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사회 국가 유산 조사하기  by 김형도</title>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link>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4-21 23:44:20 UTC</pubDate>
      <lastBuildDate>2025-04-24 07:47:01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url>
      </image>
      <item>
         <title>부여 금동대향</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03397</link>
         <description><![CDATA[<p>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4㎝,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p><p><br/></p><p>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br><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59948/3036f0d95034209e26d3721e15f5f21b/________.jpg" />
         <pubDate>2025-04-22 01:11: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03397</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05065</link>
         <description><![CDATA[<p>이름:훈민정음</p><p>시대:조선 세종 28년(1446)</p><p>설명:이 책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 28년(1446)에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나, 앞 2장은 1940년경에 복원된 부분이다.<br><br>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br><br>『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9/%ED%9B%88%EB%AF%BC%EC%A0%95%EC%9D%8C_%ED%95%B4%EB%A1%80%EB%B3%B8_%281%29.jpg" />
         <pubDate>2025-04-22 01:11:5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05065</guid>
      </item>
      <item>
         <title>진흥왕 순수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2793</link>
         <description><![CDATA[<p>이름:진흥왕 순수비</p><p>시대:신라 진흥왕대                                                                                  위치:서울 북한산                                                                         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br><br>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p><p><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elvis.padletcdn.com/1/fetch/e_in/cdn2.picryl.com/photo/0553/12/31/wikimedia-291f3e-1024.jpg" />
         <pubDate>2025-04-22 01:14:3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2793</guid>
      </item>
      <item>
         <title>첨성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431</link>
         <description><![CDATA[<p>이름:첨성대</p><p>시대:신라시대</p><p>소재지: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ㅡ 1번지</p><p>설명: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br><br>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br><br>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br><br>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68511/41c6f3df0a5dad1ac99968794070d48f/__________________2015____1_.JPG" />
         <pubDate>2025-04-22 01:16: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431</guid>
      </item>
      <item>
         <title>훈민정음</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713</link>
         <description><![CDATA[<p>이 책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을 왕의 명령으로 정인지 등 집현전 학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종 28년(1446)에 만든 한문해설서이다. 책이름을 글자이름인 훈민정음과 똑같이 ‘훈민정음’이라고도 하고, 해례가 붙어 있어서 ‘훈민정음 해례본’또는 ‘훈민정음 원본’이라고도 한다. 전권 33장 1책의 목판본이나, 앞 2장은 1940년경에 복원된 부분이다.<br><br>구성을 보면 총 33장 3부로 나누어, 제1부는 훈민정음의 본문을 4장 7면으로 하여 면마다 7행 11자씩, 제2부는 훈민정음해례를 26장 51면 3행으로 하여 면마다 8행 13자씩, 제3부는 정인지의 서문을 3장 6면에 1자 내려싣고, 그 끝에 ‘정통 11년’(1446)이라 명시하고 있다.<br><br>『세종실록』에 의하면 훈민정음은 세종 25년(1443)에 왕이 직접 만들었으며,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책에서 서문과 함께 정인지가 근작(謹作)하였다는 해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한글의 제작원리도 확연하게 드러났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95932/9b0f93f34c0a74c318e0322e6bbcef0c/image.png" />
         <pubDate>2025-04-22 01:17:0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713</guid>
      </item>
      <item>
         <title>경주첨성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965</link>
         <description><![CDATA[<p>ㄹ허ㅗㅓ휵다휴ㅕㅏ규4폇ㅎ54ㅕㅑㅏㅛ혀54ㅑㅅ</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96790/898b39e9111fe9736276544a1d1b4464/______.jpg" />
         <pubDate>2025-04-22 01:17:0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19965</guid>
      </item>
      <item>
         <title>창덕궁 대조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0062</link>
         <description><![CDATA[<p>관리자: 국가유산청 창덕궁관리소</p><p>시대:조선 고동 4년(1867)</p><p>소재지:서울 종로구 율곡로 99,창덕궁(왕룡동)</p><p>지정일:1985.01.08</p><p>설명: 대조전은 왕비가 거처하는 내전 중 가장 으뜸가는 건물이다. 이 건물에서 조선 제9대 왕인 성종을 비롯하여 인조·효종이 죽었고, 순조의 세자로 뒤에 왕으로 추존된 익종이 태어나기도 하였다.<br>조선 태종 5년(1405)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를 비롯하여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불이 나서 다시 지었다. 1917년 또 화재를 당하여 불에 탄 것을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을 헐고 그 부재로 이곳에 옮겨지어 ‘대조전’이란 현판을 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차례에 걸쳐 다시 지었기 때문에, 건물 자체는 물론 주변의 부속 건물들도 많은 변화를 거쳤다.<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59211/5b4574ef87d883615797fb80d516de0c/____________31_.jpg" />
         <pubDate>2025-04-22 01:17:0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0062</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0911</link>
         <description><![CDATA[<p>이름:이순신 장검</p><p>시대:조선시대(1594)</p><p>설명:</p><p>‘이순신 장검’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된 도검으로 길이가 약 2m에 달하며 크기와 형태가 거의 같은 한 쌍이 각각 칼집을 갖추고 있다. 칼자루는 나무에 어피를 감싸고 붉은 칠을 하였으며, 일부분만 직사각형의 금속판을 댄 후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고 끈 위에 검은 칠을 하여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였다. 외날의 칼날은 칼등 방향으로 조금 휘어 있으며, 칼날의 단면은 칼날의 위쪽과 아래쪽의 각도를 보았을 때 가장 보편적인 육각도(六角刀) 단면을 보이고 있다. 칼날 위쪽 부분에는 이순신이 직접 지은 시구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과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기록은 『이충무공전서』(1795)의 기록과 일치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칼집에는 패용할 수 있도록 가죽끈을 매달았다. <br><br>이 도검은 슴베에 제작시기와 제작자 기록이 새겨져 있다. 슴베는 칼자루 속에 박히는 뾰족하고 긴 부분으로 칼자루와 칼날의 결합을 위해 필요한 부분인데 일제강점기의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두 자루 모두 슴베에 ‘갑오사월일조태귀련이무생작(甲午四月日造太貴連李茂生作, 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이라는 동일한 내용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음을 알 수 있다. <br><br>‘이순신 장검’은 조선시대 군용 도검 형식이며 전통적인 조선식 환도에 해당한다. 나무틀 위에 어피를 감고 주칠을 한 칼자루, 손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기를 만들어 칼자루 표면에 부착한 금속판, 은입사기법으로 장식한 전통무늬, 칼날에 새긴 명문과 물결무늬, 칼집의 패용 장식과 가죽끈, 칼집 상단의 테두리와 하단의 마개 등은 조선의 도검에서 보이는 전통적인 양식들이다. 여기에 당시 도검 제조기술이 발달한 일본 도검의 요소가 도입되어 적용되었는데 슴베와 칼자루를 결합했을 때 구멍을 맞추고 못을 끼워 고정하기 위한 목정혈(目釘穴), 칼자루를 단단하게 쥘 수 있도록 가죽끈을 X자로 교차해 감은 방식, 칼날이 휘어진 곡률이나 혈조(血漕, 피홈)를 넣는 방식 등이 그것이다. <br><br>‘이순신 장검’은 다음의 이유에서 국가지정문화유산(국보)으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다. 첫째, 『이충무공전서』의 기록과 일치하는 칼날에 새겨진 시구를 통해 충무공 이순신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유물로 가치가 탁월하다. 둘째, 칼자루 속 슴베에 1594년 태귀련, 이무생이 제작했다는 명문이 남아 있어 제작연대와 제작자가 분명하다. 셋째, 군사사 분야에 있어서도 조선 도검의 전통 제작기법에 일본의 제작기법이 유입되어 적용된 양상을 밝힐 수 있으므로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넷째, 칼날의 예리함과 견고함, 칼날에 새긴 명문 및 물결무늬 선각장식의 기술성, 칼자루 칼집의 테와 고리를 장식한 은입사기법, 가죽･금속･칠 등 다양한 전통공예의 조화로운 활용, 세련된 균형미와 조형감각 등 제작기술과 예술성 역시 우수하고 완성도가 높다. 마지막으로, 제작연대가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p><p><strong>내레이션</strong></p><ul><li><p><br/></p></li></ul><p><strong>이미지</strong></p><ul><li><p><br></p></li></u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live.staticflickr.com/941/41920173210_3e78f99b0c_b.jpg" />
         <pubDate>2025-04-22 01:17: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091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1366</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elvis.padletcdn.com/1/fetch/e_in/images.pexels.com/photos/28460728/pexels-photo-28460728.jpeg" />
         <pubDate>2025-04-22 01:17:3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1366</guid>
      </item>
      <item>
         <title>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1998</link>
         <description><![CDATA[<p>석등은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 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을 이루는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br><br>이 석등은 큼직한 연꽃이 둘러진 아래받침돌 위로 가운데기둥 대신 쌍사자를 조각한 것이 특징이다. 두 마리의 사자는 뒷발로 버티고 서서 가슴을 맞대어 위를 받치고 있는 모습으로, 사실적이면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주목된다. 8각의 화사석에는 4개의 창이 뚫려 있고, 지붕돌은 여덟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이 아름답게 표현되었다.<br><br>장식이 번잡하지 않아 간결하면서도 사실적인 수법이 돋보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그다지 크지 않으면서도 뛰어난 조각기법과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걸작이라 하겠다. 원래는 중흥산성내에 있었으나, 일본인이 무단으로 반출하려 하여 경복궁으로 옮겨 놓았다가 지금은 국립광주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61096/764f681446200db50b6e1d0d0a8528c0/image.png" />
         <pubDate>2025-04-22 01:17:5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1998</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5357</link>
         <description><![CDATA[<p>이름 : 황현초상 및 사진</p><p>시대 : 1911년</p><p>위치:광주 광역시 광산구</p><p><br></p><p>大韓帝國期 전후 최고의 초상화가로 일컬어지는 石芝 蔡龍臣(1850-1941)이 그린 韓末의 대표적인 文人이자 우국지사인 梅泉 黃玹(1855-1910)의 초상화이다. 이 초상화는 황현이 자결한 다음해인 1911년 5월에 일찍이 황현이 1909년 天然堂 寫眞館에서 찍어두었던 寫眞을 보고 追寫한 것이다. 死後에 寫眞을 보고 追寫한 것이지만, 실제 인물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만큼 매우 뛰어난 사실적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p><p><br></p><p><br></p><p> </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81849/ddf57c98931fba891d22790fbea8ee69/image.png" />
         <pubDate>2025-04-22 01:19: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5357</guid>
      </item>
      <item>
         <title>경주 첨성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5548</link>
         <description><![CDATA[<p>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정(井)자형의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으로 높이는 약9m이다.<br><br>원통부는 부채꼴 모양의 돌로 27단을 쌓아 올렸으며, 매끄럽게 잘 다듬어진 외부에 비해 내부는 돌의 뒷뿌리가 삐죽삐죽 나와 벽면이 고르지 않다. 남동쪽으로 난 창을 중심으로 아래쪽은 막돌로 채워져 있고 위쪽은 정상까지 뚫려서 속이 비어 있다. 동쪽 절반이 판돌로 막혀있는 정상부는 정(井)자 모양으로 맞물린 길다란 석재의 끝이 바깥까지 뚫고 나와있다. 이런 모습은 19∼20단, 25∼26단에서도 발견되는데 내부에서 사다리를 걸치기에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옛 기록에 의하면, “사람이 가운데로 해서 올라가게 되어있다”라고 하였는데, 바깥쪽에 사다리를 놓고 창을 통해 안으로 들어간 후 사다리를 이용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br><br>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 시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관측 결과에 따라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고대국가에서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찍부터 국가의 큰 관심사가 되었으며, 이는 첨성대 건립의 좋은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br><br>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추측되며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그 가치가 높으며, 당시의 높은 과학 수준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65349/304de1dce0952c73be5ad23bdfa264d6/2021032415274701.JPG" />
         <pubDate>2025-04-22 01:19:1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5548</guid>
      </item>
      <item>
         <title>청자 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 매병 및 죽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7386</link>
         <description><![CDATA[<p><br>. 상하 종속문으로 뇌문과 연판문을 상감하고 주제문으로 몸체 가운데 흑백 상감으로 된 능화형 창 안에 다양한 문양 조합을 표현하였다. 문양 조합은 세 종류로 먼저 버드나무와 수금, 새가 나무 위에 앉아 있는 형식, 대나무나 갈대와 수금의 형식과 마지막으로 닥꽃이나 모란, 혹은 국화에 수금과 나방을 결합하는 형식이다. 이런 과형 매병의 성형 방식과 다양한 문양 조합은 13세기 이후의 새로운 변화로 고려청자의 장식성이 더욱 심화되는 증표로 삼을 수 있다. 유색은 유약이 골고루 녹지 않아 선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고 일부 유약의 핀 홀 현상과 뭉침 현상이 보인다.<br><br>제작시기는 과형의 형태와 문양 조합, 상감 기법의 다양한 사용, 유색의 변화 등으로 미루어 당연히 음각매병과는 편차가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출토된 유물이므로 확정할 수는 없다. 역으로 13세기를 전후해서 고려청자의 다양한 기형과 장식이 공존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br><br>죽찰에는 ‘준(樽)’이라는 기명의 명칭과 내용물이 기재되어 있어 고려시대 매병의 표기와 참기름을 담았던 매병의 당시 용도를 알 수 있게 하는 시대성과 희소성을 지니고 있다. 상감매병과 함께 출토된 죽찰은 ‘ 〉〈’ 모양의 홈을 경계로 머리와 몸통으로 구분할 수 있다. 홈은 죽찰을 매병에 매달기 위해 판 것이다. 머리 상단을 ‘∧’ 모양으로 다듬어 마치 꽃봉오리 같다. 앞면과 뒷면 모두 글자가 있으며, 앞면은 8자, 뒷면은 6자 총 14자다. 앞면에는 “중방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가 적혀 있는데 수취인을 적은 것이다. 뒷면에는 “택상진성준봉(宅上眞盛樽封)”이라고 쓰여 있어 준(樽)에 참기름을 담아 올린다는 내용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57911/ca5b78944fb84c757690328d0d7bd382/image.png" />
         <pubDate>2025-04-22 01:19:5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27386</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1521</link>
         <description><![CDATA[<p>ㅁㄴㅇㄹ호ㅓㅏㅣ;ㅂㅈㄷㄱ쇼ㅕㅑㅐㅔㅋㅌㅊ퓨ㅜㅡ,./</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get.pxhere.com/photo/building-monument-travel-tower-landmark-place-of-worship-religious-temple-india-pagoda-wat-karnataka-archaeological-site-unesco-world-heritage-site-hindu-temple-hampi-historic-site-unesco-site-virupaksha-temple-1120676.jpg" />
         <pubDate>2025-04-22 01:21: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1521</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2316</link>
         <description><![CDATA[<p>이름: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p><p>시대:통일신라시대</p><p>설명: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br><br>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 줄로 돌려진 연꽃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기며, 현재 남아있는 사자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elvis.padletcdn.com/1/fetch/e_in/cdn2.picryl.com/photo/2009/11/03/pd-south_korea-07bbb2-1024.jpg" />
         <pubDate>2025-04-22 01:21:3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2316</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7630</link>
         <description><![CDATA[<p>이름: 무양서원</p><p>설명무양서원</p><p><br/></p><p>설명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 어의(御醫)이면서 명신인 장경공 최사전을 중심으로 그의 후손 4명(손암 최윤덕, 금남 최부, 문절공 유희춘, 충열공 나덕헌)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br><br>최사전은 의술로써 벼슬에 나갔는데 왕의 총애를 받아 높은 벼슬에 오른 사람이다.<br><br>무양서원은 1927년에 탐진 최씨 문중이 전국 유림의 호응을 얻어서 세운 서원이다. 서원의 이름은 광주의 옛 지명에서 따 왔다고 하는데, 강당인 이택당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합의문과 합인문이 있다.<br><br>합의문을 지나면 오른편에 동재인 성지재가 있고 왼편에는 서재인 낙호재가 있다. 또한 높은 땅 위에 담장이 있는 무양사가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사당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br><br>원래 서원은 제사 기능과 교육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탐진 최씨 문중에서는 1945년 광산구 쌍암동에 무양중학교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교육기관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732603/9adf4dea05b011250729db16130fe8cf/____.jpg" />
         <pubDate>2025-04-22 01:23:1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7630</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8841</link>
         <description><![CDATA[<p>제주도</p><p>1940년</p><p>해당 불화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1940년 10월 17일 금용 일섭(金蓉 日燮) 스님의 주관 아래 우일 등 5명의 화승(畵僧)이 대흥사의 제주 성내포교당의 후불탱으로 조성 ․ 봉안된 불화임. 특히 일섭스님의 자필기록인 &lt;연보(年譜)&gt;에도 해당 작업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해당 불화의 초본이 김제 부용사에 남아있음.<br><br>❍ 가로로 긴 화면의 불화 상단 중앙에는 설법인을 취한 여래를 중심으로 2명의 보살과 10명의 제자들이 좌우에 협시하고 있으며, 화면의 오른쪽에는 백의의 관음보살과 16나한이, 왼쪽에는 지장보살과 시왕이 표현됨. 또한 그 하단에는 일원상(一圓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극락으로 가는 반야용선(般若龍船)이, 왼쪽에는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그려져 있음.<br><br>❍ 요컨대 해당 불화는 조성연대, 봉안장소, 제작자 등이 명확하게 기록된 근대기 불화로, 초본이 현존하고 있는 작품이자, 근대불교회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도 등록문화유산적 가치가 있음.</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86302/afd8f19588811963b3638e9ddc7db33d/__________.jpg" />
         <pubDate>2025-04-22 01:23: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38841</guid>
      </item>
      <item>
         <title>청자 어룡형 주전자</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1986</link>
         <description><![CDATA[<p><br/></p><p><strong>국가유산 담당부서 : 문화유산정책과 - 상세문의</strong></p><ul><li><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amp;region=2&amp;searchCondition=&amp;searchCondition2=&amp;s_kdcd=11&amp;s_ctcd=11&amp;ccbaKdcd=11&amp;ccbaAsno=00610000&amp;ccbaCtcd=11&amp;ccbaCpno=1111100610000&amp;ccbaCndt=&amp;ccbaLcto=00&amp;stCcbaAsno=&amp;endCcbaAsno=&amp;stCcbaAsdt=&amp;endCcbaAsdt=&amp;ccbaPcd1=&amp;chGubun=&amp;header=region&amp;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mp;pageNo=1_1_3_1&amp;sngl=Y#tab2"><strong>국가유산 설명</strong></a></p></li></ul><p><strong>국가유산 설명</strong></p><p>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주전자로 높이 24.4cm, 밑지름 10.3cm이다.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한 상형의 청자 주전자이다.<br><br>물을 따르는 부리는 용의 머리모양이고, 이빨과 지느러미, 꼬리 끝에는 백토(白土)를 발랐다. 얼굴의 털이나 지느러미들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주전자 몸체에는 비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중앙부에는 앞뒤로 커다란 갈퀴모양의 옆지느러미가 묘사되었다. 손잡이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주전자의 몸체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본떠서 만들었다.<br><br>전체적인 형태를 보면 기이하면서도 각 부위를 갖춘 한 마리의 상상의 동물모습을 하고 있다. 비취빛의 유약색과 더불어 지느러미와 꽃무늬에 나타난 세밀한 음각 표현은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주전자는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 중에서도 매우 기발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p><p><strong>국가유산 담당부서 : 문화유산정책과 - 상세문의</strong></p><ul><li><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https://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amp;region=2&amp;searchCondition=&amp;searchCondition2=&amp;s_kdcd=11&amp;s_ctcd=11&amp;ccbaKdcd=11&amp;ccbaAsno=00610000&amp;ccbaCtcd=11&amp;ccbaCpno=1111100610000&amp;ccbaCndt=&amp;ccbaLcto=00&amp;stCcbaAsno=&amp;endCcbaAsno=&amp;stCcbaAsdt=&amp;endCcbaAsdt=&amp;ccbaPcd1=&amp;chGubun=&amp;header=region&amp;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RegionList.do&amp;pageNo=1_1_3_1&amp;sngl=Y#tab2"><strong>국가유산 설명</strong></a></p></li></ul><p><strong>국가유산 설명</strong></p><p>고려 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청자주전자로 높이 24.4cm, 밑지름 10.3cm이다.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을 가진 특이한 형태의 동물을 형상화한 상형의 청자 주전자이다.<br><br>물을 따르는 부리는 용의 머리모양이고, 이빨과 지느러미, 꼬리 끝에는 백토(白土)를 발랐다. 얼굴의 털이나 지느러미들을 매우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주전자 몸체에는 비늘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중앙부에는 앞뒤로 커다란 갈퀴모양의 옆지느러미가 묘사되었다. 손잡이는 연꽃줄기 모양으로 주전자의 몸체 위로 자연스럽게 늘어져 있고, 뚜껑은 물고기의 꼬리부분을 본떠서 만들었다.<br><br>전체적인 형태를 보면 기이하면서도 각 부위를 갖춘 한 마리의 상상의 동물모습을 하고 있다. 비취빛의 유약색과 더불어 지느러미와 꽃무늬에 나타난 세밀한 음각 표현은 능숙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주전자는 상서로운 동물이나 식물을 모방해서 만든 상형청자 중에서도 매우 기발함을 보여주는 작품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64412/ca978e5851916892e965098a84267942/_____________12__________.jpg" />
         <pubDate>2025-04-22 01:25: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1986</guid>
      </item>
      <item>
         <title>창경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2693</link>
         <description><![CDATA[<p>이름: 창경궁</p><p><br></p><p>위치:서울 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p><p><br></p><p>시대:조선세종 즉위년</p><p><br></p><p>창경궁은 1418년 조선3대 태종이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준 후 생활하러 수강궁이 있었던 자리에 지어진 조선시대 궁궐입니다. 왕조의 상징이었던 창경궁은 1907년부터 일제에 의해 훼손되어  전각 대부분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1911년에는 궁의 이름 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74392/f2794f1953678fdcac092ba099090a9c/___.jpg" />
         <pubDate>2025-04-22 01:25: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2693</guid>
      </item>
      <item>
         <title>진흥왕 순수비</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5774</link>
         <description><![CDATA[<p>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br><br>비의 형태는 직사각형의 다듬어진 돌을 사용하였으며,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윗부분이 일부 없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비몸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이며, 비에 쓰여져 있는 글은 모두 12행으로 행마다 32자가 해서체로 새겨져 있다. 내용으로는 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까닭 등이 기록되어 있는데, 대부분이 진흥왕의 영토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br><br>비의 건립연대는 비문에 새겨진 연호가 닳아 없어져 확실하지 않으나,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가 건립된 진흥왕 22년(561)과 황초령비가 세워진 진흥왕 29년(568) 사이에 세워졌거나 그 이후로 짐작하고 있다.<br><br>조선 순조 16년(1816)에 추사 김정희가 발견하고 판독하여 세상에 알려졌으며, 비에 새겨진 당시의 역사적 사실 등은 삼국시대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732468/2a6aedb4551161bf367373c849cae369/image.png" />
         <pubDate>2025-04-22 01:26: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5774</guid>
      </item>
      <item>
         <title>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314</link>
         <description><![CDATA[<p>이름 <strong>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시대 </strong>고려시대                                                        <br>위치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                                                                                       고려시대에 제작된 높이 31.6㎝의 철회청자병으로 긴 통모양의 병 앞뒤에 한 그루씩의 버드나무를 붉은 흙으로 그려 넣은 소박한 병이다.<br><br></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65104/c2027d61b2a6089bb3e56bcbfc767825/2021093014142900.jpg" />
         <pubDate>2025-04-22 01:27: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314</guid>
      </item>
      <item>
         <title>광주 지상동 오층석탑</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540</link>
         <description><![CDATA[<p>광주시내에 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2기의 탑 가운데 동쪽에 위치한 것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 탑이 서있는 부근은 백주사(栢州寺)터로 알려져 있기도 하나 추정할 만한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br><br>탑의 구성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형태로 신라석탑의 기본형을 잃지 않고 있다. 탑의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는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구성하였으며,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다. 특히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1층은 5단인데 비해 2층부터는 4단으로 간략화되어, 양식상 만들어진 시대가 통일신라 후기로 내려옴을 알 수 있다.<br><br>1955년 해체, 수리할 때 4층 지붕돌 윗면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1961년에 다시 수리를 하여 일부 석재를 보완하였다. 광주 전남지방에 남아있는 몇 안되는 5층석탑 가운데서도 우수한 통일신라 후기의 석탑이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736865/7b68c19492ee7e1a8b2077230efe0fad/image.png" />
         <pubDate>2025-04-22 01:27:1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540</guid>
      </item>
      <item>
         <title>천연기념물 장성 백양사 고불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877</link>
         <description><![CDATA[<p>봄이 오는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매화가 있는 백양사로 향했습니다. 1700년경부터 옛 백양사 앞뜰에다 여러그루의 매화나무를 심고 가꾸어왔는데, 1863년 새로 백양사를 지으며 홍매와 백매 한그루씩 옮겨 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백매는 죽었고, 지금의 홍매만 살아남았습니다. 1947년 부처님의 원래의 가르침을 기리자는 뜻으로 백양사 고불총림을 결정하면서 고불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르게 된 나무입니다. </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734878/fd57a060b9b33e117c344be5a84e9fc3/CHP_202503070222260010_thumb.jpg" />
         <pubDate>2025-04-22 01:27: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6877</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9083</link>
         <description><![CDATA[<p>이름:영광 신천리 삼청석탑</p><p>시대:고려시대</p><p>위치:전남 영광군 묘량면 신천1226</p><p><br/></p><p>설명: 이흥사(利興寺)의 옛터에 남아있는 3층 석탑이다. 이흥사의 창건시기와 규모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인 18세기경까지 그 맥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br><br>석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받침돌만 남아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다른 돌로 조성되었으며, 지붕돌은 두텁고 낙수면은 경사가 급하다.<br><br>1995년 탑을 해체, 보수할 때 땅 속에 묻혀있던 아래층 기단이 지상으로 드러나면서 본래의 모습을 찾게 되었다.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기단에 새겨진 가운데기둥의 수가 아래층에 2개, 위층에 1개로 되어 있어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p>]]></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3724676194/2d6d182481eeb1a85ca573481301e2a2/______________.jpg" />
         <pubDate>2025-04-22 01:28:1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kim020580/3oot2j7xau45h153/wish/3418449083</guid>
      </item>
   </channel>
</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