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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반 칼럼 소개하기 (전밤비) by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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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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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외래어를 쓰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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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p><p>“외래어를 쓰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p><p>  26세 김 씨는 최근 인스타에서 대유행 중인 노상 카페에 갔다가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카페의 간판뿐만 아니라 메뉴판까지 전부 영어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우리나라의 카페임에도 이렇게 영어로 표기하는 것을 납득할 수 없다. 무분별한 영어 등 외래어의 사용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심경을 밝혔다.   </p><p>  김 씨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외국어는 우리 생활의 한 구석을 깊이 차지하고 있어 제거가 어렵다고 보여진다. 문화체육관광부 측은 ‘우리말 다듬기 공모전’을 여는 등 외래어 타파에 물심양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처럼 외래어 남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며 이를 해결할 방안 역시 활발히 제의되는 추세지만, 단어뿐만 아니라 문장 구조에까지 외래어의 영향 아래 있다는 걸 아는 독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p><p>   ‘기스’, ‘뿜빠이’, ‘노가다’.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쓰이는 대표적인 일본식 표현들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런 일본식 외래어들이 심심찮게 쓰인다는 걸 알 수 있다. 공사나 업무 현장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공구리(콘크리트)’, ‘빠께스(양동이)’, ‘단도리(계획 잡기)’ 등의 일본식 업무 용어들은 공사판에서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이를 모르면 작업자들과 소통할 수 없을 정도이다.  </p><p>  그러나 앞서 말했듯, 일본식 표현이 단어로 그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저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같은 문장들은 겉으로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일본어 번역기를 돌려 보면 이상하리만큼 군더더기 하나 없는 문장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번역기가 알아듣는 데 문제없는 일본식 표현들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다. 가령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표현은 일본어의 ‘~と思う／と思います’를 직역한 것이며, ‘~하거나 하다’로 문장을 종결짓는 건 일본어의 ‘~(し)たりする’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그 외에도 ‘~의 경우(~の場合)’나 과도한 피동 표현 등 여전히 일본의 영향을 받은 구절들은 우리말 문장에서 잘만 사용된다. </p><p>  일상에 이미 많은 외래어가 오고 가는 만큼 일본에서 온 외래어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고유어만큼 외래어의 사용 비중이 높고, 그중에는 우리말로 바꾸기 어려운 말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말로 충분히 바꾸어 말할 수 있음에도 계속 일본식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이 일본식 외래어가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이다. ‘상처’, ‘나눠서 계산’ ‘막일’ 같이 대체할 수 있는 우리말 표현이 존재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우리말만큼 일본식 표현을 쓴다. </p><p>  ‘언어는 사회를 반영한다’는 말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 그 시대의 언어가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우리가 식민지 잔재에 영향받고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독립하고 세월이 많이 지난 만큼 달라진 사회 모습을 반영하는 언어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는 오늘 무심코 썼던 말이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또 어디에서 온 말인지를 생각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회식 자리에서만큼은, ‘오늘은 8명이 뿜빠이 합시다!’ 대신 ‘오늘은 8명이 나눠서 계산합시다!’라고 해 보는 건 어떨까? </p><p>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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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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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법 스트리밍, 창작의 숨을 끊다</title>
         <author>202511090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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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와 같은 OTT 서비스가 대중화된 지금은 다양한 콘텐츠를 쉽게 즐길 수 있는 시대이다. 그러나 금전적 대가 없이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최근에는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운영자가 검거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수많은 이용자들을 끌어 모으고 그 이면에서는 저작권 침해 문제가 지속된다.</p><p>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는 조직적이며, 교활하다. 운영자는 이용자들에게 대가 없이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사이트 내 게시된 불법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 또한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사이트 폐쇄와 개방을 반복한다. 이로 인해 유사한 사이트가 수도 없이 폐쇄되었다가 다시 개방되고, 경찰의 추적에도 불구하고 이용자는 계속해서 증가한다.</p><p> 이러한 사이트는 여러 문제를 야기시킨다. 가장 큰 문제는 저작권 의식 저하로 인한 저작권 침해이다. 많은 이용자는 저작권을 의식하지 않은 채,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콘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한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저작권 침해로, 법적으로 충분히 처벌할 수 있는 행위이다.</p><p> 또한 불법 스트리밍은 창작자에게도 큰 피해를 입힌다. 불법 사이트를 통한 스트리밍은 운영자에게 수익이 발생할 뿐, 창작자에게는 수익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창작자의 시간과 열정이 모여서 만들어진 결과물이 ‘다들 이용하니까 괜찮겠지.’, ‘무료니까 그냥 이용해도 돼.’ 같은 안일한 생각에 의해 침해되고, 유린당한다. 이는 창작자의 콘텐츠 창작 동기를 저하하게 되고, 장기적으로는 콘텐츠 경쟁력을 약화한다. 따라서 양질의 콘텐츠를 기대할 수 없게 되어, 결국 그로 인한 피해는 소비자에게 돌아온다.</p><p> 불법 스트리밍은 단순히 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소비자 모두가 창작자의 시간과 열정을 고려하여, 무료라는 유혹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저작권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갖고 정당한 방법으로 콘텐츠를 소비해야 한다. 우리가 콘텐츠를 시청하는 방법이 콘텐츠 산업에 있어 걸림돌이 될 수도,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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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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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올라가는 가격, 사라지는 관객</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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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p><p>  영화가 사치로 전락해 버린 시대가 왔다. “문화는 사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다.”라던데, 우리는 그 필수품을 잃어버렸다. 예전엔 보고 싶은 영화가 생기면 큰 고민 없이 영화관에 갔다. 심지어 딱히 보고 싶은 영화가 없더라도 친구와 약속이 없는 주말이면 혼자 조조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가족과 함께 상영관을 찾았다. 티켓 한 장이면 충분했다. 팝콘 냄새가 가득한 로비를 지나 2시간 남짓 동안 현실을 잊고 새로운 세상으로 빠져드는 경험은 소소한 일상 속 활력소였다. 꺼졌던 조명이 다시 빛을 찾으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여운에 잠겨 있다가 일어서면, 영화관을 나선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 그 영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p><p>  하지만 이젠 영화관에 가기 전 몇 번이나 망설이게 된다. 티켓 값은 어느새 1만 5천 원을 훌쩍 넘겼고, 여기에 팝콘이나 음료라도 사 먹으면 식사 한 끼 값은 우스울 정도다. 영화관은 더 이상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문화 공간이 아니다. 영화도 계산기를 두드려 봐야 하는 ‘사치스러운 소비’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건 비단 나 혼자만의 감상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도 “그 영화? 넷플릭스에 올라오면 보지 뭐.“라고 말하는 일이 늘었다.</p><p>  이런 개인적인 경험은 요즘 사회 분위기로 이어진다. 코로나19 이후로 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는 서울 인구의 약 10배만큼이나 줄었다. 오랜 침체기를 겪은 영화계는 회복을 시도했지만, 관객은 좀처럼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굳이 영화관을 가지 않아도 OTT 플랫폼을 통해 훨씬 더 싸고 간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몇 년간 이어진 영화 관람료 인상은 영화관 입구에서 오지 말라고 외치며 관객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p><p>  정부는 국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며 영화 티켓 가격에 포함된 부담금 제도를 폐지했다. 자연스레 소비자들은 티켓 가격이 내려가길 기대했지만, 극장 측은 적자를 이유로 가격을 내리지 않았다. 정부에선 극장의 가격 인상을 제재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영화 발전 기금의 거의 유일한 재원이었던 부담금이 사라지면서 독립영화나 예술영화에 투입되던 지원만 줄은 셈이</p><p>다. 게다가 이에 관한 비판 여론이 생기자, 최근 다시 부담금 제도가 부활했다. 이미 높은 티켓 가격에 제도까지 더해져 앞으로는 가격이 더 오를 일만 남았는데, 이쯤 되면 누가 영화관에 가겠는가?</p><p>  비싼 영화 티켓 값은 영화 산업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되려 죽이고 있다. 영화관이 살아남기 위해 가격 인상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그로 인해 관객이 떠난다면 과연 그 결정은 누구를 위한 일인가? 티켓 가격 인상은 단기적으로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관객 수 감소라는 악순환을 낳는다. 관객 없는 영화관, 그 자리는 텅 빈 의자만이 채우고 있다. 현재의 영화 티켓 값은 극장만이 줄 수 있었던 경험의 가치를 점점 희미하게 만들고 있다. 영화관이 다시 사람들의 일상 속 활력소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가격’이라는 기본적인 조건부터 충족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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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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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9;힙&#39;의 탈을 쓴 불교</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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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최근 불교는 ‘힙’ 해졌다. ‘힙’이란 세련되고 독특한 멋스러움을 의미한다. 각종 SNS에는 불교 관련 행사나 상품이 올라오고 빠르게 입소문을 탄다. 인스타그램에서는 템플스테이와 명상 관련 피드가 넘쳐나고, ‘마음 챙김’이라는 키워드는 일상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주목받는다. 또한 예능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이름을 빌린 소개팅 이벤트 ‘나는 절로’는 총 1,501명이 지원하여 70:1의 경쟁률을 보일 만큼 젊은 층의 상당한 관심을 모았다. 한편 부처님 오신 날에는 ‘부처님 생신 카페’가 열렸다. 아이돌 팬덤 문화에서 착안한 이벤트를 열어 부처님 포토 카드, 행운 부적 카드, 포토 존 등을 마련했다. 개그맨 윤성호의 부가 캐릭터인 ‘뉴진스님’은 ‘부처핸섬’, ‘번뇌를 이겨내면 극락왕생’이라는 가사를 포함한 디제잉으로 MZ세대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불교를 테마로 한 카페나 칵테일 바가 등장하고, 불교 굿즈라 불리는 염주 팔찌, 향, 티셔츠 등이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MZ세대는 이제 불교를 더 이상 신앙의 대상이 아닌 ‘힙’으로 여기고 있다.</p><p> 표면적으로는 긍정적인 변화로 보인다. 젊은 세대가 엄숙한 불교라는 종교에 관심을 두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는 현상이며 전통 종교가 현대에서 확장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동시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불교’라는 이름 아래 오직 표면적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불교라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 그리고 철학을 가진 종교가 가벼운 유행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불교는 인간의 고통과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성찰 방법, 연기설 그리고 삶의 무상함을 인식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철학적 기반을 잠시 배제한 채, 시각적 이미지와 감성적 분위기만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종교 사회학자인 정재영 교수는 “MZ세대들이 불교 교리를 좋아한다거나 불교의 가르침인 윤회와 해탈 같은 데 관심이 있다고 보기보다 불교가 가진 이미지에 호감을 느낀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p><p> 특히 SNS와 유튜브를 통해 확산하는 불교 콘텐츠는 대부분 ‘힐링’, ‘감성’, ‘힙’이라는 키워드가 난무한다. 불교의 기본적 교리나 철학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사진을 찍기 위해, 소위 ‘인생샷’을 남기기 위해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종교의 의미를 희석하고, 종교의 본질을 상업적인 기획 아래 축소해 버리는 일종의 ‘문화적 왜곡’이라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힙하다’, ‘감성적이다’라는 이유만으로 종교적 상징을 무분별하게 차용하고 변형하는 것은 종교를 단지 유행하는 아이템처럼 다루는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은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며, 타인을 등불로 삼지 말고,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으라.’라는 뜻의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부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인식하는 일 또한 벌어지고 있다. 무소유를 강조하는 종교인 불교에서 굿즈를 값비싸게 파는 사례, 불교 박람회라는 종교 행사에서 상업적 이익을 위해 불교의 이미지만을 차용하여 판매해 비난을 얻은 사례도 있었다. 불교 박람회에 참가한 부스가 SNS에 ‘염주’와 다른 종교의 용품인 ‘묵주’를 혼용하여 홍보 게시글을 올렸던 것이었다. 결국 불교의 본질은 이해하지 않은 채 상업화를 한 것은 욕심을 버리자는 불교의 교리를 무시하는 행위이다.</p><p> 불교와 젊은 세대, 특히 MZ세대와의 만남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만나는가에 있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소비된다면, 불교가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는 현 상황은 일시적일 것이다. 유행은 언젠가 지나가고, 일시적인 흥미는 쉽게 식기 마련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이 불교의 이미지로서의 유행은 과연 불교를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화시키는 것인지, 아니면 빠르게 소비 대상이 바뀌는 세상 속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게 만들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p><p> 나는 불교 종립대학인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학교 곳곳에서 불교의 상징을 접하고, 교육과정 안에서도 불교를 필수적으로 배워야 한다. 이런 환경에 놓인 학생으로서, 지금의 현상에 대해 염려가 있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단지 ‘힙’이나 ‘감성’이라는 단어로 포장되기엔 너무나 깊고 의미 있는 철학이다.</p><p> 우리는 종교를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종교의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있는가? 이는 지금의 불교 대중화 흐름에서 분명히, 직시해야 하는 문제이다.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는 단지 눈에 보이는 이미지가 아니라, 그 종교가 가진 본질과 그 철학을 함께 이해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불교가 젊어지는 것은 좋다. 그러나 가벼워지는 순간, 우리는 불교가 아닌 ‘불교 같아 보이는 것’만을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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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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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금 신뢰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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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br></p><p>2025111274 박하은</p><p><br></p><p><br></p><p>상상해보자. 출근과 등교로 어딘지 모를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정신없이 달리는 지하철 안. 열차가 출발하고, 초등학생 아이가 뻥뻥 차고 다니는 신발주머니 속 실내화처럼 당신도 흔들린다. 앞뒤, 좌우로 사정없이 휘청이던 당신은 내릴 역에 가까워지자 사람들 틈에 밀려 가까스로 발을 디딘다.</p><p>이내 개찰구 앞에 다다라 버스카드를 꺼내려 한다.</p><p><br></p><p>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p><p>양쪽 호주머니를 뒤적이고 가방을 탈탈 털어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바닥보다 작은 네모난 그것이 어딘가 차갑고 넓은 서울 바닥에 떨어졌을 걸 상상하니,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식은땀이 서서히 흐른다.</p><p>불과 며칠 전, 필자가 겪었던 따끈따끈한 사건이다.</p><p>당시 개찰구를 통과하지 못한 채 서성이는 동안, 밀려오는 당혹감과 불안감 속에서 깨달았다. 지갑 속 물건들은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이 아니라, 내 일상을 이어주는 연결 고리라는 걸. 하지만 그 순간 느꼈던 불안은 비단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분실의 경험은 그 자체로 낯설지 않다.</p><p>첫날은 스스로의 부주의를 탓하며 우왕좌왕하다가, 인터넷 검색 끝에 "로스트 112"라는 낯선 이름의 사이트를 알게 되었다. 반신반의하며 분실 신고를 접수했지만, 놀랍게도 3일 만에 분실물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작은 사건 속에서 느낀 기쁨은 단순한 물건의 반환을 넘어섰다. 그 안에는 깊은 안도감과 함께, 우리 사회가 여전히 신뢰와 선의를 유지하고 있다는 깨달음이 포함되어 있었다.</p><p>분실물은 단순히 잃어버리고 찾는 과정을 넘어, 사회적 신뢰와 양심을 시험하는 상징이 된다. 누군가가 내 분실물을 발견해 신고해주었다는 사실은 타인의 양심과 선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증거였다. 개인주의가 만연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이런 작은 사건들이 보여주는 선의는 우리가 잊고 지낸 공동체의 가치를 떠올리게 한다.</p><p>그때 익명의 누군가가 내 분실물을 안전히 돌려주었듯이, 나 또한 누군가의 분실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작은 선의의 행위는 결국 선의를 불러일으킨다.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놓인 거리와 단절을 연결의 실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p><p>물론 모든 분실물이 순조롭게 제자리를 찾는 것은 아닐 것이다. 되찾지 못한 사람들의 실망도 현실이다. 그러나 분실물 신고와 반환의 행위는 단순한 의무감이 아니라 타인을 향한 신뢰와 양심의 표현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로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한다.</p><p>이번 역은 분실이었다. 그러나 다음 역은 분명 연결일 것이다. 이 작은 사건이 남긴 사회적 유대는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의미로 남았다. 이것이 우리가 분실을 단순한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p><p>따라서 오늘도 어딘가에서 신뢰행 열차는 누군가의 분실을 넘어, 종착지인 ‘우리’를 향해 달리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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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바이럴 마케팅 감염주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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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물건이나 음식점을 찾을 때 이제는 당연한 리뷰 읽기. 인터넷의 발달로 똑똑한 소비를 도와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요즘 인터넷에서 리뷰를 읽다 보면 유사한 내용의 팜플렛 같은 블로그 글들이 쏟아지고, 보고 있는 것이 광고인지 정보인지 구분이 모호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른바 ‘내돈 내산 리뷰’ 나 배달 앱 후기 등 현대인들이 자주 접하는 후기, 리뷰, 영상은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정보인지 광고인지 구분이 모호한 지금, 우리는 얼마나 정확히 판단하고 있을까?</p><p>모호성이 발생하는 원인은 ‘바이럴 마케팅’ 때문이다. 바이럴(viral)은 바이러스의 형용사형으로 (바이러스에 의해) 전염되는 이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바이럴 마케팅은 소비자 스스로 입소문을 내게 하는 마케팅의 수법을 말한다. 판매자 입장에서 일반 광고보다 비용은 적고 확산은 빠르다는 장점과 이용 후기, 리뷰 등은 소비자에게 더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크게 선호돼 유행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공유하며 광고 효과를 내니 기업 입장에서는 효율적인 전략이다. 간단한 포스팅 하나, 리뷰 하나가 제품의 인식을 바꾸고 매출까지 좌우할 수 있는 시대다. </p><p>문제는 외식, 의료, 출판,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바이럴 전략이 사용되고 있다. 성형외과 후기, 음식 배달 리뷰, 음반 사재기 논란처럼 실체를 알 수 없는 콘텐츠가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심지어 정치에서는 댓글을 통한 여론조작으로 다수의 의견이 힘을 얻는 민주주의를 왜곡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바이러스 감염자처럼 정보의 수용자이면서도 유포자가 되기도 한다. 광고임을 숨긴 콘텐츠는 경제적 이해관계를 은폐하고, 때로는 허위 정보나 저질 콘텐츠를 양산하기도 한다. 심지어 경쟁자를 비방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된다. 소비자에게 주어진 정보는 그 자체로 판단을 흐릴 수 있는 함정일 수도 있다. </p><p>몇 년 전 유튜브를 뜨겁게 달군 ‘뒷광고 사태’ 등은 바이럴 마케팅이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예시 중 하나다. 인터넷 발달의 가속화와 소셜 네트워크 기반 사회에서 바이럴 마케팅은 큰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한 정부에서 바이럴 마케팅을 규제하는 법적 장치가 존재한다. 공정거래법이나 표시광고법 등이 그 예다. 하지만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으며, 여전히 회색지대는 존재한다. 최근에는 교묘하게 이런 제도를 피하기 위해 판매자 스스로 제3자의 소비자로 위장하는 위장형과 이익관계를 은폐하고 광고하는 은닉형보다 리뷰형 바이럴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예 리뷰를 조작하는 방법도 있지만 규제와 플랫폼 자체 필터링의 고도화로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흔히 배달 앱 이용 시 별점 5개 주고 음료나 서비스음식 받기, 물건에 대한 후기를 작성하고 할인이나 사은품 받기 등이 예시다. 이는 소비자의 선택을 왜곡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과, 관련사업 위축 등 규제하기 애매한 측면이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 개인의 정보 판단 능력이다.</p><p>지금 우리는 단순히 정보를 수용하고 소비할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넘쳐나는 정보의 호수 속에서 정말 믿을 만한 정보인지, 그 배경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바이럴 콘텐츠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태도, 광고와 정보를 구분하려는 노력은 현대 소비자에게 필수적인 역량이다. 바이럴 마케팅에 감염돼 수동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소비자로 거듭나야 할 때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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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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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낭만 실조 야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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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누가 야구를 낭만의 스포츠라고 했던가. 한 때는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은 경기를 선수단과 함께 써내려 가며 울고 웃던 시간들이 숨 가쁜 현대인들에겐 참으로 낭만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야구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야구장의 풍경은 참으로 낯설어졌다. 얼마전 야구장에서 보았던 어르신은 겨우 두 분, 주위엔 야구 유니폼을 입고 인증 사진을 찍기에 바쁜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어렸을 적 내게 야구의 낭만의 선물해준 그 분들을 야구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p><p>서울 잠실구장은 평일 경기에도 약 2만 5천 개 가량의 좌석이 매진된다. 게다가 각 구단들이 매년 시행하고 있는 선예매권과 시즌권으로 인해 일반 관객들은 그 많은 좌석 중 한 자리를 얻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피가 튀길 정도로 치열한 티켓팅이라는 의미의 ‘피켓팅’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프로야구는 1982년, 최초의 스포츠리그로 출범하면서 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그 시절 부모님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와 응원가를 열창하던 소년소녀들은 지금 모두 60, 70대가 되었으리라. 반면 KBO통계 상 지난해 관람객의 10명 중 7명은 2030세대로, 60대 이상은 고작 0.6%를 기록했다.</p><p>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2030세대에게도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야구 직관 표 구하기는 6070세대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기술의 진보는 누릴 수 있는 자들만의 특권이 되었다. 그 특권은 그렇지 못한 자들의 낭만이 서 있을 자리를 앗아갔다. 도대체 누가, 야구를 낭만의 스포츠라고 했던가. 상업성에 반응하는 젊은이들의 낭만만이 중요해진 세상이다. ‘온 국민의 건강한 여가 선용’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출범한 프로야구가 보이는 야누스의 얼굴이 참으로 기만적이다.</p><p> 다행히도 10개 구단 중 특히나 오랜 팬이 많은 롯데 자이언츠는 전체 좌석 중 1%를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현장판매 좌석으로 남겨두고 있다. 기아 타이거즈 또한 티켓 중 일부를 현장 판매하겠다고 밝히며, 디지털 기기 사용에 미숙한 어르신들이 옛날처럼 야구장에 직접 방문하여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주는 방안을 시행 중이다. 이는 디지털 소외층의 어려움에 대한 젊은 야구팬들의 관심도를 증가시켜, 어르신들을 위해 현장판매를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를 악용하여 현장구매 후 암표거래를 일삼는 사람들도 증가하며 그 본래의 목적성과 효과가 흐려지고 있다. 야구장을 뒤로하고 돌아서는 그들의 쓰라린 마음은 함성소리와 누군가의 때 묻은 마음에 묻혀져 간다. 윤리를 뒤덮어 버린 욕심이 세상을 메마르게 하고 자본주의의 태엽 속에서 잠시 멈춰 서 타인을 보살필 용기를 주지 않는다. 그렇게 양극화라는 꽃은 점점 더 깊은 뿌리를 내리며 낭만을 되찾고자 하는 누군가의 간절함을 앗아간다. </p><p> 오늘도 야구장엔 팬들의 함성 소리에 뒤섞인 ‘윤수일의 아파트’가 울려 퍼진다. 여전히 2030세대만이 살고 있는 아파트다. 언젠가 남녀’노소’가 어울려 살고 있는 아파트가 울려 퍼질 날이 오길, 내가 사랑하던 그 낭만의 스포츠가 온 국민의 낭만을 되찾아주는 날이 오길 간절히 꿈꿔본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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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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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표 한 장의 무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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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온라인으로 티켓을 구해보았을 것이다. 야구를 보는 시간이 여유와 행복으로 다가오는 나 역시, 티켓을 구하기 위해 촌각을 다투어 마우스를 움직이곤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표 한 장을 구하는 일이 어려워지면서 그 즐거움에 접근하기 힘들어졌다. 야구 직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며 티켓 판매 2분 만에 좌석이 매진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온라인 티켓팅을 통해 표가 매진되어 현장 판매를 진행하지 않은 까닭에, 야구장을 찾았던 노인들은 현장에서도 표를 구하지 못하고 끝내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온라인 시스템 앞에서 그들이 느꼈을 무력함은 어떠했을까. 당시에는 그저 그들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곧 나 역시 그 좌절을 체감할 수 있었다. 예매가 시작된 지 몇 초 만에 좋은 자리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표는 다른 사이트에서 정가의 몇 배로 불어난 암표가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어김없이 사람들에게 되팔린다. 과연 우리는 이 온라인 티켓팅의 시스템이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p><p>온라인 티켓팅은 본래 효율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방식이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좌석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오프라인 예매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p><p>편리함과 신속을 전제로 한 온라인 티켓팅 구조는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특히 기성세대에게 그렇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통계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평균 디지털 역량 수준을 100이라 가정했을 때, 60대와 70대는 각각 41.3, 16.2로 매우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일부 구단에서는 디지털 소외 계층을 위한 별도 예매 창구를 마련하거나 온라인 티켓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이 있다. 표를 구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시간에 접속하여 빠르게 원하는 좌석을 선택하고, 복잡한 인증 절차를 통해 결제를 완료해야 하는데, 그들에겐 이 일련의 과정들이 큰 장벽으로 다가온다. 이 과정에서 티켓팅을 실패한 관객은 단지 표를 구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문화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과 추억, 사회와 연결된 경험의 기회까지 잃는 것이다.</p><p>접근성의 불균형은 단지 나이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는 또 다른 그림자가 존재한다. 그 그림자는 바로, 겉으로는 소비자 간 거래로 가장되어 단속을 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비정상적으로 이윤을 취하는 행위인 암표 거래이다. ‘공연법 제4조’와 ‘경범죄 처벌법 제3조’를 통해 암표 거래를 방지하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지만 거래가 대부분 온라인상 익명으로 이뤄지고, 개인 간 직거래 형식을 띠기 때문에 단속 실효성은 높지 않다. 정가의 두세 배를 호가하는 가격은 문화 접근권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명백한 선을 긋는 행위이다. 이 불합리함은 단지 티켓 한 장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과 평등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대한 침해이다.</p><p>이 문제는 단지 특정 집단의 어려움이나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 누구든지 온라인 티켓팅 시스템의 속도와 구조 앞에서 낙오자가 될 수 있다. 클릭 한 번이 뒤처짐을 의미하고, 기술의 차이가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는 상황은 공공성과 거리가 멀다.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지금의 온라인 티켓팅 시스템은 보이지 않는 장벽과 배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표 한 장에는 단순한 관람 이상의 기회, 경험, 추억까지 담겨 있기에,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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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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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K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English-pop</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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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K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English-pop</strong></p><p><br></p><p>무대를 올라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막막하다.</p><p>최근 K-pop은 그 어느 때보다도 뜨겁다. 각종 글로벌 차트 상위권에는 K-pop 아티스트의 이름이 자주 오르고, 미국과 일본, 동남아 등을 중심으로 전 세계 청중들이 우리의 음악을 소비하고 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부르게 되는 언어에는 점차 영어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p><p>K-pop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으며 자연스레 나의 노래 가사에는 영어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유명 걸 그룹의 글로벌 성공으로 인해 내수 시장 중심이던 걸 그룹 시장이 해외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는 일부 구절에 머물던 영어 가사가 이제는 한 곡 전체가 영어로 구성되거나, 한국어 버전과 영어 버전이 동시에 발매되는 경우도 흔해졌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글로벌 팬층을 강화하는 전략이 되었다. 영어 가사는 해외 팬들이 따라 부르기 쉬워 접근성 면에서 큰 장점이 있고, 글로벌 음악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다.</p><p>실제로 2023년 상반기 기준 걸 그룹의 영어 가사 비중은 41.3%, 보이 그룹은 24.3%에 이른다. 나 역시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어 가사를 연습하고, 발음을 다듬으며 녹음실에서 한국어와 영어 버전의 곡을 동시에 준비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영어 가사와 한국어 가사를 오가며 부르다 보면, 이중적인 감정이 생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다는 기대감과 K-pop이 본래 품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p><p> 영어 가사는 해외 팬들의 접근을 돕고, 해외 차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우리나라의 음악 소비자들은 과도한 영어 가사에도 높은 음원 성적을 보여주며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는다. 한국 대중음악 가수로서 고민하게 된다. 노래를 부를 때는 어떤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느냐가 핵심이다.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면 어떤 단어를 어떻게 불러야 진심이 느껴지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전달할 경우 표현에는 한계가 생긴다. 그뿐만 아니라 때로는 영어 가사로 인해 어색한 문맥이나 뜬금없는 표현에 노래를 부르며 당황하기도 한다. 맥락에 맞지 않는 영어 가사로 인해 노래의 퀄리티 자체도 떨어지고 있다.</p><p>K-pop은 한국의 대중음악이자,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한 콘텐츠이다. 그러나 국내 청중들조차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멜로디만 따라 부르는 상황이 발생한다. K-pop이라고는 하지만 한국 청자들은 따라 부르기 어렵고, 노래를 들으면서 해석하지 않는다면 가사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과연 K-pop인가? 한국 가사로 인해 우리나라만의 정서를 담아 노래 부를 수 있으며, 해외 팬들은 이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 문화를 익히고 이해하게 된다.</p><p> 세계 시장을 위한 전략은 분명히 필요하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은 한국 문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K-pop의 본질이 흐려져서는 안 된다. 영어 가사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어우러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다만, 그 비율과 방식에 있어 신중해야 한다. 글로벌한 접근성과 우리만의 정체성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무대에서 부르는 K-pop의 중심에는 ‘한국어’가 있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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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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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인어공주를 방류하라</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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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인어의 전설’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바다의 신비와 두려움을 담은 인어 전설은 여러 문화와 시대를 걸쳐 전해져 왔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육지의 왕자를 사랑하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 이야기다. 어릴 적 바다를 사랑하던 나는 언젠가 인어공주가 되어 왕자의 사랑을 얻겠다는 꿈에 빠지곤 했다. 그리고 지난달, 롯데 아쿠아리움에서 ‘인어의 전설’이라 불리는 흰고래 ‘벨라’를 만났다.</p><p><br></p><p> 벨라는 롯데 아쿠아리움에 마지막으로 남은 벨루가다. 올라간 입꼬리와 특유의 웃는 듯한 인상, 사교적인 성격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벨루가는 원래 북극해와 그 주변 해역에 서식하는 고래류로,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와 통통한 몸매가 특징이다. 특히 두꺼운 지방층이 옆구리에 군살처럼 잡히는 모습은 마치 사람의 다리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외형적인 특징이 이들을 ‘인어의 전설’ 속 주인공으로 만들었다.</p><p><br></p><p> 와, 여기 벨루가도 있대! 인어의 전설 속 주인공을 마주할 기대에 부풀었던 마음은 벨라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메인 수조 옆, 폭이 좁고 깊은 그곳은 마치 관처럼 느껴졌다. 벨루가는 인간이 물에 빠트린 휴대 전화를 물어오거나 사람들을 놀래는 장난을 치기도 할 정도로 지능이 높아 자신이 포획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른들만 있을 때는 수조 위쪽에서 가만히 떠 있던 벨라가 아이들이 찾아오자 밑으로 내려와 한참을 머물렀다. 아이들의 손짓에 따라 움직이기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는 관람객들 사이에서, 나는 홀로 웃음을 지을 수 없었다. 미소를 띠고 있는 듯한 얼굴이 한없이 슬퍼 보였다. 이전의 들뜬 감정이 부끄럽게 느껴져, 까만 눈을 마주 보기가 어려웠다. 쉽사리 자리를 뜰 수 없어 오랫동안 그 앞에 머물며 마음속으로나마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해, 내가 널 만나지 못했다면 좋았을 텐데.</p><p><br></p><p>올해 1월, 벨라를 방류하라는 현수막을 붙여 수조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 해양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황 대표가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지난 2022년 12월 16일, 단체 관계자들과 함께 롯데월드 아쿠아리움에서 약 20분간 시위를 벌였다. 2019년에 약속된 벨라의 야생 방류가 세 차례에 걸쳐 계획을 연기한 것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롯데월드 측은 수조 외벽에 묻은 접착제로 7억 원 상당의 피해를 봤고, 관람객이 시설을 원활히 이용하지 못했다며 이들을 고소했다.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으나, 법원은 피해가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해 벌금형으로 선고를 마무리했다. 하지만 황 대표는 이에 대해 항소했다. 아직도 벨라는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p><p><br></p><p> 2년 전, 2026년까지 방류를 완료하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한 롯데는 최근 드디어 방류를 위한 협력의향서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직 시설 미완으로 인해 이송 시기와 이송 확정을 거론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현재 벨라는 여전히 수조에 갇힌 채, 가만히 떠 있거나 구석에서 머리를 부딪치며 맴도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과거 함께 살았던 ‘벨로’와 ‘벨리’는 패혈증으로 폐사했으며, 이들의 건강 악화 원인으로는 이명증과 우울증이 지목됐다. 현재 벨라 또한 유사한 증상을 보이고 있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여 있는 만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 된다. 외출은 물론, 가족이나 동료들과의 만남도 불가능한 좁은 공간에 갇혀 낯선 존재에게 전시된다면 과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6평 남짓한 원룸에 거주하는 나조차도 갑갑함을 느끼곤 하는데, 넓은 바다를 누비던 벨라에게 이 수조는 고작 1평조차 되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인간의 오랜 욕망 속에서 벗어나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 마지막 약속이 지켜지도록 끝까지 지켜보아야 한다. ‘인어공주’는 이제, 자유로운 바다에서 다시 전설이 될 때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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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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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귀여움 멸종 위기종</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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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얼마 전 잠실에서 열린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에 다녀왔다. 멸종위기 동물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작된 사진전이었고 수백 종의 멸종위기 동물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본 수많은 멸종위기 동물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북극여우도, 판다도, 코뿔소도 아닌 엘세군도꽃파리라는 곤충이었다. 꽃파리는 그리 화려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평범한 날벌레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그것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그 외형에 있던 것이 아닌&nbsp;일행의 “이렇게 평범한 곤충까지 보호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nbsp;</p><p>&nbsp;</p><p>&nbsp;흔한 날벌레에 불과한 곤충까지 보호해야 하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문을 품는다. 더욱이 그것이 인류에게 큰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보호는커녕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고 싶다. 우리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멸종위기 동물을 위해 사회 운동을 하며 경제적 손해도 마다하지 않을까.&nbsp;</p><p>&nbsp;</p><p>&nbsp;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는 이유에 대한 사람들의 대답은 다양하다. 생태계의 균형 유지, 생물 다양성 보존, 윤리적 책임 등을 말한다. 여러 이유 중에 나는 오직 윤리적 책임만이 우리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동안의 인류는 너무나 많은 동물을 학살하고 경제적 수단으로 여겨왔다. 과거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렇게 여겼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인류는 과거와는 다르다. 다시는 그런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되고 경제적 이유만으로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해서도 안 된다. 우리가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할 때는 오로지 속죄의 의미를 가지고 행해야 한다. 그렇기에 귀엽지도 인류에 큰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아도 단지 그 종이 멸종위기라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관심을 두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p><p>&nbsp;</p><p>&nbsp;Ugly Animal Preservation Society라는 단체가 있다. 귀여운 동물에게만 편향된 관심을 귀엽지 않은 동물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져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된 단체로 어렵지 않게 적은 금액으로도 후원할 수 있다. 하지만 동정심이 들지 않는 동물에게 후원하라는 것은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또, 거부감이 드는 동물을 내세워 후원을 유도한다면 오히려 후원하려는 사람이 친숙한 동물을 내세워 홍보했을 때보다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나는 WWF(세계자연기금)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동물을 중심으로 후원을 유도하되 그 후원금의 사용은 친숙하지 않은 동물에게도 쓰는 방식도 지지한다. 이런 방식을 사전 공지한 후 친숙하지 않은 멸종위기 동물에게도 후원금이 간다면 사람들의 거부감도 덜하고 후원도 줄지 않을 것이다.</p><p>&nbsp;</p><p>&nbsp;WWF(세계자연기금)의 자연보전 활동 자원은 74.9%(2016 회계연도 기준)가 개인 또는 민간 기업의 후원으로 마련된다고 한다. 그리고 WWF는 설립 이래 전 세계 100여 개국, 13,000여 개 환경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 이상 투자해 왔으며, 지금도 약 1,300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며 작은 관심도 큰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p><p>&nbsp;</p><p>&nbsp;후원은 어려울 수 있다. 관심은 어렵지 않다. 모든 동물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구를 만들자는 거창한 관심도, 좋아하는 동물이 보금자리를 잃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관심도, 단순 호기심에서 비롯된 관심도 그 모든 것이 멸종위기 동물들에게는 의미 있는 관심이 될 수 있다. 모든 멸종위기 동물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동물의 수를 줄이는 것이 그것이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자 목표라고 생각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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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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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나조차도 모르는 도둑질, 무료 사이트</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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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 3년 전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어느 날, 작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 중 나와 같은 반으로 배정받은 친구들은 아무도 없었다. 워낙 소심하고 말도 잘 못 걸었던 성격을 가지고 있던 터라 나는 교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같은 반 아이들 무리 중 한 명이 나에게 다가와 “너도 애니메이션 좋아해?”라며 말을 걸어왔다. 나는 먼저 말을 걸어줘서 기쁜 마음에 “어! 좋아해 근데 넷플릭스에 올라온 애니메이션들은 거의 다 봐서 이제 볼 게 없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놀란 말투로 “너 불법 사이트로 안 봐? 이건 일본에서 올라오는 애니들 다 있어.”라며 나에게 어떤 한 사이트를 알려주었다. 신세계였다. 유명 애니메이션부터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볼 수 없었던 애니메이션까지 다 올라와 있었다.</p><p>그 일이 있고 난 후 나와 그 친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희망하는 과부터 대학 라인까지 비슷해서 학원도 같이 다니고 모르는 문제도 질문하고 공부 팁 같은 것들도 서로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아이패드로 모의고사를 풀고 있는 것을 보고 얻은 방법이 궁금해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그 친구는 텔레그램에 수험생들이 강의자료들을 무단으로 배포해주는 방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나는 당장 그 앱을 깔아 그 방을 찾아봤다. 적게는 100명부터 많게는 100,000명까지 들어가 있는 방들이 수두룩했다. 나는 뭔지 모를 불쾌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입시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기 위해 “이거 불법 아닌가...?”라는 생각들이 들었지만 그런 생각은 무시한 채 “100,000명이나 들어와있는데 나 하나 정도는 상관없겠지? 내가 배포한 것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무단으로 배포된 강의 자료들을 사용하며 입시를 했다. 나의 그런 불편한 생각과는 달리 그 강의 자료들을 이용하면서 성적도 많이 향상되었고 나의 머릿속에선 그 생각들은 점점 없어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은 어떤 문제를 풀어볼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감쌌다. 결국 입시를 마쳤지만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인해 대학교를 등록하고 수험생활을 한 번 더 했다. 나는 수험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그 단체방이 생각났다. 나는 인강 사이트에서 강사들의 강의만 결제하고 자료는 단체방에서 가져다 사용하고 있었고 마음속으로는 자료를 사는 것이 돈이 아까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행동이 엄연히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단 하나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안 쓰는 사람들이 멍청하다고까지 생각했다.</p><p> 그러던 어느 날 강사들이 자신들의 강의자료를 무단 배포 한 사람뿐만 아니라 이용한 사람들까지 고소한다는 내용의 영상을 봤다. 나는 그때에는 입시가 끝났던 터라 황급히 그 방을 나갔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를 무료로 보는 사이트는 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이용 중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뉴스에서까지 그 사이트를 엄격하게 규제해서 이용을 제한하겠다고 정부가 발표를 했다. 나는 가장 처음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이내 나의 도덕의식에 대해 매우 실망하고 부끄러웠다. 불법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 나의 이익을 위해 그런 점들은 무시한 채 지속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더 무서운 점은 내가 다시 그 때로 돌아가도 사용을 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는 것이다. </p><p> 불법 사이트 이용은 단순히 더 싸고 편하게 소비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의 노동의 가치와 지식 재산권을 무시하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물체의 형태를 띠는 것을 훔치는 것에만 경각심을 가지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도 똑같이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것이다. 내가 부끄러움을 느꼈던 이유는 도둑질인 줄 알면서도 그 사실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이용해왔다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사실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면서 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당신은 그때로 돌아가도 이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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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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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빛나는 포장지 속 빈 상자, SNS광고의 민낯</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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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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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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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이지 않는 무게</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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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하루 중 3시간 20분.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아르바이트의 근무 시간이다. 짧은 시간처럼 보이지만 왕복 1시간 40분의 이동시간을 포함하면, 하루의 대부분이 이 짧은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흘러간다. 근무 시간은 여유 없이 짜여 있고, 공식적인 휴게시간도 없어 초반에는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눈치 보며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은 했지만, 여전히 제한된 시간 안에 주어진 업무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은 크다.</p><p><strong> </strong></p><p>이처럼 아르바이트 시간은 짧지만, 강도는 높기에 그에 따른 피로감도 쉽게 누적된다. 이러한 근무 환경은 개인적인 특수 사례가 아니다.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 다수에게서 비슷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p><p> </p><p>아르바이트 공고를 살펴보면 '주 2일 14시간', '주 4일 14시간'처럼 주휴수당 기준인 주 15시간을 의도적으로 피하는 형태가 보인다. 형식상 문제는 없어도, 사실상 주휴수당을 회피하기 위한 구조다. 특히 외식업 등 일부 업종에서는 손님이 몰리는 시간대에만 인력을 투입하고, 그 외 시간은 공백으로 두는 식의 운영 방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는 주휴수당이나 휴게시간 같은 기본적인 권리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이런 고용 방식이 반복되는 데에는,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도 영향을 미친다.</p><p> </p><p>실제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구인 공고 자체가 줄어들고, 공고가 뜨면 금세 지원자가 몰리는 등 경쟁도 치열해졌다. 이렇기에, 구직자는 수익이나 조건이 불리하더라도 일단 일자리를 확보하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불합리함을 인지하면서도 그만두거나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다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p><p> </p><p>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은 다른 쪽으로 향해 있다. 코로나19 이후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조명하는 기사, 예컨대 손님 감소나 운영난 그리고 인건비 부담을 다룬 보도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반면 저임금, 고밀도 노동을 수행하는 청년층의 현실은 비교적 다뤄지지 않는다. 언론이 중장년층 중심의 소비 경향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청년층의 현실은 조명되지 않는다.</p><p> </p><p>아르바이트는 단순한 용돈벌이나 부차적인 수단이 아니라, 일부 청년에게는 생계를 유지하는 기반이 된다. 그런데도 법망을 교묘히 피하는 고용 방식이 지속된다면, 제도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보호장치가 있어도 현실에서 무력화된다면, 결국 법의 사각지대가 확대되고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p><p> </p><p>물론 인건비 상승과 매출 감소 등으로 자영업자의 경영 부담도 크다. 하지만 그 부담이 일방적으로 청년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체계는 조정이 필요하다. 지금의 구조는 무게가 한쪽으로만 쏠린 저울 같다. 균형을 위해, 이제는 사회 전체가 이 무게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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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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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달리는 복지, 탈선 직전</title>
         <author>2a25viaws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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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p><p> 오전 9시 반, 지하철 종로3가역. </p><p><br></p><p> 대부분의 직장인이 출근했을 시간에도 전철은 혼잡하다. 칸마다 빽빽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65세 이상으로 보이는 어르신들이다. 그 순간, ‘시간을 보내려 지하철을 타고 도는 노인들이 많다’는 말이 떠올랐고, 매일 아침 서서 힘겹게 통학하던 기억에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종로3가역의 노인 무임승차 비율은 전체의 40%에 육박한다. 내가 매일 마주하던 모습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p><p><br></p><p> 글을 쓰기 전에는 이러한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지적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료를 조사하며 다양한 사례를 접하자, 내 시선이 좁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노인 무임승차’는 단순한 복지 혜택이 아니라 어르신들에게는 사회와 연결해 주는 끈이었다. 지하철은 고독한 일생을 보내는 어르신에게는 담소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었고, 지하철 택배업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어르신에게는 생계유지의 수단이었으며, 좋은 보금자리가 없는 어르신에게는 무더운 여름과 시린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쉼터였다. 큰 소득이 없이 하루를 보내는 노년층에게 교통비는 생각보다 큰 부담이 된다. 이러한 복지제도는 그들의 사회참여를 촉진하고, 신체적 건강은 물론 정신적 안정에도 크게 기여해왔다.</p><p><br></p><p>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사회가 이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1984년 제도가 도입될 당시 노인 인구 비중은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그 5배인 20%를 넘어섰다. 또 서울 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손실액은 4,135억에 달하며 이는 전체 적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러한 재정 부담은 고스란히 청년층에게로 전가된다. 실제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서울시는 교통 요금 인상을 단행했고, 이는 청년층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복지는 공동체의 책임이지만, 그 책임을 질 인구는 점점 줄고 있다. 지금처럼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청년층이 감소하는 시점에서, 복지가 청년층의 과도한 희생만을 요구한다면 이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제는 단순히 제도의 유지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제도의 유지를 위해 개선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p><p><br></p><p> 그렇다면, 어떤 대안들이 있을까?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우리나라와 같이 무임승차를 보편적 복지로 제공하는 나라는 찾기 힘들다.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한 시간만 60세 이상 노인의 무료 탑승이 가능하며, 프랑스와 미국의 경우 50%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이처럼 제한적 적용이나 교통비 일부 지원과 같은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나아가 소득수준을 고려한 ‘선별적 복지’나 수혜자 연령 인상과 같은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거세지고 있다.</p><p><br></p><p> 모든 사람은 나이를 먹는다. 대학생인 우리도 언젠간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탈선 직전의 복지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노인 무임승차는 의미 있는 복지이지만, 꼭 현행과 같을 필요는 없다. 이제는 여태껏 달리기만 한 복지를 멈춰 세우고 재정비를 해야 할 때다. 부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으로 노인 복지가 건강한 방향으로 오래 이어지기를 바란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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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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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맨발도 강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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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 맨발로 밖을 나간다. 처음 하는 일을 할 땐 이런 느낌이 든다. 첫 아르바이트와 대학, 지하철은 머릿속에 온갖 시나리오를 그리게 한다. 실수를 하지는 않을지, 첫 인사는 어떻게 건네는 게 좋을지, 길을 잃지는 않을지 걱정한다. 맨발로 돌이나 못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리를 걷는 것만 같다.</p><p><br></p><p> 처음을 마주할 때 완벽하고 싶고 잘 하고 싶다. 그런 걱정엔 남들의 평가를 의식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 심할 경우 남들보다 잘 하지 못할 것이 예상되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p><p><br></p><p> 일어나지도 않은 실패 상황과 남들의 평가를 걱정하며 자신감 없는 상태로 시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실패할 가능성이 낮고 노력할 필요가 적은 쉬운 과제를 선택한다. 이렇게 고른 과제에서도 실패한다면 더욱더 자신감을 잃고 성공을 하더라도 성장을 하지는 못한다. 반대로 실패 가능성이 높고 어렵지만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과제를 하면 실패에 관대해진다. 미리 실패를 예측하고 그 다음의 성장을 보게 된다. 미리 실패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특이하지만 효과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실패해서 계획이 틀어지는 것이 무섭다면 계획을 평소보다 덜 자세하게 세울 수 있다. 이렇게 시작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초점을 맞춘다면 성장하게 된다.</p><p><br></p><p> 현재 상황을 바꿔가면서까지 왜 시작을 해야 할까? 시작은 경험의 출발이다. 경험은 전에 겪었던 분야가 아닌 다른 분야나 일상생활에서도 자신도 예상치 못한 일에 쓰일 수 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경험해 본 사람은 로드매니저가 되어 어려운 길도 척척 찾아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배달을 할 때는 예상하지 못 한 일이다. 첫 아르바이트에서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지 못하였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에서 손님들에게 밝은 인사를 건네는 직원이 된다. 지하철을 탈 줄 몰라 한참 헤맸던 경험이 반복되면 처음 가는 길도 쉽게 찾아낸다. 길을 물어오는 어르신들에게 쉽게 설명해줄 수 있는 착한 행인이 될 수도 있다.</p><p><br></p><p> 실패와 성공, 노력했던 경험은 나만의 이야기가 된다. 시간이 지나고 예전의 자신처럼 처음 시작하는 사람에게 해주는 이야기들은 그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 취직이나 창업 같은 사회생활에도 다른 사람과 다른 특별한 ‘별 표시’가 된다. 이렇게 빛나는 사람이 되어 간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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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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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통약자석의 주인은 누구인가</title>
         <author>imjaeyun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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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비켜.”</p><p>초등학생 시절, 버스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던 내게 한 어르신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그 말은 단순히 자리를 양보해달라는 부탁이 아니라, ‘이 자리는 내 자리야’라는 당연하다는 듯한 말처럼 들렸다.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날 이후로 교통약자석은 나한테 ‘앉으면 안 되는 자리’이자 ‘노인들만이 앉는 자리’가 됐다. 다리가 아팠던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분이 우선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p><p>교통약자석은 본래 노인뿐 아니라 장애인, 임산부, 병약자, 일시적으로 부상을 입은 사람 등 이동에 불편을 겪는 이들을 위한 공간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 좌석은 특정 연령층의 권리처럼 굳어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교통약자석을 ‘경로석’, ‘노약자석’으로 칭하는 것은 이를 단번에 보여주는 사례이다. 단지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약자를 정의하고 자리에 대한 정당성을 판단하는 현실은 이 제도의 본질적 목적을 흐리게 만든다.</p><p>그렇다면 교통약자석은 과연 누구에게 우선되어야 하는가? 가장 타당한 기준은 이동의 불편함 정도일 것이다. 예컨대, 건강한 고령자보다도 고위험군 임산부나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자리를 더 필요로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단순한 연령이 아닌 신체적 상황과 필요에 따라 배려가 행해져야 한다는 점은 자명하다.</p><p>해외 사례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확인된다. 영국 런던 지하철은 ‘Priority seat’라 하여 좌석의 사용 권리를 특정하지 않고, ‘더 필요한 사람에게 양보하라’는 방향성을 명확히 한다. 또한 일본은 임산부가 ‘마터니티 마크’를 달아 본인의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주변 승객이 이를 인식해 자리를 비워주는 구조다. 이는 자리를 둘러싼 배려의 기준이 단순히 고정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p><p>이러한 기준을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는지는 또 다른 논의다. 모든 배려의 윤리를 법으로 판단할 수는 없으며, 수많은 현실 속 복합적 상황을 법적으로 규정짓는 데에는 한계가 따른다. 심지어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법적 잣대만을 들이민다면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는 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노인 우선’이 유일한 기준으로 작동하는 구조는 교통약자석이 지닌 본래의 취지를 오히려 왜곡할 수 있다.</p><p>따라서 교통약자석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시각적 안내문이나 방송 문구를 통해 다양한 교통약자의 존재를 상기시키고, 시민들에게 ‘누가 지금 이 자리를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가’를 묻는 공익 캠페인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p><p>교통약자석은 결코 특정 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 자리는 불편함의 크기를 중심으로 판단되어야 하며, 순간적으로 누군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쉼의 공간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배려의 시작이자,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현되는 지점일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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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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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드라마는 왜곡이 아닌 판타지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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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br></p><p>의사가 환자 포기하면, 그 날로 의사는 끝이야. 드라마 &lt;슬기로운 의사생활&gt; 에서 교수님이 레지던트에게 하는 말이다. &lt;중증외상센터&gt;, &lt;슬기로운 의사생활&gt;, &lt;낭만닥터 김사부&gt; 등 의학드라마는 항상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의사라는 직업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고, 학생들에게 꿈을 키워준다. 그러나 현실은 정말 드라마 같을까? 2024년, 환자를 포기한 의사는 많았다.</p><p><br></p><p>세계격투기대회에서 뒤통수를 맞아 뇌 흔들림 현상이 온 선수를 데리고 병원에 간 적이 있다. 선수는 숨을 쉬기 힘들어했고, 제대로 걷지도 못했으며 침과 콧물이 계속 나오며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그러나 병원은 선수가 의식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받아주지 않았으며, 받아줄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응급실 뺑뺑이를 하다가 결국 의식이 없어져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 되자 그제서야 응급실을 열어주었다.</p><p><br></p><p>응급실 뺑뺑이는 제 시간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면 살았을 많은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선수는 18살이었지만 그들에게 환자는 환자일 뿐 5살 아이도, 70대 노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죽음이 기사에 나고, 몇 개월 뒤 세상의 사랑을 받았던 &lt;슬기로운 의사생활&gt; 의 차기작인 &lt;언젠가는 슬기로울 전공의 생활&gt; 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드라마는 다른 의학드라마가 그랬던 것 처럼 많은 사랑을 받을 것이고, 의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고, 응급실 뺑뺑이 현상은 잊혀질 수도 있다.</p><p><br></p><p>드라마는 의사, 검사, 변호사 등 ‘사’ 자 등 특권계층에 대한 미화가 심각하다. 환자를 위해 달리는 의사가 정말 있을까? 의뢰인을 위해 진심으로 싸워주고, 정의를 쫓는 변호사와 검사를 우리는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그들의 직업이 존중받는 이유는 단지 전문성을 지녔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지식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사람들을 돕기 위해 쓰는 것이 그들의 책임이고, 직업 윤리다. 이 윤리가 져버려진다면, 아무리 많은 드라마로 미화시킨다한들 결코 떳떳해질 수 없을 것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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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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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공주는 어디 가고, 껍데기만 남았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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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눈송이처럼 새하얗고 핏방울처럼 붉으며, 창틀처럼 검은 아이를 가졌으면!”</p><p> 동화 『백설공주』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눈처럼 하얀 피부, 피처럼 새빨간 입술, 흑단 같은 검은 머리카락. 이 특징들은 백설 공주라는 캐릭터의 상징이면서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지난 3월 개봉한 영화 『백설공주』에 그런 공주는 없다.</p><p> 주인공 백설공주는 구릿빛 피부의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연기했다. ‘백설’이란 이름의 유래는 ‘눈이 오는 날 태어나서’로 바뀌었다. 가장 아름다운 자를 알려주는 마법의 거울은 멋대로 없던 기준을 추가해 이렇게 말한다. "여왕님이 가장 아름다우나 더 아름다운 내면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백설공주입니다." 설정은 변했다. 외모가 중심이던 서사는 이제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백설은 여왕보다 아름답지 않다. 그런데도 여왕은 변함없이 그녀를 시기하고 죽이려 한다. 설정은 변했는데 전개는 원작 그대로다. 이야기가 이상해질 수밖에 없다. 공주의 복장은 원작을 그대로 가져왔다. 분위기가 달라서 어울리지 않는다. 피부색을 바꾸고 성격도 달라졌으면 옷 한 벌 정도는 갈아입을 법한데, 그 정도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 한편, 이름만 ‘도적 조나단’으로 변경된 플로리안 왕자는 외모도 행동도 변하지 않았다. 변화 기준도 의미도 알 수 없다.</p><p> 『백설공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실사화된 『인어공주』에서는 흑인 배우 캐스팅으로 원작 훼손 논란이 있었고, 『뮬란』 역시 화려한 기술력을 제외한 모든 면에서 원작에 뒤처진다는 혹평을 받았다. 왜 디즈니 실사 영화들은 서사를 망치면서까지 등장인물의 인종이나 성격을 바꿔야 했을까?</p><p> 그 답은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성, 차별 반대, 소수자 존중이라는 가치를 표면에 올려놓았지만, 결과는 배려가 아닌 억압이었다. 배역보단 인종이, 실력보단 관계자의 사회 지위가 중요시되었다. 예를 들어, 2024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은 작품상 후보 기준으로 다양성 확보를 추가했다. 출연 배우, 제작 스태프, 스토리, 마케팅 과정에 이르기까지 일정 비율 이상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가 포함되지 않으면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백인은 소수자가 아니기 때문에 백인만 등장하면 작품이 될 수 없다. 반드시 소수자를 끼워 넣어야 한다. 백설공주의 시대 배경이 중세 독일, 백인 국가라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p><p> 디즈니는 이 기준을 충실히 반영했다. 작품성이나 완성도는 뒷전이고 소수자 비율 확보가 먼저다. 영화를 평가표에 짜맞추기 위해서 설득력, 개연성은 구성요소가 아니다. ‘주체적인 유색인종 공주가 시련을 극복하는 장면’을 뽑아내는데 그것들은 장애물에 불과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인종을 다양화했다'는 명분 아래, 희생양은 이야기와 작품성이 되었다. 캐릭터의 정체성은 갈 곳을 잃었다. 대중은 바보가 아니다. 평가 기준에 맞춰놓은 메시지에 몰두하고 재미를 포기했으니, 관객에게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철학 강론이 아니다. 뮤지컬 영화는 뮤직비디오가 아니다. 아무리 화려한 CG와 뛰어난 음악을 담아도 서사를 잃은 영화는 빈 껍데기에 불과하다.</p><p>영화관이 감동 대신 사상을 판다면, 영화표 대신 시집을 사라. 음악은 앨범으로 듣고, 철학은 책으로 읽어라.</p><p>이제 껍데기는 가라.</p><p>공주의 아름다움도, 툴툴대는 난쟁이도, 그들을 감동케 하는 배려심 하나도 없는 사상은 가라.</p><p>자유 없는 철학도, 고민도 배려도 없이 필요해 끼우는 억지 다양성도 가라.</p><p>재미와 감동, 오랜 동심과 추억만 남고, 부디, 껍데기는 가라.</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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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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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소비로 위로받는 시대의 딜레마</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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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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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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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디지털 소외 세대, 야구 문화에서도 소외되다</title>
         <author>minc80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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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응원하는 팀의 경기를 보러 야구장을 찾았다. 그런데 경기장 바깥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해 사람들에게 “표 좀 팔아주시면 안 되나요?”라며 다가오는 어르신들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처음엔 그냥 그런가 보다 싶어서 지나쳤지만, 경기장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니 비슷한 상황이 여러 번 눈에 띄었다. 표를 구하지 못한 어르신들이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기며 사람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야구장은 더 이상 어르신들에게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최근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가 눈에 띄게 증가하면서, 인기 구단의 홈경기가 매진되는 경우가 흔해졌고, 선수의 한정판 유니폼을 갖기 위해 원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야구 선수들은 아이돌 못지않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으며, SNS에서는 야구장을 배경으로 한 젊은 세대의 인증 사진이 넘쳐난다. 야구는 더 이상 중년 남성의 취미가 아니라, 젊은 세대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화려하게 성장한 야구 열풍 속에서, 한때 한국 프로야구를 지켜온 중요한 세대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 속에서 야구라는 문화마저 소외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p><p> 현재 대부분의 프로야구 티켓 예매는 모바일 앱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매는 정해진 시간에 오픈되며, 인기 구단의 경기는 1~2분 내에 매진되어버린다. 젊은 팬들은 앱 조작에 익숙하고 티켓팅 경험이 많기 때문에 예매 성공률이 높지만,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어렵게만 느껴진다. 게다가 최근에는 되팔이 문제까지 심각하다. 예매에 성공하지 못해서 정가보다 2~3배 높은 가격에 암거래되는 티켓을 사야만 경기를 관람할 수 있는 상황에서 경제적 여유와 디지털 활용 능력이 있어야만 야구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본래 ‘모두의 스포츠’였던 야구가 특정 세대만의 전유물로 바뀌어가고 있다.</p><p> 이러한 현상을 단순한 ‘세대 차이’로 치부하기엔 무책임하다. 야구는 원래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다. 과거의 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프로야구가 성장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현재의 인기와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팬들이 디지털이라는 벽 앞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면, 우리는 그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우선, 야구계는 어르신들을 위한 현장 구매 전용 티켓 창구를 일정 수량 확보하고, 오프라인 예매 운영을 확대해야 한다. 단순히 디지털 교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에, 디지털에 의존하지 않고도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이다. 또한, 구단은 어르신 전용 좌석이나 할인 제도, 노년층 대상 이벤트 등을 기획해 야구가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이라는 인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p><p> 야구는 세대를 잇는 스포츠다. 지금처럼 특정 세대가 배제된 채 흘러간다면, 야구의 미래는 결코 건강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 야구가 모두의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지 ‘흥행’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을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 야구장이 중요하게 여길 것은 더 많은 관중이 아니라, 더 다양한 세대의 관중이다. 세대가 다르고 방식이 달라도, 같은 경기를 보며 응원하고, 승패에 저마다 아쉬워하는 경험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다.  야구가 단순히 젊은이들만 즐길 수 있는 문화로만 남지 않길 바란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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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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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000원 아메리카노, 70cm 테이블</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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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며칠 전, 생일을 맞아 친구와 함께 해방촌을 놀러 간 적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다 같이 나온 정말 소중한 친구였다. 그만큼 편하고 또 오랜만에 만나 하고 싶은 말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은 카페를 간 뒤로 모두 다 망가져 버렸다. </p><p> 가고자 했던 예쁜 카페들은 예약하거나 웨이팅을 하지 않으면 애초에 들어가기도 힘든 곳이었다. 우리는 해방촌이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예약도 웨이팅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녔다. 우리는 미리 찾아놨던 곳에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모든 곳에 걸려있는 웨이팅에 지친 상태였다. 그래도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다니는 것 자체로도 좋은 시간이었다. 가고 싶었던 곳에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눈에 보이는 곳에 들어가게 되었고 운이 좋게도 자리가 있어 앉을 수 있었다. 해방촌에 간 지 한 시간 반이 흐른 시점이었다. 테이블은 낮았고 아메리카노는 7000원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나간다면 또 얼마나 헤맬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그곳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만족스러웠다. 큰 창이 있어 햇빛이 들어왔고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p><p>흔히 말하는 ‘예카’, 예쁜 카페라는 뜻을 가진 신조어가 나온 건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의 유행 이후였다. 좋은 곳에 간 나, 좋은 것을 가진 나를 보여주고 또 자랑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 것이 중요해지며 이런 신조어도 나오게 되었다. 신조어는 사회의 현상을 담아내는 언어이다. 대중적으로 공감을 얻고 그렇게 사용을 하고 그러한 언어로 소통하는 세상에 살아가는 우리는 왜 그런 것에 집착하고 남들보다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증명받기 위해 노력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p><p>SNS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새로운 기능이 생겨나고 더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나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고 사회적으로 하나의 직업으로도 인정받는다. 누군가는 그들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다양한 기업들은 그들과 계약을 맺어 광고를 하기도 하고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웬만한 직장인 월급을 훨씬 넘어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신의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오려 전시한다.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 더 아름다운 곳을 찾고 유행에 가담하기 위해 방방곡곡을 오간다. 이 모든 것의 이유는 내가 더 많은 경험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닌 오직 SNS를 위해서이기에 이런 문제가 생겨나는 것이다. </p><p>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칭찬을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은 모두가 원하는 일일 것이다. 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처럼 사진은 추억을 남기고 한 장의 사진만으로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오로지 사진을 위해, SNS를 위해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진다면 그건 정말 문제이지 않을까. 생일에 나와 친구처럼 말이다.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기보다는 화면 속에 보이는 우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SNS 속 우리를 보며 만족하는 지금 현 사회는 조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건 분명하다.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70cm처럼 낮은 테이블에서 7000원이라는 비싼 아메리카노를 시켜 불편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왜 SNS에 집착하고 더 나은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는 것인지. </p><p>더 나은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꼭 SNS 속 사진을 올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많은 방법이 존재한다. 빛이 나는 사람은 꼭 보여주지 않아도 행동에서 대화에서 알아차릴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를 쫓고 있는 것이 아닐까.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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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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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훈련은 자비로, 출전은 빚으로</title>
         <author>dgim15253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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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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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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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퍼스널 컬러-나를 가두는 개성이라는 이름의 틀</title>
         <author>qkrtjgml200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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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넌 웜이야? 쿨이야?”</p><p> 퍼스널 컬러가 유행하면서, 이제는 친구들과의 대화에서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질문이 오간다. 몇 년 전만 해도 자신의 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이 퍼스널 컬러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어떤 톤이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고민한다. 퍼스널 컬러는 이제 더 이상 연예인과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며 하나의 기준처럼 작용하고 있다.</p><p> 이러한 흐름은 단지 컬러에만 그치지 않는다. 퍼스널 골격/헤어/메이크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며, 우리는 ’개인 맞춤형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며칠 전, 홍대로 체형 컨설팅을 받으러 간 적이 있다. 컨설턴트는 내 신체 치수를 꼼꼼히 재고, 나에게 어울리는 바지 스타일로 부츠컷을 추천해주셨다. 한 번도 입어보지 않은 스타일이었지만, 추천받은 대로 입어보니 꽤 잘 어울렸다. 이처럼 퍼스널 진단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p><p> 퍼스널 진단은 이제 개개인의 취향이나 스타일을 파악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소비 문화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수원 스타필드의 한 매장에는 AI 기반의 퍼스널 컬러 키오스크가 도입되었고, 최근에는 퍼스널 컬러 전문 뷰티 브랜드 모렛(molette)이 출시되었다. 또한 색조화장품을 구매할 때 상세 정보의 퍼스널컬러 별 차트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퍼스널진단이 하나의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되는 것이다. </p><p> 하지만 개인 맞춤 지표들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본래 퍼스널 컬러는 자신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살리고자 하는 수단이지만, 어느 순간 ‘이 톤 아니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으로 변질되곤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이나 스타일보다, 진단결과에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것만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오히려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제한하고, 스스로에 대한 선택권을 좁힐 수 있다.</p><p> 또한 퍼스널 진단은 소비를 자극하는 장치로도 작용한다.  한 번 진단을 받고 나면 “웜톤 맞춤 립”. “쿨톤에 어울리는 옷” 등의 소비로 이어진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계속 “내가 보기 좋은 사람인가?”를 점검하게 만들고 만다. 이는 외모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고, 또다시 새로운 소비를 유도하는 악순환을 낳는다.</p><p> 퍼스널 진단은 분명 우리에 대해 더 잘 알게 하고, 외모를 더 아름답게 가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디까지나 ‘참고 자료’로 활용하는 태도다. 나를 위한 ‘도구’가 어느 순간 나를 정의하는 ‘기준’이 되어버린다면, 퍼스널 진단은 오히려 나의 자유를 가두는 틀이 될지도 모른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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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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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예술을 닮은 기술, 예술을 위협하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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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그야말로 ‘지브리풍’ 그림 열풍이 불었다. 어느 순간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이 하나둘씩 동일한 화풍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그 그림체의 주인공은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스튜디오의 소장이자 애니메이션의 거장이었다. 미야자키 감독은 2016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AI를 “생명에 대한 모욕’이라고 표현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지난 3월 25일 오픈 AI에서 발표한 네이티브 생성형 인공지능 모델은 감독의 견해와는 정반대의 상황을 만들어냈다. 이 기능이 추가된 후, 챗GPT 신규 가입자는 한 시간 만에 100만 명 증가하였고 챗GPT-4o 모델에 적용된 이 AI를 통해 해당 스타일의 이미지는 7억 장 넘게 생성되며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p><p> ‘그렇다면 어떻게 특정 그림체의 이미지를 생산한 것일까?’ AI는 이 스타일을 학습하기 위해 관련 이미지와 텍스트를 대량 수집한다. 이 데이터는 인공지능 모델 학습에 사용되며 수집된 이미지와 텍스트는 각각 인코딩된다. 이미지에 의도적으로 시각적 노이즈를 추가한 후 이를 디코딩해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합성 이미지를 만든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본 데이터의 구조를 재조합하는 것에 가깝다.</p><p> 해당 기술의 확산은 많은 이들에게 환영받으며 사용되고 있지만 동시에 심각한 윤리적, 법적 문제를 드러냈다. 첫 번째로는 저작권 및 창작자의 권리 침해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게티 이미지의 소송이다. 이 기업은 AI 이미지 생성 플랫폼은 Stability AI가 AI 학습을 위해 자사의 웹사이트에서 최소 1,200만 개의 이미지를 사용하였고 텍스트 및 메타데이터도 함께 복제하였다며 저작권과 상표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심지어 일부 생성된 이미지에서는 당사의 워터마크가 변형된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도 방대한 데이터 중 해당 업체가 제작한 이미지가 학습용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한 특정 스타일 차용은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 그간 국내외에서는 예술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안이나 화풍을 아이디어 영역으로 간주해 왔다. 그래서 저작권 관련법은 아주 구체적인 유사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저작권 침해로 보지 않는다. 이처럼 창작자들은 자신의 스타일이 어디서 어떻게 재생산되고 있는지 파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p><p> 그다음으로는 창작물 가치의 하락이다. 특정 화풍은 단순한 그림체가 아닌, 철저한 장인정신과 감성이 담긴 예술이다. 그러나 AI가 유명 화풍을 손쉽게 모방하게 되면서, 해당 스타일을 수년간 갈고 닦아온 예술가들의 작품 가치는 위협받고 있다. 최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특정 화풍을 수십 초 만에 복제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창작 과정이 가진 시간과 노력의 가치가 시장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많은 창작자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p><p> 마지막으로 기술의 오용이 우려된다. 최근 AI 이미지 생성 기술은 단순한 미적 재현을 넘어서 정치적·군사적 목적에도 악용되고 있다.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최근 공식 SNS에 지브리풍 이미지로 병사들을 묘사하며 전쟁을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미국 백악관은 불법 체류자 추방 정책을 홍보하기 위해 지브리 스타일의 이미지를 사용했고, 이에 대해 “이민자 탄압을 동화처럼 포장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두 사례는 공통적으로 평화주의자로 알려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철학을 왜곡하고 그의 예술 스타일을 정치적·군사적 홍보 수단으로 사용한 것으로 창작자의 의도와 윤리적 정체성을 심각하게 침해하였다.</p><p>AI는 점점 더 빠르고 정교하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속도가 법과 윤리를 따라잡고 있는가에 대해선 아직 불분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문화 지체를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은 예술을 흉내 낼 수 있고, 심지어 대체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이 품고 있던 창작자의 철학과 의도를 복제할 순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편리함과 유행이라는 이유로 이 이미지를 아무런 고민 없이 소비하고 공유해왔다. 이제는 되묻고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이 기술을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사용해왔는가? 바로 이 질문에서부터, AI 시대의 창작 윤리는 출발해야 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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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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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상업적 의도 은폐가 불러온 신뢰의 붕괴</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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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strong>상업적 의도 은폐가 불러온 신뢰의 붕괴</strong></p><p>                                                                                                            </p><p>온라인 콘텐츠는 오늘날 사람들의 정보 획득과 소비 결정에 있어 중요한 통로로 기능하고 있다.검색을 통해 정보를 탐색하던 방식에서 나아가,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추천하는 영상과 이미지, 자극적인 문구가 포함된 게시물들을 통해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수많은 메시지를 접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콘텐츠 제작과 기업 마케팅은 점차 경계를 허물며 결합되고 있으며, 그 중 하나가 상업적 의도를 숨긴 정보 제공 방식이다.</p><p>이는 본질적으로 소비자에 대한 기만이다. 금전적 또는 물질적 대가가 제공된 협찬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는 마치 자발적인 경험이나 진심 어린 추천처럼 구성된다. 영상 속 인물이 특정 제품을  사용하며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브랜드명이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장면, 조명이 제품을 부각시키도록 연출된 구도는 모두 홍보 목적의 연출이다. 광고 사실이 명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표현은 시청자의 판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때 소비자는 정보의 출처나 의도를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사실상 상업적 메시지를 ‘중립적 조언’으로 받아들이게 된다.</p><p>상업성이 은폐된 콘텐츠는 정보 제공자와 수용자 사이의 비대칭을 강화한다. 소비자는 콘텐츠가 만들어진 배경과 이해관계를 알 수 없으며, 판단의 근거로 삼는 정보의 신뢰도 또한 검증할 방법이 없다. 표면적으로는 추천이나 사용 후기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기업이 기획한 마케팅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구조다. 이로 인해 수용자는 자율적 선택의 기회를 제한당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정보 소비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방식이 개별 콘텐츠에 국한되지 않고, 전체 미디어 환경의 신뢰를 저하시킨다는 점에 있다. 특정 제작자의 불투명한 협찬 사례가 드러났을 때, 시청자는 그 제작자의 모든 과거 콘텐츠를 의심하게 된다. 더 나아가, 유사한 형식을 취한 다른 콘텐츠들에 대해서도 동일한 의심이 적용된다. 이는 개별 채널의 신뢰도 하락을 넘어서, 플랫폼 전체에 대한 회의로 이어지며 결국 디지털 미디어 전반의 진정성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시장 질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광고 사실을 명시한 콘텐츠는 소비자로 하여금 일정한 경계를 두고 받아들여지는 반면, 상업성이 드러나지 않은 콘텐츠는 높은 몰입도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로 인해 투명하게 운영되는 제작자나 기업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며, 반대로 사실을 은폐한 경우 오히려 더 많은 보상을 받는 구조가 형성된다. 이러한 환경이 반복되면, 정직한 방식보다 불공정한 전략이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왜곡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더불어, 제작자 개인의 이미지 역시 장기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 상업적 이해관계를 숨기고 콘텐츠 내부에 자연스럽게 삽입하는 과정은, 제작자의 신념이 아닌 경제적 대가에 의해 구성된 메시지를 반복하게 만든다. 결국 제작자는 정보 제공자로서의 신뢰를 상실하고, 향후 전달하는 모든 메시지에 대해 지속적인 의심을 감수해야 한다.현재 다수의 플랫폼과 법령은 일정 기준 이상의 광고성 콘텐츠에 대해 표기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문장 하단에 ‘광고 포함’이라는 문구를 삽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용자가 콘텐츠의 상업적 성격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 인식을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판단이 가능하도록 구성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보 제공자의 최소한의 책임이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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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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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청년 포교 어디까지 왔나 ㅡ 스님의 동아리 활동</title>
         <author>a0105161375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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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a rel="noopener noreferrer nofollow" href="2025%20110022">2025 110022</a> 황성준 정각</p><p><br></p><p>《무소유》는 무려 40년간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은 책이다. 1976년 출간된 후 2010년까지 3판 86쇄가 인쇄되었으며, 저자는 전문 작가가 아닌 스님으로, 법명은 법정이다. 어두운 1980년대 노래로 밝음을 추구했던 민중가수 정세현은 이후 출가하여 스님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였다.</p><p><br></p><p> 스님들이 산에 살면서, 벽을 보고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거나, 목탁을 치며 경전을 독송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 고정관념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법정 스님과 범능 스님은, 수행의 결과물을 책과 노래라는 방편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며 부처님 법을 전하는 포교를 했으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까지도 회자 되고 있다. 근래에는 모 연예인이 승복을 입고 클럽 DJ를 보면서 화제와 함께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p><p><br></p><p> 시대는 변한다.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하므로 고정된 실체는 없다는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불교 조계종단의 종지 중 하나는 전법도생(傳法度生)이다. 그렇다면 가르침을 전하여 생명을 구제하는 전법도생의 방법도 변해야 마땅하지 않을까?</p><p><br></p><p> 최근 전법의 일환으로 청년 포교에 힘을 싣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대학생 포교가 핵심이다. 대학생 포교는 동아리 활동에서부터 자연스럽게 불교와 가까워지게 된다. 2024년 기준 전국 130여개 대학에서 불교동아리가 창립되어 활동 중이며, 최근 3년간 두 배가량 증가하였다. 최근 빠른 확산의 요인은 대한불교조계종 상월결사 대학생전법위원회와 교수붓다회 등의 지원을 꼽을 수 있다.</p><p><br></p><p> 전국 대학교 중에서는 동국대학교가 동아리 수와 가입한 학생이 가장 많은데, 2025년 4월 기준으로 서울캠퍼스 17개, 경주WISE 캠퍼스 6개, 듀이카 1개, LA캠퍼스 1개로 총 25개 동아리에 가입 회원은 4,000명에 달한다. 동국대의 학부와 대학원생을 포함한 전체 재학생 수가 28,000명 정도이므로 작지 않은 비율이다. 특히 최근 1~2년 사이에 절반 이상이 새롭게 창립된 것이 특징이다.</p><p><br></p><p> 이렇듯 스님들이 포교하는 방법은 다양하며, 청년 포교는 대학생 동아리 활성화가 중요한데, 동국대학교에는 108명의 불교추전인재 전형제도가 있으며, 그중에 약 10여 명은 스님으로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학인 스님들의 동아리 활동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p><p><br></p><p> 조사결과 학인 스님들의 기숙사인 백상원에 있는 스님 중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스님은 단 한 명이었다. 그 이유는 4학년 입승 스님과의 인터뷰에서 알 수 있었는데 내부 규정으로 동아리 가입을 제한하는 청규는 없으나, 1학년 때는 새벽 예불부터 저녁예불까지 기본적인 청소와 공양준비, 학교생활과 여러 가지 행사 참여 등으로 인해서 동아리 활동에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p><p><br></p><p> 동아리는 일반적으로 새 학기 봄에 신입생을 모집하여 선 후배 간의 돈독한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는데, 학인 스님들은 정해진 일정으로 인해서 가입하고 참여하고 싶으나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p><p><br></p><p> 학인 스님들은 학생이면서 승려이기도 하다. 정확하게는 승려로서의 기본교육을 대학교 학부에서 받는 것으로 학생들을 포함한 일반인과의 접촉이 가까우며 자유롭다. 즉 이들 한명 한명이 걸어 다니는 홍보 모델이 될 수도 있으며, 현재 MZ 세대의 생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p><p><br></p><p> 최근 동국대에서는 불교동아리의 지속 가능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전법특임교수제도를 신설하여 학생, 교수, 지도 법사가 삼위일체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였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이끌려는 의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학인들의 동아리 활동 지원은 전혀 없으며, 누구도 이 부분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건학위원회와 정각원에서 불철주야 건학이념의 실현과 불교인재양성 및 전법에 노력하고 있지만, 학인 스님들에 관심과 활용, 활동 지원이 있다면 앞서 실현하고자 하는 것들이 원만하게 빠르게 성취될 것이다.</p><p><br></p><p>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님들의 생각과 의지 그리고 행동이다. 승려로서 예법에 맞는 몸가짐과 타인의 모범이 되는 태도는 기본이며, 궁극적인 본분은 나와 남을 이롭게 하는 자리이타(自利利他)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 하여 상생(相生)함에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승려들의 동아리 가입은 한 사람이 백 사람, 천 사람을 포교해 나가는 시발점이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p><p><br></p><p> 현재의 학인 스님들이 불교 지도자의 미래라면, 동아리에 가입된 청년 불자와 신도들은 앞으로 이 나라 불교의 새로운 뿌리이자 미래가 될 것이다. 이 둘이 만나서 소통하고 밀고 당기고 힘을 합친다면 대한민국의 불교는 새롭게 힘차게 도약하지 않을까? 학교와 종단 차원의 관심과 지원, 학인 스님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가 필요한 때이다. 불교 중흥을 위해서...</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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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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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랜차이즈의 달콤한 약속, 그리고 빛바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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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202411299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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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아침에 일어났다. 여느때와 같이 이를 닦고, 세수를 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언제나 그랬듯 배가 고팠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딱히 먹고 싶은 게 없어 그대로 집을 나섰다. 가는 길에 뭘 먹을까 고민하며 거리를 둘러보니, 온통 프랜차이즈 식당들뿐이었다. 익숙한 간판, 어디서나 비슷한 메뉴들. 그 순간 유튜브에서 봤던 영상이 떠올랐다. 프랜차이즈 대표 백00씨를 둘러싼 논란 말이다.</p><p>&nbsp;</p><p>그 영상 속에서는 “월 매출 3천만 원 보장”이라는 말이 당당하게 나왔다. 말 그대로 ‘대박’의 가능성처럼 들렸다. 하지만 실제 점주의 말은 달랐다. “900만 원 매출을 올렸는데, 물품 구매비와 로열티만 460만원, 손에 남는 건 겨우 46만 원이었다.”</p><p>자료를 찾아보니, 더본코리아의 순이익률은 5.13% 정도. 업계 평균보다 낮다고는 하지만, 월 46만원밖에 가져가지 못하는 가맹점주의 현실은 훨씬 더 팍팍하다 느껴졌다. 문제는 단순히 수치의 차이가 아니다. ‘가능성’을 ‘보장’으로 포장하고, 수익의 리스크는 점주가 대부분 떠안는 구조가 있다는 데 있다.</p><p>&nbsp;</p><p>프랜차이즈는 겉으론 ‘같이 가자’고 손을 내밀지만, 실상은 같은 길을 걷고 있지 않다. 본사는 브랜드로 벌고, 점주는 하루 12시간을 일하며도 남는 게 별로 없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프랜차이즈 창업을 꿈꾼다. 비교적 낮은 진입장벽과 안정적인 브랜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 뒤에는 종종 계산서 앞에서 고개 숙인 점주들이 있다. 물론 모든 프랜차이즈가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은, ‘상생’이란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점주가 만족하는 구조가 아니라면, 결국 브랜드도 오래 가지 못한다.</p><p>&nbsp;</p><p>오늘 아침의 아주 평범한 ‘뭐 먹지?’라는 질문이, 뜻밖에도 이 문제까지 나를 이끌었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는 문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프렌차이즈 식당을 개업하고 있다. 그것이 미래의 나도 예외는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며, 과연 내가 가맹점주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해야할지, 현재 할 수 있는것은 무엇일까 생각이 들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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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4-28 01:38: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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