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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7 한국사 두번째 수행평가 준비 by 정연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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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한국사 역사적 사건,</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5-15 04:41: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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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710 배민준</title>
         <author>baem737_</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29878</link>
         <description><![CDATA[<p>1592년 임지왜란</p><p>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정권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이다.</p><p>전쟁 발발 전인 3월 23일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슈인조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등에게 조선출병을 명했으니 너(가토 기요마사)도 전장에 나가라. 이국(조선)의 자(者)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방심하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는 공문을 전국에 보냈다.</p><ul><li><p><strong>1차 침략 (1592)</strong>: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고 한양을 점령.</p></li><li><p><strong>의병 운동</strong>: 조선의 민중과 군인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저항.</p></li><li><p><strong>명나라 개입</strong>: 조선의 요청으로 명나라가 군대를 파견.</p></li><li><p><strong>해전</strong>: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일본 수군에 큰 타격.</p></li><li><p><strong>2차 침략 (1597)</strong>: 일본의 재침략 시도가 실패.</p></li><li><p><strong>전쟁 종결 (1598)</strong>: 히데요시 사망 후 일본군 철수.</p><p><br/></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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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4:47: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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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1손민혁</title>
         <author>cgs25121</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2375</link>
         <description><![CDATA[<p>병자호란</p><p><br/></p><p>병자호란은 1636년 후금(청나라)이 조선을 침략하여 벌어진 전쟁입니다. 조선은 강화도로 피신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하다가 결국 삼전도에서 항복하였습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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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4:59: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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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4 은한결</title>
         <author>cgs25141</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2897</link>
         <description><![CDATA[<p>임진왜란</p><ul><li><p><strong>1차 침략 (1592)</strong>: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하고 한양을 점령.</p></li><li><p><strong>의병 운동</strong>: 조선의 민중과 군인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저항.</p></li><li><p><strong>명나라 개입</strong>: 조선의 요청으로 명나라가 군대를 파견.</p></li><li><p><strong>해전</strong>: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일본 수군에 큰 타격.</p></li><li><p><strong>2차 침략 (1597)</strong>: 일본의 재침략 시도가 실패.</p></li><li><p><strong>전쟁 종결 (1598)</strong>: 히데요시 사망 후 일본군 철수.</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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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4:59: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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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21한지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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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임진왜란은 <strong><mark>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mark></strong>으로, 일본에서는 분로쿠·게이초의 역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1592년의 첫 번째 침략을 임진왜란, 1597년의 두 번째 침략을 정유재란이라고 따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전쟁은 조선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순신 장군을 비롯한 조선군의 끈질긴 저항으로 견뎌냈고, 민족의 각성과 자기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bsp;</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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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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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5 이광렬</title>
         <author>cgs25144</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4967</link>
         <description><![CDATA[<p>갑자사화</p><p><br/></p><p>사림파가 화를 입었다는 뜻으로 갑자사화는 연산군 특유의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며 사림, 훈구 가릴 것 없이 신하들을 싹 쓸어버린 사건이다.</p><p>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은 급격히 타락하여 결국 사치, 방탕, 독재적인 행보를 이어갔던 연산군 본인도 중종반정으로 인해 비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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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0: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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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22 황태윤</title>
         <author>cgs25243</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5059</link>
         <description><![CDATA[<p>임진왜란</p><p>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명나라 진출을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했습니다. </p><p>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막아냈지만,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 조선은 민족의식을 강화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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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0: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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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1</title>
         <author>cgs2500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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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사건 이름: 국채보상운동</p><p>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부터 1908년 까지 대한제국 국민들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1,300만원의 차관을 갚기 위해 전개된 독립운동이다.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국민들의 독립의식을 고취하고,민족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1907년 2월에 대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전국으로 퍼져나가 많은 이들이 참여하였다.</p><p>국채보상운동의 목표는 일본으로부터 빌린 1,300만 원의 차관을 국민들의 힘으로 갚아 국가의 경제적 주권을 회복하고,독립의지를 다지려는 것이었고,운동방식은 국민들이 단연(담배를 끊는 행위),모금운동 등을 통해 차관 상환에 참여하였다.</p><p>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고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국채보상운동기념도서관 등이 조성되어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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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0: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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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2 구하준</title>
         <author>cgs25012</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6266</link>
         <description><![CDATA[<p>역사적사건: 신라의 삼국통일</p><p>설명: 신라가 당과 나당동맹을 맺어 혼란에 빠진 백제를 멸망시키고 수,당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해지고 내분으로 인해 고구려가 혼란해진 틈을 타 고구려르를 멸망시켰다. 이후 신라까지 지배하려 한 당은 안동도호부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는데 이에 신라는 고구려 유민들과 힘을 합쳐 나당전쟁을 벌여 매소성 전투,기벌포 해전 등에서 대승하여 당군을 한반도에서 축출하여 삼국통일을 이루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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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1: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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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7 임성용</title>
         <author>cgs25185</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8562</link>
         <description><![CDATA[<p>병자호란 </p><p><br/></p><p>1636년 1월, 청군은 한양을 향해 진격하였고, 조선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군을 파병하였으나, 청군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되었습니다. </p><p>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항전을 시도하였으나, 청군의 포위로 인해 47일 만에 항복하게 되었습니다.</p><p>1636년 2월 3일, 인조는 청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전도에서 무릎을 꿇고 항복의 의식을 치렀습니다. 이 장면은 '삼전도의 굴욕'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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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2:2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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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6 김재윤</title>
         <author>cgs25052</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59279</link>
         <description><![CDATA[<p>홍경래의 난 </p><p><br/></p><p>1811년 평안도에서 홍경래가 주도한 농민 반란이다.당시 조선 사회는 세도 정치로 인한 혼란과 지방 차별, 그리고 관료들의 부정부패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홍경래는 이러한 상황에 반발하여 농민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켰으나, 결국 관군의 진압에 실패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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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2: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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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20최승원</title>
         <author>cgs25217</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60199</link>
         <description><![CDATA[<p>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조선(현재의 대한민국과 북한)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정복하려는 야심에서 시작되었으며, 일본군이 한반도 남부를 침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조선은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와 조선군, 의병들의 저항으로 점차 반격에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1598년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전쟁이 끝났고, 조선은 큰 피해를 입었지만, 국민들의 단합과 희생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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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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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8 도성찬</title>
         <author>cgs25075</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61689</link>
         <description><![CDATA[<p>역사적 사건: 4대사화</p><p><br/></p><p> 성리학을 중시한 사림 세력이 정치권에 진출한 뒤 기존의 훈구파와 대립하며 정치적 숙청을 당한 네 번의 큰 사건을 4대 사화라고 부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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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3: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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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2 여시우</title>
         <author>cgs2513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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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임진왜란(1592~1598)</p><p>1592년<strong>  </strong>도요토미가 침략 → 부산진 함락 → 한양 점령→ 이순신의 옥포해전 승리, 조선 수군 반격 시작</p><p><br/></p><p>1593년명나라 군대 참전 → 일본군 한양에서 퇴각</p><p><br/></p><p>1597년일본이 재침공 (정유재란) → 다시 전쟁 발발</p><p><br/></p><p>1598년 도요토미 사망 → 일본군 철수 → 전쟁 종료</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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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4: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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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0713 오상엽</title>
         <author>cgs25133</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62738</link>
         <description><![CDATA[<p>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 조선, 명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맞붙은 대규모 국제전쟁이었다. 대륙침략의 야망을 지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협조를 기대하며 조선에 상륙하였으나 조선군의 저항에 부딪혔다. 명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보내고 조선의 의병, 수군활동에 피해를 입게 된 일본군은 강화교섭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화교섭은 전쟁을 바라보는 서로 간의 입장차만 분명히 했다.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을 침략했고(정유재란) 원하는 전리품을 얻으려 했다. 전쟁은 결국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종결되었다. 조선은 막대한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며 사상적, 사회적,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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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4:1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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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8장우혁</title>
         <author>cgs25190</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62883</link>
         <description><![CDATA[<p>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 조선, 명과 일본이 한반도에서 맞붙은 대규모 국제전쟁이었다. 대륙침략의 야망을 지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협조를 기대하며 조선에 상륙하였으나 조선군의 저항에 부딪혔다. 명이 조선을 구원하기 위해 대규모 병력을 보내고 조선의 의병, 수군활동에 피해를 입게 된 일본군은 강화교섭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강화교섭은 전쟁을 바라보는 서로 간의 입장차만 분명히 했다. 히데요시는 다시 조선을 침략했고(정유재란) 원하는 전리품을 얻으려 했다. 전쟁은 결국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종결되었다. 조선은 막대한 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며 사상적, 사회적, 정치적 전환기를 맞이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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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4: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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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6이윤성</title>
         <author>cgs2516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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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선의 건국은 고려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외적 침입, 그리고 권력 투쟁 속에서 이루어졌다. 고려는 원나라의 간섭과 왜구, 홍건적의 침입으로 국가 체제가 흔들리고 있었으며, 권문세족들의 횡포와 무능한 왕권으로 인해 민심이 이반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인물이 바로 유능한 무장이자 정치가였던 이성계였다. 그는 위화도 회군(1388년)을 통해 요동 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와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후 정몽주 등 고려 충신 세력을 제거하고, 급진 개혁파인 정도전, 조준 등의 지지를 받아 새로운 질서를 구상하였다. 1392년, 이성계는 결국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한양을 수도로 정하고 유교 이념에 기초한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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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4: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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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7 남우현</title>
         <author>cgs2507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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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한글창제</p><p><br></p><p>세종은 일반 민중이 글자 없이 생활하면서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겼다. 그들 민중은 관청에 호소하려 해도 호소할 길이 없었고, 억울한 재판을 받아도 바로잡아 주기를 요구할 도리가 없었으며, 편지를 쓰려고 해도 그 어려운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04">한문</a>을 배울 수가 없었다. 또한, 농사일에 관한 간단한 기록도 할 방법이 없었다.</p><p>세종은 백성들의 이러한 딱한 사정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던 성군으로, 주체성 강한 혁신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한문은 남의 글이므로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928">한자</a>를 빌려 우리말을 적더라도 매우 어색하여 뜻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그 밖의 다른 나라 글자들은 도저히 빌려 쓸 만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였다. 한편 당시의 상황은 새 글자를 만들어 낼 만한 여러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p><p>첫째, 고려 말기 몽고에게 당한 곤욕으로, 그리고 원나라와 명나라의 갈음 시기에 즈음하여, 나라 안에서는 자아 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하였다.</p><p>둘째, 주위의 민족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글자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리는 한자를 빌려 썼는데, 그것으로 우리말을 적는 것은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었다.</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800">정인지</a>의 표현을 빌리면, 한자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법이었던 <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class="btn-detail-line tooltip-contents" href="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4081">이두</a>글[吏讀文]은 “막혀 잘 통하지 않고, 비단 품위가 없고 체계가 없어 상고할 길이 없을 뿐 아니라, 말을 적는 데 있어서는 만에 하나도 제대로 전달하지를 못한다(或澁或窒 非但鄙陋無稽而已 至於言語之間 則不能達其萬一焉).(훈민정음 해례) ”고 하였다. 이처럼 일반 백성의 글자 생활은 극도로 빈곤 상태에 있었다.</p><p>셋째, 세종의 개인적인 역량은 새 글자를 만드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왕은 학문을 좋아하여 성군으로서의 도리를 깊이 체득하였고, 외국 세력에 대하여 우리를 지키려는 주체성이 강했으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민본 정신이 투철했던데다 혁신적인 정책을 수행해 나가는 과감한 성격을 겸비하고 있었다.</p><p>넷째, 집현전에는 세종의 이러한 정책을 도울 만한 많은 학자들이 모여 있었다.</p><p>다섯째, 중국과의 외교 관계를 원만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통역을 길러야 했는데, 그들을 과학적으로 교육시키기 위해서는 중국말의 소리를 체계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 운학을 연구하게 되었는데, 이 운학의 체계는 새 글자를 만들어 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p><p>이러한 상황에서 1443년(세종 25) 음력 12월 세종은 ‘훈민정음’이라는 새 글자를 만들어 냈는데(세종실록과 훈민정음해례의 끝에 실린 정인지의 꼬리글에 따름), 이러한 독창적인 글자를 만든 일은 세계 역사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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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4: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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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3 김대훈</title>
         <author>cgs2501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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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명량대첩(鳴梁大捷)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중 1597년 9월 16일,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 명량 해협에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척 이상의 일본 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해전이다. 한국 역사상 가장 극적인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되며, 국민적 자부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승리한 전투로, 조선 수군의 저력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지휘력, 전술적 통찰, 불굴의 의지가 빛난 전투.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군사·정신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뤄짐. 2014년 영화《명량》이 이 전투를 배경으로 하여 대중적 관심이 다시 높아졌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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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7: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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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4 김민규</title>
         <author>cgs2502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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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공민왕의 개혁정치(영토 회복)</p><p><br/></p><p>원이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는 14세기 중반에 이르러 고려 사회에는 개혁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다. 공민왕은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원 개혁을 추진하였다.</p><p>공민왕은 정동행성을 없애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철령 이북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또, 원의 간섭으로 바뀐 관제를 복구하고, 몽골식 생활 풍습을 금하였다. 이어서 친원파를 숙청하고, 정방을 폐지하여 왕권을 강화하였다. 그리고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불법적인 농장을 없애고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었으며, 농장의 노비들을 양인으로 해방시켰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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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8: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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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9박경남</title>
         <author>cgs2508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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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병인양요</p><p>병인양요는 1866년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침입한 사건이다. 1866년 초 대원군은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프랑스 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천 명을 학살했다(병인박해).  이때 프랑스 선교사 12명 중 9명이 처형되어 한국과 프랑스의 군사적 충돌로 이어졌다. 1차 원정에서 군사정보를 수집한 프랑스 군대는 2차 원정에서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강화부를 점령했다. 이에 조선군은 기병작전으로 강화도를 수복할 계획을 세우고 정족산성에서 프랑스 군대를 격퇴했다. 우리 역사상 최초로 서구 제국주의 침략세력을 격파한 전투로 프랑스가 조선에 보복은 커녕 오히려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박해와 쇄국정책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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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09: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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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05 김민준</title>
         <author>cgs25034</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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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조광조의 개혁과정과 기묘사화</p><p>조광조는 시대를 앞선 개혁가일까? 이상적인 미래만을 꿈꾸던 급진주의자 일까?</p><p>중종반정(1506) 이후 조선 조정에서는 훈구 세력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지만, 동시에 훈구의 부패와 정국 운영의 문제점에 대한 비판 여론도 커졌다. 이에 따라 중종은 훈구 세력을 견제하고 새로운 정치적 균형을 도모하기 위해 유교적 이상 정치를 추구하는 사림을 중용하기 시작했다. 이때 발탁된 인물이 바로 조광조였다. 조광조는 성리학적 이념에 깊이 뿌리내린 유학자로, 이상주의적 성격과 강직한 품성으로 중종의 신임을 받으며 빠르게 승진하였다.</p><p>조광조는 중종의 지원을 바탕으로 다양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현량과 실시였다. 이는 인재를 시험이 아닌 인품과 학문으로 선발하겠다는 유교적 인재 등용 방식으로, 기존의 과거제 중심 인사 시스템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또한 조광조는 훈구 세력의 권력 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해 위훈 삭제를 추진하였다. 이는 중종반정 당시 공을 세운 자들의 훈적을 다시 조사해 거짓된 공훈을 삭제하는 정책으로, 훈구 세력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 외에도 도교 제사 기관인 소격서를 폐지하고, 향약을 전국적으로 보급하여 도덕 정치를 실현하려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유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하였다.</p><p>그러나 조광조의 개혁은 훈구 세력의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훈구는 조광조가 정치 경험이 부족하고, 개혁 추진이 지나치게 급진적이며, 기존 권력 질서를 위협한다고 보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1519년, 이른바 ‘주초위왕(走肖爲王)’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는 “조씨가 왕이 되려 한다”는 글귀가 나돌면서 조광조가 역모를 꾀했다는 훈구 세력의 모함이었으며, 결국 중종은 조광조를 유배하고 그를 따르던 사림 세력을 대거 제거하였다. 이 사건은 기묘사화로 불리며 조광조의 개혁은 이로써 막을 내리게 되었다.</p><p>비록 조광조의 개혁은 훈구의 반발과 기묘사화로 인해 실패로 끝났지만, 그의 개혁은 단순한 정치 실패가 아닌 조선 정치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성리학 이념을 기반으로 한 정치 개혁의 시도는 훗날 사림이 정치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배경이 되었고, 향약과 현량과 같은 제도는 이후 조선 사회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조광조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실패했지만, 조선 유교 정치의 방향성을 제시한 인물로서 역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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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10: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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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0719 정민찬</title>
         <author>cgs25195</author>
         <link>https://padlet.com/cheonggu1/516ujqg2rx1o6qsx/wish/3451878400</link>
         <description><![CDATA[<p>병자호란후 우역전파의 배경과 그영향</p><p><br/></p><p>1636년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의 가축들과 조선의 가축들이 접하면서 우역이라 불리우는 소의 전염병이 조선에 전파되면서 본격적으로 폐사 수가 늘어났다고 추측한다. 농경사회였던 조선에 소의 존재는 단순한 고기 이상의 노동력이었다 이러한 소가 집단으로 폐사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농업생산력 감소에도 영향을 미치고 마침내 최악의 기근인 경신대기근을 심화 시켰다.</p><p>청나라는 대제국이 되는 과정에서 명과의 전쟁을 계속했고 열악한 보건상태로 가축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접촉빈도가 늘었고 정복전쟁으로 가축과 야생동물의 접촉빈도 또한 늘었다</p><p>청나라는 군사훈련의 일환으로 야생동물을 대규모의 군대가 사냥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는데 그과정에서 사람,가축,야생동물간의 만남이 자주일어났다 이는 질병발생의 필요충분조건인 병원균, 숙주, 환경의 3요소를 모두 충족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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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5-15 05:11: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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