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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형성&gt;12세기 고려 문벌귀족 사회의 발전과 관련된 문화유산(유물과 유적)을 그림과 설명을 덧붙여 찾아 보시오.(단, 유물과 유적이 있는 지역명을 같이 쓰시오.) by 교사윤혜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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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아래 더하기 버튼을 클릭하여 토론 주제에 대한 답변을 게시하세요.</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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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02 04:43: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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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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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고려청자(高麗靑磁)는 고려 문종(文宗)시대 전 후에 송(宋)의 화남 절강성 월주요(華南浙江省越州窯)의 영향을 받고 일어난 것으로서 그 변천은 청자의 발생에서 쇠퇴까지 각 기간을 3기, 300년으로 구분하는 것이 가장 타당한 방법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대 구분과 해당 기간 중의 청자의 특색과는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된다. 초기의 청자는 매우 소박한 데서 출발하여 점차 기술이 숙련됨에 따라 예종(睿宗)·인종(仁宗) 때에 이르러 이른바 비색청자시대(翡色靑磁時代)를 이루며 고려청자의 진면목을 보이는 상감청자를 낳는데 이는 순전히 고려인의 창의력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상감청자가 다시 동철기(銅鐵器)에 접목(接木)되어 은동상감기(銀銅象嵌器)를 낳고 고려 말기에 이르러 청자는 실질적으로 쇠퇴하여 속화(俗化)되고 말았다.</p><p><br/></p><p><br/></p><p>청자칠보투각향로의 모습.</p><p>(국보95호)</p><p><br/></p><p>+부안청자박물관에 있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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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4: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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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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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청자 풀꽃무늬 꽃모양 받침잔, 고려 12세기, 꽃잎 모양의 청자 잔과 청자 받침이다. 모란.넝쿨.국화.연꽃무늬 등을 음각했다. 전남 강진구 대구면 사당리 가마에서 구운 것으로 추정된다. 청자 연꽃 모양 연적, 고려 12세기, 출토지인 고려 수도 개경의 상류층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연꽃모양 연적이다. 연판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lt;출처:중앙박물관&gt;</p><p><br/></p><p>부잣집의 청통물병</p><p>정병淨甁은 목이 긴 형태의 물병으로 원래 종교적 의물이었다. 가장 깨끗한 물을 담는데, 깨끗한 물은 사람들의 목마름과 고통을 씻어준다고 생각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 사찰 뿐만 아니라 도교사원, 관청 등에서 두루 사용하였고 부잣집에서는 생활용품으로도 사용하였다. 송나라 사신 서경의 『고려도경』에서는 귀부인을 묘사하면서 부잣집에서 정병을 쓰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p><p>귀부인의 화장은 향유를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분을 바르되 연지는 칠하지 아니하고, …부잣집에서는 큰 자리를 깔고서 시비가 곁에 늘어서서 각기 수건과 정병을 들고 있는데 비록 더운날이라도 괴롭게 여기지 않는다. &lt;출처:중앙박물관&gt;</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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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4:5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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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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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는 고려 시대인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청자 향로이다.</p><p><br/></p><p>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라는 이름을 풀이해 보면, 뚜껑에 칠보문을 투각 기법으로 새겨넣은 청자로 된 향로라는 뜻이다. 칠보문(七寶文)은 칠보 문양이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칠보는 본래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1]이 가지는 일곱가지 보물을 가리킨다.[2]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문양이 칠보문이었다. 하지만 칠보문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그 의미가 변경되어 길상문의 성격으로 주로 사용된다.[3] 길상문으로서의 칠보문은 일반적으로 원형의 고리모양 네개를 조합하여 만들어지는 기하학적 문양이며, 조합된 형태와 도안에 따라 7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4] 본 향로의 뚜껑에 사용된 문양은 이 중에서 '전보(錢寶)'이다. 마지막으로 투각(透刻) 기법은 원재료를 완전히 뚫거나 도려내어 그림이나 무늬를 표현하는 조각 기법으로,[5] 입체적인 인상을 준다.</p><p><br/></p><p>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의 출토지나 입수 경위와 같은 관련 정보에 대해선 딱히 전해지는 바가 없어 정확한 제작시기 등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본 향로의 제작 수준이 뛰어나고 외형이 아름답고, 받침이 두 동강이 나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상태도 꽤나 양호하여 고려청자의 대표적인 명품 향로 유물로 꼽힌다. 또한 이름에는 다 들어가진 않았지만 본 향로는 투각 기법 외에도 음각, 양각, 퇴화, 상감, 첩화, 상형 등 가능한 모든 장식 기법이 총동원되어 12세기 고려의 절정에 오른 공예 수준을 보여주는 귀한 유물로 평가된다.[6]</p><p><br/></p><p>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는 1962년에 국보 제9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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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7: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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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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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20 오수빈</p><p>명창7년명종</p><p>원래는 오구라(小倉) 콜렉션의 소장품이었으나 동경국립박물관에 기증되어 건통 7년 명종과 마찬가지로 동양관 한국실에 전시되어 있다.</p><p><br></p><p>S자형으로 굴곡진 용뉴는 종신보다 작게 묘사되었고 용두는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그 입을 천판상에서 떨어진 채 보주로 연결했다. 용의 목에는 지느러미와 비늘까지 세세히 표현되어 하단에서 뻗어 나온 갈기〔염익(焰翼)〕는 마치 운문이나 당초문처럼 형식화되어 음통 위에 고부조로 장식되었다. 음통은 충단의 구획이 없이 전체를 당초문으로 장식하였으나 상 · 하단에는 턱을 두어 상단에만 연판문이 시문 되었다. 용뉴와 음통을 둥글게 돌아가며 주조 때의 접합선이 돌출되었고 이 접합선과 천판 외연까지의 구획을 연판문으로 촘촘히 장식하였으나 4분지 1쯤이 주조상의 결함인지 몰라도 표현되지 못하였다.</p><p><br></p><p>상대와 하대의 문양은 조금 달리 표현되었으나 모두 아래 단에만 연주문대를 두르고 있다. 상대는 연화를 중심으로 잎이 넓은 엽문으로 표현한 반면 하대에는 만개한 연화를 중첩 시문하고 그 사이를 넝쿨 형의 당초문으로 연결했는데 매우 유려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었다.</p><p><br></p><p>상대 아래 붙은 방형의 유곽대에는 그 외연을 모두 연주문대로 두르고 내부에는 당초문을 촘촘히 시문 하였다. 유곽 내부에는 연화좌 위에 마치 뉴(紐)처럼 낮게 돌기 된 종유를 9개씩 배치하였다. 그리고 한쪽 유곽 아래의 종신 여백 면을 택해 4행 54자의 음각명을 매우 또렷한 필치로 새겨놓았다. 그 내용은 「명창칠년병신사월일주, 성금종일중육십칠근덕, 흥사현배보근단나동일심, 성궁만세상동량호장 김인봉부동량면포경찬진번효(明昌七年丙辰四月日鑄, 成金鍾一重六十七斤德, 興寺懸排普勸丹那同一心, 聖躬萬歲上棟梁戶長 金仁鳳副棟梁延甫慶讚陳蕃孝)」로서 「명창」은 금(金)나라의 연호이며 그 7년은 고려 명종26년인 1196년에 해당한다. 그리고 「홍덕사」의 소재는 태고사사법 (太古寺寺法)에 보이는 함경북도 회녕군(會寧郡) 팔을면(八乙面) 소풍산(小豊山)에 위치했던 귀주사(歸州寺)의 말사였다고 추측되나 그 연혁 등에 관해서는 분명치 않다.</p><p><br></p><p>한편, 이 명문구의 좌우편으로는 당좌와 함께 단독의 비천상이 앞, 뒷면 동일하게 부조되어 있다. 당좌는 1+5+10개의 연과를 장식한 자방 주위로 복엽을 도안화시킨 10판의 연화문을 배치하고 각 연판 안에는 1줄의 판심이 첨가되었다. 그리고 몸을 오른쪽으로 튼 채 옆으로 비행하는 모습의 비천상은 두 손으로 지물을 받쳐 들었으나 악기인지 향로인지는 분명치 않고 위로 뻗쳐 흩날리는 몇 가닥의 천의는 경직되고 부자연스럽게 처리되어 고려 후기 범종의 특징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이 종 다음으로 제작된 범종에서는 입상화문대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완전한 독립문양대로 자리 잡게 됨으로써 고려 후기 범종으로의 이행을 이루게 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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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8: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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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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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26홍수민 </p><p>靑磁 麒麟形蓋 香爐.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고려 시대인 12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형(象形) 고려청자 향로로, 향로의 뚜껑에는 상상의 동물인 기린 모양의 조각이 올라가 있다.</p><p><br/></p><p>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 팔려가기 전에 간송 전형필이 거액을 주고 사서 가까스로 지켜낸 유물이라, 유감스럽게도 본 향로의 출처나 제작시기와 같은 정보는 현재로썬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본 향로는 제작 수준이 높고 외형이 아름다워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와 함께 고려청자의 명품 향로 유물 중 하나로 꼽힌다.</p><p><br/></p><p>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1962년에 국보 제6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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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8: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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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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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24정효솔</p><p>청자원형연적</p><p>간송미술관에서 볼수있다.</p><p>고려시대에는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러 동식물의 형태를 형상화한 상형청자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 가운데 원숭이의 형태로 제작된 고려청자는 소수인데, 대부분 인장이나 묵호, 연적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청자들은 고려시대 귀족들이 원숭이를 애완용으로 길렀다는 사실이나 그 길상적인 의미를 고려해볼 때 문인 귀족들의 책상에 놓여 사용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은 그 가운데 가장 조형성이 우수한 작품이다.</p><p><br/></p><p>이 연적은 새끼를 품고 있는 어미 원숭이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머리 위에는 지름 1.0cm 정도의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 원숭이의 머리에는 지름 0.3cm의 물을 따르는 구멍이 각각 뚫려있다. 모자 원숭이의 몸체는 간략하게 표현하였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칼로 조각하여 도드라지게 하였다. 어미 원숭이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모두 조각하여 원숭이의 형상을 실감나게 묘사했다.</p><p><br/></p><p>어미 원숭이는 쪼그리고 앉아 두 팔로 새끼를 받쳐 안고, 새끼는 왼팔을 뻗어 어미의 가슴을 밀고 오른손은 어미의 얼굴에 갖다 대고 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자간의 애틋한 정을 느끼게 한다. 어미 원숭이의 눈과 코, 새끼 원숭이의 눈은 철채로 까맣게 칠하여 생기를 부여하였다. 잔잔한 기포가 있는 맑은 비색의 유약을 시유하였고 바닥은 시유하지 않았다. 어미 원숭이의 엉덩이에 4개, 양 발에 1개씩의 내화토를 받쳐 구웠다.</p><p><br/></p><p>원숭이는 고려 예종 연간 도교가 크게 유행하면서 고려청자에도 원숭이가 석류와 결합하여 장수를 상징하거나, 원숭이가 서식하는 무릉도원을 연상시키는 도교의 상징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또 원숭이를 뜻하는 한자인 ‘후(猴)’와 제후의 ‘후(候)’와 발음이 같은 데에서 ‘배배봉후輩輩封侯(대대로 고관대작이 된다)’ 즉, 대를 이어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라는 길상의 의미가 덧붙여졌다. 흔히 새끼 원숭이가 어미 원숭이의 등에 업혀 있는 도상으로 나타나는데 《청자모자원숭이형연적》 역시 모자 원숭이가 함께 등장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길상적 의미를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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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8: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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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4번 박준영</p><p>청자 참외 모양병</p><p>고려 17대 왕인 인종仁宗(재위 1122~1146)의 장릉長陵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청자다. 유색과 형태에서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꼽히는 이 병은, 12세기 중엽의 고려청자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주름치마처럼 생긴 높은 굽, 참외 모양의 몸체, 유려한 목선, 참외 꽃을 연상시키는 입술 등 각 부분의 비례와 직선 • 곡선의 조화가 완벽하다. 유약은 담녹색으로 전면에 곱게 입혀졌으며 유약 내에는 미세한 기포가 가득하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인 비색翡色을 단적으로 보여주며, 비색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중국의 병은 흔히 입부분이 과장되고 몸체가 풍만하며 굽이 낮아 둔중한 인상을 주지만, 이 병은 형태의 완벽한 균형과 비색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 있어 고려청자 고유의 조형미가 돋보인다.</p><p>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볼수잇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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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39: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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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5gs3050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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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인종의 시호를 올리며 지은 글</p><p>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볼수있는 고려 제17대 왕 인종(재위 1122~1146)의 시호와 생전의 업적 등을 새긴 시책이다. 인종의 무덤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이 시책은 당대의 대표적 문장가가 그 글을 지었을 것이나, 형식은 아들 의종이 지어 바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일, 원구에서 제사지낸 일 등 아버지 인종의 생전의 여러 업적과 인품을 서술한 후, 말미에 그 시호와 묘호를 기록하였다. 명문이 새겨진 책엽(冊葉) 41개(33.0×3.0×2.5cm)와 천부상(天部像)이 새겨진 다소 넓은 책엽 2개(33.0×8.5×2.5cm)로 구성되어 있다. 명문 부분의 책엽 중 4개는 몸통의 일부가 부러져 유실되었다. 각 돌의 옆면 위아래에 구멍이 하나씩 뚫려 있어서 금실 같은 끈을 넣어 연결하도록 했는데 끈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원래는 글씨와 무늬를 새긴 곳에 금칠을 하고 신장상 일부에 진사를 사용하여 상당히 화려한 모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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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0: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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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5gs30514</author>
         <link>https://padlet.com/dggosan/2tog284vfu0za4qc/wish/3579273371</link>
         <description><![CDATA[<p>청자 음각 연꽃 넝쿨무늬 매병</p><p>연꽃무늬를 감싸고 있는 넝쿨무늬의 윤곽선은 조각칼을 뉘여서 음각하였기 때문에 반쯤 양각(半陽刻)된 것처럼 보인다. 고려청자에 사용된 음각기법은 초기에는 가늘고 예리한 음각 무늬 이지만,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중엽이 되면 이처럼 선이 굵어지고 반 양각된 것처럼 처리하는 특징이 있다. </p><p>출처 &lt;국립중앙박물관&gt;</p><p>현재 있는곳:국립중앙박물관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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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0: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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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국화덩굴무늬대접은 고려시대에 제작된 청자로서 주로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으며 일상적인 식기라기보다는 귀족이나 왕실에서 의례용 혹은 장식용으로 사용된 기물이자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형태는 일반적인 밥그릇보다 훨씬 크고 넓으며 깊이가 얕은 대접 모양으로 작은 굽을 가지고 있어 안정감 있는 구도를 이루며, 표면에는 국화와 덩굴무늬가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국화는 장수와 고결함을 상징하고 덩굴은 끊임없이 뻗어나가며 번영과 영속을 뜻하기 때문에 두 문양이 함께 배치됨으로써 귀족 사회가 추구하던 이상과 길상을 담고 있다. 장식 방식은 주로 상감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는 청자의 표면을 새기고 그 안에 백토나 흑토를 메워 넣는 방식으로 문양이 뚜렷하게 드러나도록 하였으며 경우에 따라 철화 기법으로 산화철 안료를 사용해 자유로운 선으로 덩굴과 꽃을 그리기도 했다. 안쪽 바닥에는 국화를 중심으로 줄기와 잎이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공간을 가득 메우고, 바깥 면 역시 같은 무늬가 이어져 전체적으로 균형과 리듬감을 이루며 화려한 장식성을 드러낸다. 유약은 옥빛을 띠는 비색으로 은은하고 맑은 광택을 내는데, 이는 고려청자의 가장 큰 특징으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국화덩굴무늬대접은 단순한 식기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고려인의 미적 감각과 기술적 정교함, 그리고 상징적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유물로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간송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부는 보물이나 국보로 지정될 만큼 중요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p><p><br/></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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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0: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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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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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1. 개요</p><p><br/></p><p>월정사 8각 9층 석탑은 고려시대 12세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현재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에 위치한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석탑은 3층이 많으나, 이 석탑은 8각 평면에 9층을 올린 독특한 형태로 주목받으며, 국보 제48호로 지정되어 있다.</p><p><br/></p><p>2. 역사적 배경</p><p><br/></p><p>고려시대는 불교가 국교로서 크게 융성하던 시기로, 문벌귀족과 왕실이 불사를 후원하며 대규모 사찰과 불교 유적을 건립하였다. 오대산은 신라시대부터 불교의 성지로 알려진 곳이며, 고려시대에도 귀족과 승려들의 후원으로 월정사가 크게 번성하였다. 그 결과 세워진 대표적인 유적이 바로 월정사 8각 9층 석탑이다.</p><p><br/></p><p>3. 구조와 특징</p><p><br/></p><p>형태: 8각형 기단 위에 9층의 탑신을 세운 구조로, 일반적인 사각 석탑과 달리 희귀한 양식을 보여준다.</p><p><br/></p><p>비례미: 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체감이 뚜렷하여 안정감과 상승감을 동시에 표현한다.</p><p><br/></p><p>장식성: 옥개석(지붕돌)이 얇고 경쾌하게 처리되어 전체적으로 세련된 조형미를 나타낸다.</p><p><br/></p><p>상륜부: 현재는 소실되었으나, 원래는 보주(탑 꼭대기의 연꽃 장식)까지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p><p><br/></p><p>4. 문화적 의의</p><p><br/></p><p>고려 문벌귀족 사회의 불교적 신앙과 예술적 수준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문화유산이다.</p><p><br/></p><p>8각 9층이라는 희소한 구조는 한국 석탑의 다양성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p><p><br/></p><p>현재까지도 월정사의 중심 유물로서 많은 관광객과 연구자들이 찾고 있으며, 한국 불교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p><p><br/></p><p>5. 위치</p><p><br/></p><p>소재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경내</p><p><br/></p><p>지정 현황: 국보 제48호</p><p><br/></p><p>6. 결론성을 보여주는 사례이다.</p><p><br/></p><p>현재까지도 월정사의 중심 유물로서 많은 관광객과 연구자들이 찾고 있으며, 한국 불교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p><p><br/></p><p>5. 위치</p><p><br/></p><p>소재지: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63, 월정사 경내</p><p><br/></p><p>지정 현황: 국보 제48호</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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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0: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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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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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전을 풀이하면 소라 라(螺), 비녀 전(鈿) 이라 한다.</p><p><br/></p><p>다만, 금이나 은판을 오려붙인 것은 따로 평탈(平脫)이라고 부른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 · 중국 ·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 또는 ‘자개박는다’라고 일컫는다.</p><p><br/></p><p>이규경(李圭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자개(紫蓋)’라고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음차(音借)한 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1세기 고려 때의 언어를 기록한 ≪계림유사 鷄林類事≫에서 ‘나왈개개(螺曰蓋慨)’라 했는데, 그것이 자개［差慨］의 오기임이 사실이라면 일찍부터 자개라고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p><p><br/></p><p>감입기법에는 나무바탕을 직접 새겨 상감(象嵌)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칠 바탕 위에 자개를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무늬가 드러나게 하기 때문에 나전에는 으레 칠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쓰는 것이 상례이다.</p><p><br/></p><p>우리 나라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목제품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것에다 한층 치레 삼아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목칠공예에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p><p><br/></p><p>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으며 그것이 우리 나라와 일본에 전하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래의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패(夜光貝)를 사용하였으나 후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청록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p><p><br/></p><p>패각이 이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발하는 것은 탄산칼슘의 무색 투명한 결정이 주성분인 까닭에 그것이 빛을 받을 때 프리즘과 같은 색광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또한 조개껍데기 자체의 박막(薄膜)에서 생기는 색현상도 그 발색에 중요한 구실을 하며 전복껍데기의 경우는 박막에 의한 발색이 다양하게 작용하는 본보기이다.</p><p><br/></p><p>나전기법은 기물에다 무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칠공예의 하나이다. 그러한 장식법은 한국 · 중국 · 일본을 비롯하여 버마 · 타이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원에 널리 보급되어 있으며, 지역에 따라 각기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p><p><br/></p><p>우리 나라 칠공예의 장식기법은 일찍부터 주로 자개를 이용하여 왔기 때문에 칠기와 나전칠기의 호칭을 거의 분간하지 않고 혼용하는 예가 많으며, 심지어 전자(鈿字)를 보식기(寶飾器)나 자개장식으로 풀이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신라 말기 중국과의 교역관계 기록에 보이는 전함(鈿函)과 ≪고려사≫에 나오는 전함조성도감(鈿函造成都監)의 그것은 사실상 내용을 달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p><p><br/></p><p>우리 나라는 목기와 더불어 칠기가 발달된 나라이다. 그 발달에는 우리 나라 나름의 제약이 있는 반면에 가진 것을 야무지게 활용하는 슬기도 있었다. 옻칠의 흔적은 일찍이 청동기시대 유물에서도 발견되었지만, 특히 낙랑에 의하여 한문화(漢文化)가 직접 유입됨으로써 칠공예 발달의 획기적인 계기가 이루어졌다.</p><p><br/></p><p>따라서 창원 다호리고분이나 광주 신창동 등지에서 발굴된 칠기 유물로 보면 우리 나라 칠기의 기원이 이미 가야문화 훨씬 이전부터임을 알 수 있다. 옻칠의 수액을 채취하는 옻나무는 우리 나라의 전역에 분포하며 그 중에서도 산지를 낀 지방에서 좋은 칠이 많이 나는 편이다.</p><p><br/></p><p>고대에는 옻나무가 얼마나 자생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으나, 신라에는 칠기를 제작하는 칠전(漆典)까지 있었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옻나무의 식재를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관리할 만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p><p><br/></p><p>우리 나라의 칠공예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단조한 편이어서 생칠 · 흑칠 · 주칠(朱漆)과 자개를 활용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옻칠의 질이 좋고 자개솜씨가 뛰어나 우리 나라 칠공예의 두드러진 개성을 이루었다.</p><p><br/></p><p>현존하는 유물로 신라 이래의 칠회(漆繪)와 평탈 및 금니화(金泥畫) 등으로 활용한 예는 찾아볼 수 있으나, 유례가 극히 적어 한 시대의 유행에 그쳤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칠기에 문양르 장식하는 재료로 자개가 주로 사용되었다.</p><p><br/></p><p>중국 당나라시대에 나전칠기가 성행하여 우리 나라는 삼국시대에 이미 나전칠기를 제작하였다. 그것을 입증할 만한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호암미술관 소장 나전 화문 동경(국보, 1971년 지정)이 옛 가야지방에서 출토되었다.</p><p><br/></p><p>거울 뒷면에 자개 · 호박 · 청석 등을 붙이고 옻칠로 고정시킨 이 거울은 일본 쇼소원(正倉院)에 평나전배원경(平螺鈿背圓鏡)을 비롯한 여러 점의 비슷한 유물이 있어 주목된다.</p><p><br/></p><p>야광패를 두껍게 사용하고 세밀하게 침각(針刻)을 한 점이라든지, 원주륜(圓珠輪)의 내구(內區)와 외구(外區)에 보상화문 · 새 · 짐승을 대칭으로 배치하고 화엽 복판에 호박을 삽입하였으며 여백에는 청석가루를 뿌려 화려하게 메운 점이 당경(唐鏡)의 모습 그대로이다.</p><p><br/></p><p>여기에 사용된 재료 중 호박은 버마 북부의 미트키나산이고 담청색과 녹색의 돌은 페르시아산이며, 짙은 청색의 청석은 아프가니스탄 또는 티베트 특산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당시 우리 나라나 일본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공예품으로 간주되고 있다.</p><p><br/></p><p>나전기법의 유물이 동경 하나밖에 없는 데 비하면 평탈기법은 좀더 널리 보급되었던 것 같다.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왕의 두침(頭枕)과 족좌(足座)는 평탈기법에 가까운 최고의 유물에 속하며, 이홍근(李洪根) 소장의 금은평탈보상화문동경(金銀平脫寶相華文銅鏡)과 경상남도 출토로 전하는 은평탈포도당초문귀갑형소갑(銀平脫葡萄唐草文龜甲形小匣), 그 밖에 경상북도 경주 안압지에서 발굴된 은평탈의 장식칠기 2종은 모두 평탈기법에 의한 것이다.</p><p><br/></p><p>여기에서 평탈기물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당시 칠기의 한 장식기법으로서 유행되었을 뿐 아니라 칠기에 자개무늬를 묻고 그 표면을 연마하여 자개가 나타나도록 하는 나전칠기 기법과 같은 공정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p><p>한국 나전칠기 박물관에 많이 잇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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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3: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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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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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br/></p><p>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유리 상자에 넣어 벽화 유물전 안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모두 6폭인 벽 그림의 내용은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 등의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이다. 제석과 범천은 불교의 호법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이 두 천신(天神)에게 직접 통제되는 천왕(天王)이다.</p><p><br/></p><p>접기/펼치기</p><p>내용</p><p>제석과 범천은 풍만하거나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무장상이다. 위풍당당하거나 우아한 형태와 능숙한 필치 등에서 고려 불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본래의 채색에 몇 번에 걸쳐 새로 덧칠한 것이 많아서 원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고려 불화풍이 꽤 간직되어 있는 편이다.</p><p><br/></p><p>원래 이 그림은 조사당 입구에서부터 사천왕과 제석천·범천의 순으로 배치되어 석굴암과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은 불(佛) 대신 부석사 창건주이자 화엄종의 조사(祖師)인 의상조사(義湘祖師)를 외호(外護)하는 신장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p><p><br/></p><p>조사당의 의상조사는 부처님과 동격으로 존숭되었다. 이것은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에서 신라 화엄종의 초대 조사에 대한 존숭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 주는 좋은 예이다. 이것은 조사당이 본법당(本法堂)보다 높은 데 위치하게 한 것과 함께 화엄종에서는 초대 조사를 부처님보다 오히려 더 받들어 모셨던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회화 자료이다.</p><p><br/></p><p>양식적으로는 12세기 내지 13세기의 불화 양식과 근사하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벽화로서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고려시대 회화사상 가장 중요한 대표작의 하나로 평가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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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4:1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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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dggosan/2tog284vfu0za4qc/wish/3579281444</link>
         <description><![CDATA[<p>고려의 수도인 개경에 있었던 고려 왕조의 법궁(法宮) 터를 부르는 말이다. 고려를 건국한 창업군주 태조 왕건이 태어난 집터 자리로 고려 태조 2년(919)에 창건되었다. 만월대는 원래 궁궐 터를 의미하지만 현대에는 궁궐 자체를 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북한의 국보 제122호, 유네스코 세계유산 개성의 역사 기념물과 유적로도 등재됐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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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4:1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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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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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21 윤수빈</p><p>청동은입사수금문병</p><p>기체 전면에 부식이 엿보이는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청동 병으로서 나팔모양의 긴 목과 몸체에 낮은 굽 받침이 마련되어 있다.</p><p><br></p><p>밖으로 벌어져 외반 된 주둥이 윗부분에는 여의두문양이 잇대어 둘려 있고 그 뒷면에는 다섯 잎 모양의 꽃무늬가 드문드문 입사되어 있다. 목에서부터 몸체에 이르기까지에는 늪 가의 정감 어린 경치가 묘사되어 있는데, 몸체를 받고 있는 굽 받침에는 주둥이와 같은 여의두문이 배치되어 있고 몸체에는 국보 95호 포류수금문정병에서 볼 수 있는 것들과 거의 같은 소재들이 표현되어 있다.</p><p><br></p><p>몸체 아래쪽은 근경으로서 물가 흙 언덕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한 다음 갈대 숲과 이름 모를 수초들을 자연스럽게 나타내었으며 그 사이로는 물살을 가르며 노닐고 있는 물새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p><p><br></p><p>그리고 위쪽으로는 원경과 공간, 즉 하늘을 표현하고 있다. 멀리로는 물 위에 떠올라 있는 연꽃이 있고 물 가까이 하늘에는 물 위에 내려앉을 듯 아래를 향하고 있는 물새가 입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국보 95호 포류수금문정병과는 달리 선이 경직되어 있고 사실성이 결여되어 있어 조성시기는 다소 시대가 뒤지는 13세기경으로 생각된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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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6: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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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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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상감청자의 특징</p><p>상감청자는 흙으로 빚은 그릇 표면에 문양을 음각하거나 새긴 뒤, 그 자국에 흰색이나 검은색 흙(백토·적토)을 메워 넣어 무늬를 만드는 기법으로, 청자 표면의 문양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고려 상감청자의 대표적 문양으로는 운학문, 국화문, 모란문, 보상화문, 당초문, 용문 등이 있습니다. 이 기법은 나전칠기, 금은입사 등 고려화려 공예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습니다.</p><p><br/></p><p>시대적 배경과 발전</p><p>상감청자는 12세기 중엽 비색청자의 기술이 정점에 달한 시기를 전후해 강진·부안 등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생산되었으며, 이후 13세기, 14세기까지 그 제작이 계속되었습니다. 상감청자의 등장은 기존의 순청자와 비색청자 중심에서 상감청자 중심으로 청자 제작 양상이 바뀌는 계기가 되었고, 고려 도자기 역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정교한 시기를 맞이했습니다.</p><p><br/></p><p>사회적 의미와 유통</p><p>고려 상감청자는 주로 왕실, 귀족, 사찰 등 상류층을 위해 제작된 고급 도자기였습니다. 당시 남송 황실을 비롯해 동아시아 각국에 수출되어 국제적으로도 최고급품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고려 ‘비색’은 중국에서 “천하제일”로 칭송받았으며, 많은 유물이 일본, 베트남, 필리핀, 중국 등지에서 발굴되고 있습니다.</p><p><br/></p><p>대표 유물과 예술적 가치</p><p>대표적인 유물로는 1159년 문공유 묘에서 출토된 상감청자 국화당초문 대접, 명종 지릉에서 발견된 상감청자 등이 있으며, 그 맑고 은은한 비색유와 치밀한 문양, 우아한 기형은 세계 도자사에서도 명품으로 평가받고 있음</p><p>전라남도 강진의 청자박물관에가면 볼수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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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6: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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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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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청자 인물형 주전자는 고려시대인 12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형 고려청자 주전자이다.</p><p><br/></p><p>청자 인물형 주전자는 1971년 대구광역시 외곽에 위치한 한 과수원의 땅속에서 온전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현전하는 고려청자의 대다수가 도굴로 세상에 나와 있는지라 본 청자는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높다.</p><p><br/></p><p>청자 인물형 주전자는 발견된지 3년 뒤인 1974년 국보 제167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p><p>청자 인물형 주전자는 높이 28cm, 밑지름 11.6cm 크기의 인물형 주전자로, 이 주전자가 묘사하고 있는 인물은 도인일 것으로 추정한다.</p><p><br/></p><p>이 인물은 화려한 도포를 두르고 머리에는 높은 관을 썼으며, 구름형의 대좌 위에 앉아서 복숭아로 추정되는 과일이 여섯 개가 올라가 있는 쟁반을 두 손으로 받쳐 앞으로 내밀고 있다.</p><p>인물이 쓰고 있는 모자에는 구멍을 뚫어 물을 넣을 수 있도록 해놨는데, 물 넣는 구멍을 덮었을 뚜껑은 사라지고 없다. 인물이 받쳐든 쟁반의 가장 앞에 튀어나와 있는 과일에는 물을 따를 수 있도록 관을 뚫어놨다. 인물의 등에는 손잡이가 달려 있으며, 손잡이 윗 부분에는 작은 고리도 만들어 놨다. 하지만 본 주전자가 장식용인지 아니면 실생활에서 사용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본 주전자는 높은 장식성을 보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세밀한 장식이 그러한데, 이것들은 청자의 표면에 퇴화기법으로 그린 것이다.[1] 인물이 앉아 있는 대좌의 문양, 쓰고 있는 관의 장식, 들고 있는 쟁반과 여기에 담긴 과일들, 양 손의 손톱, 그리고 인물이 두르고 있는 도포의 주름과 장식 하나하나를 백토로 그려 사실성을 더하고 있다. 쓰고 있는 관의 전면에는 작은 새 모양이 붙어있기도 하다.본 주전자에 조형된 장식들에서는 도교 사상이 짙게 드러난다. 도포와 같은 의복과 앉아있는 구름 모양의 대좌 그리고 인물이 쓰고 있는 높은 관을 보면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보다는 도교의 도사나 도인에 가깝다. 또한 쟁반에 담긴 과일은 천도복숭아일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러한 점들을 토대로 미루어보아 천도복숭아가 담긴 접시를 내밀고 있는 이 인물을 한무제에게 불로장생의 천도복숭아를 바쳤다 전해지는 서왕모로 보기도 한다.</p><p><br/></p><p>청자 인물형 주전자에는 특별히 남아 있는 명문이 없어 어디서 만들었을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제작기법으로 보아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沙堂里) 또는 부안군 유천리에 있는 고려청자 도요지[2]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한다.</p><p><br/></p><p>청자 인물형 주전자는 보존상태가 우수하고 미적인 아름다움과 고려시대의 높은 청자 제작 공예 수준을 보여주며, 출토지가 명확하다는 점 등의 가치를 인정 받아 1974년 7월 9일 국보 제167호로 지정되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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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6:5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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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5gs3051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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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영주 부석사 무량수전</p><p>경상북도 영주시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몇 안 남은 고려 시대의 건축물로 고려시대 중기의 건물로 추정하고 있다.</p><p><br/></p><p>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서로 누가 더 오래되었나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데, 무량수전이 언제 건립됐는지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중수 기록을 통해 추정하고 있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1376년에 진각국사(眞覺國師) 천희(千熙)[1]가 중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런 전통 건물은 보통 짓고 나서 100~150년 뒤에 수리하기 때문에 건립시기는 이보다 약 100년 정도 이를 것으로 본다. 봉정사 극락전은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어 일반적으로는 봉정사 극락전이 조금 더 오래되었다고 여겨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만 하는 것이다.</p><p><br/></p><p>봉정사 극락전이 한국 건축의 구조미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면,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한국 건축의 형태, 비례미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받는다. 순수하게 건축물로서 완성도를 본다면 무량수전이 더 급이 높고 훌륭하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하게 창건연대가 정확히 밝혀진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은 예산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이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2]</p><p><br/></p><p>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1962년 국보 제18호로 지정되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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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6: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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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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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전북 남원의 실상사에서 연못과 수로를 갖춘 고려시대 대형 정원 시설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발견됐다.</p><p><br/></p><p>조계종 산하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실상사 담장 바깥에서 길이 16.05m, 폭 8.06m, 깊이 54㎝의 타원형 연못과 연결 수로, 연못 주변 정자였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 터를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연못은 점토와 숯을 바닥에 발라 방수 처리하고 강돌을 촘촘히 깔았다. 뻘 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연꽃을 키우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p><p><br/></p><p>조사단은 “고려시대의 정원 연못으로 이만한 규모와 타원에 가까운 형태, 강돌을 깔아 축조한 방식은 국내에 유례가 없다”며 “고대 정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유적은 소규모에 네모꼴이고 완벽한 상태로 남은 게 없다.</p><p><br/></p><p>물을 끌어들이는 수로는 강돌로 쌓은 폭 1.2m의 직선 구간 42.6m와, 여기서 갈라져 물길이 휘면서 연못으로 흘러 드는 폭 1.0m의 곡선 구간 13.8m가 확인됐다. 특히 곡선 수로는 구불구불하게 물길을 내고 술잔을 띄워 놀던 경주의 포석정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어서 관심을 끈다.</p><p><br/></p><p>조사단은 이 연못이 실상사 경내 고려시대 초기 목탑 터와 동서 방향 축이 일치하고 주변에서 고려 초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연못과 수로를 갖춘 정원은 고려 불화 관경16경변상도에 비슷한 게 보이지만 사찰에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조사단은 강돌로 쌓은 연못 테두리 위로 걷는 길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포행(걸으면서 하는 참선)을 중시하는 불교 선종의 전통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분석했다.</p><p><br/></p><p>이번 발굴에서는 연화문 수막새, 초화문 암막새, 한자로 ‘실상사’가 새겨진 기와 등 유물 80여 점도 나왔다. 연못 등 정원 시설과 유물이 발견된 장소는 실상사가 양혜당과 보적당이라는 부속 건물을 지으려던 자리여서 설계 변경이 불가피해졌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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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48: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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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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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07 신세빈</p><p><br/></p><p>199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9.8㎝. 간송미술관 소장. 어미원숭이가 앉아서 새끼원숭이를 안아주려고 하는데 새끼원숭이가 두 손으로 밀어내는 순간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연적이다. 어미원숭이의 머리에는 물을 넣는 구멍이, 새끼의 머리에는 물을 따라내는 구멍이 뚫려 있다.</p><p><br/></p><p>어미원숭이의 눈·코·입과 새끼원숭이의 눈에는 짙은 철화안료로 점을 찍었다. 그리고 연적의 바닥에는 유약을 닦아내고 내화토(耐火土) 빚음을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유약은 맑은 비색유(翡色釉)로 전면에 고르게 시유되었으며, 은은한 광택이 나타난다.</p><p><br/></p><p>12세기 중반경 순청자(純靑磁)의 전성기에는 오리, 복숭아, 거북, 동자 등의 소형 연적이 적지 않게 제작되었는데, 이 모자원숭이모양 연적도 그러한 연적 중의 하나이다.</p><p><br/></p><p>이처럼 자애로운 모습의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은 그 예가 매우 드문 작품이다. 깔끔하고 이지적이며 안정된 형태와 맑은 유색(釉色)이 잘 어울리는 고려청자 전성기 작품의 한 예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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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50: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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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dggosan/2tog284vfu0za4qc/wish/3579303161</link>
         <description><![CDATA[<p>청자 철화 연꽃무늬 주전자'는 고려시대 청자에 철사를 이용해 연꽃 무늬를 표현한 주전자입니다. 철화 기법은 철 성분이 포함된 안료로 무늬를 그린 후 구워낸 기법으로, 붉은 갈색의 연꽃 무늬가 특징이며, 대나무의 팽팽한 느낌을 살린 몸체와 봉황이 앉아있는 연꽃 좌 형태의 뚜껑이 조화를 이룹니다.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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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53: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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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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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30525 하서윤</p><p>영통사는 개성 나성밖 동북쪽인 개성시 용흥리 오관산 남쪽에 있다. 고려</p><p>초에 창건된 절로서 고려전기 화엄증단의 대표적인 절이다. 절터에는 현재 국보급으로 지정된 영동사</p><p>5층탑(37), 영통사 서3층탑(38)을 비롯하여 보물급으로 지정된 영통사 동3층탑(35), 영통사대각국사</p><p>비(36), 영통사당간지주(37)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3기의 석탑은 모두 고려초기의 것으로 5층탑을</p><p>가운데 놓고 좌우에 3층탑이 동서로 서있다. 또 보물급 36호로 지정된 영통사대각국사비는 1125년(인</p><p>종 3)의 것으로, 김부식이 지은 비문을 통하여 화엄승려로 활동한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의 행적</p><p>을 살필수 있다. 이 비문은 본래 의천이 입적한 다음 해인 1102년 윤관이 지었는데, 김부식이 개찬한</p><p>것이다. 이 일로 윤관의 아들 윤언이와 김부식은 서로 사감을 가지게 되었다 한다. 현재 영통사지는 발굴과 복원이 진행 중이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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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55: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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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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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오지원</p><p>봉정사(鳳停寺)는 672년(신라 문무왕 12) 능인대사(能仁大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는 전설이 전하는데,&lt;극락전 중수상량문&gt;등 발견된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보면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p><p><br/></p><p><br/></p><p>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p><p><br/></p><p><br/></p><p>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p><p><br/></p><p><br/></p><p>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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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9-11 02:57: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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