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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도(2월 16일) by Sun Ju Moo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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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김흥수 안교성 엮음, 『잊혀진 우리 이야기, 아시아 기독교 역사』, 147-64.</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01-30 03:35: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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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권민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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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7: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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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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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8: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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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학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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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8: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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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배용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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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8: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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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현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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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8: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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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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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9: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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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하섭</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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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9: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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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계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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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9: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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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동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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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39: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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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상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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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4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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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승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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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40: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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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강영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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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목할 내용<br><br>궁금한 점<br>1 유럽에서 흘러들어온 기독교가 아시아(중국, 일본, 인도)로 넘어오면서 토착화(혹은 적응화)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 인도의 선교 역시 유럽에서 행했던 모습의 변용을 필요로 했다. 그렇지만 현지 적응주의적 전략은 본부(유럽)와의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고, 현지에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지원이 줄어들었을까...) 결국 기독교 선교의 쇠퇴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되어 있는데...&nbsp;<br><br>복음이 각 나라별 지역적 맥락으로 들어올 때, 어떤 요소들은 변질되지 않고 날 것 그대로 있어야하고, 어떤 요소들은 현지 맥락에 맞게 변화되어야 하는 것일까... 아시아 여러 나라들의 기독교사를 읽으며 공통적인 의문이 생긴다...(어렵다... ㅠㅠ)&nbsp;<br><br>2 인도는 비폭력 저항으로 식민지배를 받는 약자에서 벗어나, 2세기 만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되었다. 독립 이후 모든 것이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게 되었는데 여성 문제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 차별, 억압 등) 인도 전체가 영국에 반하여 우리라는 공통의 감정을 가지고 비폭력으로 저항했을 때는 인도는 하나의 나라(공동체)였는데, 상대적으로 인도내에서 힘을 가진 남성(과거 식민 지배의 영국처럼)들은 약자인 여성들을 다시 남성으로부터 분리해 여성의 인권에 대해서는 과거 식민 지배를 했던 영국과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800년간 식민지배를 받았던 인도가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남성의 지배를 받았던 여성들의 모습은 왜 볼 수 없었던 것일까...?  &nbsp;<br><br></div><div><br><br></div><div><br><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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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40: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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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진용</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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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목할 내용<br>18세기초 트란케바르 선교의 시사점<br>1)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에 큰 노력<br>2)현지어와 문화의 습득/성경번역에 집중<br>3)현지선교는 현지에서 관장되어야 한다<br>4)사역초기부터 현지인을 양육하여 동역자로 삼음<br>5)교회내에서는 카스트의 구분을 제한함<br><br>궁금한 점<br>1.인도의 경우 도마교회의 전승이 지속되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고 다른 개신교 교단에서는 도마 교회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br>2.광의의 민중신학과 에큐메니즘,달리트 신학 등의 영향력과 2%이상의 기독교인들(상당수가 평신도 신학자)이 있슴에도 카스트 제도가 아직도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인가?<br>3.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 파송국가 임에도 인도내 소수인종들에 대한 예언자적 외침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가?</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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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41: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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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문선주</title>
         <author>seromipak</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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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주목할 내용<br>-인도의 기독교역사는 숫자상으로 왜소하나 2000년 역사의 보고, 사도적 전승, 동방교회, 가톨릭교회, 개신교회, 토착교회 등이 서로 교차하며 병존. 가장 빠르게 성장하며 살아있는 교회가 존재하는 곳. 선교사파송이 2010년 2위임. 물론 대부분 인도 내의 타문화권으로 파송.<br><br>-도마교회의 전승:3세기 초에 기록된 도마행전에 인도선교이야기등장. 325년 니케아 공의회의 참석자 명단에 인도와 페르시아의 주교 요한이라는 사람이 기록됨. 이른시기부터 인도에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했음. 인도남부 케랄라에 6세기부터 토착기독교공동체가 있었음. 중세에는 유럽과 중국을 오가던 여행자에 의해 기독교인의 존재기록.(몬테코르비노의 요한, 마르코 폴로)<br>오늘날 기독교인은 남부 케랄라주에 분포 나스라니(나사렛인의 추종자)로 불림.(시리아정교, 가톨릭교회, 영국국교회순으로 영향받음)<br><br>-가톨릭교회의 선교: 포르투갈이 인도에 진출하면서 가톨릭선교시작. 16세기 포르투갈은 인도 고아를 중심으로 동방해상제국 건설. 교황청으로부터 영유권획득 후, 예수회선교사들이 인도로 파송.<br>-예수회 최초선교사 하비에르:포르투갈의 억압정책을 피해 남부지역으로 사역지확대. 후에 일본에 건너감.&nbsp;<br>-로베르토 데 노빌리:힌두교의 브라만과 적극교류하며 기독교소개. 토착화에 힘씀. 선교사나 포르투갈인이 파랑기로 불림. 이유는 술과 여자를 탐닉하고 소고기를 먹고 잘 씻지 않아 몸에서 악취가 나서 불가촉천민으로 이해함. 이런 현상은 선교에 방해가 되어 데 노빌리는 상층 카스트와 교류했음. 타밀어로 기독교소개. 인도문화를 유럽에 알림.&nbsp;<br>-안토니 비코:&lt;선교방법&gt;이라는 선교지침서 발표. 6가지원칙:1선교사는 파랑기가 아님. 2선교사는 진리를 향한 구도자인 산야시로 행동.3포르투갈방식 포기하고 브라만 카스트와 함께 생활.4저급한 기독교용어를 브라만식으로 바꾸어사용. 5현지기독교예배형식을 브라만식으로 바꿔야함. 6파랑기들과 현지 기독교인 거주지에서 벗어나 브라만카스트 거주 지역에서 선교활동해야 함.&nbsp;<br>-무굴제국의 악바르 예수회 선교사 왕궁으로 초대해서 기대감 있었지만 이슬람과 힌두교 세력 간의 틈새만 선교할 뿐 내륙으로 진출못함.&nbsp;<br>-이 시기 예수가 적응주의적인 태도를 가진 이유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 당시 유럽인들은 아시아에 대해 우월감을 갖지 못함. 오히려 아시아 문화를 유럽에 소개하는 역할. 적응주의적 선교전략은 유럽에서 이해받지 못했음<br><br>개신교선교의 시작:덴마크가 남인도에 세운 상관이 있는 트란케바르에서 할레의 경건주의자들을 통해 시작됨. 첫 선교사는 지겐발크와 플뤼차우, 개신교선교의 모범이 됨(1교육기관설립,2현지어와 문화의습득, 성경번역, 타밀어를 습득하며 인도의 문명과 도덕에 존중하는 태도갖음, 3현지선교는 현지에서 관장, 4초기부터 현지인들을 양육,선교동역자로 세움, 5카스트제도를 부정하지 않으나 교회내에서 카스트구분 제한)<br>-트란케바르선교는 덴마크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나,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곳은 영국국교회의 '기독교이해증진협회'<br>-후임자:덴마크-할레 선교회 크리스챤 프리드리히 슈바르츠, 48년간 선교사임무. 언어에 능통. 유럽과 현지 통치자에게 호감을 얻은 유일한 유럽인. 사역의 결과는 미비한 편인데 유럽교회의 종속적인 선교에 그쳤음.<br><br>영국교회의 인도선교: 1668년 이후로 무역거점을 삼은 봄베이, 마드라스, 켈커타를 중심으로 영국은 인도에 본격적으로 자리를 잠음. 영국의 인도진출과 함께 영국국교회와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목회자들이 인도에 입국. 처음에는 선교가 목적이 아니라 인도에 거주하는 영국인을 위해 사역. 후에 선교적인 관심이 커짐. 초기 동인도회사정책은 인도의 종교문제에 불간섭하는 것이었음.&nbsp;<br>-영국의 선교적열정은 18세기후반 복음주의부흥 운동에 영향받음. 윌리엄 케리 1791년 '이방인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수단들을 활용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한 탐구'출간. 1792년 침례교선교회의 1호선교사로 가족들과 의사 존 토마스와 인도로 출국. 영국 동인도회사의 냉대로 덴마크배로 인도에 들어왔고 덴마크령인 세람포르에서 41년간 사역.&nbsp;<br>-윌리엄 케리가 설립한 침례교선교회는 국가 및 영국국교회 통제 밖에 있었음. 국가의 무력지원을 통한 선교의 폐해를 알고 개인의 회심을 통한 선교추구.<br>-19세기에 영국은 플라시전투를 계기로 교역자에서 제국으로 정체성전환. 대인도정책의 기조였던 인도전통과 문화에 대한 중립적 입장에서 개입과 개혁의 방향으로 선회. 선교사들도 국가의 지원하에 개종자들을 적절하게 보호하고자 함. 1831년 동인도회사는 선교사의 인도입국을 허용. 하지만&nbsp; 식민주의적 국가정책과 결합된 선교로&nbsp; 영국과 기독교이미지는 손상됨.<br>-1857년 세포이항쟁(탄약창을 입으로 뜯다 종교적 금기를 어기게된다는 소문이 발단,&nbsp; 개종을 시도한다는 오해로 인한 군사적 반란)은 선교활동의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한 경계의식을 고조시킴<br>-20세기 독립운동 시기: 2000년 선교역사로 형성된 다양한 분파들의 연대실패, 민족주의대두로 기독교정체성 도전받게됨.&nbsp;<br>시대적 요구는 인도교회를 2가지 방향으로 이끔. 하나는 전통문화와의 활발한 대화를 통한 토착교회의 발전. 또 하나는 인도교회의 통함. 인도전통문화와의 대화시도: 케섭 찬드라 센과 순다르 싱. 현대적인 접근으로 인도교회를 세계에 알린 지도자 토마스.<br>인도 통합운동의 결실은 영국성공회 아래의 남인도교회와 북인도교회의 설립.&nbsp;<br><br>최근 기독교동향:기독교 인구 2천 8백만 정도<br><br>강의)) 인도는 재미있는 나라이다. 사진사는 인도같이 좋았던 나라는 없다라고 함. 매년 인도를 방문.&nbsp;<br>인도의 역사가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진 곳이다. 인도사람들은 천재가 많은 편이다. 그리스사람들을 지식을 사유하는 대표적이라고 하지만 인도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듯. 세계최고 종교학자가 인도공부를 하게 되면서 기독교적 한계를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됨. 들어가서 보면 무시할 만큼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됨. 인도가 전 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함.&nbsp;<br>브라만교, 불교, 자이교, 힌두교로 자체적 진화가 생김. 이런 문화에 기독교, 이슬람이 외부에서 침입됨. 인도사람들은 관용적으로 포용을 했다. 인도는 오랜 역사를 가졌고 땅이 넓다. 인도는 하나의 명칭을 붙이기 힘든 나라이기도 하다.&nbsp;<br>무굴제도 16세기로 넘어가면서 이슬람과 관계된 제국을 세웠다. 본격적으로 인도의 종교가 시작된 시대이다.&nbsp;<br>인도의 기독교는 도마를 통해서 인도에 들어갔고, 지리적 관계때문에 시리아 기독교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면서 인도 남부 지방에 교회가 융성. 모두 자신의 원조를 도마로 생각하고 있다. 페르시아글들 중에는 도마가 갔다는 말이 있다. 도마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학자들은 역사적 진위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세기 도마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3세기부터는 페르시아의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종교사적 측면에서도 조로아스터교가 이슬람에게 박해를 받을 때 인도로 도망가게 되고 지금도 조로아스터교신자들이 남아 있다.&nbsp;<br>16세기가 되었을 때 포르투갈의 영향에 들어가면서 예수회출신 하이베르 선교사가 고아지역에서 기독교를 전파했다.&nbsp;<br>인도 서쪽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와 활동했다. 포르투갈과 인도가 선교에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nbsp;<br>마지막 영향은 17세기부터 영국과 관계를 맺었다. 영국보다는 먼저 덴마크 선교사들이 먼저 들어오긴&nbsp; 했다. 덴마크 사람이 아무도 선교사로 가지 않자, 독일선교사들이 덴마크의 후원을 입고 왔다. 경건주의는 선교와 연관이 된다.&nbsp; 근데 선교의 아버지를 영국의 윌리엄 케리라고 본다. 근대 개신교 선교운동의 효시라고 보는데 사실은 케리보다 훨씬 더 먼저 개신교버전 선교활동은 영국성공회, 18세기부터 미국식민지 안에 땅이 너무 넓은데 선교사를 충원하기 위해 선교단체 SPG가 만들어졌다. SPCK는 선교의 문서를 보급하는 단체가 두 축이 된다. 영국이 세운 식민지마다 성공회가 선교를 담당하게 된다. 또 하나는 할례대학이 독일의 경건주의의 요람이 되는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필립 슈페너, 슈페너의 제자가 플랑케다. 독일의 부흥과 갱신의 중요한 센터로 만든다. 플랑케의 제자들, 진젠도르프, 모라비안을 이끌며, 전세계에 많은 선교사들을 보낸다. 개신교 버전의 세계선교운동.&nbsp;<br>영국이 본격적으로 선교에 뛰어든 것이 케리부터 시작이 되었다. 여러 나라들이 인도에 가기 시작한다. 인도가 가난한 나라로 오랫동안 봤지만 적어도 17세기, 18세기 무굴제국이 망하기 전까지는 인도와 중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였다. 오스만 투르크와 맞먹는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인도와 중국으로 부터 경제적인 기회를 얻을려고 했다. 인도는 면방기, 옷을 잘 만들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켰어도 인도수준의 옷감까지 이르는데는 수백년이 걸린다. 향신료도 인기가 많았다. 그당시 향신료가 얼마나 중요한가하면 마젤란이 필리핀에 까지 가는 해외원정대로 갔다. 거기에서 후추 및 향신료를 발견하고 배에다가 향신료를 꽉 채워서 유럽에 도착. 배에 실은 향신료를 팔아서 그 선원들이 평생 써도 남는 돈을 벌었다. 고수입을 보장하는 것이라 향신료수요가 급증. 영국의 후원을 받아 조금씩 무역을 확대하다 식민지로 삼게 됨. 그 후로 다른 종파 선교사들도 들어오게 되었다.&nbsp;<br>미국에서도 1830년부터 인도의 선교에 뛰어 들게되었다. 수많은 종파들이 인도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문제가 오히려 인도가 국가의 독립도 유지하고 했을 때 수많은 종교에 대해 오픈되어 있었으나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부터 선교사들의 태도나 방식이 부정적으로 바뀌면서 인도사람들도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느끼게 되었다.&nbsp;<br>세포이항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중국의 의화단이 일어나면서 선교사와 군인을 동일시 했듯이 영국의 선교사들을 가장 먼저 팼다.&nbsp;<br>간디의 자서전을 보면, 인도에서 독립운동이 진행되던 시절이었는데 간디가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예수님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이 될 의지가 없다. 그 이유는 인도거리를 가는데 누가 싸우고 있는데 선교사들끼리 주먹다짐으로 싸우는 것이었다.&nbsp; 신자쟁탈전으로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이렇게 천박한 종교가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의 정신에 인사이트를 얻어서 간디가 인도에서 평화운동을 일으키게 됨. 더 나아가서는 이슬람도 안 그랬는데 영국기독교인들이 겉으로는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영국의 인도지배를 정당화하는 것을 꿰뚫게 됨. 폭력과 배제와 차별을 더 많이 느끼게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 안에 1세기부터 들어온 기독교인들이 인도라는 다종교사회 속에서 다른 종교들처럼 인도문화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토착화가 된다.&nbsp;<br>20세기 말과 중반에 WCC가 만들어지고 세계기독교 연합운동을 시작할 때 1990년대 넘어가면서 온갖 교회가 들어오게 되고 복잡한 종교상황이 들어오면서 20세기 종교다원주의와 종교간의 대화였다. 바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 인도사람들이다. 기존의 종교와 대화하면서 공존하는 방법, 무력으로 하지 않고 선한 영향력,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존재했다. 소종파였기 때문이다. 다종교사회가 되고 종교로 인해 분쟁을 일으킨 나라가 많아지면서 그런 태도들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nbsp;<br>종교간의 대화를 가장 선진적 차원에서 하는 사람들이 인도 기독교인이다. 토마스 교회 출신의 인도 최고의 지도자가 남부가 문화의 변두리를 대변하면서 종교와 사회, 복음의 실천성을 중요시하면서 막스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치열한 대화를 시작했다.&nbsp;<br>인도가 기독교가 변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WCC에서 핵심적역할을 한 곳이 인도이다. 우리나라가 선교사를 많이 보냈다고 하지만 미국에 준할 만큼 선교사를 보낸 나라가 인도이다.&nbsp;<br>인도가 서방중심의 기독교지평을 변화시켰다. 오랜 역사와 자신들의 고민이 담긴 신학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nbsp;<br>80년대부터 아시아신학이 떠오를 때, 인도의 달리트신학, 최하층민 신학이 또 하나의 굵직한 목소리가 되었다. 종교간의 대화를 radical하게 끌고 나갔다. 무척 다이나믹한 기독역사를 가지고 있다. 인도의 기독교는 마이너리티. 카스트제도에서 기독교인들이 상층부에 들어가지 못 하도록 했다. <br><br>궁금한 점<br>-인도에서도 여전히 선교전략을 최고위층을 먼저 타켓으로 한다. 이것이 효과면에서 정말 효과적인 선교방법일까? 크리스텐덤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일까? 브라만을 너무 선호하고 추종하는 저자세의 방식아닌가?<br><br>-선교초기 유럽이 아시아의 부에 이끌려 동방에 진출하고 아시아 문화를 유럽에 소개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선교의 동력은 우월감에서 나와야 할까?&nbsp;<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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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01-30 03:41: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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