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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임진왜란 사료모음 by 정인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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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8-17 01:4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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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왕 사료 - 선조실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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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왜나라가 침범해 왔다. 이보다 먼저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여러 나라를 통합하였다. 그는 항상 중국이 조공(朝貢)을 허락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요동(遼東)을 침범하려 하니 길을 빌려 달라고 청했다. 우리 나라에서 매우 준엄하게 거절하자 적은 드디어 온 나라의 군사를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침입해왔다.<br><br>적의 배가 바다를 덮어올 때 부산 첨사(釜山僉使) 정발(鄭撥)은 사냥을 하고있었다. 조공하러 오는 일본인이라 여기고 대비하지 않았던 정발이 적이 이미 성에 올라 전사했다. 이튿날 동래가 함락되고 송상현(宋象賢)이 죽었으며, 그의 첩(妾)도 죽었다. 적은 드디어 두 갈래로 나누어 진격하여 김해(金海)·밀양(密陽) 등 부(府)를 함락하였다. 2백 년 동안 전쟁을 모르고 지낸 백성들이라 각 군현(郡縣)들이 풍문만 듣고도 놀라 무너졌다. 오직 밀양 부사 박진(朴晉)과 우병사 김성일(金誠一)이 적을 진주(晉州)에서 맞아 싸웠다. 김성일이 아장(牙將) 이종인(李宗仁)을 시켜 백마를 탄 적의 두목을 쏘아 죽이니 드디어 적이 조금 물러났다.'<br><br>- 임진왜란 최초의 기록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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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1:41: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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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 문신 사료 - 강항 『간양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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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나의 조카 가련(可憐)은 나이가 여덟 살인데 주리고 목말라서 짠 소금물을 마시고 구토 설사하여 병이 났다. 이에 적이 가련(可憐)을 물속에 던지니,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오래도록 끊어지지 아니하였다.<br><br>- 강항이 왜적에게&nbsp; 납치되어갈 때 조카가 일본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했을 때의 기록-</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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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1:59: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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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중 사료 - 정희득 『월봉해상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033569</link>
         <description><![CDATA[<div>1597년 8월 12일, 왜적이 두 번째로 침략한다는 소문(정유재란)을 듣고 호남의 인심이 흉흉하여,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두 가지 의논이 있었으나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나는 곧 어버이를 모시고 가속을 거느려 지고 메고 하여 길을 떠났다. 19일, 영광(靈光) 대안촌(大安村) 앞에 이르러 의논을 달리했다. 거룻배를 하나 구해 배에 올랐다. ······&nbsp;<br><br>(9월 15일)온 식구가 구수포(九峀浦)에서 배에 올랐다.&nbsp;<br><br>(16일) 뭍의 왜병이 우리를 보고 총을 쏘았지만 배가 있는 곳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때 척숙 정돈(鄭燉)과 족형 절, 그리고 심화백(沈和伯)과 권사위(權士偉)의 두 척숙과 오굉(吳宏) 어른이 우리 일가족과 함께 배에 올랐다.&nbsp;<br><br>(17일) 새벽에 배를 띄웠다. 서쪽으로 올라가기로 마음먹었다가 바람이 심하게 불어 임병도의 법포(法浦) 앞바다에서 배를 돌렸다.&nbsp;<br><br>(18일) 재원도(載元島)에 옮겨 대었으나 풍랑이 막혀 머물고 배에 오르지 못하였다.&nbsp;<br><br>(27일) 칠산(七山) 앞바다에 이르러 갑자기 적선을 만났다. 왜장의 이름은 삼소칠랑(森小七郞)이다<br><br>- 삼소칠량을 만나 일본에게 끌려가기 직전의 모습을 담은 사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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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1:59: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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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중 사료 - 조정  『임란일기』</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034858</link>
         <description><![CDATA[<div>인가의 재물을 거두고는 곧 불을 지르며 사로잡은 여인은 뭇놈들이 윤간하는 꼴이 마치 개와 같다고 한다. 간음을 한 뒤에는 약탈한 물건을 나누어 주니 추잡한 계집들은 주는 물건에 눈이 어두워 짐짓 쫓아다니고 떨어져 나오려 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의 변함이 이에 극도로 변하고 말았다. 한 나라의 간난(艱難)이 어떻게 이토록 극심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느냐. 생각이 여기에 미침에 기가 막혀 할 말을 잃는다.<br><br>-만행을 저지르는 일본 군대-</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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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2:00: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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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일본인 사료 - 김충선 [모하당술회가]</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034968</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 정벌 하올 적에 어리고 무식한 이내 몸을 선봉장을 시켰다네.&nbsp;<br>군대를 일으킴이 의리에 어긋남을 마음으로 알건마는&nbsp;<br>예의 바른 동쪽 땅 구경 한번 하려 하고 흔연하게 살펴보려 큰 도끼를 손에 쥐고&nbsp;<br>선봉장이 되올 적에 맹세코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양으로 마음 속에 결단하고 선친 묘에 하직하고 친척들과 이별하며 칠 형제 두 아내 곁 일시에 다 떠나니 슬픈 마음 설운 뜻이 없다 하면 빈말이라. 행군 북 한 소리에 배 떠났단 말인가.&nbsp;<br>-(중략)-<br>우리 부하들 삼천 병사 사납기도 하였어라.&nbsp; 타국 병사 왔다 하고 백성들이 소동하니, 효유서 급히 지어 거리거리 내어 걸고 항복 문서 한 편 지어 조선에 의탁하니 적의 선봉장인 나를 받아주는구나&nbsp;<br><br>-일본군의 선봉장에 섰다가 조선에 항복하는 김충선(사야가)-<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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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2:00: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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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생 사료 - 오희문[쇄미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035070</link>
         <description><![CDATA[<div>&lt;쇄미록 계사일록(1593)&gt;:5월8일- 왜놈들이 휩쓸고 간 한양<br><br></div><div>저녁에 생원(오윤해)이 한양에서 돌아왔다. (중략) 여러 묘소는 다 예전 그대로이고, 다만 선릉(선종과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능)에서부터 불이 나서 우리 산으로 옮겨 붙었는데 다행히 봉분까지는 타지 않았단다.&nbsp;<br><br></div><div>성이 들어가보니, 북쪽 인가(사람이 사는 집)은 모두 불에 타서 재만 남았고 행랑이나 사랑채만 우뚝하게 홀로 서 있어서 보기에 몹시 참혹하더란다. 적이 진을 친 집은 완연히 예전 그대로일 뿐 아니라 유기(놋그릇)나 잡물 및 헐린 집의 재목이 가득 쌓여 있어서, 만일 적이 빠져나간 뒤에 집주인이 곧장 들어오면 얻는 것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nbsp;<br><br></div><div>죽전동의 친가에는 당초에 적이 들어와 진을 쳤지만 적이 빠져나간 뒤에 가까이 있는 장터 사람들이 먼저 들어와 모두 훔쳐 갔다고 한다, 심지어 북쪽, 동쪽, 서쪽 누칸, 몸채, 사랑에 붙어 있던 판자 및 창호와 문짝까지 모두 뜯어서 훔쳐 갔고, 그 나머지 동쪽 누각의 두 칸 마루는 아직 남아있다고 한다. 안팍 네 벽도 모두 뜯어 갔는데 <strong>이는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먼저 들어간 자의 소행이라고 한다.&nbsp;</strong></div><div>(중략)관동에 있는 처남의 집은 다 타서 남은 것이 없고 사랑2칸과 행랑만 남아 있다고 한다. 향나무와 버드나무는 모두 베어졌고 줄기가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서쪽 담 아래에 무성한 풀 속의 작약 두 포기뿐인데, 홀로 꽃이 피어서 만발하니 보기에 슬픈 마음을 이길 수 없더라고 했다.&nbsp;</div><div>(중략) 주자동 종가에 가 보니 모두 불타고 사당만 남았는데, 신주를 후원에 파묻었다고 들었기에 처음에는 들어가 보고 파내서 참배하려고 했더니 계집종 천복의 남편 수이가 집 안에 죽은 시체가 쌓여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단다. 아직 수습하여 장사를 지내지 않아 악취가 온 동네에 가득해서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곳곳의 길거리와 집집마다 문과 마당에 시체가 쌓여 있어 참혹하여 차마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는 모두 1월24일에 분탕질 할 때 피살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처음에는 나오지 않다가 적들의 꾐에 빠져 인가에 묻어 둔 물건을 모두 파 가서 집에 쌓아 두고 술과 밥을 배불리 먹으면서 스스로 좋은 수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후환을 생각하지 않다가 결국 모두 죽임을 당했으니, 이는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누구를 탓하고 원망하겠는가</div><div>세 대궐 및 종묘, 문소전, 연은전도 다 타서 남은 곳이 없고 궁원의 뜰 계단에는 잡초만 무성하다고 한다. 애통한 심정을 견디지 못하겠다. 2백년 선왕의 문물이 모두 적의 손에 없어졌으니, 이 적과는 천지 사이에 함께 살 수가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선릉과 정릉도 모두 다 파내서 재궁을 부수고 옥체를 꺼내 버려서 중묘(중종)는 간신히 뒤편 골짜기에서 찾았고 성묘(성종)는 아직 찾지 못했는데, 혹자는 불에 태웠다고 하고 혹자는 강에 떠내려 보냈다고 한다. 온 나라 신민의 분함과 애통함이 어찌 다 말하겠는가.&nbsp;<br><br>- 유생이었던 오희문의 입장에서 느낀 감정.(유교적 사상이 잘 드러나 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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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2:01: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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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노비 사료 - 선조수정실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035926</link>
         <description><![CDATA[<div>도성의 <a href="https://sillok.history.go.kr/id/knb_12504014_028#footnote_1">궁성(宮省)<sup>009)</sup></a> 에 불이 났다. 도성 안의 간악한 백성은 먼저 창고에 들어가 보물(寶物)을 다투어 가졌는데, 이윽고 노비들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례원(掌隷院)과 형조(刑曹)를 불태웠으니 이는 두 곳의 관청에 노비(奴婢)의 문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궁성의 창고를 크게 노략하고 인하여 불을 질러 흔적을 없앴다.<br><br>-노비문서를 불태우는 노비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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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2:01: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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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왕 사료 - 선조실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193312</link>
         <description><![CDATA[<div>왕이 말하기를,<br><br></div><div>"요동으로 건너가는 것을 비록 갑작스럽게는 할 수 없으나 모든 일을 충분히 대비하도록 하라."<br><br></div><div>하니, 예조 판서 윤근수가 요동으로 건너가면 낭패라고 강력히 말하고, 풍원 부원군 유성룡도 역시 그 불가함을 강력히 말하면서 아뢰기를,<br><br></div><div>"아직 점령되지 않은 지역이 있으니 우리에게도 승산이 있을 듯합니다."<br><br></div><div>하고는, 드디어 서로 눈물을 흘리며 목이 메이도록 울었다. 이어 말하기를,<br><br></div><div>"명나라 장수에게 말하여 강 저쪽에 정박해 있는 배의 절반을 나누어 강 이쪽에 정박시키게 하고, 호위하는 말은 이웃 고을에서 뽑아 왕을 지키게 하라."하였다.&nbsp;<br>&nbsp;<br>- 의주 피난 이후 요동으로 피난 가려는 선조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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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4:17: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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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 무신 사료 - 류성룡 [징비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4202906</link>
         <description><![CDATA[<div>전리수군절도사 이순신이 적병을 거제도 바다 가운데서 크게 격파했다 . -(중략)- 이 한번의 싸움에 힘입어 그의 한 팔이 끊어져 버렸다. 그래서 고니시 유키나가(일본군 장수)는 비록 평양성을 빼앗았다고 하더라도 그 형세가 외로워서 감히 다시는 전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나라 에서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아울러 황해도와 평안도 연안 일대도 보전할수 있었고， 군량을 조달할수가 있어서 나라의 중흥을 이룩할수 있었다. 이는 다 이순신이 한번 싸움에 승리한 공이었다. 어찌 하늘의 도움이 아니겠는가?&nbsp;<br><br>-이순신에 대해 평가하고 있는 문신 류성룡-</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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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17 04:30: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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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왕 사료 - 류성룡 [징비록]</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8084495</link>
         <description><![CDATA[<div>신립 장군이 떠나간 뒤로 서울 사람들은 날마다 승리 소식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4월 29일) 저녁 전투에 나선 사람 셋이 말을 타고 들어오니, 성안 사람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전쟁에 관한 소식을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br><br>“우리는 신립 장군님의 부하이오. 어제 장수들은 충주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패하여 죽고, 군사들은 모두 흩어졌소. 우리는 겨우 몸만 빠져나와서 집안사람들을 피신시키려고 달려오는 길입니다.”<br><br>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크게 놀라서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전하여 얼마 안 되는 사이에 온 도성 안이 떠들석해졌다.<br><br>조정에서도 초저녁에 재상들을 불러 피란을 의논하였다. 임금께서는 밖에 나와 촛불을 밝히고 앉아 계셨다.<br><br>"평양으로 가시도록 하옵소서. 그리하여 명나라에 구원병을 청하여 수복을 도모하소서.”<br><br>-평양으로 피난가는 선조-</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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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22 01:03: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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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 무신 사료 - 류성룡 [징비록]</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8085751</link>
         <description><![CDATA[<div>신립은 군사를 거느리고 나와 탄금대 앞의 두 강물 사이에 진을 쳤다. 그곳은 좌우에 논이 있고 물풀도 무성해서 말과 사람이 움직이기가 불편했다.<br><br>잠시 후 왜적이 단월역으로부터 길을 나누어 쳐들어오는데, 그 기세가 마치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과 같았다. 한 무리는 산을 따라 동쪽으로 오고 한 무리는 강을 따라 내려왔으며, 총소리는 땅을 울리고 하늘을 뒤흔들었다.<br><br>신립은 어찌할 줄을 몰라 하다가 말을 채찍질하여 몸소 적진으로 돌격하려고 두 차례나 시도하였으나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자 그는 말 머리를 돌려 강으로 뛰어들어 죽었다.<br><br>이를 지켜본 군사들도 뒤따라 강으로 뛰어드니 그 시체가 강물을 덮고 떠내려갔다<br><br>-충주 전투에서 패배한 신립-</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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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22 01:04: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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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 무신 사료 - 류성룡 [징비록]</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68086355</link>
         <description><![CDATA[<div>왜적은 군사를 나누어 서평포와 다대포를 연달아 함락시켰다. 이때 윤흥신尹興信은 적을 막아 힘껏 싸우다가 전사하였다.<br><br>경상 좌병사 이각李珏은 이 소식을 듣고 군대를 떠나 부산 동래성으로 들어갔다. 부산성은 이미 함락된 뒤였고 이각은 겁을 내어 어찌할 줄 몰라 하다, 다른 군사와 협공하려 한다고 핑계하고는 성을 나와 소산역蘇山驛으로 퇴진했다. 당시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은 자기와 함께 여기 머물러 성을 지키자고 말해 보았으나 이각은 그 뜻을 따르지 않았다.<br><br>4월 15일에 왜적이 동래로 쳐들어와서 성에 육박하였다. 부사 송상현은 성의 남문으로 올라가서 군사들의 싸움을 독려하였으나 성은 반나절 만에 함락되었다. 송상현은 그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적의 칼에 맞아 죽었다.<br><br>-동래성 전투에서 패배한 송상현-</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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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22 01:0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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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스님 사료 - 류성룡 [징비록]</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77325582</link>
         <description><![CDATA[<div>유정惟政은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에 있던 승려이다. 왜적들이 산속으로 들어오자 절에 있던 승려들은 다 도망하였으나 유정만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왜적들은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합장을 하며 예의를 표하면서 돌아갔다.<br><br>나는 안주에 있으면서 공문을 사방으로 보내 각각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구하러 나오라고 하였다. 공문이 금강산까지 이르자 유정은 그것을 불탁 위에 펴놓고 여러 승려들과 함께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가 드디어 승군을 일으켜 평양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무리가 천여 명이나 되었다. 유정은 평양의 동쪽에 주둔하고 순안에 있던 관군과 합세해 굳건한 형세를 만들었다.<br><br>-스님 유정에 관한 사료-</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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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29 23:19: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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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 문신 사료 - 고경명 [마상 격문]</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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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근래에 나라의 운명이 불길하여 왜구가 불시에 침입하였다.-(중략)-나 고경명은 진실된 마음의 노인이며 백발의 선비로서, 한밤 중에 닭소리를 듣고 많은 고난을 견딜 수 없어 중류의 노를 쳐서 외로운 충성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이는 한갓 견마가 주인을 그리워하는 정성을 품었을 뿐이요, 모기가 태산을 짊어지는 미약한 힘을 헤아리지 않는 것이다. 이에 의병을 규합하여 곧장 서울로 향할 것이니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단상에 올라 눈물을 뿌리며 군중에게 맹세하는 도다. -(중략)-아! 우리 열읍 수령, 각 처 백성들아! 충심이 어찌 임금을 잊을 것이며 의리상 마땅히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니, 혹은 무기를 빌려 주고 혹은 군량을 도우며, 혹은 말을 달려 전장에서 앞장서고, 혹은 분연히 쟁기를 던지고 밭두둑에서 일어나리라. 제 힘이 미치는 데까지 오직 의로 돌아가서 능히 임금을 위해 난을 막는 자가 있다면 그와 더불어 행동하기를 원한다.<br><br>-의병을 모집하는 의병장 고경명-</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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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29 23:48: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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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민중 사료 - 오희문 [쇄미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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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새벽에 출발해서 고부군 앞을 지나 10리쯤 되는 곳에 이르렀다. 어제 오는 길에 7, 8세 되는 아이가 큰소리로 통곡하고 여인 하나는 길가에 앉아서 역시 얼굴을 감싸고 슬피 우는 것을 보았다. 괴이해서 까닭을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지금 제 남편이 우리 모자를 버리고 갔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남편이 버리고 갔느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세 사람이 떠돌면서 밥을 구걸했는데 이제는 구걸해도 얻지 못하여 굶어 죽게 생겼기에, 제 남편이 우리 모자를 버리고 혼자 갔습니다. 우리도 장차 굶어 죽을 것이 분명하니,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애통함과 측은함을 견디지 못하겠다. 걷거나 말을 타고서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이끌어 위로 올라가는 사족과 유민의 행렬이 길에 끊이지 않고 있다. 모두들 흐트러진 머리에 얼굴이 꾀죄죄해서 참혹하기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다. 슬프고 안타까움을 어찌하겠는가.<br><br>-피난 행렬 당시 백성들의 모습-</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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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30 05:00: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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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신 사료 - 오희문 [쇄미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77736488</link>
         <description><![CDATA[<div>오후에 성균관 사람 5명이 한양에서 달려왔다. 급제 방목(과거시험 합격 통보서)을 가지고 나팔을 불며 와서 알리는 말이, 그저께 저녁에 급제 방목이 나왔는데 윤겸이 급제했다고 한다. (중략) 한 몸을 이미 나라에 맡겼으면 평안할 때나 험난할 때나 한결같아야 하는 것은 곧 신하된 사람의 본분이니, 이제부터는 내 아들이 아닌 것이다, 아무리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div><div>&nbsp;&nbsp;<br>- 휴전협상기의 양반생활의 일상적인 모습.</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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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8-30 05:00: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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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 무신 사료 - 이순신[난중일기]</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84450252</link>
         <description><![CDATA[<div>맑음. 이른 아침에 망보는 군사가 와서 보고하기를 “무려 200여 척이나 되는 적선이 명량을 거처 곧바로 진 치고 있는 곳으로 온다”고 했다. 여러 장수를 불러 명령을 내린 다음 닻을 올리고 바다로 나가니 133척이 우리 배를 에워쌌다. 대장선이 홀로 적선 속으로 들어가 포환과 화살을 비바람같이 마구 쏘아 댔지만 여러 배들이 바라보기만 하면서 진군하지 않아 사태를 헤아릴 수 없게 되었다.<br><br>배 위에 있는 군사들은 서로 돌아보며 겁에 질려 있었다. 나는 부드럽게 타이르며 “적이 1,000척이라도 감히 곧바로 우리 배에는 덤벼들지 못할 것이니 조금도 동요하지 말고 사력을 다해 적을 쏘아라” 하고 말했다.&nbsp;<br><br>그리나 우리 배를 돌아다보니 이미 멀리 물러나있었고,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멀리 떨어져 가물가물했다. 내 배를 돌려 우리 장수들의 배로 가서 먼저 목을 베어 죽이고 싶었지만, 내 배가 머리를 돌리면 여러 배가 점점 더 멀리 물러나고 적선이 달려들게 되어 사세가 낭패하게 될 것이었다.&nbsp;<br><br>중군 영하기令下旗(군령을 내리는 기)와 초요기椒搖旗를 세우니 장수 김응함과 안위의 배가 왔다. 내가 뱃전에 서서 직접 안위를 불러 “네가 군법에 죽고 싶으냐?” 하고 말하고, 다시 불러 “안위야, 군법에 죽으려느냐? 물러가면 살 듯싶으냐?”고 했더니, 안위가 황급히 곧바로 싸우려 했다.&nbsp;<br><br>이때 적장의 배와 다른 2척의 적선이 안위의 배에 달라붙고 안위의 격군 7, 8명이 물에 뛰어들어 헤엄을 치니 거의 구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배를 돌려 바로 안위의 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안위의&nbsp; 군사들이 죽기를 각오한채로 마구 쏘아 대고 내 배의 군관들도 빗발같이 쏘아 대어 적선 2척을 남김없이 모조리 섬멸하였으니 천행, 천행이다.&nbsp;<br><br>우리를 에워쌌던 적선 30척도 부서지니 모든 적들이 당해 내지 못하고 다시는 범접해 오지 못했다. 그곳에 머무르려고 했으나 물이 빠져 배를 정박시키기 어려우므로 건너편으로 진을 옮겼다가 달빛을 타고 다시 당사도로 옮겨 밤을 지냈다.<br><br>-명량해전 당시의 이순신의 활약상-</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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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9-05 07:13: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84450252</guid>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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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 문신 사료 - 징비록</title>
         <author>wjddlsgh7009</author>
         <link>https://padlet.com/wjddlsgh7009/5sng0ryd8tp9vnmh/wish/2684450964</link>
         <description><![CDATA[<div>도성을 되찾았다. -(중략)- 성안에 남아 있던 백성을 보니 백에 하나도 성한 사람이라고는 없었다. 남아 있던 백성은 모두 굶주리고 병들어 그 꼴은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중략)- 종묘와 세 대궐, 그리고 종루와 큰 거리 북쪽에 있는 각 관청 등도 모두 재가 되어 버렸다.&nbsp;<br><br>- 서울을 수복하고 난 뒤의 모습-</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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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9-05 07:13: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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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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