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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선시대 연표 만들기 (2반) by 방은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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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수행평가는 아니지만 교과 세특에 들어가는 활동!
1인당 한 개 이상의 게시물 필수 업로드 할 것.</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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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29 01:2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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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위화도 회군 (1388)</title>
         <author>dmduddl4817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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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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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29 01:2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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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과전법 실시 (1391)</title>
         <author>dmduddl4817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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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경기도 지역 내<br>권문세족의 불법 토지 회수<br>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확립</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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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29 01:2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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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조 즉위</title>
         <author>dmduddl4817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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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4-29 01:20:0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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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종즉위(1400)</title>
         <author>dmduddl4817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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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3 06:54: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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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왕자의 난</title>
         <author>18s220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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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제 1차 왕자의 난(1398)</strong> : 정도전, 중전 강씨의 두 아들(방번, 방석) 피살 -&gt; <em>정종</em> 즉위<br>-<strong>제 2차 왕자의 난(1400)</strong> : 왕위 계승을 둘러싼 왕자들 간의 싸움 -&gt; <em>태종</em> 즉위<br><br>정도전과 이방원은 바라는 세상이 달랐다. <br>왕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옳지 못하다고 생각한 <em>정도전</em>에 비해 <em>이방원</em>은 왕권이 강한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때문에 정도전과 이방원은 함께 할 수 없었다.<br>정도전은 이방원을 비롯한 왕자들의 손발을 묶어 놓기 위해 왕자들은 지방으로 보내자고 건의를 내놓기까지 했다.<br>이를 계기로 이방원은 세자 방석과 정도전을 제거하고자 <strong>왕자의 난</strong>을 일으켰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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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18:4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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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성종 즉위(1469)</title>
         <author>iyunjin08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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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namu.wiki/w/%EC%A1%B0%EC%84%A0">조선</a>의 제9대 <a href="https://namu.wiki/w/%EA%B5%AD%EC%99%95">국왕</a>. <a href="https://namu.wiki/w/%EC%84%B8%EC%A1%B0(%EC%A1%B0%EC%84%A0)">세조</a>의 적차손이자 <a href="https://namu.wiki/w/%EC%97%B0%EC%82%B0%EA%B5%B0">연산군</a>과 <a href="https://namu.wiki/w/%EC%A4%91%EC%A2%85(%EC%A1%B0%EC%84%A0)">중종</a>의 아버지이며 <a href="https://namu.wiki/w/%EC%9D%B8%EC%A2%85(%EC%A1%B0%EC%84%A0)">인종</a>과 <a href="https://namu.wiki/w/%EB%AA%85%EC%A2%85(%EC%A1%B0%EC%84%A0)">명종</a>의 할아버지이다. <a href="https://namu.wiki/w/%EB%AC%98%ED%98%B8">묘호</a>는 <strong>성종</strong>(成宗), <a href="https://namu.wiki/w/%EC%8B%9C%ED%98%B8">시호</a>는 강정인문헌무흠성공효대왕(康靖仁文憲武欽聖恭孝大王), 휘는 혈(娎)이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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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18: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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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경제육전&gt; 편찬</title>
         <author>18s220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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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nbsp;1388년부터 1397년 까지 10년간 영의정 조준의 책임 하에 편찬, 반포된 <strong>최초의 공적인 법제서</strong>이다. 시행된 법령과 장차 시행할 법령을 수집하여 편집하였다. 오늘날 원문이 전해지지 않아 체재와 내용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조선왕족실록에 간접적으로 기록된 바에 의해 유추하면 육전과 각 전마다 강목을 나누어 편찬 되었다고 유추된다.<br><br>건국 초에 갑작스럽게 편찬되어 법조문이 추상화, 일반화되어 있지 않고 임 공포된 원문의 형태 그대로 실려 있다. 이러 인해 법전의 문장 형태는 한자와 이두 및 방언이 혼용되어 사용되었다. 경제육전은 조선 초기<strong> 태조의 법치주의 이념</strong>이 담긴 것으로 절대적인 가치가 부여되었다. 태종 때 수정된 이후로는 원래의 것을 ‘이두원육전’ 또는 ‘방언육전’이라 불렸다. 또한 성종 때 &lt;경국대전&gt;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법전의 초석이 되었으며 편찬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조선왕조 법치국가의 기틀을 제공한 법전이다.<br>[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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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19:1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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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조선 경국전&gt; 편찬</title>
         <author>18s220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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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조선경국전</strong>』은 국가의 운영을 위해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이 관직 체제를 비롯해 국가를 통치 하는 데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해 놓은 법전이다. 건국 직후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유교적 통치 규범을 종합적으로 제시하였다. <br>『<strong>조선경국전</strong>』은 정도전의 개인 문집인 『삼봉집』에도 수록되어 있으며&nbsp; 『경국육』이라는 별도의 제목으로 남아 있다.<br><br>출처: 우리역사넷, 중보일보</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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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1: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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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공, 책봉 관계의 성립</title>
         <author>18s22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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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태종은 즉위 이후 1401년에 건문제로부터 국왕으로 책봉 받는 고명과 인신을 받았으며, 영락제가 건문제를 몰아낸 후에는 영락제로부터 다시 책봉을 받았다. 이후 조선과 명 사이에 거주하는 여진인의 귀속 문제를 두고 문제가 발생한 적도 있었고, 또한 조공 문제에서 처녀,환관,말,소 등에 대한 무리한 명의 요구가 있기도 하였으나, 서적, 약재, 역서 등의 선진 문물을 수입하고 나라의 기강을 튼튼히 하는 명분을 얻었다. 이로써 조선과 명은 조공-책봉의 안정적인 체제를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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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1: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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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도전</title>
         <author>18s220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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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정도전 </strong>[1342~1398] 은 고려 말, 조선 초의 유학자, 신진사대부이다. 그는 고려 말기의 개혁 세력의 중심으로써 권문세족의 부패 정치를 비판하며 새로운 국가의 건설을 주장한 급진파로 성리학 이념에 기초한 조선 왕조의 성립에 큰 공헌을 하였다.&nbsp;<br><br></div><div><strong>업적 :&nbsp;<br></strong><br></div><div>-&nbsp; &nbsp; &nbsp; &lt;불씨잡변&gt;을 편찬해 불교를 억압하도록 함.<br><br></div><div>-&nbsp; &nbsp; &nbsp; 새로운 왕조의 방향을 제시하는 17조의 &lt;편민사목&gt;을 지어 반포함.<br><br></div><div>-&nbsp; &nbsp; &nbsp; 한양으로 수도를 옮길 당시 궁궐과 종묘의 위치를 정하고, 이름을 지음.&nbsp;<br><br></div><div>-&nbsp; &nbsp; &nbsp; &lt;조선경국전&gt;과 &lt;경제문감&gt;, &lt;경제문감별집&gt; 등의 책을 편찬해 나라의 모든 제도와 문물을 제정함.<br><br></div><div>이와 같이 그는 조선의 개국을 주도한 일등 공신으로써 행정, 경제, 군사 등 대부분을 총괄하는 막강한 권력을 쥐고, 문물 제도의 정비, 민본적 통치의 규범 마련, 재상 중심의 통치 주장 등 개혁 이후에도 상당히 앞서간 의식을 바탕으로 정책을 총괄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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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1:3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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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종의 가계도</title>
         <author>18s22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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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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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1:4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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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호패법 실시</title>
         <author>18s2201</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02529</link>
         <description><![CDATA[<div>조선시대에 신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16세이상의 남자에게 주어졌던 <a href="https://namu.wiki/w/%ED%98%B8%ED%8C%A8">호패</a>를 가지게 하고 다니게 했던 제도이다. 호패는 일종의 민증으로 왕권의 강화를 위해 태종 때 처음 시행하였다가 한동안 폐지하고 세조 때 다시 부활하였다. 그 후로도 폐지와 부활을 반복하다가 숙종 대 이후에야 정착되었다.<br>호패법의 독특한 점은 호패를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양반과 노비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했다는 것이다. 이는 호패법이 왕권강화의 목적도 있었지만, 신분 사칭의 방지와 인구수 조사, 마을의 가구와 인구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에 있어서였다. 호패로 인해서 조세를 거둬들이기 쉬워졌다는게 주된 장점이다. 하지만 백성들은 국방의 의무를 무조건적으로 져야만 했다. 천민, 즉 노비들은 군역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당시 먹고살기 힘들었던 상인과 중인 등이 천민의 호패로 위조하는 등의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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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2:1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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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종 즉위(1418년)</title>
         <author>18s220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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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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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2:4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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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조 즉위(1455)</title>
         <author>18s22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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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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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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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경국대전 완성</title>
         <author>18s2213</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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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경국대전은 조선 시대의 기본 법전이다.<br>성종 때 완성 및 반포되었으며, 조선의 법률과 통치 체제의 골격이 되었다. <br>경국대전을 완성시킴으로써 조선 사회의 성문법적 질서를 확립했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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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2:4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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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조오례의 편찬</title>
         <author>18s221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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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 전기 신숙주, 정척 등이 왕명을 받아 오례의 예법과 절차 등을 그림을 곁들여 편찬한 책이다. 사실은 세종실록과 동시에 편찬이 시작되었으나, 성종 때인 1474년 최종적으로 완성되었다.&nbsp;<br>오례는 각 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 다섯 가지 예의 종류와 그에 합당한 의식을 적어놓은 것이다.&nbsp;<br>1744년 영조 때는 이를 보완하여 이종성과 윤광소에게 [속오례의] 를 편찬하게 되었다. <br><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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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3:0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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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관제 개혁 실시</title>
         <author>18s222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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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사병을 혁파하고 문하부 폐지, 의정부를 설치함. 또한, 낭사를 사간원으로 분립시키고, 삼사는 사평부로 개칭함, 삼군도총제부 신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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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3: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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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홍문관 설치</title>
         <author>18s2204</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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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홍문관은 1463년 양성지의 건의에 따라 오늘날의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하였던 장서각을 홍문관이라고 칭한 데서 출발하였다. 이때는 서적의 보관과 관리 등을 주로 담당하였다. 이후 1478년 확대 개편되면서부터 홍문관은 학술⋅언론 기관으로서 자리 잡았다.<br>성종은 대간의 언론 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한편 성종대 중엽부터는 홍문관의 언론 기능도 강화하였다. 1488년 성종은 대간과 함께 홍문관에서도 다른 관청이나 관원의 업무를 지적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따라 홍문관은 초기에는 대간에서 제기한 문제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언론 활동을 전개하다가, 차차 대간들이 제기하지 않은 문제들도 제기하거나 대간의 언론 태만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이런 과정을 거쳐 점차 홍문관은 언론 기관으로 인정받게 되었다.</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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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4:0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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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의정부 서사제</title>
         <author>18s2205</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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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6조 직계제: 왕&lt;-&gt;6조</div><div>의정부 서사제: 왕&lt;-&gt;의정부&lt;-&gt;6조</div><div><br>1436년 세종은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명하면서 교서를 내리는데, 이를 통해 조선의 국정 운영이 6조 직계제에서 의정부 서사제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세종은 재위 전반기에 6조 직계제를 실시하다가, 집현전을 통해 사대부의 지위가 높아지자 의정부의 권환을 강화하였다.&nbsp;<br>의정부 서사제란 6조에서 의정부에 보고를 하면 의정부에서 왕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6조가 직접 왕에게 국정운영에 관해 보고하는 방식인 6조 직계제에 비해 의정부의 권한이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nbsp;</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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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4:2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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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절대음감인 세조 </title>
         <author>18s2219</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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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세조는 절대음감의 소유자였다.&nbsp;<br>&nbsp;10월의 어느 날 밤에 어디선가 들려온 휘파람 소리 같은 소(嘯) 소리가 바람결에 들렸을 때, 세조는 "청협종(淸夾鍾) 음이다"라고 음높이를 정확하게 맞추었다. 또한 거문고와 가야금 연주에 능통했다. 『세조실록』은 "세조가 또 일찍이 젓대[적(笛)]를 부니 자리에 있던 모든 종친(宗親)들이 감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고 총론하였다. 세종대왕이 "악(樂)을 아는 자는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진평대군 뿐이다. 이는 전후(前後)에도 있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평가를 할 정도이다.&nbsp;</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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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5:4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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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계유정난(1453)</title>
         <author>18s221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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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1453년 수양 대군(후에 세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이 되는 사건이다. 세종의 큰아들 문종은 병약하여 단명하고 문종의 어린 아들 단종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수양 대군은 김종서 등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동생인 안평 대군도 죽인 뒤 단종을 영월로 귀양 보낸 후 사약을 내려 죽이고 왕이 되었다.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등을 처형하고 정난에 공이 큰 한명회, 신숙주, 권람, 홍달손 등을 공신에 책봉하였다.</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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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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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6조 직계제</title>
         <author>18s2211</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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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기존의 의정부 서사제와는 달리 실무기관인 6조의 판서들이 국왕에게 직접 보고를 올리고 정책을 결정할 수 있게 한 제도이다.&nbsp;<br><br>의정부 서사제: 의정부 3정승을 통해서 왕에게 모든 보고가 올라가고 왕 또한 정책 결정 사항을 의정부에 우선 재가하여야 하므로 정승들에게 권력이 집중<br>6조 직계제: 왕에게 그 정책에 대한 보고가 바로 올라가고 실무기관에게 직접 왕명이 내려지므로, 정승 집단은 자문 기관 수준으로 신권이 떨어지고 왕권이 크게 강화</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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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29: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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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종 집현전 설치</title>
         <author>18s2209</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10817</link>
         <description><![CDATA[<div>&nbsp;본래 당현종 때 완비된 기관으로서 이곳에 학사를 두어 간행과 서적의 수집 등을 맡아 보게 한 장소이다.&nbsp;<br><br>1420년 세종 때 확대 및 개편되어, 이전까지는&nbsp; 관청도 없고 직무도 없었으나, 세종 즉위 이후 이때부터 청사를 가지고, 경전과 역사의 강론과 임금의 자문을 담당하였다.&nbsp;<br><br>또한 세종은 집현전 설치를 함으로서 학문 연구와 함께 자신을 도울 정치 세력을 육성한 것이다. 세종은 나이 어린 학자들을 집현전의 관리로 직접 박탈하였다.&nbsp;<br><br>이들은 세종의 측근으로 정치의 기반이 되었고, 집현전 학자들에 대한 세종의 배려는 지극했다고 알려졌다. 집현전의 최대 업적은 훈민정음 창조이다. 이후 세조가 즉위하면서 집현전은 완전히 폐지되었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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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0:1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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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태종 (재위 1400~1418)</title>
         <author>18s2208</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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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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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0: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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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四郡六鎭 4군 6진 (1437)</title>
         <author>18s220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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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새로운</strong> <strong>사상과</strong> <strong>신기술의</strong> <strong>통로였던</strong> <strong>중국의</strong> <strong>명나라와의</strong> <strong>교류정책을</strong> <strong>적극</strong> <strong>펼치고</strong>(<strong>事大交隣</strong>)<strong>, 일본과 여진족에 대해서는 교린정책을 실시하였다. 바다를</strong> <strong>건너와</strong> <strong>백성을</strong> <strong>괴롭히는</strong> <strong>왜구를</strong> <strong>응징하여</strong> <strong>이종무가</strong> <strong>대마도를</strong> <strong>정벌하는 국외정책을 펼쳤다. 북방으로는</strong> <strong>압록강</strong> <strong>상류지역으로</strong> <strong>최윤덕이</strong> 4<strong>군(四郡)을 설치하고,</strong> <strong>함경도에</strong> 6<strong>진(六鎭)을</strong> <strong>개척하여</strong> <strong>압록강과</strong> <strong>두만강을</strong> <strong>경계로</strong> <strong>하는</strong> <strong>우리나라의</strong> <strong>국경을</strong> <strong>확정시켰다. 4군 6진이 개척되면서 조선의 영토가 압록강에서 두만강 이남으로 확장 되었으며 현대 한국의 북방국경선이 확립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니고 있다. 국제외교와</strong> <strong>국내</strong> <strong>내부소통의</strong> <strong>중요성을</strong> <strong>보여준</strong> <strong>두</strong> <strong>번의</strong> <strong>대외정벌을</strong> <strong>통해</strong> <strong>세종은</strong> ‘<strong>진정한</strong> <strong>정치</strong>’<strong>의</strong> <strong>면모를</strong> <strong>보여주었다</strong>. <strong><br><br>// 4군: </strong>여연군(閭延郡), 자성군(慈城郡), 무창군(茂昌郡), 우예군(虞芮郡)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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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5:2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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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삼강행실도 </title>
         <author>18s2205</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17018</link>
         <description><![CDATA[<div>1434년에 유교 덕목인 삼강에 모범이 될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실을 모아 편찬한 언행록이다.&nbsp;</div><div>1428년 진주에서 부친 살해 사건이 일어나 이를 계기로 조선과 중국에서 효행을 알릴 수 있는 이야기를 선정해 담은 삼강행실도를 백성들에게 배포하였다.&nbsp;</div><div>삼강행실도 이후 이륜행실도, 오륜행실도 역시 유교 덕목을 백성들에게 가르치기 위해 편찬되었다.&nbsp;</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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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5:4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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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종묘사직 건립</title>
         <author>18s2202</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18675</link>
         <description><![CDATA[<div>종묘는 유교적 예법에 따라 역대왕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왕실의사당이며 사직단은 토지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에게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br>태조 이성계는 경복궁의 동쪽에 종묘를 왼쪽에 사직단을 세워 조선이 유교의 국가이며 동시에 백성들을 위한 국가임을 명확히 하였다.<br>당시 농경 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성의 대부분이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사직을 중히 여기는 것은 곧 백성을 중히 여겼던 것이라 볼 수 있다.<br><br>출처: 우리역사넷</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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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7:0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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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예종 전위 (1468년 9월)</title>
         <author>18s2217</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19027</link>
         <description><![CDATA[<div><br>세조는 피부에 고름이 생기다가 나병으로 이어졌다. 세조가 나병에 걸리게 된 원인은 조선왕조실록에는 기록이 나타나지 않지만, 전설에 의하면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의 원혼이 세조의 꿈에 나타나 내 아들을 죽인 원수라며 침을 뱉은 이후로 병증이 심해졌다 한다. 이후 1468년 9월에 병이 심해지며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왕세자에게 전위한 후 그 이튿날에 작고하였다. 이로써 세조가 왕권 안정에 얼마나 집중하였는지 알 수 있다.<br><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세조(世祖))]</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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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37:27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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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나라의 기틀을 잡다</title>
         <author>18s2201</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24667</link>
         <description><![CDATA[<div>왕이 된 태종이 맨 먼저 한 일은 왕의 힘을 키우고 나라의 기틀을 튼튼히 다지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크고 작은 나랏일을 <strong>6조로부터 보고받아 </strong>자신이 직접 처리하여, 몇몇 신하들이 힘을 키우는 것을 막았다. 또 전국을 8도로 나누고, 왕의 명령에 따라 백성들을 다스릴 <strong>'수령'을 모든 군현에 보냈다.</strong></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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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2: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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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6조 직계제</title>
         <author>18s2208</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25633</link>
         <description><![CDATA[<div><br><em>국정에 관해 '6조'의 장관인 판서가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왕에게 보고하여 업무를 처리하도록 한 제도</em></div><div><br>-조선의 최고위 행정 기구: 의정부(국정 전반의 모든 업무에 대해 국왕과 함께 논의하는 기구) &amp; 6조(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행정관서)<br><br>-의의: 국정 운영에서 국왕의 역할을 강화시킴 (<strong>왕권 강화</strong>)</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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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3:0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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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한양천도</title>
         <author>18s221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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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조선을 건국하며 개경에서&nbsp;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했다. 유학이념을 바탕으로 건국된 조선이었기 떄문에 한양에도 유교이념에 따라 중요한 장소들이 배치되었다. 유교이념에 따르면 한나라 안에는 종묘 사직 궁궐이 있어야하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곳은 왕의 조상을 모시는 공간인 종묘였다. 1392년 종묘가 완성되었다. 종묘에는 이성계의 4대조가 모셔져 있었다. 하지만 이는 임진왜란 당시 불에 타 현재의 종묘와는 다르다고 한다. </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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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3:5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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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함흥차사</title>
         <author>18s2220</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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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398년 <em>태조</em>의 아들 중에 이방원은 세자인 이방석을 보필하고 있던 정도전·남은(南誾) 등이 자신을 비롯한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을 제거하려 한다는 이유로 사병을 동원해, 그들을 살해했다. 곧이어 이방석·이방번(李芳蕃)마저 죽여 후환을 없앴다. 새 세자는 이방원의 요청에 의해 이방과(李芳果)로 결정했다.</div><div><em>태조</em>는 이방석·이방번 형제가 무참히 죽자 몹시 상심했다. 그는 곧 왕위를 이방과에게 물려주고 상왕(上王)이 되었다. 1400년(정종 2)에 이방원이 세자로 책봉되었다. 곧이어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정종은 상왕이 되고, <em>태조</em>는 태상왕(太上王)이 되었다.</div><div><br>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된 태종에 대한 반감이 컸던 태조는 태종의 즉위 이후 함흥으로 내려가 버렸다. 태종은 태조를 다시 궁으로 복귀시키고자 함흥으로 사람을 계속 보냈으나, 이들은 모두 이성계의 활에 맞아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이후로 이처럼 사라져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함흥차사라고 일컫게 되었다.&nbsp;<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태조(太祖))]&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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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4:0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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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파저강야인정벌 (1433)</title>
         <author>18s220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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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strong>파저강</strong> <strong>일대에</strong> <strong>걸쳐</strong> <strong>사는</strong> <strong>여진인들은</strong> <strong>원말명초의</strong> <strong>혼란기를</strong> <strong>이용해</strong> <strong>조선의</strong> <strong>강계</strong>,<strong>여연</strong> <strong>등지를</strong> <strong>자주</strong> <strong>침입해</strong> <strong>인구</strong>,<strong>우마</strong>,<strong>재산등을</strong> <strong>살상하고</strong> <strong>약탈하였다</strong>.</div><div><strong>이에</strong> <strong>세종은</strong> <strong>정벌군의</strong> <strong>총사령관에</strong> <strong>평안도절제사</strong> <strong>최윤덕을</strong> <strong>임명하고</strong> <strong>평안도의</strong> <strong>마보정군</strong> 1<strong>만명과</strong> <strong>황해도</strong> <strong>군마</strong> 5,000<strong>필을징발해</strong> <strong>총</strong> 2<strong>만명의</strong> <strong>군대를</strong> 1433<strong>년</strong> 4<strong>월</strong> 10<strong>일</strong> <strong>강계부에서</strong> <strong>정벌을</strong> <strong>단행하였다</strong>.<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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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4:5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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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집현전 폐지 (1460년)</title>
         <author>18s2217</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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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1460년(세조 6년) 음력 5월 22일에는 이조에서 사관 선임 규정을 강화하고, 경연·집현전·보문각 등은 직함이 비고 직임이 없으니 혁파하기를 청하였으므로 윤허하였다. 이로써 집현전은 완전히 폐하게 되었다.<br>이로써 신권과 왕실 연구기관의 권력이 낮아지게 되었다.<br><br>경연: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하는 일.<br>보문각: 집현전 조선 전기 학문 연구를 위해 궁중에 설치한 기관.<br><br>[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집현전(集賢殿))]&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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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45:19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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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lt;국호 &#39;조선&#39; 제정&gt;</title>
         <author>18s2212</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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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이성계는 왕위에 오른 직후 국정에 대한 강령 17개조를 발표하는 등 건국 후의 제반 조처를 강구하는데 이 중에 가장 시급한 현안이 국호를 개정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성계는 중추원사 조림을 명예 파견하여 신정권의 수립을 알리는 한편 국호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전했다.<br>&nbsp;명으로부터 국호 개정이 승인되자 이성계는 원로들과 백관을 한자리에 모아 국호를 의논하도록 했으며, 그 결과 '조선'과 '화령' 이라는 두 명칭이 정해졌다.&nbsp;<br>이 처럼 두 이름이 결정되자 이성계는 1392년 11월 예문관학사한상질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하여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하나를 국호로 택해줄 것을 청하였다. 이때 주문사로 중국에 파견된 한상질은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려 공신이 된 한명희의 조부였다, 그는 국호 개정의 논의가 있자 주문사를 자청하여 1392년 7월 명나라로 떠나 이듬해 2월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결정받고 돌아왔다.&nbsp;</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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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52: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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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세종의 업적(2개)</title>
         <author>18s2216</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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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div>훈민정음<br>중국의 한문과 우리말과 서로 통하지 않아 일반 백성은 배우기 어려웠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세종은 백성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문자를 만들고자 훈민정음을 창제하게 되었다. 최만리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나 하는 것’ 이라며 비판하였다. 이러한 주장을 물리치고 세종은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br><br>측우기<br>우리나라 기후는 봄 가뭄이 심해서 과거에는 강우량이 한 해의 풍흉을 결정하였다. 정확한 강수량을 측정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측우기가 만들어졌다. 세종은 장영실을 시켜 측우기를 제작 하도록 하였다. 측우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각 지방의 강우량을 알기가 매우 불편했다. 비가 내리기 전까지 빗물이 스며들었는지 일일이 조사했는데, 지방마다 흙의 마르고 젖은 정도가 같지 않아강우량을 정확하게 알아내기 없었다. 그런데 측우기 발명후에는 일정기간 동안 측우기 속에 고인 빗물이 깊이를 측정하면 되었으므로 훨씬 정확하게 강우량 측정할 수 있었다.<br><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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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52:5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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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려의 성종VS 조선의 성종</title>
         <author>iyunjin080</author>
         <link>https://padlet.com/dmduddl48171/1jb19o21krqqxgdd/wish/2186942132</link>
         <description><![CDATA[<div>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고려의 성종과도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우선 아버지가 왕이 아니었으며 위에 형을 둔 상태로 왕위에 올랐고 사후에 받은 묘호도 둘다 성종으로 똑같았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정책을 펼쳐 나라의 기틀을 잡았다는 공통점도 있으며 사망했을 당시의 나이도 38세로 같은데 심지어 사후에 나라 꼴이 막장이 되었다는 것도 같았다.<br>맹꽁이 서당이라는 만화에서도 이를 가리켜 신묘한 우연의 일치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조선 성종은 조선을 건국하는데 1등 공신인 신진사대부들에게 족쇄를 채우던 제도들을 숱하게 남긴데 반해 고려 성종은 장원이라는 대토지제인 공음전을 가속화시켰고 부곡민 체제를 허물지 않으면서 역으로 노비환천법을 실행에 옮기며 문벌귀족, 호족 등 기득권 지배층에게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고려 성종은 광종이 없앤 장원을 도로 부활시킨데 반해 조선 성종은 공음전보다 더 개혁적인 과전법을 거쳐 직전법을 시행하여 장원을 아예 없앴다는 점에서도 서로 차이가 있다.</div><div><br></div>]]></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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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2-05-17 04:56:26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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