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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끌레시아 by 최성은</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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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4-12-29 13:2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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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28 QT [시편 116:1-11]</title>
         <author>204713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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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주를 찬양하는 가사 중에서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라는 말씀이 가장 다가왔다. 하나님께서 나를 건지신다는 것이 내 마음에 울림을 주었다. 내가 힘들 때 주께서는 그냥 지나치시지 않으시고 건져 주신다. 하지만 이것을 때때로 내가 해낸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가 잘해서, 내가 조금 나아서 이 상황을 헤쳐나간 것이라고 오해를 많이 한다. 하지만 진짜 나의 힘으로 힘든 상황을 헤쳐나간 것이라면, 오히려 더 많이 넘어지고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뒤에서 붙잡고 일으켜 주시기에 내가 다시 일어나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면서도 주님께서 하신 일에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야겠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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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29 13:3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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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29 QT [시편 116:16-117:2]</title>
         <author>2047130</author>
         <link>https://padlet.com/2048139/2bsju1559ae66yov/wish/3273342111</link>
         <description><![CDATA[<p>다윗의 고백 중에서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시 116:16)"이라는 구절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말씀이 세상에서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나에게 다가왔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나의 상황을 알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 나에게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려고 이런 말을 하시는 것일까? 내가 주의 종으로 살기 원하시는 것일까? 여러 생각이 들지만, 주께서는 이번 방학에 어떻게 보내면 좋을지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것 같다. 나에게 '이제 나를 붙잡아라'하시는 것 같다. 방학은 나에게는 시험의 영역이자 게으름이라는 친구가 최대로 기를 쓰고 나에게 달라붙는 시기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떼어내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방학을 보내고 싶다. '이때까지 이런 방학은 없었다' 할 정도로. 그런 방학을 보내기 위해서는 내가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매일 지속되는 믿음의 싸움을 이겨내고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런 싸움을 한 번 싸워나가보자!</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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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29 13:42: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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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29 예배 [에베소서 4:25-32]</title>
         <author>2049527</author>
         <link>https://padlet.com/2048139/2bsju1559ae66yov/wish/3273346401</link>
         <description><![CDATA[<p>'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을 읽고 든 생각은 '차라리 화를 내지 말라고 해라' 였다. 분노는 그 감정의 특성상 처음에는 그 이유를 연료로 삼아 불타고, 후에는 상대의 반응을, 결국은 분노 그 자체가 연료가 되어 불타는 성질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오늘의 설교에서는 '그렇게 분노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 분노의 상황에서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내가 온전히 대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을 가라앉힌 다음, 그 감정을 분별하여 옳은 상황에서 옳은 방법으로 분노할 수 있게 하라' 고 말씀을 들었다. '평안을 위한 역설, 분노'. 오늘 설교의 제목이다. 화가 나는 상황에서의 분별과 성찰, 올바른 대처를 통해 나를 알아가고,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평소 나는 부당하다, 억울하다라는 말고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감정들은 결과적으로 나의 안에 분노로 자리잡게 된다.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그동안 외면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표출했던 분노의 감정들이 죄책감이라는 감정으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뭐라고 저 사람들을 평가하지', '왜 나는 남들처럼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는 걸까'와 같은 생각들 또한 억울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오늘 설교를 통해, 이러한 감정들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불의한 상황을 당연하게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냉철함을 주심에 감사할 수 있었다. 이번 방학 동안, 이런 감정을 올바로 마주하고 표출하는 '인내'와 '성찰'을 훈련하면 좋겠다 생각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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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29 13:54: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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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30 QT [시편 118:1-13]</title>
         <author>2047130</author>
         <link>https://padlet.com/2048139/2bsju1559ae66yov/wish/3274201340</link>
         <description><![CDATA[<p>"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시 118:13)"</p><p>→ 마귀에게 하는 것 같이 견고하고 정확한 말씀이다. 세상의 어느 것에서도 싸워낼 수 있다는 다윗의 의지가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주님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도 없는 다윗이 나에게 희망적인 메세지가 담기는 것 같다. 내가 넘어져도 아니면 넘어지려 하여도 주님께서는 나를 붙드시며 건져내시는 분이시다. 또, 118편에서는 '인자'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마음이 너그럽고 슬기로워 덕행이 높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주께서는 이러한 분이시다. 그런 주께서 이번에도 나와 동행하시며 나를 일으키시고 도우신다. 그러니 이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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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30 05:00: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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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12/31 QT [시편 118:14-29]</title>
         <author>2047130</author>
         <link>https://padlet.com/2048139/2bsju1559ae66yov/wish/3276092338</link>
         <description><![CDATA[<p>"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내가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시 118:17-22)"</p><p>→ '주께서 나를 들어쓰신다.' 이 말을 다윗은 계속하여 하면서 주께 감사하고 있다. 다윗과 나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나는 주님께서 나를 들어쓰신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마땅한 일인 마냥 감사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이 다른 점으로 보인다. '감사'라는 것이 어쩌면 매일의 일상에서 가장 힘든 것일 수도 있다. 세상에서 사는 게 언제나 속 편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좌절되는 상황이 더 많다. 그때마다 나는, 우리는 원망과 질타를 한다. 감사는 저 건너편에 가 있었다. 주님께서 크리스천이라는 사명을 나에게 주신 이유가 있다. 독수리학교에 들어오게 하신 이유도 있다. 그런 주님의 뜻에서 내가 크리스천이라고 독수리학교 학생이라고 좌절하며 원망하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니다. 주님께서는 많은 것을 바라시지 않으신다. 그저 감사하다는 한 마디가 주님께서는 듣고 싶으실 것이다.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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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30 23:2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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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31 큐티 (시편 118:14-29)</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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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나를 위해 의로운 문들을 열어 놓으십시오. 내가 들어가 여호와께 감사할 것입니다." (19절)</p><p><br/></p><p>: 처음에는 이 말씀에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과연 의로운 문에 들어가서 찬양할 자격이 있을까? 나는 의롭지 않은데, 라는 의심이 들었다.</p><p><br/></p><p>"손에 큰 가지를 들고, 축제의 행렬에 참여하십시오." (27절)</p><p>"주는 선하시며 그분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29절)</p><p><br/></p><p>: 그러나 이 말씀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축제에 행렬에 참여하십시오"라는 말에, 나에게 죄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믿고 눈치없이 그 행렬에 끼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요새는 하나님의 도움을 계속 구하면서도, 하나남의 사랑이 나를 받아줄 만큼 클 거라는 확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말씀을 계기로 하나님께 기대보고 싶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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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12-31 09:34: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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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1/2 QT [여호수아 1:10-18]</title>
         <author>2047130</author>
         <link>https://padlet.com/2048139/2bsju1559ae66yov/wish/3278235953</link>
         <description><![CDATA[<p>"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mark>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mark>(호 1:11)"</p><p>"<mark>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mark> 그리고 너희는 너희 소유지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준 요단 이쪽 해 돋는 곳으로 돌아와서 그것을 차지할지니라(호 1:15)"</p><p><br/></p><p>→ 오늘 첫 새벽기도회를 다녀왔다. 이때까지 나는 왜 새벽기도회를 힘들게 가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그 상황에 가보니 왜 사람들이 아침부터 깨어서 말씀을 들으려 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오늘의 말씀으로는 우리가 왜 아침에 깨어서 기도를 해야 하는 것을 설명해주셨다. 그 이유는 우리가 마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함이다. 그리고 오늘의 QT 말씀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곳을 차지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 말씀이 오늘따라 더 뭉클하게 들린다. 내가 지금 해내야 하는 싸움이 겨울방학 동안에 많다. 이 싸움을 이겨내는 것이 의지가 약한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주님께서 오늘 말씀에 내가 그 싸움을 이기고 마리라는 말씀을 주신 것 같다. 이미 그렇게 선포를 하신 것 같아, 더 뭉클하고 내가 이루어나갈 승리에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이어서 15절에는 이미 안식을 얻은 지파들에게 아직 안식을 얻지 못한 지파들을 도와주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지파들은 그것을 도와주러 자신의 의지를 굳힌다. 이 말씀은 나에게 도와줄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이미 싸움을 이긴 사람들이 내가 싸움을 이기기까지 도와준다는 것이 마음이 와닿았다. 이런 말씀을 들으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귀하게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도 주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중보하고 도와준다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에 감사하며 삶을 승리하며 나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과 믿음이 들었다.</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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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5-01-01 23:36: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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