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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8반] 4.19 혁명 타임라인_4,5,6모둠 by 신민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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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5-09-16 08:48: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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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경 1] 이승만 정부의 헌법 수정</title>
         <author>iloveJACK_LUKA_ONYU_OIKAWA_DOCKJA</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12041</link>
         <description><![CDATA[<p>1954년, 이승만에 의해 헌법은 위에 나와 있는 내용으로 수정 됐다. <mark>헌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국회 구성원의 출석수가 미달이 되자, 집권 세력이 '사사오입(반올림)'의 논리를 내세워 출석수를 채운 셈이 되어 개정안을 통과시켰다.</mark></p><p>즉, 이승만은 막무가내로 헌법을 개정시킴으로 계속해서 연임을 할 수 있게 된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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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03: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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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경 2] 2.28 시위 후</title>
         <author>iloveJACK_LUKA_ONYU_OIKAWA_DOCKJA</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25446</link>
         <description><![CDATA[<p><br></p><p>당시 자유당 정권은 3·15 정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규모 부정 선거를 기획하고 있었다.</p><p>학원의 자유가 억압받고, 학생들의 집회·결사의 자유가 제한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불만이 고조되었다.</p><p>3월 8일: 대전고등학교 학생 약 1,000명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독재 타도”, “학원의 자유 보장”을 외치며 시위 전개. 시민들의 호응과 지지를 얻음.</p><p>3월 9일: 경찰은 학생대표 24명을 연행·구속.</p><p>3월 10일: 학생 약 600명이 자유당 선거 전략을 규탄하고 구속 학생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 전개.</p><p>시위는 대전고 교장과 학생들이 경찰의 요구에 따라 “다시는 시위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구속 학생들이 석방되면서 마무리됨.</p><p>결과와 의의</p><p>직접적 결과: 지역 학생들의 자발적 민주화 운동으로서, 정권의 부정 선거를 비판한 최초의 대규모 행동이었다, 이후 마산 3·15의거와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불씨가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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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09: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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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28 민주운동</title>
         <author>jnumt25015</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43297</link>
         <description><![CDATA[<p>28일 <mark>일요일로 예정된 이승만의 경쟁당인 민주당 선거유세에는 정치에 민감한 고등학생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일제히 학교에 등교시킬 것을 지시했다. </mark>이승만이 소속되어 있는 자유당의 요구에 따라 일요일인 2월 28일, 대구의 고등학교들은 각기 급하게 정해진 명목에 따라 학생들에게 일요일 등교 지시를 내렸다. <mark>학생들은 일요일의 등교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 800여 명이 교문을 박차고 나가,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 “학원의 자유를 달라”, “학원을 정치 도구화하지 말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구 시내 중심가로 달려나갔다.</mark></p><p>이 사건은 신문에 보도되며 학생 운동을 전국적으로 촉발한 계기가 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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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17: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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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15부정선거</title>
         <author>jnumt25015</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44673</link>
         <description><![CDATA[<p>자유당 이승만은 4대 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 이기붕과 함께 출마했다. 대통령 선거 분위기는 자유당 쪽으로 흘렀다.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대선 직전 사망하고 만 것이다. 단독 후보가 된 이승만의 당선은 확실하게 되는 분위기였지만, 문제는 부통령 선거였다. 당시 이승만의 나이는 86세로 사후를 대비할 인물이 필요했는데 당시에는 부통령이 대통령의 권한을 이어받았다. 즉, 자유당이 부통령까지 차지한다면 이승만 사후에도 자유당이 대통령 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장면에게 패배한 것이 문제였다. 이에 정부는 부정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p><p>기록에 따르면 민주당 참관인의 투표소 입장과 참관을 방해했고, 투표 시작 시간 전에 새벽부터 진행된 사전 투표, 한 기표소에 3명이 함께 들어가는 3인조 공개 투표, 대리 투표와 무더기 투표까지 부정 선거를 치렀다.</p><p>3.15 부정 선거는 결국 믿을 수 없는 득표수로 이어졌다. 최종 집계에서는 이승만이 88.7%, 이기붕이 79%를 득표한 것으로 발표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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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18:3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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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김주열 학생 시신 발견 </title>
         <author>jnumt25015</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45811</link>
         <description><![CDATA[<p>김주열 열사는 얼굴에 최류탄을 맞고 쓰려졌다. 하지만 박종표 경위는 위쪽 지시를 받고 김주열 열사의 시신에 돌을 매달고 바다에 던졌다. 실종 몇주뒤에 시신이 발견됨 이 사건으로 시위는 더 거세졌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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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19: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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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대생 200여명 부상</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02954961</link>
         <description><![CDATA[<p>4월 18일, 대학들이 밀집해 있는 서울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처음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들은 국회의사당 앞에 1000여 명이 집결했다. 고려대 학생들은 시위 중 연행된 친구들을 석방하고 이승만 대통령이 나와 부정 선거에 대해 해명할 것을 요구했다. 7시, 집으로 돌아가려던 고려대 학생들에게 정치깡패 60~70명이 흉기를 들고 덮쳤다. 이 피습으로 약 50명의 학생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p><p>이 소식은 이튿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이는 4.19 혁명을 실행하게 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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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25 02:2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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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혁명의 시작</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11126342</link>
         <description><![CDATA[<p>1960년 4월 18일 서울 대광고 학생들은 고려대학생시위를 목격하고 곧바로 그날 밤 시위를 계획했다. 다음 날 4월 19일 오전, 학생들은 교문을 나와 동대문으로 가두행진을 했다. 종로에서 경찰에 저지당한 대광고 학생들은 대열을 이루어 행진했다. 당시 서울대 학생들도 4월 초부터 시위를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전날 테러 소식을 듣고 시위 계획을 앞당겨 4월 19일 오전, 대거 시위에 나섰다. 대광고 시위대는 물론 주변의 동성고 학생들도 4.19 시위에 참가했다. 시위대는 국회의사당을 향해 대열을 이루어 행진을 벌였다. 오전 11시 30분, 국회의사당에 집결한 학생과 시민은 1만 명을 넘었다. 오후 1시 20분, 시위대가 경무대 앞의 마지막 바리케이드를 돌파하자 경찰은 경무대 입구에 집결해 있던 시위 학생들을 향해 실탄을 난사했고 그 결과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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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10:32: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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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많은 사람들이,</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11164542</link>
         <description><![CDATA[<p>오후 5시부터 경찰은 거리에 2대의 장갑차를 앞세우고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사격에 나섰다. 이때의 무차별 사격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목숨을 잃었다. 얼마 뒤, 소방차와 트럭에 탄 시위대가 동대문경찰서 앞을 지나가자 경찰서 안에서는 사격을 가해 약 10명의 사상자를 냈다. 다른 시위대는 성북경찰서<strong> </strong>앞에서 6명이 희생되었다. 이날 서울의 시위대 소탕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은 4월 21일까지 총 104명이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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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11:01: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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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많은 지역에서, </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11178707</link>
         <description><![CDATA[<p>시위는 서울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다.</p><p>1. 부산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부산 금성고 학생들의 시위를 시작으로 부산공고 2천여 명이 시위에 나섰다. 그 이후로도 아주 많은 학교들이 합세해 범일동 자성대파출소 앞까지 진출했다. 경찰들은 3000여명을 향해 집단 발포를 했고 이로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p><p>2. 광주에서도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다. 광주에서도 많은 학교들이 합세해 약 5000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로 광주에서는 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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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11:12: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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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19의 끝</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11192868</link>
         <description><![CDATA[<p>4월 26일 오전 10시 30분, 중대 발표를 예보했던 라디오 방송에서 이승만의 하야 성명이 발표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전해지자 서울 도심지는 시민들의 환호성과 만세 소리로 가득했다. 이승만은 5월 29일, 김포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망명길에 올랐다. 이승만은 그 후 하와이에서 1965년 만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p><p>4월혁명 모든 기간 동안 전국적으로 186명이 사망했고 6026명이 부상을 당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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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11:24: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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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19 이후로는...</title>
         <author>m27d251220</author>
         <link>https://padlet.com/jnums/36dm3koa1e9evqxn/wish/3611202646</link>
         <description><![CDATA[<p>국회는 1960년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실행하고 새 헌법에 따라 7월 29일 총선거를 실시했다. 7.29총선에서는 대통령에 윤보선을, 국무총리에 장면을 선출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였다.</p><p><br></p><p>*내각책임제: 의회의 취임에 따라 행정부가 성립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정치 제도 (보충: 대통령이 중심이 되어 행정부가 조직되는 것과 달리 국회에서 선출한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어 행정부를 조직하는 것 / 대통령 중심제에서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함)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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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30 11:32: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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