립을 위한 <strong>모금 운동에 주도적 역할</strong>을 했습니다.</p><p><strong>재미한족연합위원회 활동:</strong> 1941년 하와이 해외한족대회에서 결성된 <strong>재미한족연합위원회 집행부 위원</strong>으로 선임되어 미주 한인 사회의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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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1:13: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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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4김우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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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용관은 한국의 독립운동가로 요업기술가로서 과학 기술 진흥및 대중화에 힘쓴 사회 운동가이다. 민족 산업의 독립적인 발전을 위해 물산장려운동에 참여 하였고 조선물장려운동에 자매기관인 고려발명협회의 주도적 활동가로서 활동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 대표적인 과학 잡지인 &lt;과학조선&gt;을 창간하였고 박길룡등의 동료들과 함께 과학의 날 행사등 대중적 과학보급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과학지식보급회라는 상설 조직을 통해 자동차 퍼레이드, 라디오 강연, 과학관 단체 견학등 과학의 중요성을 계몽하였다. 이후 조선의 과학기술자와 발명가를 지원하기 위해 이화학연구기관 설립을 추진하였다. 김용관은 직접적인 독립 투쟁을 하진 않았지만 적극적인 계몽운동과 사회 운동등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 발전에 이바지 하고 독립을 위한 지식인 양성을 적극적으로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화폐 인물로 선정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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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1:14: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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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0성수혁</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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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장도빈 선생은 언론, 교육, 역사 연구를 통해 민족정신을 지킨 독립운동가이다.</p><p>1908년 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하며 신채호와 함께 일본의 침탈을 비판하는 글을 썼고, 민족 비밀결사 신민회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강점 이후에는 북간도와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국사 교육과 권업신문 논설 활동을 이어갔다.</p><p>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1916년 출간한 『국사』에서 '남북국 시대' 개념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다. 발해사를 한국사 체계에 편입시킨 이 연구는 일제의 역사 왜곡에 맞선 학문적 저항이었으며, 오늘날까지 한국 역사학계가 사용하는 용어의 토대가 되었다.</p><p>3·1운동 이후에는 동아일보 창간 허가를 받아냈고, 『동명왕』, 『조선사』 등 역사서와 학생 계몽잡지를 편찬하며 젊은 세대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주었다. 광복 후에도 단국대학교 설립과 서울시 근대사 정리 사업에 참여하며 역사 교육과 전승에 헌신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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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02:14: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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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1 김규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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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정정화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성 독립운동가다.</p><p>주요 활동으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녀는 임시정부의 주요 인물들과 함께 생활하며 임시정부의 비밀문서, 군자금, 연락업무를 맡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국내와 중국을 오고가며 군자금과 물자를 전달했다. 또한 광복군 지원 및 정보 활동도 하였는데 임시정부의 연락책 역할을 수행했고 해방 후 귀국할 때 까지 광복군과 임시정부 관계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봤다. 자서전으로 장강일기를 저술하여 자신의 독립운동 경험과 당시 여성의 역할, 임시정부 활동의 어려움을 기록하였다. 이는 현재 임시정부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활용되고 있다. 여성으로서 당시 위험한 독립운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지원을 담당한 여성이다. 그녀의 삶은 희생과 헌신, 조국애의 본보기로 평가받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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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10:01:3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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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 18번 장선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46125622</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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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2 23:29: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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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9박찬석</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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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김필순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서양 의술을 가장 먼저 배우고 후학을 길러낸 의사로, 의술을 단순한 치료 행위가 아니라 민족의 자립을 돕는 수단으로 삼았다.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의학을 익힌 뒤 강의와 진료를 통해 많은 제자를 양성하고, 배운 지식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일에 헌신했다.</p><p><br/></p><p>그는 국내에서 교육과 계몽 활동을 펼치는 동시에 독립운동 조직에도 참여해 민족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신민회에 참여하여 국민의 의식을 깨우는 일에 앞장섰고,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p><p><br/></p><p>망명 이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치치하얼 지역에 이상촌을 세우고 병원을 운영하며 이주민들에게 의료와 교육, 농업 기술을 지원했다. 병원 수입과 자신의 자산을 독립운동 자금으로 사용하여 독립군을 도왔다. 이상촌은 단순한 마을이 아니라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자립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다.</p><p><br/></p><p>김필순 선생은 의료 활동과 교육, 공동체 건설, 자금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의 전선과 후방을 동시에 강화한 인물로,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참된 독립운동가로 평가된다.</p><p><br/></p><p>김필순 선생을 인물로 선정한 이유는, 그가 의사로서의 전문 지식을 개인의 성공이 아닌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자립을 위해 사용했기 때문이다. 김필순 선생은 세브란스 의학교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의학 교육의 기틀을 세웠고, 신민회 활동을 통해 국민의 의식을 깨우는 데 앞장섰다. 또 만주 치치하얼 지역에서 이상촌을 세우고 병원을 운영하며 독립운동 자금 지원과 공동체 건설에 힘쓰는 등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그는 의술과 애국심을 함께 실천한 참된 지식인이자, 배운 것을 사회에 환원한 모범적인 인물로서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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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3 05:50: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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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10808 남태강</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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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도선(1886~1911)은 안중근 의사와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주로 <strong>하얼빈 의거의 실질적 조력자</strong>로 알려져 있다. 그는 러시아령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며 정보 전달과 통역, 연락 임무를 담당했다.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계획할 당시, 조도선은 <strong>통역과 현장 지원 역할</strong>을 맡아 의거의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러시아어와 일본어에 능통해 안중근의 의사 전달을 돕고, 현지 정세 파악과 이동 경로 조율 등 실무를 담당했다. 의거 이후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으나, 끝까지 동지들을 보호하고 사건의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의 활동은 비록 기록이 많지 않지만, 독립운동사에서는 안중근 의거의 <strong>숨은 실무자이자 전략적 협력자</strong>로 평가받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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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4 05:09: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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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9정규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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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1901년 1월 2일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고일리에서 출생했다. 그녀는 안창호의 조카로 ,숭의여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1919년 10월 1일 동창생 한선부(韓善富) 등과 함께 일제의 ‘시정기념일(施政記念日)’을 반대하여 만세시위운동을 벌였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20일간 구금되었다. 1921년 숭의여학교 내 비밀결사 결백회(潔白會) 에 참여하여 특별기도단(特別祈禱團)을 조직해 활동하였다. 이후 숙부 안창호의 주선으로 중국 난징의 동명학원(東明學院)에서 영어를 공부했다.<br><br>1925년 1월 19일 흥사단 원동임시위원부에 가입하여 제19반에서 활동하였고, 1월 28~29일 상하이에서 열린 흥사단 제11회 원동대회에 참석했다. 1927년 1~2월경 상하이를 거쳐 국내에 귀국하여 3월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 가입하였다. 7월 1일 서울에서 중국 유학생들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유중학우구락부(留中學友俱樂部)를 발기했다. 9월 1일  평안남도 강서군 동진면 탄포리교회에서 개최된 기독청년면려회의 종교강연회에서 "무너진 집을 다시 건설하자"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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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5 09:19: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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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10807 남윤섭</title>
         <author>yoonsub0304</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0058644</link>
         <description><![CDATA[<p>한국 여성 독립운동가 중 한명인 연미당은 1930년상해여자청년 동맹, 1943년 한국 애국 부인회 재건 등 여성 독립운동을 이끌며 여성들을 독립운동에 동원하며 선전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임시정부의 의회인 임시의정원으로써 활동하였고 상해에서 국치기념 전단을 제작 배포하여 항일 민족 의식을 불러 이르켰고 충칭에서는 방송선전 활동을 통해 여성 동포들의 각성과 분발을 촉구하였다. 윤봉길 의사의 항커우 공원 의거에 사용되었던 보자기를 만들며 의열 투쟁에도 일조 하였다. 연미당은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여러 조직을 통해 여성의 독립운동 참여를 촉진시키고 임시정부가 중국에서 망명정부 형태로 활동하던 복잡한 시기, 물질적·정신적 후방 지원을 통해 독립운동 체계를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독립운동가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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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5 11:03: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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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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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05 김채우</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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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이화림은 상하이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를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여러 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했다. 그녀는 의거 당시 폭탄을 직접 투척하지는 않았지만, 폭탄 운반, 자금 조달, 연락망 유지 등 작전의 성공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핵심 역할을 맡았다. 또한 한인애국단의 비밀 연락원으로 활동하면서 국내외 독립운동가들과 정보를 교환하고,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p><p> </p><p>이화림은 거사 이후에도 상하이 일대에서 체포된 동지들의 소식을 전하고 구금된 인물들의 가족을 돌보는 등, 독립운동가들의 생계를 돕는 역할까지 맡았다. 그녀는 독립운동이 단순히 거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지원과 연대가 중요하다는 점을 몸소 보여준 인물이었다.</p><p> </p><p>당시 여성으로서 비밀공작, 연락, 자금 조달 등 고위험 활동에 참여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이화림은 위험한 임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조국의 독립이라는 목표 하나로 묵묵히 헌신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조용한 실천가이자 독립운동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다.</p><p> </p><p>이화림을 이십만원권 화폐 인물로 선정하는 것은, 화려한 영웅 서사 뒤에서 보이지 않게 싸운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를 기리고, 희생과 연대의 가치를 오늘날에도 되새기게 하는 의미가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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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5 12:19: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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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5 이규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0749226</link>
         <description><![CDATA[<p>일제강점기 시대에 무장투쟁을 통해 무력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했던 독립 운동가들이 있는 반면에, 김용관은 실력양성 운동을 펼쳤다. 김용관은 평생애 걸쳐서 조선의 과학기술 진흥에 헌신 했는데,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물산장려운동 참여, '과학조선' 창간, 과학지식보급회 창설 등이 있다. 특히 '과학조선' 창간을 통해 과학 지식을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선인만의 과학 기술 자립과 발명 진흥을 장려했다. 김용관은 단순히 기술을 연구하는 것을 넘어서 과학 기술 이해의 대중화 실현을 통해 미래의 독립적인 국가 건설 토대를 마련하였고, 민족의 과학 지식 고양을 이끌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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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09:39: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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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10803 김서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0756339</link>
         <description><![CDATA[<p>독립운동가 <strong>이화림(李華林)</strong>은 1906년 평양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운동과 의료활동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며 항일 의식을 키웠고, 이후 평양의 교사 양성기관에서 공부하며 학생조직인 ‘역사문학연구회’ 활동을 통해 민족의식과 독립정신을 다졌다. 1927년에는 조선공산당에 가입해 학생운동과 항일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다. 이화림은 한인애국단의 활동을 지원하며 이봉창 의사가 의거를 준비할 때 폭탄을 숨길 주머니를 만들어주는 등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했고, 윤봉길 의거 준비에도 깊이 관여했다. 이후 조선의용대 여자복무단의 부대장으로 활동하며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참여를 이끌었고, 해방 이후에는 중국과 연변 지역에서 의료인으로서 위생기관을 운영하며 사회 발전에 기여했다.</p><p><br/></p><p>이화림은 여성으로서 직접 무장 독립운동에 참여한 드문 사례로, 남성 중심의 항일운동 속에서도 지도자이자 실천가로 활약하였다. 그녀는 조력자에 머물지 않고 조직, 무장, 의료 등 여러 분야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비록 정치적 이유 등으로 공식 서훈은 받지 못했지만, 이화림의 삶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존재와 역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녀의 생애는 나라를 위한 헌신과 용기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교훈을 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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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09:5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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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10821 조재빈</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0957917</link>
         <description><![CDATA[<p>박자혜 선생은 1895년 12월 11일 경기도에서 중인 출신인 박원순의 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궁궐에 들어가 약 10년 간 견습나인으로 생활한 그는 1911년 숙명여학교 기예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다시 사립 조산부 양성소에서 과정을 마친 후 조선총독부의원 산부인과 간호부에서 근무하였다. <br>1919년 3ㆍ1운동이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는 총탄을 발포하는 등 만세운동을 야만적으로 진압하였고 각 병원에는 부상자가 끊이지 않았다. 조선총독부의원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하면서 민족적 울분을 느낀 선생은 함께 근무하던 의사, 간호사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주장하며 간우회(看友會)를 조직하였다. 선생은 간호사들과 동맹파업을 준비하던 중 일경에 붙잡혔으나 풀려난 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br>중국 펑티엔(奉天)을 거쳐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선생은 옌징대학(燕京大學) 의예과에 입학하였다. 선생은 1920년 4월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베이징으로 오자 그를 소개받아 가정을 꾸리고, 남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며 독립운동가 아내로서의 삶을 시작하였다. <br>경제적인 어려움으로 1922년 고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인사동에 ‘박자혜 산파’라는 산파소를 열고 가족의 생계를 담당하였다. 한편 중국에 있는 남편 신채호와 계속 연락을 주고받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임무를 지원하였다. 1926년에는 서울지리가 생소한 나석주 의사를 도와 사전에 길을 안내하는 등 나석주 의사 의거가 성공리에 추진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탰다. <br>1928년 4월 신채호가 일경에 붙잡혀 중국 뤼순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자 남편의 옥바라지까지 도맡았던 선생은 1936년 신채호가 옥중 순국한 지 8년 만인 1944년 병환으로 서거하였다. 정부는 독립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의 아내로서 독립운동을 후방에서 적극 지지.후원한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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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6 14:42: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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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1 손호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1819714</link>
         <description><![CDATA[<p>김윤경 선생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한국의 국어학자이자 교육자, 그리고 독립운동가로서 평생을 한글과 민족 교육에 헌신한 인물이다.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주시경에게 한글을 배우며 민족어 연구의 뜻을 세웠고,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뒤 조선어연구회 창립에 참여하여 조선어학회 활동을 주도했다.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수양동우회 사건과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투옥되면서도 한글 보급을 멈추지 않았다. 해방 후에는 연희전문학교 교수와 문교부 국어위원으로 활동하며 국어 정책과 교과서 편찬에 힘썼고, 한글을 학문으로 확립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그의 좌우명 “국어는 민족의 정신이다”는 언어를 지키는 일이 곧 나라를 지키는 길임을 일깨운다. 199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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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04:37: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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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812신건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1850837</link>
         <description><![CDATA[<p>주현측(朱賢測, 1882~1942) 선생은 평안북도 삭주 출신으로,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한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단순한 의료인이 아닌 민족계몽운동과 항일운동에 헌신한 지식인이었다. 신민회 회원으로 활동하던 중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이후에도 독립에 대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921년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와 흥사단 활동에 참여하며 독립자금 모금과 의료 지원에 힘썼고, 귀국 후에는 선천에서 대동고아원을 설립해 민족교육과 사회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다시 동우회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의 고문을 받다가 1942년 평양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주현측 선생은 지성과 인술로 독립운동을 실천한 인물로, 일제강점기 지식인 항일운동의 상징이자 인도주의적 애국정신의 표상으로 평가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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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7 04:56: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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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817 장민호</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seonggwanghigh/79kypnxiwh4s52lr/wish/3655404977</link>
         <description><![CDATA[<p>허위는 조선 말기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유학자로 성장하였고, 문과에 급제해 관직에 나아갔으나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 이후 벼슬을 버리고 항일 의병 활동에 나섰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 후 경기·강원 일대의 의병을 규합해 서울 진공 작전을 이끌었으나 실패했고, 끝내 일본에 항복하지 않은 채 1910년 한일병합 직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그는 지조와 충의를 끝까지 지킨 대표적 의병장이었다.</p><p><br></p><p>허위가 지폐 속 인물로 선정된다면, 그 이유는 국가의 자주와 정의를 지키려는 항일 정신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고 나라의 존엄을 지키려 했으며, 지식인으로서 행동으로 책임을 증명한 인물이다. 그의 삶은 권력보다 도덕을, 안락보다 의로움을 택한 선택의 역사로, 오늘날에도 국민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일깨워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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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10-28 23:18: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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