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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래학교를 준비하는 실천가들의 모임 by 권신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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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3-10-19 06:13: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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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26 전학공 소감입니다! (이현우)</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link>https://padlet.com/1kwonsy3651/25rwbd6kav78d71z/wish/2758250864</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첫 번째 모임: 미래학교와 학습자주도성</strong></div><div>​</div><div>첫 모임에서는 간단한 자기소개와 논문 ‘미래학교 체제연구: 학습자주도성을 중심으로(조윤정 외. 2017)’를 짧게 읽고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나 빼고 다들 교원이시라서 말도 잘 하시고 배울 점도 많다. 재미있는 내용이 많이 나와서 소감과 나름의 정리를 기록하고자 한다.</div><div>​</div><div><strong>▶ 좀 뻔한 이야기</strong></div><div>‘뻔한 이야기’였다는 점이 아쉽다. ‘좋은 교사가 되려면 잘 가르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해요’ 같은 다 아는 이야기라 큰 감흥이 없었다. 길잡이교사에 대한 내용이 추상적이었다. 언제, 어떻게 개입해야하는지 나와있지 않고 당위적인 이야기만 반복한다.&nbsp;</div><div>​</div><div><strong>▶ 왜 주도성의 방향은 늘 ‘공익성’을 향할까?</strong></div><div>일반적으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주도’는 혼자서 스스로 해내는 능력을 뜻한다. 그런데 학습자주도성에서는 주도성을 개인적인 역량에만 한정짓지 않는다. 함께 해야하는 공공성이나 세상과의 연결 등을 강조한다. 학습자주도성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공공성으로 유도하는 것 같았다. ‘학습자주도성, 미래교육의 거대한 착각’에서도 학습자주도성을 ‘자발적으로 공적인 것으로 전환’으로 표현한다(남미자, 2021) 결국 교사는 세상이 말하는 가치의 방향으로 학습자를 ‘세뇌’시키는 것인가? 교사집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을 세상과 연결시키려고 하는 것이 교사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닐까. 학교가 사회화의 기능을 수행한다면 교사는 학생을 사회로 연결시켜야 하는 존재다.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nbsp;</div><div>​</div><div><strong>▶ 주도성의 회복</strong></div><div>결국 주도성의 회복이 중요하다. 도서 ‘어떻게 배움의 주인이 되는가’에서는 ‘자발적 예속’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우리는 스스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보단 자발적으로 예속된 상태를 원한다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과 비슷할 것이다. 자발적으로 예속된 상태일 때 우리는 주도성을 발휘할 수 없다.&nbsp;</div><div>​</div><div>우리는 주도성을 판단할 때는 흔히 결과적인 ‘행위’를 보고 판단한다. 주도성의 욕구를 지녔는지보다, 무언가 앞장서고 나서는 행동을 보일 때 ‘주도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주도적인 행위는 주도성으로 인해 나타나는 현상이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유하면 주도성이라고 하는 성질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과 같다. 엔진(주도성)이 켜져있으면 그것이 크든 작든 일단 자동차는 움직인다. 자동차 속력의 차이는 엔진의 힘(주도력)에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도력을 보고 주도성의 유무를 판단해왔다. 그러나 주도성은 있고, 없고와 같이 단순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은하수에 오는 이들 같은 경우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여 신청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주도성의 엔진이 켜져 있는 상태다.&nbsp;</div><div>​</div><div>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답은 두 가지다. 주도성의 엔진을 켜고 은하수에 온 이들에게 엔진의 힘(주도럭)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들이 더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더 많은 신뢰와 기회가 필요하다. 또 다른 하나는 은하수도 오지 않는, 엔진이 꺼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이 엔진이 꺼져있는 이들이 많다. 자발적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 엔진을 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즉 ‘주도성의 회복’이 필요하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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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02:08: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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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26 전학공 소감입니다! (이현우)</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link>https://padlet.com/1kwonsy3651/25rwbd6kav78d71z/wish/2758251289</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첫 번째 모임: 미래학교와 학습자주도성</strong></div><div><br><strong>▶ 평가의 늪에 빠져</strong></div><div>만약에 평가가 사라지면 어떨까? 평가 시스템이 없어져도 잘하고 잘하지 못함은 드러날 수 밖에 없다. 한 선생님께서 미술 시간에 패스 논패스로 평가를 진행한 적이 있다고 한다. 확실히 시험과 평가에 대한 부담은 줄어들었지만, 열심히 하는 애들은 여전히 열심히 하고, 공부 잘 하는 애들이 그림도 잘 그리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nbsp;</div><div>​</div><div>외고에서는 시험이나 수행평가를 치르면 주변의 학원이 미리 정보를 다 가져가 준비한다고 하낟. 기숙학교라서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자습인데 시험을 위해서 계속 공부한다. 평가하지 않으면 민원까지 들어온다고 한다.&nbsp;</div><div>​</div><div>우리는 왜 이렇게 평가에 목 매여 있을까? 자발적 예속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평가의 수월성 또한 존재한다. 최근 서울시의회에서 기초학력 점수를 공개하는 조례가 발의되어서 소란이다. 한 선생님께서는 ‘기초학력이라고 하는 것은 교사가 몇 주 수업하면 알 수 있는데 굳이 일괄적으로 시험을 치르고 알아내려고 하는 게 의문’이라고 하셨다. 교사가 직접 파악해서 따로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쉽게 선별해내기 위한 평가의 늪에 빠진 게 아닐까? 어쩌면 평가하고 선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함이 기저에 깔렸는지도 모르겠다.&nbsp;</div><div>​</div><div>한 국어 선생님은는 수행평가를 치르고 A 미만인 학생들에게는 언제든 재시험의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절대평가이기 때문에 다시 잘 공부해서 평가를 치르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아무도 재시험을 치르지 않았다고 한다. 평가에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다른 수행평가 때문에 바쁜데 A를 넘길 정도로 재시험에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면 그냥 A를 안 맞고 보겠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시험에 대한 부정적인 ‘도식’이 형성된 것이다. 도식은 어떤 사물에 대해 가지고 있는 구조화된 지식 체계다. 이미 시험이라고 하는 순간 초등학생 때부터 딱딱한 책상에 앉아 네모난 시험지에 얼굴을 박고 조용히 숨죽여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익혔다. 이러한 도식 속에서 아무리 성장을 위한 의미있는 평가를 만든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nbsp;</div><div>​</div><div>평가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변별 후 회복’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도성이 엔진이라면, 평가는 그 주도성의 정도를 파악해 적절한 처방을 내리른 것이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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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02:0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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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31 전학공 소감입니다! (이현우)</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link>https://padlet.com/1kwonsy3651/25rwbd6kav78d71z/wish/2758252730</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두 번째 모임: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_학교수준 교육과정으로 교육자치 완성</strong></div><div><br>두 번째 모임에서는 도서 ‘미래교육·학교자치로 가는 길(미래학교자치연구소, 2022)’을 읽고 독서 토론을 했다. 미래교육의제 20가지를 담은 이 책은 7부로 나뉘어 20가지 교육 정책을 제안한다. 이번에는 ‘제4부: 교육과정 자율성 확대_학교수준 교육과정으로 교육자치 완성’ 파트를 읽었다. 4부의 교육의제는 총 3가지로, 전반적으로 교육과정과 평가에 관한 이야기였다.&nbsp;<br><br>[교육의제 12] 학교 교육과정 편성·운영의 자율성 강화: 자율과 창의의 미래 교육 교과서 자유발행제로 가자 / 배움이 즐거운 학교,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div><div>​</div><div>[교육의제 13]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교사 평가권 보장: 학생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교사의 평가권을 보장하자</div><div>​</div><div>[교육의제 14] 고등학교 학생평가-대학입시 제도 개선: 수능: 경로의존성을 탈피하고 새로운 틀을 짜자 / 합리, 효율, 공정: 영국의 고교 교육과 입시제도를 통한 시사점&nbsp;</div><div>​</div><div>지금 다 읽고 정리를 해 보니 얼추 이런 도식이 생겼다. ‘전문성과 신뢰성에서 비롯된 자율성’, ‘자율성으로 마련된 교육과정과 평가’ 이번 내용을 이렇게 유기적인 관계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부턴 토론하면서 나온 이야기와 인상 깊은 내용을 나름의 기준으로 정리 기록하려고 한다. ​​</div><div><br><strong>1. 자율성</strong></div><div>‘과연 자율을 준다고 교사가 모두 좋아할까?’ 한 선생님께서 물음을 던지셨다. 타율은 편하고, 자율은 불편하다. 교사에게 교육과정이나 평가의 자율권을 준다면 그만큼 따라오는 부담도 많다. 그래서인지 일부 혁신학교에 대한 반대도 많다고 한다. 혁신교육의 가치가 좋더라도 정책을 통해 일괄적으로 시행하라고 한다면 반발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결국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필요하다. 위에서 강제로 주입한다고 변화하지 않는다. 정책은 전체롤 강제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이 한계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자발성에서 시작하는 변화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은 어렵다. 결국 해결책은 개인에게로 넘어가게 된다. 정책을 통해 시스템을 마련한다고 해도 개인이 변화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으면 말짱 꽝이다.&nbsp;</div><div>​</div><div><strong>1-1. ‘왜’ 자율성인가?</strong></div><div>교사의 자율성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왜 교사에게 자율성이 있어야 하는지에 관한 물음이다. 원론적으로 생각해보았다.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마땅히 옳기 때문인가? 결과가 좋기 때문인가? ‘의무적 옳음’과 ‘결과적 좋음’이다. 인권과 같이 그 자체로 마땅히 당위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이 ‘의무적 옳음’이라면, 결과적인 이익의 양에 따라 좋음의 기준을 세울 수 있다고 하는 것은 ‘결과적 좋음’이다.&nbsp;</div><div>​</div><div>- 의무적 옳음: 교사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 옳은가? 당위적인 옳음을 알아보기 위해선 먼저 교사란 무엇인지 정의해야 한다. 교사는 마땅히 자율권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재구성하고 평가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대로 전수하는 수동적인 존재인가?&nbsp;</div><div>​</div><div>- 결과적 좋음: 교사의 자율성은 결과적 좋음을 보장하는가? 교사에게 교육과정과 평가의 자율권을 부여해서 결과적으로 잘 가르치게 된다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회마다 잘 가르친다는 것의 기준이 다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만연한 문화라면 지식을 100%로 잘 전달하는 것이, 인격과 사회적 화합을 중시하는 문화라면 됨됨이와 인성을 기르는 것이, 능력과 역량을 중시하는 문화라면 창의성과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다. 결국 교육철학의 차이다. 개인아나 사회의 교육철학(본질주의, 항존주의, 진보주의, 구성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따라 잘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정의가 달라진다.&nbsp;</div><div>​</div><div>자율성과 강제성은 반비례한다. 학교나 교사가 자율권을 지니고 교육과정을 구성한다면, 국가에서 일괄적으로 가르쳐야 하는 지식의 양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확한 정답을 잘 주입하는 것이 잘 가르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교사의 자율권은 작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와 교육철학에 의하면 교사가 자율권을 지니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덴마크의 교사는 큰 자율성을 발휘하는 것이 당연한 문화로 여겨진다고 하는데 이는 교사에 대한 신뢰 뿐 아니라 가르치는 것에 대한 정의가 우리나라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nbsp;</div><div>​</div><div><strong>2. 신뢰성</strong></div><div>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선 신뢰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 신뢰받지 않으면 자율권을 내어줄 수 없다. 교사를 신뢰한다는 것은 ‘저 교사에게 내 아이들을 맡길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면 쉽다고 한다. 슬프게도 내 기억 속 교사를 모두 신뢰하긴 어려울 것 같다. 교사에 대한 불신이 커진 이유는 무엇인가?&nbsp;</div><div>​</div><div><strong>2-1. 불신을 넘어</strong></div><div>최근 은하수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모습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신뢰하지 않으면 어떤 좋은 프로그램도, 프로젝트도 소용없다. 신뢰에서 비롯되는 관계는 가장 안전한 발판이 된다. 그런데 학교에는 이 안전한 발판이 무너진 것 같다. 사회적으로도 교사집단에 대한 불신이 크다. 과거 교사에게 상처받고 실망한 기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일 때든, 학부모일 때든. 신뢰가 무너졌을 때는 감정이 앞선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던 사람들도 특정 인물에 대한 반감을 지닌 채 사고하게 된다. 서로 신뢰하지 못해 감사히고 통제하는 구조 속에서 어떻게 아이를 기를 수 있단 말인가! 감정은 선택하는 것이라고 했다. 불신을 선택한 것이라면 신뢰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교사와 학생간 신뢰-불신에 대해서는 나중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하고 글을 써 보고 싶다.&nbsp;</div><div>​</div><div><strong>3. 전문성</strong></div><div>교사는 교육과정 전문가인가? 최근에 읽은 책 ‘교사 교육과정을 디자인하다(교육과정디자인연구소, 2020)’에서는 교사교육과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교육과정 문해력'을 기반으로 국가 교육과정의 범위 내에서 학교 주체(학생, 학부모 등)의 요구를 반영해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가 일체화되도록 개발한 교육과정” 여기서 중요한 것이 ‘교육과정 문해력’이다. 도서 ‘교육과정 문해력(유영식.2018)’에서 정의하는 교육과정 문해력은 ‘교육과정 문서에 제시된 각종 문구들을 교육학적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교육과정과 수업, 평가 상황에 활용할 수 있는 교육과정 상황에 따른 맥락적 이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교육과정 문서 작성자가 진술한 의도를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정리하면 교육과정을 재구성한다는 ‘자율성’의 기반에는 교육과정 문해력을 지닌 교사의 ‘전문성’이 깔려있다. 교사의 자율성 이전에 전문성이 먼저 요구되는 것이다.&nbsp;</div><div>​</div><div><strong>3-1. 교사는 교육과정 전문가인가?&nbsp;</strong></div><div>전학공의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말씀하셨다. 우리끼리만 스스로를 교육과정 전문가라고 칭한다고. 외부에서는 교사를 신뢰하지 않아 계속 연수를 시키고 평가하는데 교사만 교사를 교육과정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다. 서울까지 버스까지 빌려 가서 연수를 들어도 뻔한 이야기만 듣고 끝나는데 전문성이 길러지는지는 의문이라고 하셨다. 단순히 연수 몇 번 듣고 끝난다고 전문가가 되는 게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적 전문성’이다. 실제 현장의 변화를 만드는 게 전문가다. 전문성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한다.&nbsp;</div><div>​</div><div><strong>3-2. 전문성을 어떻게 알 수 있나?&nbsp;</strong></div><div>교사와 전문성이 함께 붙어 있는 단어를 종종 듣는다. ‘교육전문직’은 교원이나 교육행정가 등과 같이 교육에 관련된 전문적 업무를 수행하는 직이다. 주로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이다. 전문직 시험을 통해 합격/불합격이 갈리고, 실제 교육 현장에서 떨어져 교육청에서 근무한다. ‘전문적학습공동체’는 수업과 평가 혁신을 위해 2명 이상의 교원이 함께 배우며 성장하는 학습공동체라고 정의되어 있다. 교사에게 있어 전문성이란 무엇인가? 적어도 그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알거나, 시험을 통과해 자격을 인정 받는 것에서 그치면 안 된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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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02:10: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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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28 공개특강 소감입니다! (이현우)</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link>https://padlet.com/1kwonsy3651/25rwbd6kav78d71z/wish/2758256671</link>
         <description><![CDATA[<div>전문적학습공동체에서 성공회대 교육대학원 고병현 교수님을 초청해 공개특강 시간을 가졌다. '미래사회와 교육'을 주제로 말씀을 전해주셨다. 우리 전문적학습공동체 이름이 '미래학교를 준비하는 실천가들'인데 이에 맞춰 준비해주신 것 같다. 까먹고 있었다가 이제야 다시 직면했다. 미래교육이라고 해서 또 뻔한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새로웠다. 뻔한 이론이나 화려한 에듀테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강의였다. 인상에 남는 말이 많아 간단히 메모해둔다.<br><br></div><ul><li>강의는 검색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여야 한다.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새롭게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이여야 한다.&nbsp;</li><li>드는 생각과 숙성된 생각이 있다. 지능적인 면에 있어서 강사님과 우리는 다르지 않지만 생각의 숙성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다. 우리는 강의를 통해 ‘아 그런가보다’하며 ‘드는 생각’을 가졌지만, 강사님은 앞에 서서 말하기까지 주제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우리의 생각은 평균치지만 강사님의 생각은 최상치로 숙성되어 있다.&nbsp;</li><li>교사는 매력적이여야 한다. 전문성은 기본(디폴트)이다. 그 위에 인격을 얹어야 한다.&nbsp;</li><li>우리는 ‘미래교육’과 ‘미래사회’를 혼용한다. 학교는 효과성을, 기업은 효율성을 따진다.&nbsp;</li><li>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오남용 되고 있다. “교육은 가치잖아”</li><li>교육정책에 진선진미가 빠졌다.&nbsp;</li><li>내가 있는 자리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듀이-&gt;비고츠키-&gt;사토 마나부를 지나 온 위치를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한 목소리가 될 수 없다. 다른 출발점을 존중해주자.&nbsp;</li><li>수능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가? 수학능력을 평가하는 것 아닌가. 왜 학교가 나서서 대학과 기업에 맞춰 변별하려고 애써야 하나?</li><li>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었다. 관계와 경험이 결손되었다. 비대면 수업의 효과는 학습욕구 있는 성인만 가능하다. 수업 결손만 야기했다.&nbsp;</li><li>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교육이다. 그러니 정답은 없다.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함께 연대하며 연구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전학공 모임은 미래교육을 준비하기 위해서 새롭게 상상하고 연대하는 실천가들의 모임이다. 거창한 전문성이 없어도 함께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위로와 나눔의 장이 될 것이다.&nbsp;</li><li>교사를 보고 “저렇게 살고 싶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만이 직관과 관계를 지녔다.&nbsp;</li><li>교사는 된 사람을 만드는 존재다. 된 사람이 있고 덜 된 사람이 있다. 아직 ‘못 된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nbsp;</li><li>삶의 고비를 넘기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왔는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으로 삶의 고비를 넘기진 않았다. 교육과정에 모든 것을 다 담으려고 하는데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지 모르겠다.&nbsp;</li><li>수습 기간이 있어선 안 되는 존재: 대통령, 의사, 목사, 그리고 교사!</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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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02:12: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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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9/20 공개특강 소감입니다! (이현우)</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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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전문적학습공동체 모임에서 두 번째 공개특강을 가졌다. '교육 대전환의 시기, 학교의 미래를 열다' 책의 저자이신 인청광역시교육청 배수아 장학사님을 모셨다.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강의에서 재미있게 풀어주셨다. 강의가 끝나고 '실패'를 주제로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 너무 의미있었다. 아래에 강의 내용을 의식의 흐름대로 정리했다. 중간중간 내 아이디어와 생각을 덧붙혀 메모했다. 굵은 것은 내 생각과 질문, 아이디어다.&nbsp;<br><br><strong>미래와 교육</strong></div><ul><li>VUCA 시대다. 변동성(Volatile)과 불확실성(Uncertai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의 약자로, 불확실한 시대를 일컫는다.&nbsp;</li><li>애플스토어와 같은 교육환경이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정답을 제시하고 다가가지만, 애플스토어에서는 기다리고 스스로 묻도록 한다.</li><li>교육의 당위를 설명하는 근거는 크게 결과적 좋음, 과정적 좋음이 있는데 위와 같은 주장은 '이러한 교육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데 이익이 될 수 있어!'라고 하는 결과적 좋음을 근거로 한다.&nbsp;</li><li>그럼에도 어떤 수업 방식을 활용하든 60%만 하고, 40%는 안 하는 게 기본값이다. 어떻게 그들의 주도성의 엔진을 킬 것인가?&nbsp;</li><li>핀란드의 학교는 플렛폼 공간이다. 학생이 시간표를 스스로 구성할 수 있고, 나가든, 놀든, 함께 공부를 하든, 혼자 공부를 하든 수업 시간에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다.&nbsp;</li><li>고교학점제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학생들은 여전히 큰 틀 속에서 소극적인 자유밖에 못 누린다. 소극적인 선택을 넘어서 능동적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학생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겠지.&nbsp;</li><li>우리는 왜 자꾸 아이들을 통제하려고 하는가? 너무 중앙의 '관'적인 사고인가? 중앙에서 통제하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 넘어질 자유를 주지 못할까?&nbsp;</li><li>나도 자꾸 현실적으로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신박한 해외 사례가 있으면 어떻게 가져올지 고민했는데, 요즘에는 현실에 타협하면서 외면하고 있다. 점점 꼰대가 되어가는 것 같다.&nbsp;</li></ul><div>​</div><div><strong>문제와 공동체</strong></div><ul><li>협력학습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건 '선행을 한 아이들'이다. 협력학습을 시켜도 다 알고 있는 애들에게 물어보니까 따라가버리고 끝난다.&nbsp;</li><li>이건 마치 능력이 탁월한 소수의 아이들로 인해서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은하수의 모습 같다. 교사가 청소년을 끌고 가면 안 되듯이, 청소년이 청소년을 끌고 가는 것도 큰 문제다. 그럼 그렇다고 끌어내릴 것인가? 적어도 최소한의 분리는 필요하다. 최종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내어주고 성장하는 구조여야겠지만, 급한대로 우선 수준과 능력에 맞게 집단을 분배해야 한다. 주도성의 격차는 늘 고민이다.</li><li>학생의 문제 vs 내가 불편한 것. '학생은 문제가 없다. 그저 교사가 불편할 뿐이다.'라는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다. 맞다. 그동안 내가 너무 교육이라는 틀 속에서 애들을 가두려고 하지는 않았나 돌아보았다. 공공성을 지녀야 하는 것도,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결국은 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지 그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nbsp;</li><li>그렇지만 가만히 두었을 때 공동체 전체가 무너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극단적 상대주의로 빠지게 되면 모든 것이 다 정답이다. 어디까지 적절한 선일지 고민이 필요하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애들에게 너무 실망하고 있었다.&nbsp;</li></ul><div>​</div><div><strong>기타</strong></div><ul><li>공백을 줘야 한다.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기다리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공백에서부터 성장이 일어난다.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릴 것인가? 기다리다가 공동체가 다 무너지고 있다. 적어도 초기값 세팅을 잘 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안 해두고 기다리는 건 방임이고.&nbsp;</li><li>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 특히 프로젝트나 학생중심 활동은 수업목표가 없는데? 사실 배움의 확인이 평가인데, 평가가 너무 변질된 것 같다. 문득 배움=수업, 확인=평가라는 도식이 그려졌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학교의 현실과는 달라서 이상했다. 그렇다면 이제 은하수에는 평가(성찰)이 필요하다.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정말 의미가 있었는지 우리의 목표에 비추어 평가해야 한다.&nbsp;</li><li>화내기 vs 혼내기. 화내기는 내 욕구를 분출하는 것이고, 혼내는 것은 존중이 기반되어 있다. 우리는 혼을 내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화내고 있는가? 혼내고 있는가?&nbsp;</li><li>'성과관리'라는 책을 일어보자. 개인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것에서부터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nbsp;</li></ul><div>​</div><div><strong>종합평가</strong></div><ul><li>추상적인 제안은 설득력이 없다. 사걱세에서 소영쌤이 입시제도는 현실이기에 치열한 논쟁이 오고 간다고 했다. 너무 이상적인 가치만 쫓아도, 현실에 순응해도 안 된다. 그 적절한 조화점을 찾는 것이 입시제도이기에, 입시를 공부하면 교육적 깊이가 깊어진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강의를 들으면서 좋은 해외 사례와 추상적인 가치를 나열하는 데 머리에 안 들어왔다. '그래서 현실은?' 이라는 물음이 자꾸 생겼다. 핀란드의 교육과정 다양성과 공간 혁신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 고교학점제와 선택과목이 더 궁금해졌다. 사걱세에서 대입제도를 공부한 덕에 눈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반대로 현실에 굴복한 것일 수도 있다. 새로운 혁신을 두려워하고 현실에 기반하여 사고한다면 슬플 것 같다.&nbsp;</li><li>은하수학교의 길잡이교사, 프로젝트는 '수업나눔'을 해야 한다. 프로젝트나 청자에 참관하면서 피드백을 주고 받아야 한다. 수업 참관을 통해 성찰하고 성장할 수 있는데 그동안 은하수 프로젝트는 너무 막혀 있었다. 소통 없는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가끔은 벽을 낮추고 넘나들 때 시너지가 생긴다.</li><li>은하수는 중립적인 것 같다. 학교(교육기관)-은하수-청소년활동 이렇게 중간에 끼여있다. 학교(교육기관)이라고 하기에는 배움의 깊이와 넓이가 추상적이다. 청소년활동 기관이라고 하기에는 마땅히 따르고 배우길 기대하는 가치와 공공성이 있다.&nbsp;</li></ul><div>​</div><div><strong>질의응답(실패)</strong></div><ul><li>'실패해도 괜찮아?' 질의응답 시간의 키워드는 '실패'였다. 그동안 실패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를 비판하며 학생들에게 실패를 허용하고, 그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도록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셨다. 학생 뿐 아니라 교사도 실패하면서 배울 수 있다는 것. 물론 공감은 되었지만 요즘 은하수에서 실패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경험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남겼다.&nbsp;</li><li>'교사의 실패는 정말 괜찮은가?' 은하수에서 실패하는 교사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프로젝트 활동에 빠지고, 아이들의 모범이 되지 못해서 프로젝트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다. 이 경우에 공동체를 파괴하는 교사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나? 언제까지 괜찮다고 교사의 실패를 방임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변은 '책임'이었다. 그건 실패가 아니라 책임이 없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렇다. 교사로서 마땅히 해야하는 책임이 있다면 그건 실패와 다른 차원이다. 교사를 선별하는 것도, 믿고 아이를 맡기는 것도 마땅한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nbsp;</li><li>'학생의 실패가 공동체의 파괴를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은 괜찮은가?'하는 물음이 들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공공성을 전혀 챙기지 못하는데, 공공성이 없는 이기적 욕망의 분출을 학습자주도성이라고 할 순 없다. 그로 인해 타인의 권리가 침해되고, 남는 건은 허울 좋은 위로 밖에 없다면 그것은 고쳐야 하는 것이다. 이곳이 자치배움터인 이유도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이라고 모두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도 배워야 한다. 조금 더 공동체를 바라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li><li>실패의 뜻은 잃은 '실', 질 '패'라고 한다. 어느 누가 잃고, 지고 싶어 하겠는가. 앞으로 실패를 조심해서 사용해야겠다. 실패하면 안 될 때가 있다. 마땅히 책임있고 안전한 공동체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가 있다.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하지 말고,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노력했을 때, 그럼에도 우리가 실패를 경험했다면 그 속에서 성찰하고 배움을 만들어가야겠지. 그러니 실패해도 괜찮은 것이다.&nbs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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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02:13: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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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육대전환의 시기, 학교의 미래를 열다 (김나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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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lockquote>"써머힐 학교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진보적 교육자인 닐(Neil)이 1921년 설립한 기숙학교로, 영국의 레스터에 세워진 비형식적이고 자유로운 사립학교다. ⋯(중략)⋯ 이 학교는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맞는 학교를 만든다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그런 만큼 학교의 방침은 아이들에 대한 일체의 훈련, 명령, 지시나 도덕과 종교 교육을 철폐하고, 아이들의 자발적 활동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수업의 출석 여부는 아이들의 자유의지에 맡겨지고, 학교의 모든 규칙도 교직원과 학생이 동등한 자격을 가진 전교회의에서 결정한다. 서머힐에서는 아이들에게 스스로 결정하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 있게 행동하는 태도와 능력을 기르고자 하였다." (pp. 21-22)</blockquote><div><br></div><blockquote>"인내하고 경쟁하는 시스템에서 이제는 학생들이 흥미로운 것을 찾아서 스스로 '덕질'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흥미로운 것을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죠. 교육이 덕질하게 되는 것들을 만나게 해주고 학생들이 즐기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협업의 장이 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육은 즐거움을 조장해주고 개인의 즐거움을 협력을 통한 공동체의 즐거움으로 연계해주어야 합니다. 대안교욱과 혁신학교 15년의 흐름이 단순히 붕괴되는 학교를 개선(Improve) 시켜서 조금 더 나은, 조금 더 재미있는, 조금 더 수업이 의미있는 곳으로 만드는데 머무르지 안혹, 완전히 새로운 학교, 학생이 스스로 배움의 주체가 되는 혁신(Innovation)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pp. 36-37)</blockquote><div><br></div><blockquote>"서핑은 교사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겪으면서 배워야 합니다. 아이들이 파도를 못 타고 있다해서 교사들이 파도 위에서 아이들을 붙잡아 줄 수는 없지요. 아이들이 직접 파도를 타봐야 합니다. ⋯(중략)⋯ 과제를 능동적으로 파악하고 어떤 파도를 자방 탈 것인지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스스로 파도를 타는 것과 연계하는 것이 중요해요. 학생은 통제받고 가르침을 배우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과 교사가 함께 배워나가야 합니다." (p. 48)</blockquote><div><br></div><blockquote>"학생들에게 안정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가 아니라 네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의 교집합을 찾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 맞아요. 스스로 배움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의 목표는 대학을 잘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장의 길을 다양하게 모색하도록 지원하는 데 있다는 것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필요해요." (p. 50)</blockquote><div><br></div><blockquote>"개인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그래서 학습자들이 어떤 억압이나 두려움 없이 스스로 삶과 배움에 주인이 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입니다. 그러나 그 자유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어야겠죠. 타인의 자유와 나의 자유 사이에서 합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겁니다. 그 합의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거나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해서 스스로 만드는 것이죠." (p. 51)</blockquote><div><br></div><blockquote>"개별화 학습은 학생의 능력, 흥미, 요구, 학습 속도, 학습 수준, 인지적 특성을 포함하는 개인차에 따라 학습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사는 학생의 다양한 특성과 개인차를 고려한 학습환경을 설계하여 제공함으로써 의도된 배움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습니다." (p. 290)</blockquote><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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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3 11:36: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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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생평가는 빨리 절대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협력하고 나누고 도와주는 삶으로 전환이 될 것입니다.</title>
         <author>jds091988</author>
         <link>https://padlet.com/1kwonsy3651/25rwbd6kav78d71z/wish/2760532409</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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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6:58: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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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갭이어가 뭔지 궁금합니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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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박규서)</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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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6:58: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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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주도성은 교사의 기다림과 협력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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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6:59: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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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왜 우리는 학습자주도성을 고민해야 하는가?</title>
         <author>hyunwoo2003061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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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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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0: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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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 주도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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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자기답게, 개별성과 독특성이 세계안에서 발현되는 존재의 새로움.은 얼마나 멋진 말인가요.<br>이 자리에 계신 선생님들은 모두 그런 교육을 꿈꾸고,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기를 바랍니다.<br>히지만 제도와 사회문화는 모든 성장경험을 포인트화하는 상황에서 더 많이, 더 함께 고민과 실천과. 행동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br>함께 하는 실천가 선생님들의 발자국을 존경하고 응원합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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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0:2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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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에스파 춤과 학급당(학습당) 인원수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표상오</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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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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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0:3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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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 주도성 </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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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요즘 사회성학습자 주도성이란 용어에 괴리감이  더 느껴집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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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0: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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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주도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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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학습자 선택이 가능해지는 제도 상황을 만들기만 하면 모든 학습자가 주도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은 오해.<br>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많은 선택지만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을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br>공감</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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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1: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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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주도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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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시스템을 이야기하면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주도성은 일단 왜 공부해야하는지 이게 나에게 왜 중요하고 필요한지에 대한 의식이 필요하고 모든 배움은 학습자의 사고를 자극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과 끊임없이 학습자의 사고를 자극하는 질문을 제공하는 것이 교사의 역할이란 생각입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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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1:3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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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주도성이라는 주제를 꺼내신 이유가 있으실까요?(최은선)</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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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1:3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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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현 교육제도는 학습자 주도성을 가질 수 없는 구조인거 같은데 어떤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할까요?</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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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1:4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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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질적평가 성장참조평가 등이 완전히 자리를 잡고, 교실이 경쟁이 아닌 협력의 공간이 될때 학습자주도성을 펼칠 수 있는 풍토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형경</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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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03: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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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학습자 주도성</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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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학생의 선택권을 넘어 주도성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되었다. 벽에 난 구멍은 무엇인가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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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3-10-24 07:31:5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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