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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019 30412 백민서 by Hwang Jinsu</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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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19-04-08 00:36:3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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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4차 글쓰기</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368854527</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em>인권, 자유, 평등, 정의로움, 연대(서로 함께하고 책임짐), 공동체</em></blockquote><div><br></div><pre>1. 위의 단어를 참고하여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뜻을 써보자.</pre><div><br>민주주의의 사전적 의미는 '(국민이 권력을 가짐과 동시에 스스로 권리를 행사하는 정치 형태. 협의로는 프랑스 혁명 이후 사유 재산 제도를 전제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만인의 평등을 법적으로 확립한 정치 원리를 말한다.) 현대에서는 정치의 원리나 형태뿐 아니라 사회 집단의 제반 활동의 존재 양식이나 인간의 생활 태도에 대하여도 쓰이는 말' 이라고 하는데, 반대되는 말은 전체주의가 있다고 한다. 이에 반해 나는 위의 단어를 사용해 민주주의란 차별없이 평등하게 모든 사람의 인권을 지켜주고, 자유를 보장해 주며 서로 연대하는 공동체의 문화라고 생각한다. <br><br></div><pre>2. 위의 뜻을 적용하여 나는 현재 학교에서(또는 가정에서, 지역사회에서) 민주적으로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자.</pre><div><br>요즘은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뜻만큼 민주주의가 서로의 인권을 지키고 자유를 주고 연대하는 것 정도의 크기는 못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민주적이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나를 생각하느라 다른 사람의 자유나 인권을 챙기지 못하기도 한다. 특히 학교에서보다는 집에서 오빠나 다른 가족들한테 민주적이지 못한 행동들도 많이 하기도 하고 가족들의 인권이나 자유를 보장해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평소에는 잘 몰랐는데 이렇게 내가 민주적이었는지를 생각해보려니까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조금은 반성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글쓰기를 통해 가족에게 더 잘하고 민주적이도록 노력해야 겠다고 생각한다.<br><br></div><pre>3. 과거보다 우리 나라의 경제는 성장했고, 법과 제도는 보다 민주적으로 변해왔지만, 개개인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영상을 참고하여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pre><blockquote> (-&gt; 영상 링크 : <a href="https://seoulchangdeok-my.sharepoint.com/:v:/g/personal/jshwang17_changdeok_ms_kr/EekbwLvga_FFhJ7lkHOTe7gBcyrSOPrbtrFFGh_UPkjrbA?e=bMgEzf">https://seoulchangdeok-my.sharepoint.com/:v:/g/personal/jshwang17_changdeok_ms_kr/EekbwLvga_FFhJ7lkHOTe7gBcyrSOPrbtrFFGh_UPkjrbA?e=bMgEzf</a>)</blockquote><div><br>전에는 대놓고 독재체제를 펼쳤다면 이제는 우리의 긴 싸움 끝에 민주주의라는 타이틀을 얻기는 했지만 훨씬 나아졌어도 좋아졌다기보다 크고작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는 모습인 것 같다. 물론 나를 폼함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라는 그 네글자 아래에 잘 살고 있고 만족을 하고 있지만 나머지 소수의 사람들, 어쩌면 다수의 사람들은 그때보다 더욱 힘들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너무나 두려웠던 죽음을 이제는 스스로 선택한다는게 너무 무서운 것 같고, 죽지 않아도 사는게 아닌 오히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IMF 때는 어마무시하게 많았다는게 좀 충격적이었다. 갑과 을이 너무나 확실하게 나눠지고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이겨야 하는 경쟁심이 생겨나는 시점이기도 했던 IMF 시기는 그 당시의 가장, 부모 등의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힘들었다. 민주주의와는 걸맞지 않게 경찰이 물대포를ㄹ 쏘며 강제진압을 하는 등의 정권의 부패가 정밀 심했던 IMF를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훨씬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일자리를 찾는게 너무 힘들고 뼈 빠지게 하루를 일해도 그만큼의 돈을 받지 못하는 것은 현재 그들에게는 엄청난 비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문제는 5.18 민주화운동 전 후로 가장 심각했는데, IMF는 정부에서 국민들의 소리는 짖밟은채 자신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돈이 많은 사람들에게만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친 것이 가장 큰 정부의 책임이자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부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상에서 말했듯이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은 우리 모든 국민이 같은 소리를, 한 목소리를 낼 때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새로 쓰여지는 것이다. 따라서 함께 공감하고 울지 못한 우리의 잘못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 3.1운동과 5.18민주화 운동 때처럼 우리가 같은 마음으로 소리쳐야할 때가 이 시대의 어느날에는 다시 오길 바란다. 갑자기 올 수도 있고, 계획적으로 이뤄질 수도 있으며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2019년 현재를 기준으로 힘든 사람들이 있다면 그 날이 꼭 이뤄지기를 바란다. <br><br></div><pre>4. 20년 뒤의 나는 어떤 사회를 살고 있을 때 행복할까? 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pre><div><br>당연히 완벽한 민주주의적인 사회에 있을 때 정말 행복할 것 같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든 일일지라도 빈부격차 없이 모두가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사회, 정부가 서민들을 위주로 생각하는 사회, 칭찬받는 정부가 있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과 국회위원 등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부패하여 욕 먹는 것 대신 칭찬을 받기 위해 다양한 방면에서 국민을 생각하는 정부, 힘든 국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에 대한 대책을 잘 마련하는 정부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정부를 제외한 우리 국민들은 힘든 이들을 지나치거나 밉주지 말고 관심을 가져주어야 하며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 살기보다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혼자보다는 공동체를 생각하고 배려할 때 더욱 좋은 세상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br><br></div><pre>5. 아래 제시된 영역을 <strong>'욕심'</strong>과 관련지어 하나의 주제가 담긴 글을 자유롭게 써보자. (반드시 '욕심'을 포함, 제시된 영역은 중복 선택 가능)</pre><div><br></div><blockquote>'문화', '경제', '자원', '환경'. '세계화', '민주주의' </blockquote><div><br>주제 : 우리가 환경을 지키자(욕심과 바꾸지 말자)<br>'환경을 욕심과 바꾼다.' 이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우리의 욕심 때문에 환경이 보존되지 못하기도 하고 정부의 욕심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기도 합니다. 환경은 우리가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 지구, 이 환경은 한 번 파괴되면 되돌리기가 어렵고 우리가 함부로 만들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만 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들, 우리의 자녀 또는 손주들이 우리가 살아온 이 세상에 똑같이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환경을 선물하고 싶습니까? 그린존이나 그린벨트 등의 환경보존 구역을 만들기도 하지만 아프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는 구준히 사막화가 이워지고 있고, 우리가 이를 막기 위해 심는 나무가 큰 도움이 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커져서 눈에 보여야지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수습할 수가 없죠. 우리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환경을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합니다. 개발지역을 늘리고 계속해서 내뿜는 공장의 유해물질과 우리의 차가 내뿜는 매연, 그리고 우리가 버리 쓰레기, 담배연기 등의 우리가 저지른 많은 행동들이 미세먼지와 지구온난화, 이상기후현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지금의 이런 문제를 막기는 힘들어도 더욱 악화시키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개인의 욕심, 나라의 욕심, 단체의 욕심 때문에 환경이 오염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합니다. 고로 우리는 우리의 욕심과 환경을 맞바꾸지 않으며 지키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br>욕심이 지나칠 때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를 <br>바랍니다. 감사합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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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06-24 00:39: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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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3차 글쓰기</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368854626</link>
         <description><![CDATA[<pre>1. 영화 '옥자'에서 인상깊었던 장면과 그 이유</pre><div><br>선생님이 멈춰서 보여주신 장면이기도 했는데, 미자가 옥자를 금돼지로 사는 것도 인상이 깊었고 그만큼이나 인상에 깊었던 장면은 미자와 옥자가 함께 그 공장을 빠져나갈 때 들어올 때 사람들이 한 것을 똑같이 보고 아빠 수퍼돼지가 아기 수퍼돼지를 밖으로 내보내고, 또 옥자가 그 아기 수퍼돼지를 입에 넣어서 몰래 데려온 것이 가장 인상에 깊었다. 사람이 한 행동을 한 번 본 것으로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그걸 기억하고 자신들을 대신해서 아기를 밖으로 내보낸 것은 그 상황이 얼마나 극박한지, 또 그때의 부모돼지의 심정은 어떨지를 자세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이 이렇게 똑똑할 수가 있나 하는 점도 놀라웠지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대충 예상했기 때문에 아기를 내보낸 것이 아닌가 싶기 때문에 동물들의 감정과 어떤 촉이라는 것을 보여준 점에서 영화 자체가 동물, 특히나 우리가 평소에 즐겨 먹는 돼지를 소재로 하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기도 하고 영화에서 동물들의 감정을 잘 보여준 것이 너무 와닿았기에 더 인상에 깊었던 것 같다. <br><br></div><pre>2. 영화를 보고 들었던 질문을 쓰고,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써보자.</pre><div><br></div><blockquote><strong>낸시의 "가격이 싸면 다 먹게 돼있어." 라는 말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과연 현명한 소비자인가? 영화를 본 후 돼지고기에 대한 내 생각은 어떠한가?</strong></blockquote><div>우선 가격이 싸면 다 먹게 돼있다는 말은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그 약점을 파고드는 허를 찌르는 말인 것 같은데, 사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현명하고 현명하지 않고를 떠나서 서민 입장의 소비자들 중 가격이 저렴하면 안 사먹을 사람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낸시는 한치 앞에 있는 자신의 미래와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낸시는 <br>철저한 생산자의 입장으로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발언을 서슴치 않았지만 결국 많은 사람들이 수퍼돼지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이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소비자들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기에 낸시의 생각대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사회에서 우리가 생산자들의 속마음을 보지 않은채 가격이 저렴하단 이유만으로 많은 소비자들이 느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이 대사는 현실사회의 우리 소비자들을 반영한 빈틈을 노리는 질문으로, 굉장히 예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생산자가 어떤 생각으로 갑자기 이런 대안을 내놓았는지를 생각하고 현명한 소비자가 되어 소비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닥 장을 보거나 소비를 즐겨하지 않기 때문에 현명한 소비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해서 가격 때문에 충동구매를 한다거나 충격적인 대안을 내놓았다고해서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현명한 소비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옥자와 미자에게 완전 몰입해서 영화를 시청한 사람으로써 내가 지금까지 저런식으로 불쌍히 죽여진 돼지를 생각없이 먹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는데, 그렇지만 이내 돼지고기를 또다시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통해서 '소나 돼지같은 고기를 먹지 말아야겠다'라고 느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돼지고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했고, 옥자처럼 학대를 받는 고기들을 먹는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겠다. 또한 고기뿐만이 아니라 음식을 소비할 때에는 전보다 신중히 생각하고 구매를 해야겠다고 이번 '옥자'라는 기회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br><br></div><pre>3. 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보자.</pre><blockquote><strong>미란도 그룹은 연구개발을 통해 맛있는 돼지고기를 저렴하게 시민들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주민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정부에 세금을 낸다. 이 세금은 지역 개발과 주민 복지를 위해 쓰인다. 그렇다면 이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strong></blockquote><div>나는 ALF 단체에서 한 행동이 한 기업을 망하게 하기 위한 행동이 아닌 우리가 새로 개발되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이 고기를 소비하려고 할 때 소비자의 입장에서 식품의 안정성에 대한 검증을 받고, 실험을 통해 태어난 생명이 실패작이 되어 방치되고, 성공작이었던 옥자또한 해치는 것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이 기업에 대해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 그 기업의 잘못된 행동과 생각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 것이다. 어쨌거나 그 행동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손해인지를 물어본다면 나는 어쩌면 우리에게 큰 손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로 포장돼서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소비하는 것도 그만큼의 큰 손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증된 소를 먹고도 광우병에 의해 죽은 소녀도 있었는데 실험으로 만들어진 것은 오죽할까?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것은 식품이 아닌 생명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이 문제가 이후의 예상되는 문제일 뿐이고 이 기업이 망했을 때의 피해가 더 크다고 하면 우선 그 기업의 만행을 모두에게 알린 후에 직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었고 간접적으로 옆에서 도움이 된 사람들에게만 잘못을 물은 뒤, 돼지의 안정성을 다시 한 번 검증 후 원하는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해결책도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들의 만행을 아는 것은 소비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기업의 손해와 그를 통한 우리의 손해보다는 우선 서로의 권리가 기본적으로 보장이 된 상태에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br><br></div><pre>4. 영상(https://youtu.be/V2h2msNWb58) 을 본 후,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이야기해보자. </pre><div><br>인간의 행동은 곧 우리가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환경이 된다. 영상 속 바다의 쓰레기 더미가 된 그 플라스틱은 도대체 누가 초레한 일일까?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버린 플라스틱인 것이다. 우리가 바다에 버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은 아닐수도 있겠지만 과연 진짜로 그런가? 가끔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고 들고 다니기 힘들 때 바닥에 버리지는 않나? 바다에 놀러가서 플라스틱 페트병이나 비닐봉지를 버리지는 않나? 쉽게 아니라고는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쓰레기를 바닥에 함부로 버리기도 하니까. 아래의 유투브 영상에서는 우리의 익숙해진 것의 무서움을 보여준다. 이 영상을 보고 개닫는 것이 있기를 바란다.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GVz1CdfXDx8">https://www.youtube.com/watch?v=GVz1CdfXDx8</a>) 이 영상에서 쓰레기를 버린 것에 반응한 사람은 단 2명이었다. 휘파람을 불어 신호를 준 외국인과 꼬마 아이. 다른 스쳐지나간 사람들을 보고 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중에 자신이 있었을수도 있다. 우리는 이 영상 속 많은 사람들이 그냥 지나간 것처럼 쓰레기를 길바닥에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렇듯 우리의 행동변화를 강조하는 것은 그만큼 인간과 환경의 관계가 너무나 가깝고 깊다는 것이다. <br><br></div><pre>5. 영상(<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gwrAgtgXJ20">https://youtu.be/gwrAgtgXJ20</a>)을 참고하여 <strong><em>'가진게 많아서 가난한 땅, 아프리카'</em></strong>가 어떤 의미인지 써보자.</pre><div><br>우선 아프리카는 자원이 많기 때문에 그 자원으로 개발을 하고 사업을 왕성히 했다면 분면 엄청난 돈을 벌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리카는 왜 발전되지 못했을까? 말 그대로 아프리카는 가진 것이 너무나 많았다. 자원을 가진건 크나큰 축복이지만 아주 거대한 절별들과 폭포는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를 단절시켰고, 아프리카 안에서의 교류도 막았다. 그리고 사막지역을 비롯한 열대기후의 나라이기 때문에 농사를 아예 짓기가 힘든 지형이 많았다. 그래서 문명의 발전이 늦다 못해 아주 힘들어졌던 것이다. 거기에 서양 강국들이 아프리카에 침범했고 아프리카 내를 많은 나라로 나누려고 했기 때문에 서로가 아예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싸움이 벌어졌다. 또한 아프리카 내의 아주 많은 자원 때문에 그 자원을 가지려는 일부 사람들의 욕심으로 아프리카 안에거 내전이 많이 일어났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가 만들어졌지만 아프리카 안의 모든 국가의 정부가 전부 부패했고, 아직도 많은 구테타와 부정투표가 일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가진게 많은 아프리카는 가난 뿐아니라 부도 가지고 있었다. 그 부(돈)는 정부의 손으로 넘어가 내전에 쓰이거나 나라의 잘사는 부분만을 꾸미는데에 쓰였고 빈부격차가 심하게 일어났다. 산업이 전혀 발달되기 전부터 고립돼 있었던 아프리카는 서양 강국에 의해 싸움이 붙게 됐고 정부는 부패했기 때문에 가진 것이 공평하게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가진게 너무 많아서, 또는 많음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가 심하게 일어나는 가난한 땅이 되어버린 것이다.(<a href="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84926.html">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84926.html</a>)(<a href="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EC%95%84%ED%94%84%EB%A6%AC%EC%B9%B4%EC%9D%98_%EB%B6%80%EC%A1%B1%EA%B3%BC_%EB%AC%B8%ED%99%94.html?id=lvULMgAACAAJ&amp;redir_esc=y">https://books.google.co.kr/books/about/%EC%95%84%ED%94%84%EB%A6%AC%EC%B9%B4%EC%9D%98_%EB%B6%80%EC%A1%B1%EA%B3%BC_%EB%AC%B8%ED%99%94.html?id=lvULMgAACAAJ&amp;redir_esc=y</a>)</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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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06-24 00:39:5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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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20193041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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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2차 글쓰기</div><pre><strong>1. 영화 ‘카트’에서 발견한 사회 문제 1~2가지</strong></pre><div><br></div><blockquote><strong><em>(1) 갑과 을의 관계로 인한 갑의 권력 남용; 비정규직 노동권.</em></strong> </blockquote><div><br>회사는 일방적으로 직원들을 해고시켰으며 계약을 위반하였다. 계약직으로 들어온 직원들을 우습게 보고 갑의 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내린 것인데, 당장이라도 잘릴까봐 두려운 직원들 입장에서는 반항을 하기도 힘든 상황을 보여준다. 잘못이 없는 직원에게 막무가내로 일방적인 굴욕적 사과를 요구하는 등의 감정노동이 소비되어 직원들을 더 힘들게 한다.또, 야간근무나 연장근무에 대한 수당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며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열악하여 냉난방이 잘 되지 않는데, 이러한 문제는 을의 화를 더 돋구어 억누르기 보다는 표출할 수 있게 하는 게기가 된다.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파업이었다. <strong>"아줌마들이 해봤자지, 뭐"</strong>  이 말은 갑의 관계에 있는 사람이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얕보고 무시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이에 굴하지 않고 직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이러한 불범 해고에 반발한다. 이러한 영화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데 실제로는 진압과정이 너무 험악해서 직원들이 많이 다치기도 했으며 영화에서 깡패들이 진압을 하는 모습이나 경찰들이 직원들을 진압한다는 명목하에 물대포를 쏘아 대는 것은 갑의 권력을 이용해 다른 사회적 기관들을 통해서 을의 모습을 더욱 극대화시켜 좋지 않은 시선을 불러 오기도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갑과 을의 차이를 알고 갑이 권력남용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어떠한 위치에서 서로 어떠한 이득을 취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이러한 문제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 국민들부터가 외면하지 않고 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한다.<strong>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의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strong>절박한 상황에서 저들이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지, 왜 이리 울부짖는지를 알고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권에 대한 문제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가족을 등장시키고 가정의 엄마를 주인공으로 삼았기에 우리가 더욱 친근하게 이 문제에 대해 알게 해주었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를 통해서라도 평소에 관심 갖지 않았던 우리 근처의 사회의 조그만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기를 바란다.<strong><em> </em></strong></div><div><br></div><blockquote><strong><em>(2) 갑의 권력 남용; 청소년 노동권 침해.  </em></strong></blockquote><div><br></div><div>'카트'는 대체적으로 갑과 을의 관계의 사람들을 두고 갑의 권력 남용에 대한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 특히 청소년 아르바이트 문제는  현재에도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흔한 사회적 문제 라고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일을 한 알바생인  타에영(도경수)는 편의점 사장님에게  어리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여  월급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왜 대드냐며 윽박을 받았다.  이에  지켜보던 친구가 돌을 던져 문을 깨자 에영을 때리며 물어내라며 적반하장의 태도를 취한다. 편의점 사장은 자신이 월급을 주는 갑의 입장인 것을 이용해 처음의 말과 바꾸어 허용했던 것을 허용한 적이 없다고 하여 알바비를 깎았다. 또한 적반하장의 태도로 오히려 경찰서로 에영을 데리고 가고 부모님에게도 윽박을 지른다. 이러한 권력남용의 경우는 다반사이며 알바 경험이 있는 청소년의 이러한 사례를 겪은 수치는 19.8%로 꽤 높은 수치였다. SBS에서는 '청소년 돕는 어른들'이라는 내용으로 알바비를 되찾아주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나이가 어릴수록 함부로 대하는 사장님들이 있다며 최저시금에 못 미치는 알바비를 받았다고 호소한 학생도 있었다. 우리는 SBS의 프로젝트처럼 주변에 이런 친구들이 있다면 돕고, 알바를 할 때 근로기준법을 잘 숙지한 뒤 두려워 말고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얘기를 할 때 녹음을 해둔다면 혹시 신고를 하게 됐을 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연<strong> 사장님이 갑질을 하지 않는 것</strong>이다.</div><div><br></div><pre>2. 1번의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를  
                                 5whys 기법을 활용하여 쓰시오.
(참고: https://youtu.be/8YYRe0ex6wg)</pre><div><br></div><ul><li><strong><em>왜 청소년 노동권 침해가 일어날까?</em></strong></li></ul><div>청소년 노동권 침해란 만 15세 이상의 학생들이  알바를 할 기회나 근로관계, 임금이나 근로시간 등의 정당한 권리를 고용주가 침해하는 것이다.  알바몬에서 알바생 1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그 중<strong> 80% 이상이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strong>고 했으며 전북에서 일어난 청소년 근로 노동법 위반 내역이 총 32건이나 되는 등의 다양한 사례가 있었다. 우선 갑을관계에서 갑인 고용주가 나이 어린 청소년을 하대하거나 얕보고 부당한 대우를 하는 갑질을  일으키는 것 때문이라 할 수 있는데, 심리적으로<strong> 나이가 어리니까 무능하거나 지식이 없다고 느끼게 돼 갑질을 한다</strong>고 한다. 이러한 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갑이 을의 나이를 가지고 무시하지 않으며 배려해야 한다. </div><ul><li><strong><em>왜 청소년들은 알바를 할까?</em></strong></li></ul><div>청소년 알바생 42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56.45가<strong> 용돈마련</strong>을 위해서, 29.6%가 <strong>생계</strong>를 위해, 7.8%가 기타, 6.2%가 <strong>저축</strong>을 위해서 알바를 한다고 했다. 2019년도에는 27만명이 넘는 청소년들이 알바를 한다고 하며 이에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환경개선과 인식 개선에 대해 논의를 하였다. 보통은 취미나 여가 등으로 하기보다는 용돈이나 생계가 가장 큰 이유이기 때문에 그러한 근본적 문제는 다시 사회, 정부로 넘어가서 청소년이 있는 가정에 열악한 환경에 있을 시 지원을 하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계나 용돈은 원하는 것보다는 필수적인 이유가 더 많기 때문에 알바 환경 개선에서는 어려움이 있으므로 집안환경인 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시급할 것이다.</div><ul><li><strong><em>왜 항상 을은 당하기만 할까?</em></strong></li></ul><div>우선 을이 청소년의 입장인 경우에 나이가 가장 큰 요인이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를 보았을때 조선시대부터 지속된 <strong>유교사상</strong>이 너무 깊게 자리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화적 특성상 연장자를 공경해야한다는 의식 때문에 서양권 나라에 비해서 생각을 잘 표출하지 못하고 당하게 된다.  또 갑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을에 비해 상당한 건력을 가진 것을 의미하고 을을 다루는 위치이기 때문에 나에게 직접적 영향을 주는 갑에게 함부로 감정을 표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혹시 나섰다가 나에게도 혐의가 인정되지 않을까하는<strong> 두려움</strong> 때문에 선뜻 말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갑질을 하는 갑(고용주)들이 많기 때문에 갑질의 사례가 끊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렇기에 알바를 하기 전에는 계약서를 꼼꼼히 보고 노동에관한 법을 대충 아는 것이 중요하다.</div><ul><li><strong><em>왜 갑질이 생길까? </em></strong></li></ul><div>기본적으로는 갑을관계가 있기에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하여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부당한 행동 또는 언행을 하게 되는데, <strong>심리적인 요인</strong>으로 봤을때는 <strong>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약자를 굴복시키며 조종하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갑질을 통해 타인이 굴복하면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strong>. 이러한 내용은 얼핏 보면 핑계같이 들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무의식 중에 느끼는 심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희롱 등의 발언을 하거나 성추행을 하는 갑질도 있는데, 이것은 더 이상 갑질을 넘어서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모든 고용주가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므로 갑질을 합리화할 수가 없다.따라서 이문제는 이해하기 보단 그 갑질을 해결하는데에 목표를 두어야한다.</div><ul><li><strong><em>왜 갑을관계가 생길까?</em></strong></li></ul><div>갑을관계는 계약서 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인 '갑'과 '을'에서 비롯된 것으로 신분의 차이, 우열을 나타내지만 원래는 수평적인 나열을 의미하던 것이다. 또한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봤을 때 조선시대부터 백정이나 천민 등의 신분 차이가 있었고 을의 권리행사는 상당 부분 제한 당하는 반면에 갑은<strong> 권리를 남용하고 을을 무시하던 문화가 지금까지</strong> 지속되어 갑을관계가 사라지지 않았다.<br><br></div><div>(갑질의 사례1; 교감과 여교사 간의 갑을관계)<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GB5c1hpCk7c">https://www.youtube.com/watch?v=GB5c1hpCk7c</a><br>(갑질의 사례2; 마트직원과 손님 간의 갑을관계)<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zJsxTXBLmqw">https://www.youtube.com/watch?v=zJsxTXBLmqw</a><br>(갑질의 사례3; 항공기내 승객의 갑질/난동)<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NTA-TXgpTk0">https://www.youtube.com/watch?v=NTA-TXgpTk0</a><br><br></div><pre>3. 기업의 활동은 시민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pre><div><br>먼저, 기업이란 사전적 의미로 영리(營利)를 목적으로 물품이나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의 활동을 계속적으로 행하는 조직체를 말하며 크게는 사기업, 공기업, 공사 합동 기업으로 나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예로 LG 또는 삼성전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외의 기업은 아래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a href="https://201480.tistory.com/7">https://201480.tistory.com/7</a>)      기업에도 크기에 따라 그 기업의 수준이 나뉘는데, 대기업의 보험이나 은행 관련 기업은 우리에게 신뢰도를 더욱 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기도 한다. 기업에서는 새로운 상품이나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내고 그것을 실행에 옮겨 제작하고 생산하여 판매한다. 그렇게 더 좋은 아이디어와 상품이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구매하는 시민들에게는 더욱 편리함을 준다.<br> (예시: 방수되는 휴대폰, LG전자 트롬 스타일러 등 )  하지만 기업에서는 제작, 판매 외에도 많은 활동을 하는데 예를 들어<strong> skt</strong> 통신사에서는 <strong>0한동</strong>이라는 프로젝트로 중고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여 저렴한 가격에 <strong>데이터 혜택</strong>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strong> Dove</strong> 기업에서는 아래의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oWUsews2gtg">https://www.youtube.com/watch?v=oWUsews2gtg</a>)   <strong> 아름다움에 관한 광고</strong>를 만듦으로써 우리의 진짜 아름다움(real beauty)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여 우리의 생각에 좋은 영향을 주었다. 이와같이 기업에서는 어떠한 대상으로 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공익광고처럼 우리에게<strong>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strong> <br><br></div><pre>4. 기업의 횡포로 노동자 또는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사례를 찾아보자.
(링크 주소를 달아주거나, 간단히 요약해서 써주세요)</pre><div><br>영화 카트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그 한 예가 될 수 있 고 , 그 외에는 <strong>부산은행 사건</strong>과 <strong>삼성 노조파괴</strong> 등이 있다. 삼성 노조파괴는 영화 카트와 더더욱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은행 사건은 2011년 상호저축<strong>은행</strong> 영업정지 사건은 2011년 2월 부산 저축 은행 등의 여러 상호저축<strong>은행</strong>이 집단으로 영업정지된 사건이다. <br>(부산은행사건 ;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3zBErw9DwZ4">https://www.youtube.com/watch?v=3zBErw9DwZ4</a> )<br>(삼성노조파괴 ; <br><a href="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194614#09T0">http://www.pressian.com/news/article/?no=194614#09T0</a> ,<br><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0YzT3IgCFuc">https://www.youtube.com/watch?v=0YzT3IgCFuc</a>)<br><br></div><pre>5. 노조의 파업으로 인해 회사나 시민에게 피해가 갈 때가 있다. 
                    시민의 입장에서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하나?
           (참고:  https://youtu.be/uOeylzdfNog )</pre><div><br>'카트'에서  "저희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닙니다. 저희의 얘기를 좀 들어달라는 겁니다."  라는 말을 하듯이 그들이 원하는 것은 <strong>실현가능한 대책과 관심</strong>이기 때문에 우리는 뉴스나 신문기사를 보면서 그들의 사건을 알고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너무 우리의 불편함만을 생각하여 함부로 발언하면 안 된다. 우리가 그들처럼 직접 그 노동의 힘듦을 겪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노조나 시위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그들의 고통에 대해<strong> 함부로 얘기하면 안되</strong>고, 얘기를 할 때에는 그 지식을 충분히 습득한 후에 양측의 말을 들어보고 나서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일에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그런 노동자의 입장이 아니기에 직접 그 시위에 참여하는 등의 영향력 있는 도움은 주기 힘들 것 같다. <mark><br></mark><br></div><pre>6. 영상( https://youtu.be/IEQ6B-pPGeI )을 보고, '사회적 기업'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생각해보자.
favorite_border</pre><div><br>우리에게 익숙한 사회적 기업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있는데, 영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재활용은 물론이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분들도 사회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계층이기 때문에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 하는 기럽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업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또한 영상에서 말하듯 사회적 기업은 '물건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또는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물건에 하자가 있을 것이다'하는 편견이 가장 힘들다고 하므로 우리는 그런 편견을 없애고 오히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에서 물건을 구매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나를 위한 명예와 돈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적 기업처럼 우리가 평소하는( 청소년 ) 봉사활동 같은 사회적 활동에 있어서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점과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에서도<strong> 나만을 생각하지 말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한다</strong>는 점이다.<strong> 남에게 주는만큼 나에게 돌아온다</strong>는 말이 있듯이 도움을 주거나 봉사를 할 때 시간과 돈에 있어서 너무 연연하지 말고 진정으로 도우면 나중에도 나에게 그런 도움의 손길이 올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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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06-24 00:40: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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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1차 글쓰기</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368854670</link>
         <description><![CDATA[<pre><strong><em>1.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과 그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em></strong></pre><div><br></div><div>인상적인 장면이라기 보다는 그냥 트레이시가 항상 <strong>"왜 흑인이랑은 춤 추면</strong> <strong>안되는데?"</strong> , <strong>"난 매일이 흑인의 날이었으면 좋겠어!"</strong> 등의 말을 밝게 하는것이 서스럼없이 흑인을 대한다는 점에서 인상이 깊었다. 또 트레이시는 자신이 위험에 처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백인의 신분으로 흑인들이 주로 참여한 방송국까지의 행차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참여를 하고 오히려 당연하게 여겨 링크에게 '너도 할거지?' 라고 하는게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토록 하고 싶었던 코니 콜린스 쇼에서 탈퇴 당할수도 있지만 옳지 않은 것에 반발한다는게 결코 쉬운 일일 수가 없는데 먼저 나서서 돕고 같이 인종차별에 대해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라면 나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행차에 참여했을지 모르겠는데 아마 더 고민해보고, 한다고 하더라도 뒷줄에서 했을것 같다. 항상 먼저 나서서 돕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실전에서는 나서기가 힘든 법인데 트레이시느 돕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자시노 인종차별에 맞서서 싸우고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고 여기고 먼저 나서는 부분에서 나도 본 받아야 하고 또 실제로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div><div><br></div><pre><strong><em>2. 문화란 한 집단이 공유하는 사고방식/행동방식을 의미한다. 차별하는 문화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것은 어떤 이유(요인) 때문일까?(즉, 여러 사람이 같은 생각을 갖게된 이유와 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 (흑인 차별 또는 외모 차별 등의 사례를 선정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함) </em></strong></pre><div><br></div><div>현재에는 외국(특히 서양권 나라)에서 동양인 관광객들에게 <strong><em>'ching chong'</em></strong> 또는 <strong><em>'Ni hao'</em></strong><strong> </strong>등의 말로 동양인을 모두 중국인인 것처럼 대하고 'ching chong' 이라는 말로 동양인들의 언어를 비하하는 등의 차별적인 문화가 퍼지고 있었다.이 외에도 차별적이거나 차별적이지 않은 문화가 한 집단에서 퍼지는 현상이 시대에 상관없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에 대해 나는 분위기나 생각의 일치에서 이러한 문화들이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학교폭력을 예로 들자면 피해자들 대부분이 시간이 고통이었고 괴롭히는 학생이나 집단이 아닌 <strong>방관</strong>하며 도움을 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더욱 배신감이 들었다고 한다.(<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CDtu1skdHIs">https://www.youtube.com/watch?v=CDtu1skdHIs</a>),<br>       (<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Kqv9BymmRuY">https://www.youtube.com/watch?v=Kqv9BymmRuY</a>)<br>이렇듯이 한 집단이나 개인에서 시작된 차별 문화가 무의식 중에 억압적인 분위기를 만들게 되고, 그 분위기를 따라가려는 이나 그 분위기를 거스르고 싶어하지 않는 이가 생겨서 차별의 문화가 퍼지게 된다.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들었을 때 바로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생각의 일치를 불러오기도 한다. 확고한 생각이나 가치관이 있는게 아니라면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믿기가 쉬운데, 그렇게 되면 그 말을 받아들이게 돼서 무의식에 그 생각이 내 머리에도 들어오게 되고 그런 말들이 퍼져서 차별을 하고 다름을 부정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또는 그런 집단의 영향력이 크고 나에게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도움 주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꺼리게 되어 그 차별적인 생각을 따른다. 그래서 그런 집단의 <strong>영향력이나 억압적인 분위기가 그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strong>라고 할 수 있다. 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면 결정이 잘 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먼저 나서서 다른 방관자가 다시 생기지 않도록 차별에 반대하는 문화를 만든다면 우리는 차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div><div><br></div><pre><strong><em>3.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가 서로 다른 문화를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em></strong></pre><div><br></div><div>우리는 이 질문이 만드는 것을 흔히 <strong>'세대차이'</strong> 라고도 한다. 2017년의 컬러는 <strong>'그리너리(Greenery)'</strong>였고 2018년의 컬러는 <strong>'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strong>이었으며 2019년 올해의 컬러는 <strong>'리빙 코랄(living</strong> <strong>coral)'</strong>이었다. 이렇듯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의견을 내지 않아도 그 해의 컬러가 나오고 우리는 그 것을 따르게 되는 일종의 유행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유행은 한 때만 열풍을 불러 일으키다가 나중에는 또 다시 새로운 열풍으로 이 전 것이 금방 지나가게 되는데, 이것도 어쩌면 세대차이의 한 예시이다. 현재의 우리가 옛날의 문화나 유행을 보며 신기해 하는 것처럼 옛날 사람들도 우리의 모습을 신기해하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여학생 같은 경우는 화장이나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것에 대해서 부모님과 의견차이가 있는 때가 많을텐데  <strong>부모님세대에는 의견 표출이 자유롭지 못하고 인터넷이 잘 활성화 돼 있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우리는 비교적 의견표출이 자유롭고 인터넷이 활성화 돼 있어서 기사를 찾아보기도 쉽고 많은 자료를 쉽게 한눈에 볼 수 있다</strong>. 물론 이런 의견차이가 없는 가정도 있겠지만 있다면 보통은 부모님께서 현재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약간의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우리는 그런 부모님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또, 키우는 쪽의 입장과 키워지는 쪽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문화를 갖게 되기도 한다. 생각은 한곳에 멈춰 있지 않고 계속 바뀌기 때문에 문화도 계속해서 바뀌게 된다. 하지만 <strong>부모님들은 그동안 육아와 직장생활 때문에 그 문화를 다 따라가기가 힘들었을테고 많이 바뀌어있는 지금이 서로 이해가 되지 않아</strong> 다른 문화가 생긴다. 이에 우리는 부모님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부모님들에게도 차분히 설득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러한 세대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div><div><br></div><pre><strong><em>4. 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em></strong></pre><div><br></div><div>갈등이란 개인이나 집단 사이에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적대시하거나 불화를 일으키는 상태를 말하며 크게는 <strong>내적갈등</strong>과 <strong>외적갈등</strong>으로 나눌 수 있다. 외적갈등은 사람과 사람, 또는 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이고 내적갈등은 한 인물의 심리적 갈등으로 외적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만 내적갈등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갈등은 <strong>서로의 다른 의도 파악</strong>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한 사람은 생각 없이 얘기한게 듣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면 그때 기분 나쁜 사람의 서운함 표출로 외적갈등이 될 수도 있고, 서운함 자체로 표현하지 않아서 내적갈등이 될 수도 있다. 요즘에는 묻지마 폭행도 빈번히 일어나기 때문에 그 이유가 <strong>단순한 분풀이 일 수도 있고, 그 동안 쌓인 게 폭발하면서 생긴 갈등일 수도 있다</strong>.<br>갈등을 막기 위해서는 서운할 때 상대방의 마음을 생각해서 차분히 이야기 하고 분풀이를 하지 않도록 화를 잘 추수려야 한다.</div><div><br></div><pre><strong><em>5. 문화는 어떻게 변하는걸까? 문화를 바꿀 수 있을까?(즉, 사람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을까?)</em></strong></pre><div><br></div><div>문화란 한 집단이 공유하는 사고방식/행동방식이다. 전의 질문에 답할 때도 말했듯이 문화는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 사고방식이나 행동방식이 워낙 확고하다면 그럴 땐 바꾸기 힘들겠지만 그냥 문화라고만 보고 기존의 사고방식이라고만 봤을 때는 <strong>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생각이 바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뀔수도 있고 누군가의 설득이나 어떠한 계기로 바뀌게 될 수도 있다</strong>고 생각한다. 문화는 한 집단에서 생각이나 행동방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자치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사회가 바뀌면서도 자연스럽게 변하기도 한다. 근데 바뀌거나 변하는게 아니라 바꾼다고 한다면 나의 문화나 나에게 가까이 관련있는 문화가 아니고 그 문화가 잘못돼서 바꾸는게 아니라면 바꾸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고유의 집단이 공유하는 생각이 다른 것이고, 각기 각색의 다양한 문화가 있기에 자유가 있는 건데 그것을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고 중요한 생각이 있어서 바꾸는게 아니라면 바꾸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은 '<strong>바꿀 수 있다</strong>'이다. 문화는 서로의 생각이 맞는 개인들의 집합이기 때문에 다 나의 생각과는 같을 수 없고 다른 것이 당연한 것이며 다르다고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하나 더 알 것은 차별의 문화나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문화는 문화가 아니라 범죄라는 것이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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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06-24 00:40: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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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5차 글쓰기(10/9(수)까지)</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392329628</link>
         <description><![CDATA[<pre>1. 영화 '설국열차'에서 본 인상적인 대사 또는 장면과 그 이유</pre><div><br>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커티스가 꼬리칸의 어린 남자아이가 부품을 위해서 그 좁은 공간에 있던 것을 발견한 장면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전에 아이들이 타고 있던 승객칸에서 티미의 엄마와 앤디의 아빠가 아이들을 찾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은 희망을 가지고 아이들에게마저 고통을 주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장면에서는 그 상상이 산산히 부서진다. 또한, 이 장면에서 나온 흑인 아이는 바로 티미이다. 윌포드가 있던 승객칸에서 앤디와 티미를 모두 볼 수 있었다. 앤디의 아빠와 티미의 엄마 모두 아이들을 보고 싶어했지만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사람은 오직 커티스 뿐이었고, 처음 부분에서 커티스는 자신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고 했으며 후의 남궁민수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지도자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 이유는 바로 커티스가 사람고기를 먹었고 그 와중에 길리엄은 다른 사람을 대신해 자신의 팔을 잘라주었는데 자신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비로소 커티스는 모두의 지도자가 된다. 커티스는 자신의 팔을 희생하여 티미를 그 좁은 공간에서 빼내고, 마지막에 폭탄이 터질 때에는 남궁민수의 딸인 유나와 티미를 안아서 보호하여 그들을 살린다. 이 장면이 인상깊었떤 이유는 이런 생각이 많이 스쳐지나가게 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윌포드는 생태계의 균형이라는 거지같은 이름하에 독재와 학살을 서슴치 않았다. 영화에서 메이슨은 윌포드가 아이들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아이들에도 꼬리칸 아이들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윌포드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br><br></div><pre>2. '질서'란 무엇인가? 열차 안에서 '질서'는 어떤 의미였나?</pre><div><br>사전적 의미로 질서란 '사물의 차례나 순서'를 의미하며 개인적으로 크게는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차 안에서의 질서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 열차 안에서의 질서는 어떠했는가? 열차 안에서 질서는 암묵적 또는 직접적 학대였다. 권력의 편에 있던 사람들은 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질서를 내세우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팔을 얼려 자른다거나 하는 심각한 학대행위를 저질렀다. 꼬리칸의 승객들은 어땠는가? 그들도 사실은 질서를 내세우며 학대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그 학대 행위는 올바른 길을 위한 것이니 정당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생각으로는 그렇지 않다. 그들도 똑같이 복수하고 사움을 일으키고 일반승객들에게 겁을 주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열차 밖에서의 질서에 대해 주목하고 싶다. 커티스가 마침내 진정한 지도다가 되어 생을 마감하고 열차는 폭발했다. 요나와 티미가 살아남았고 그들은 드디어 그 지옥같은 열차 밖을 나가게 되었다. 열차밖은 열차안에서의 일들이 너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했고 평화로웠다. 그리고 영화는 북극곰을 보여주며 끝을 낸다. 그들은 흰 북극곰을 보고 허무함과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열차라는 하나의 이동수단이 이 영화에서는 자유와 질서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됐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 틀에 박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 틀안에서 다른 상상(열차 밖을 나가는 것)은 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고정관념을 깨고 열차 밖을 나오자 전혀다른 세상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결론적으로 질서가 열차 안에서 마약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안에서도 나오지만 진짜 마약인 크로놀 때문에 싸움도 일어나고 행복해하기도 하고 미쳐있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질서 '덕분에' 편히 지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질서에 미쳐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도 잇었고, 질서 때문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열차 안에서 질서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마약이었다.<br><br></div><pre>3. ‘인간의 본성’과 관련지어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자.</pre><blockquote><em>자네가 인류를 이끌어 가야 해<br>자네가 없으면 이 인류는 멸종될 걸세<br><br>지도자가 없으면 어찌 되는지<br>자네는 직접 봤잖아?<br>서로를 잡아먹었지<br><br>저들을 봐<br>저게 인간이란 거야<br>너도 직접 봤잖아<br>저들 중 한 명이었지 <br>한심하고 바보 같아<br>그렇지 않나?<br><br>너는 저들을 구원할 수 있어<br>길리엄도 그래서 널 구원했던 거고<br>커티스<br>이건 네 운명이야</em></blockquote><div><br>위의 글에서 "서로를 잡아먹었지. 저들을 봐. 저게 인간이란 거야."라는 말에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참을 수 없는 5대 욕구 중의 하나는 바로 식욕이다. 그들은 너무나 배가 고팠고 그것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이성을 잃고 서로를 먹은 것이다. 이때 길리엄은 그런 커티스의 앞에서 이 일을 멈추기 위해 자신의 팔을 먹으라며 내어주었다. 길리엄은 커티스를 택하여 구원해 준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거의 모든 영화에서 '선택 받은 자'라는 인물이 나와 전에는 깨닫지 못한것을 선택과 부르심을 받아 깨닫고 무언가를 해낸다. 그래서 커티스도 '선택 받은 자'가 아닌가 싶다. 구글에 지도자라고 검색하면 그 옆에 리더쉽이 연관되어 뜬다. 지도자는 리더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말로 지도자는 리더이다. 리더는 우선 책임감이 강하다. 책임감으로 사람들을 구하거나 옳게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 책임감 마저 절박한 상황에서 온데간데 보이지 않고 이성을 놓게 된다. 커티스는 길리엄이 나타나기 전, 리더가 아니었다. 길리엄은 그 절박한 상화에서도 이성을 붙들고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했다. 그 순간만큼은 길리엄이 진정한 지도자였다. 지도자는 '인간의 본성'을 깨뜨리는 자가 아닌가 싶다. 커티스는 인간의 본성에 해당되는 두려움을 깨고 자신의 팔을 희생하여 티미를 구해주었다. 지도자는 그렇게 인간의 본성을 깨고 남을 위해 희생하며 대신 아파하는 사람이다.<br><br></div><pre>4. 영화 ‘설국열차’를 보고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나?</pre><div><br>설국열차는 너무나 잔인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영화였다. 지금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것은 "지금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는 누구일까?"이다. 지금 이 시대의 커티스는 누구일까? 이 시대의 인간의 본성을 깨고 지도자로써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누가 있을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사실 이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많이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자신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타인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한달에 나가는 10000원 20000원이 아까워서 기부를 많이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기부 또한 올바른지 알 수도 없다. 이 시대의 윌포드의 예로는 대통령들일 것이다. 전세계의 각국에서 어떤 정부활동이 이뤄지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굶어 죽고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이 시대에 커티스와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우리 사회에 설국열차를 대입해보면서 정말 비슷한 점을 꽤 발견했다. 그리고 끝으로, 그런 커티스 같은 사람이 나오기를 바라며 끝까지 내가 커티스같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내가 부끄럽다. 나도 이 영화를 통해 커티스같은 지도자가 되도록 노력이라도 해 보고 싶다. <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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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10-02 09:51: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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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6차 글쓰기(10. 20.(일)까지)</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400131530</link>
         <description><![CDATA[<pre>1.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나 장면, 또는 영화를 보고나서 생각난 것들(이유도)</pre><div><br>"매트릭스는 모든 곳에 있어.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 바로 이 방 안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티비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때도...."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예시는 없다. 방안에 있지만 방안에 있는 무엇이 매트릭스인지 알 수 없다. 물론 영화 안에서는 매트릭스가 가상의 현실을 나타내지만 그 말에는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에서 매트릭스(matrix)는 수학적 의미로 '행렬'이라는 뜻을 지닌다. 행렬이란 '다수의 숫자 또는 문자를 직사각형으로 배열한 것. 배열한 숫자 또는 문자를 그 행렬의 성분 또는 원소라 하고, 가로로 배열된 요소를 행(行), 세로로 배열된 원소를 열(列)'을 의미하며 솔직히 행렬이 뭔지 모르겠지만 난 이렇게 정의하고자 한다. 행렬이란 수학 안에서의 규칙인 것이다. 수학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규칙으로 존재한다. 그 규칙은 계산 가능하며 때로 말도 안되는 값이 나올 때도 있다. 우리는 수학을 배울 때 왜 그런지 물으면 약속이기 때문이라는 답을 종종 얻는다. 나는 이 구절을 통해 매트릭스라는 가상현실이 약속으로 정해놓은 규칙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공 네오가 그 가상현실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이 규칙을 깨는 것이며 말도 안되는 답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계속 거듭해서 나타난 수학 수들과 함께 'system failure'이라는 문구가 뜬다. 번역하면 '시스템 오류' 정도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 개사를 통해 매트릭스에 대해 다시 한 번 이해하고 정의 할수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았다. <br><br></div><pre>2. 매트리스 속 인간들은 자유로운가?(또는 그렇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pre><div><br>그들은 자유롭지 않다. 누군가는 굳이 자유로워야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수도 있겠지만 이에 대해서 네오는 이렇게 말했다. "(중략) 나는 이제 이 전화를 끊고 너희가 보고싶어하지 않는 것을 보여주겠다. 너희가 없는 진짜 세계를 보여주겠다. 규칙이나 통제, 경계나 국경이 없는 세계,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를.(생략)" 우리나라를 예로 들자면 일제 강점기 시대 때 일어난 독립운동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그때 그대로로 만족하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매트릭스에서나 독립운동에서나 그들은 그 상태에서 괜찮은 것이 아니라 어떠한 리스크를 회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당시에 몰랐을 뿐더러 느낄 수 없었기에 모르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생각마저도 나는 매트릭스라는 하나의 가상현실세계에서 주는 무언의 심어진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자기도 모르게 억압받고 있는 것이며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그들이 매트리스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유로울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자유로움조차도 사실 계산된 것이다. 그리고 그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가둬진 것이 로봇에 의해 착취 당하고 있는 것이므로 그들은 자유롭지 못하다. 매트릭스는 한정돼 있으며 사람들은 계산된 규칙에 의해 바쁘게 살아가거나 조용히 살아간다. 그들은 충분히 억압받는 것이고 전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br><br></div><pre>3. 나의 '생각'은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아래의 글을 읽고 생각해보자. </pre><div><br></div><blockquote>사람들이 자주 쓰는 단어는 아니지만 "도그마" 라는 것이 있죠<br><br>dogma<br>1) 종교에서 교리, 교의, 복음 을 뜻하는 단어<br>2) 사회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매우 강하고 독단적인 믿음, 주장, 의식 <br><br>인간이 태어나서 특정 시스템 안에서 성장하며 만들어지죠. 많은 수의 사람들이 초중고대학 이렇게 기본 최소단위로 16년 기간을 학교에 다니면서 졸업하고 마흔이 돼서도 어디에 취업을 해야 할까를 고민합니다.<br><br>곰곰이 생각해보면 학교를 16년간 다녔는데 한 개인이 사회에 나가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서 어려움을 겪는 다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이고 실패한 시스템 입니다.<br><br>그런데도 왜 아직도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느냐. 매트릭스를 운영하기 위해서 개인의 인권이나 개성을 박탈해야만 자신의 노예들을 천편인률적으로 세뇌시키기 쉽기 때문이죠 <br><br>그래서 특정 문화권에서 자라게 되면 그 사회만의 "도그마"에 종속된 삶을 살아갑니다. 모두는 아니지만 대다수가 그렇게 살아가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슬람을 이해하기 힘들고 이슬람은 우리를 이해하기 힘든 것이죠<br><br>지구인 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우리가 일본인들을 가리켜서 <br>쪽발이라거나 원숭이 새끼들이라거나 하면서 집단적으로 배척하는 것은 순수한 인간의 양심에서 보자면 이상현상 입니다.<br><br>하지만 우리가 늘상 일본인들을 욕해도 주변에서 딱히 말리거나 심각하게 보지 않는 것이 국가시스템을 통해 언론을 통제해서 대중들의 정신을 흐려버린 아키텍트들이 있기 때문이죠 <br><br>물론 손 쉬운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공동의 적을 만들어 두는 것은 시스템을 관리하기 위해서 상당히 유용하고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작업입니다.<br><br>어떤 분들은 위와 관련된 설명에 대해서 반발하면서 과거 일본의 침략 때문에 그렇다고 말은 하는데 그런식으로 따지자면 중국은 물론, 우리 엉덩이에 박힌 몽고반점 만들어 주신 징키스칸 까지 쫓아가야 합니다<br><br> 이 점은 사실 표면적으로 대중들을 설득하기 위한 사회적인 명분으로 점철된 "도그마" 입니다<br>위의 내용을 주장하는 분들께 우리가 정당한 명분없이 학살했던<br>베트남의 사례에 대해서 말을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왜냐면 베트남인들은 한국인들이 일본인 대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혐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베트남의 아키텍트들이 그 방식을 사용할 경우 자국에 이익이 없다고 생각해서 사용하지 않은 "도그마" 이기 떄문입니다.<br><br>아무튼 인류의 능력 있는 소수는 개인들이 각성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수 십 겹의 덫으로 숨겨둔 상당한 종류의 그 "도그마"가 유지되기를 원합니다.<br><br>이렇게 우리는 오늘도 도그마를 통해서 세뇌되어 매트릭스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인간답게 살기 위해 세상이 정상적으로 변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준의 직관력과 더불어 실천하는 양심이 필요합니다.<br><br>때로는 이들이 사회적 "도그마"를 이용해서 인간의 양심에 근거한 직관력을 무력화 시키는 심각한 방법도 사용합니다. 그런식으로 세뇌하면서 인간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도덕적 판단까지 조종하려 합니다.<br>_유트브 영상에 달린 '워스서 님'의 댓글</blockquote><div><br>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봐야 했지만 결론으로 얻은 것은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자유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2번 질문에 자유를 논했던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나의 생각도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세계인들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 아는 나라 중 우리나라는 사회가 빠르게 변화했고 자꾸만 교육 시스템이 바뀌었으며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고 우리가 자유를 다 누리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자유를 찾은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외국의 거의 모든 국가들은 2000년대 이전에 교내체벌금지를 시행한 것에 반해 한국에서는 시행된지 약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또한 독재에서 벗어난지도 약 20년밖에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변화에 적응할 틈도 없이 사회가 바뀌다 보니 아직까지 사람들은 나 때는 말이야~라며 자신의 세대에 비해 우리가 좋은 세대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이 바로 도그마의 예가 아닐까 싶다. 정부에서 독재를 하고 체벌을 막지 않았던 것은 크나큰 불행임에도 정당화되어지다보니 그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이 좋은 시대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지금세대의 사람들도 완전한 자유를 누리지는 못한다. 아직까지도 인종차별과 신체차별, 성차별이 존재하며 없애려고 하는 움직임에 대해 과민반응이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아짐에 따라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올바른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자유롭게 표출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사회가 많들어낸 이상한 도그마 안에서 우리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의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초등학교 5~6학년 때 학교에서 교내체벌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그 교내체벌의 피해자가 되기도 했었다. 그때는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교사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체벌이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안에서 아무도 그 교사의 행동에 대해 나서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어느세대나 국가에 상관없이 도그마는 존재하며 아직까지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시선이 없는 세상을 아직 상상할 수도 없고 올지도 모르겠지만 모두의 행동과 말이 정말로 자유로운 세상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br><br></div><pre>4. 지금까지 살면서 '<strong>당연한</strong>' 것이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strong>당연하지 않은</strong>' 것이었음을 깨달은 경험에 대해 써보자(그런 경험이 없다면 만들어서 써보자)</pre><div><br>나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의 예로 옷과 화장을 들어보려고 한다. 최근 나를 가장 마음 아프게 한 일은 설리의 사망소식을 들은 일이었다. 설리는 우리 사회의 여성으로써 브라(여성속옷)를 악세사리라고 칭하며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브라의 착용 여부를 낸다고 말했다. 설리는 인스타그램에 노브라 상태의 사진을 여러 장 올린 적이 잇으며 그의 댓가로 혹독하고 경악스러운 악플에 시달려야만 했다. 지금까지 여성이 브라를 착용하는 것은 정말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설리와 화사를 비롯한 여성들이 속옷을 착용하지 않는 일이 늘어남에 따라서 그에 대한 생각이 깨지고 있는중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서 더욱 여성의 가슴에 대하여 과도하게 큰 이슈를 삼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더한 나라도 있고 덜한 나라도 있지만 무엇이 옳은 것일까? 나는 이번 일을 통해 많은 여성들과 남성들이 여성 가슴에 대한 색안경을 벗고 그냥 몸의 일부일 뿐 별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는 가끔 우리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ㄴ에 있어서 과도한 참견과 훈수를 두고는 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mind your own buisness"(너 일이나 신경써) 또한 이러한 일 말고도 많은 여성과 남성들이 옷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은 주로 노출이 많은 옷을 삼가려는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으며 남성은 상의탈의나 쫄바지 같은 몸이 드러나는 일에 대해 안 좋은 인식으로 모르는 사이에 개인들이 억압을 받고 있었다. 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개개인의 옷들이 요즘은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선택을 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사회의 시선과 인식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얘기 하고 싶은것은 바로 화장이다. 여성들은 화장하기를 원하는 사회 속에서, 그리고 남성들은 화장하기에 제제하는 사회 속에서 성장했다. 화장품 가게나 회사의 80퍼센트 이상은 여성직원이며 광고에도 항상 여성이 등장했다.  아무렇지 않게 티비를 보았지만 요즘 사회의 인식개선에 대한 말이 많아짐에 따라 티비를 볼 때에도 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성들이 하고 싶은 화장에 있어서 자유롭고 맨얼굴 그대로 당당하며 남성들이 화장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으로 화장하고 싶은 마음을 제제 받지 않는 사회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번 기회를 통해 평소 당연히 여기던 것이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br><br></div><pre>5. 제시어 중 두 개 이상을 활용하여 하나의 주제가 담긴 글을 써보자.</pre><blockquote>질서, 자유, 선택</blockquote><div><br>주제: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br>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자유를 누린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번 6차 글쓰기는 그런 사람들의 생각을 깬다. 그리고 내가 그 사람 중 한 명이다. 우리는 사회가 정의해놓은 질서에 맞춰서 생활한다. 그런데, 그 질서는 과연 누가 만든것일까? 우리에게 있어 대표적인 질서는 법이다. 법은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만들며 우리는 그 법을 따른다. 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국회의원의 대다수가 중년 남성이며 상위층에 속한 부족함이 없는(돈에 있어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서민이하의 계층이나 여성들의 입장, 젊은 층의 입장은 법(사회의 정의 또는 질서)에 많이 반영되지 못한다. 그런데도 우린 그 질서를 따라야 하니 사실 배경부터가 고칠 점이 있고 불공평하다. 그래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자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도록 자유로울 권한을 주었지만 사실 이런 생각을 평소에 하지 않을 뿐더러 불편한 게 있어도 익명이 완전 보장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워서 마음껏 표현하지는 못한다. 그러니 그 자유 안에서도 망설임이 존재하니 진정한 자유라고 하기는 힘들다. 우리는 선택에 대한 자유는 많이 접하지만 그 선택지를 만들지는 않는다.나는 그 선택지를 만드는 것까지가 진짜 자유라고 생각한다. 질서를 만들수 있는 권한은 없더라도 자유롭게 표현을 할 수 있는 권한은 있어야 한다. 이때 이 표현의 자유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자유이다. 마음 어느 한구석에도 두려움이나 망설임없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 그렇다고 해서 터무니없이 남에게 욕을 한다던가 하는 말도안되는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꾸만 고정관념을 깨야하고 차별을 없애며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진정한 자유란 어렵고 복잡한 것이지만 사실 우리 안에 있는 것이기에 주변환경을 바꿔서 그게 나올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번 글쓰기를 통해 자유를 누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다. 특히 도그마에 관련된 3번 질문은 나의 머리를 한대 때린 느낌이었다. 나도 그 도그마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생각을 가짜 자유로움으로 둔갑하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나부터 실천하여 많은 다른사람들도 진정한 자유를 얻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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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10-21 05:14: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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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7차 글쓰기</title>
         <author>201930412</author>
         <link>https://padlet.com/iiish/201930412/wish/409421489</link>
         <description><![CDATA[<pre>1. '피의 연대기'를 보면서 인상깊게 다가온 내용 또는 사실과 그 이유</pre><div><br>나는 사실 지금까지 본 영화들 중 피의 연대기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에게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달해주었고 나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해주었다. 오늘 나는 그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이 영화는 많은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흔히 우리가 다가가기 힘든 연세드신 분들께 탐폰과 생리컵에 대해 설명하며 같이 정보를 공유하고 하하호호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게 현실에서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내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안에서 서로 얘기가 원활하게 이뤄지는 것이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억압, 폭력을 깨는 일 같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이런 문제에 대해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토론하듯이 얘기할 수 있다는게. 어떻게 보면 그건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부러웠던 걸 보면 내가 그 권리를 보장받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내가 욕 먹을까봐, 또는 안 좋은 시선 때문에, 오바하는거 같아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나의 두려움이라는 내 문제 때문에 내가 저 영화같을 수 없다 생각하겠지만 마음속에는 항상 이런 얘기를 나도 자유롭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여성인권, 인권 문제가 아니더라도 나는 항상 어른들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거나 나의 주장을 얘기하면 '어른들 말 하는데 버릇없다' '너가 아직 어려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 '(무시)' 등의 반응이 나에게 날카롭게 쏟아졌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조차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듣기 싫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내가 먼저 피하게 됬다. 반면 이 영화에 나오는 여성들은 나에게 잔다르크와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는 이런 나의 권리에 대한 문제도 많이 인식하지 못했고 대한민국에서 산다는게 좋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말한게 그 무언가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이다. 이 영화는 내가 알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 이건 아니야 라고 이게 옳은 거야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했고 나의 인권, 자유, 권리에 대해 한 번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br><br></div><pre>2. 나의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은 무엇이 있을까? (강요, 억압 등)</pre><div><br>이 질문에서는, 위에서 다 하지못한 이야기들을 해보려 한다. 이 답변에는 나의 개인적 경험과 생각이 다소 들어갈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 나는 자유와 권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당한 보이지 않는 폭력은 이거다. (1)시선강간-(시선강간이라고 하면 말이 너무 심하게 들려서 웃기긴 하지만 달리 부를말이 없었다)내가 짧은 치마를 입을 때마다, 내가 크롭티를 입을 때마다, 내가 딱붙는 옷을 입을 때마다 사람들은 나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쳐다본다. 물론 모든사람이 그런것은 아니며 나의 피해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런 시선 때문에 엄마도 더 짧은 치마를 입지 말라고 하고 나도 신경쓰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전에는 아직 한국에선 옷에대해 개방적이진 않으니까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것들 때문에 옷입을 때마다 엄마랑 약간씩 다투게 되고 기분이 상하게 돼서 불편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br>(2)사람들의 편향된 생각-요즘 일부 남성들을 포함한 사람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쪽팔린 얘기지만 우리 아빠도 그렇다. 일화가 있다면, 저번 친척과 함께 있었을 때 갑자기 어른들끼리 얘기를 하다 아빠가 "미스코리아가 페미스트(원래는 페미니스튼데 잘 모르면서) 때문에 금지 됐잖아?" 이러다가 나에게 "우리민서도 페미스트야!(철없는 말투로)" 라고 한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적절한 대응으로 "아빠, 페미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야. 그리고 요즘 페미니즘이 사회적으로 이슈되고 있는데 딸한테 그런식으로 말하는 거 좋은거 아니야."라고 하기는 했지만 내가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친천들은 '백씨가 기가 쎄' '백다연(내 친척동생)이랑 똑같네'등의 반응을 하는 편이고 내가 버릇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 가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우선 우리 사회 안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해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우리가 해결해야될 숙제이기도 하기에 아직 대화가 오고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멋대로 판단해버리는 것 같다. <br><br>나도 내가 자꾸 남의 시선을 신경쓰게 돼서 불편하지만 나는 이외에도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 억압을 받은 적이 많다. 모르는 사람에게 또는 아는 사람에게. 지금도 사실은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지지는 않는다. 그건 분명한 내 선택이지만 그 선택을 하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폭력도 있다고 생각한다. <br><br></div><pre>3. 다음 글을 참고하여, 악습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 (*악습이란? 나쁜 관행이나 풍습)</pre><blockquote> 흔히 삼강오륜(三綱五倫) 중 오륜(五倫)에 속하 는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예를 들어서 유교는 근본 적으로 연소자를 깔보는 사상으로 오해하곤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장유유서를 말하기에 앞서서 가장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이 어른다운 행동이다. (중략)<br> 물론 현대의 연소자와 하급자를 깔보는 문화는 정 확히는 구 일본군이 하루만 일찍 들어와도 선임으로 군림하려고 했던 것이, 구 일본군의 악습이 일본 사회와 그 식민지였던 조선 사회에 급속도로 퍼진 것이다. 하지만 해방 전후 일본은 징병제가 폐지되 고 문민 정부가 세워져 군국주의의 잔재가 빠르게 사라진 반면, 한국은 80년대 후반까지 군사독재가 이어졌으며 현재도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어 사라지지 않았다. 상명하복의 군대문화 잔재라는 것. 나이만 봐도 그렇다. 실제로는 일제강점기의 악습과 기수제 문화와 주민등록 체계가 기묘한 콜라보를 이루며 고작 1살, 심한 경우에는 하루 이틀 차이로도 계급화 되었는데, 정작 유교 문화의 잔재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장유유서'같은 것을 운운하며 유교 문화라는 식으로 퍼진 영향도 있다. <br><br> 역사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조선 초기, 임진 왜란 전까지는 여성들의 지위가 고려시대처럼 좋았고 임진왜란 후에 신분제의 동요가 있은 후에 가부장제가 심해짐에 따라 여성의 재혼이 억압받았고, 시집살이가 심해졌다고 한다. 왜 이런 현 상이 나타났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고 그것이 유교 때문이라고 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 다만 당시 시대 상황을 볼 때, 돈 많은 양민들이 갖은 방 법으로 양반이 되려 하고 양반의 비율이 절반을 넘어가다 보니, 유학의 가르침은 배운 적 없고 돈으로 산 신분을 유지하고자 남성들은 더욱더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방식으로 형식과 절차, 명 분만을 강조해 여성들을 아랫사람으로 보는 인식 을 심화시켰으리라 생각된다. <br>-출처 : <a href="https://namu.wiki/w/%EB%B3%80%EC%A7%88%EB%90%9C%20%EC%9C%A0%EA%B5%90%EC%A0%81%20%EC%A0%84%ED%86%B5">https://namu.wiki/w/변질된%20유교적%20전통</a></blockquote><div><br>계속해서 이어져오던 것이고 지금까지 연세드신 분들의 마음에는 유교라는 게 자리잡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번도 유교가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당연한 건줄 알았으니까. 지금은 유행어처럼 써오는 '나때는 말이야~'라는 말도 전에 그 말을 들은 누군가에게는 비수로 꽂혀진 적이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교에도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다. 아이와 여성에게 많은 제약을 둔다. 국어시간에도 배운 내용이지만 유교라는 전통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조신한 말하기, 상세하고 느리게 말하기, 어른이 잘못 되었어도 바로 따지지 않고 후에 조곤조곤 이야기 하기, 겸속하기 등의 말하기로 우리 사회에서는 토론이나 대화의 중요성을 져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학교에서나 사회에서 토론을 하고 대화를 많이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안 좋은 생각(요즘애들 못하는 말이 없어 등의 요즘세대들을 안 좋게 생각하는 것 등)을 가지신 분들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유교는 한때 우리의 전통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봐야할, 악습일 수도 있다. 유교가 워낙 한국 사회에서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유교가 틀렸다기 보다는 이건 유교에 어긋나서 이게 틀렸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쨌든 민주주의가 형성된 현재의 대한민국에선 조선이 아닌 세계로 나아갈 대한민국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아야 하므로 유교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틀린 것은 고쳐야될 필요가 있다.<br><br></div><pre>4. 우리 사회에서 '헌법정신'에 비췄을 때 정의롭지 못한 일을 찾아봅시다.
(*헌법정신을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실현'이라고 규정함)</pre><div><br>헌법정신에 어긋나는 일의 예로 '생리대 값 인상'의 사례를 예로 들려 한다. 생리대는 휴지와 같이 여성들의 생활 필수품이다. 또한 이런 위생용품이 생리대 외에도 탐폰, 생리컵, 생리 팬티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한국에는 탐폰을 찾아보기 힘들고 종류도 적으며 품질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 없다. 또한 요즘에는 일부 생리대가 생리통에 안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하며 생리대에 대한 두려움을 품게 했다. 그런데 (조금 된일이지만) 최근에 청와대 청원 넣는 홈페이지 사이트에 오히려 생리대 값을 인상하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런 어이 없고 사이코패스의 표본 같은 청원서에 동의한다는 사람이 은근 많았다는 것이다. 이 청원을 누가 넣었을까? 여성이 자발적으로 사회에 헌신하는 마음으로 생리대값 인상 청원을 넣었을까? 물론 남성일 것이다. 나는 이런 크거나 작은 시건들이 무조건 남성의 탓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청원을 올린 사람은 머리가 비었겠지만 사회에서 생리에 대한 교육을 잘 못받아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여성과 관련된 성교육이 있을 때 남성들에게 비밀로 하는 것처럼 생리에 대한 교육도 여성에게만 한다. 물론 여성들에게 그 교육이 더욱 필요하겠지만 남성들이 함께 교육 받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우리는 더불어 가는 사회에서 살고 있으며 남성도 여성도 많아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려면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남녀간의 좋은 인식과 이해를 쌓아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생리를 하는 것은 우리가 원해서 하는 것도 아니며 생리통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생리통으로 응급실에 실려가는 사람도 있다. 또, 생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기분 찝찝하고 좋은 일이 아닌데 더 서럽게 생리대 값을 계속해서 인상하고 있으니 헌법정신에 비춰봐도 전혀 인권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생리를 돈을 버는 하나의 수단 정도로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더 마음이 아프다. 생리대를 파는 기업들은 양심적으로 가격과 품질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br><br></div><pre>5. 더 나은 사회를 위해 10년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봅시다.</pre><div><br>10년 뒤에는 더 나은 세상이 되어있기를 바라기는 하지만 그때도 그렇지 못하다면 난 우선 내가 그 당시로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고 싶다.<br>지금으로부터 10년 뒤에 나는 26살이다. 현재에도 앞으로도 내 꿈은 아동심리 전문가이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유치원 성생님으로 활동을 하다가 아동심리상담사자격증을 취득 후 일을 하면 되는데, 26살 쯤이면 아마 아직 유치원선생님이지 않을까 싶다. 유치원선생님이 아직 돼보지 못해서 잘은 모르지만 나는 유치원 활동 외에 많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 중에 인권문제라던지, 보이지 않는 폭력이라던지, 페미니즘, 성차별이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유치원 선생님이 된다면 아이들의 생각 형성에 있어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수월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이러한 교육을 많이 실시하고 싶고, 이 외에도 사회문제의 방관자가 되지 않기, 참여하는 시민의식 기르기 등의 많은 노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어른이 되면 더 제약이 없어서 내 생각을 좀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되보면 다를수도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직 10년 남은 일에 대해 크게 걱정하기 보다는 현재로서도 이러한 노력을 하도록 하고 항상 지켜보기만 하지 않고 이런 사회문제에 더욱 귀 기울이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참여하도록 하고 싶다. 사실 지금도 내가 할수 있는 선에서 캠페인활동 등의 화동에 참여하고는 있는데 앞으로는 더 열심히 내가 이 사회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더 열정적이려고 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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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11-11 12:41:2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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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내가 댓글 단 칭구들;)</title>
         <author>20193041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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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blockquote><strong>1. 김민지 7차 글쓰기<br>2. 고예림 7차 글쓰기<br>3. 이서영 7차 글쓰기<br>4. 김민경 7차 글쓰기<br>5. 김나경 7차 글쓰기<br>6. 이예원 7차 글쓰기 <br>7. 김태현 5차 글쓰기<br>8. 김민지 6차 글쓰기<br>9. 이예원 6차 글쓰기</strong></blockquote><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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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19-11-11 17:13:0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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