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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24. 스위치 오픈마이크 #3.세계시민교육과 사회정의 by Hwaseon Kim</title>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link>
      <description>(24.06.25) 스위치 세 번째 오픈마이크 &#39;세계시민교육과 사회 정의&#39;입니다. 마이클 샌델의 &#39;공정하다는 착각&#39;을 읽고, 공정에 대한 생각을 나눠봅시다.</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4-06-11 07:14:42 UTC</pubDate>
      <lastBuildDate>2024-06-27 04:06:09 UTC</lastBuild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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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0. 내가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란?</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24270259</link>
         <description><![CDATA[<p>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각자가 생각하는 '공정'과 '정의'에 대한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definition이 아닌 경험이나 고민을 바탕으로 한 이미지나 어떤 지향점을 말씀해주셔도 좋아요.</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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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1 07:20:0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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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24277589</link>
         <description><![CDATA[<p>내용 정리:</p><ul><li><p>시작과 끝의 키워드 ‘민주주의' : 지금의 민주주의 시대가 맞이한 위기 &gt; 극복을 위해 도덕적으로 보다 건실한 정치 담론을 찾아야 (how? 사회적 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능력주의를 재검토함으로써)&nbsp;</p></li><li><p>주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능력주의'에 관한 고찰</p></li><li><p>기술관료적 능력주의: 과거에도 전통적인 의미의 능력주의가 있었으나 지금의 능력주의는 neoliberalism과 맞물려 시장메커니즘을 기반으로 함</p></li><li><p>정치는 전문가에게: 경제적인 효율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분야의 능력있는 전문가(경제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에게 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입장 vs 과거 전통적인 능력주의에서는 그래도 정치인의 역량 안에 통치에 적합한 도덕적 시민적 미덕을 포함했으나 현대 사회에서는 빠져있음</p></li><li><p>부작용: 이 과정에서 공동체의 안녕, 사회의 공공선,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도덕적 가치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고, 능력이 있는 사회 구성원과 상대적으로 없는 구성원 사이의 빈부격차 및 불평등이 심화됨</p></li><li><p>고민해보아야 할 문제: 어느 시대에나 계급과 그로 인한 격차, 불평등은 존재했지만, 지금의 능력주의 사회는 표면적으로 ‘기회균등'이 가능하다고 말함. 누구에게나 ‘성공'으로의 기회가 균등하기 때문에 계습 상승이 가능한 것 처럼 보여서, 성공과 실패 모두 개인이 능력과 노력에 기반한 것으로 여기게 됨. 이는 ‘사회구조적 계급격차와 고착화'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계급 간 심리적 도덕적 갈등을 야기함.&nbsp;</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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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1 07:26:1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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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24278445</link>
         <description><![CDATA[<p>해석과 의견: </p><ul><li><p>사회 공동체 구조를 구성하는데 가장 중심에 자본이 있다는 것을 발견</p></li><li><p>그러나 이 자본은 단순히 많은 돈을 넘어 학력, 능력, 사회적 자본 등과 연결되어 있음</p></li><li><p>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능력만으로 획득할 수 없는 경우가 크므로 이는 ‘기회 균등’에 모순이 있음을 나타냄</p></li><li><p>계급 간 구성원들 사이의 무시와 조롱, 우월과 박탈감 등을 해소하고 공동체의 협력을 위해서는 그럼 무엇이 더 필요할까? 직업에 대한 존중? 진정한 의미의 기회 균등을 조력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지원과 복지?&nbsp;</p></li><li><p>그치만.. 기득권은 균등을 원하지 않는데.. 그나마 그들을 설득해서 혹은 위협? 견제?해서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를 만들려면(만들 수 있다면) 공교육 안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nbsp;</p></li><li><p>심지어 내가 정말 원하는 공공선은 어떤 모습일까? 경제적 자본만을 두고 이야기 한다고 했을 때 불평등의 심화를 원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 체제를 원하는 것도 아닐 때&nbsp;</p></li><li><p>우리는 어느 지점을 이상적이고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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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1 07:27:01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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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Q0.  배현명</title>
         <author>bhmo231</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29321384</link>
         <description><![CDATA[<p>거의 10년 전에 6학년 학생들과 재밌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p><p><br/></p><p>교실 맨 앞 중앙에 골대를 놓고, 학생들이 각자 앉은 자리에서 10개의 둥글게 구긴 신문지를 던져 넣도록 한 뒤, 일정 시간 후에 득점을 확인하는 실험이었어요. 실험이 시작되자 몇몇 뒷자리 아이들은 골대가 너무 멀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도 했던 것 같고요. </p><p>주어진 시간이 끝난 후, 칠판에 자리 배치도를 그리고 득점을 수치화했어요. 당연히 내가 앉은 자리가 골대와 가까울수록 득점률이 높은 경향의 결과가 나왔구요.</p><p>실험 과정에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이들과 깊이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각자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룰을 수정할 수 있는지도 물었고요.</p><p>흥미로웠던 점은, 맨 뒤에 있는 친구들은 에라 모르겠다, 자포자기하며 장난을 치더라는 것입니다(말하자면, 이번 생은 글렀다, 같은?).  오히려 중간쯤 있는 아이들이 골을 넣지 못해 안달이 난다고 했어요. (실험결과를 적어놓은 것이 어디 있지 싶은데 찾아볼게요.) </p><p>이 실험은 아이들과 공정함과 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했던 제 나름의 창의적인 노력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도덕적 일화로 접근하는 것 보다,  즉각적이면서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가시화가 일어나서 의미가 있었던 것 같고요. </p><p><br/></p><p>공정함의 정의가 이론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해하는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공정함이란 특정 맥락 안에서 현상적으로 추구할 수 있을 뿐인 것 같아요. 명사라기보다는 동사에 가까운 것이죠. 절대적 공정은 없지만, 보다 공정함에 가까워지는 노력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p><p><br/></p><p>워크샵을 통해 어떻게 학교에서, 그리고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자리에서 공정과 정의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 좋은 주제 던져주신 김화선 선생님께 감사드려요 :)</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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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17 00:35:5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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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2993824</link>
         <description><![CDATA[<blockquote><p> '자기 책임의 담론과 사회적 상승의 담론은 이처럼 공통 요소가 있다. 둘 다 자립과 자수성가의 이상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자기 책임이란 복지를 기피하고 일자리를 갖는 것이었다. 기회란 '교육'과 '훈련'을 받아 노동시장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었다.'  - 114p </p></blockquote><p><br/></p><p>의견과 질문</p><ul><li><p>그래서 '기회의 균등'이라는 전제 속에 '교육'은 너무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됨</p></li><li><p>교육이 개인의 성공과 신분 상상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전제를 우리(공교육의 일부로서 기능하는)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p></li><li><p>국가와 이념이 만들어 놓은 (공)교육의 역할이 있겠지만, 나는 개인으로서의 신념과 철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 일을 하고 있기도 한데</p></li><li><p>능력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교육의 의미'를 재정의 해야 하는가? 혹은 능력주의 전제 아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 교육을 바라보며 그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는가?</p></li><li><p>자유시장경제 체제 안에 살고 있는 내가 가르치는 제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함'과 '정의'는 무엇일까? 동시에 나의 신념을 위해 지금의 체제 안에서 무엇을 비판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p></li></ul><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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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0 04:14:0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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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3000492</link>
         <description><![CDATA[<p>오바마가 외치던 평등의 의미란 무엇일까?</p><p>흑인 대통령으로서 오바마가 지향했던 사회적 이상향은 무엇이었을까?</p><p><br/></p><ul><li><p>오바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보자면 능력주의는 오히려 불평등을 타파하려는 것처럼 보임</p></li><li><p>어쩌면 오랜 역사가 보여주듯 한 사회에서 계급과 계층, 그로 인한 불평등이 사라질 수 없는 것이라면 태어나면서 주어지는 신분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라도 얻을 수 있는 성공으로서의 사회적 상승이 더 나은 것 아닐까?(물론 완벽한 기회 균등의 전제가 없다하더라도) </p></li><li><p>다만, 성공자의 우월의식과 패배자의 무력감을 줄여 계층 간 갈등을 감소시키는 방식으로</p></li><li><p>능력주의에서는 소위 패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냉소적인 모습이 강한데, 복지와 사회 안전망과의 균형을 만들어 그들을 구제할 수는 없는 걸까? </p></li><li><p>능력주의의 부작용이 너무나 많지만, 그렇다고 이전의 신분제 사회가 불평등의 측면으로 봤을 때 더 선하고 공정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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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0 04:21:15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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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3012167</link>
         <description><![CDATA[<p>기독교인으로서 바라본 기독교와 능력주의의 관계</p><p><br/></p><ul><li><p>개인적으로 기독교의 역사와 종교를 해석하는 종파들 사이의 다양한 관점을 살펴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던 챕터</p></li><li><p>성경에서 추구하는 가치는 능력주의 혹은 경쟁과 번영과는 많은 부분 반대되는 모습을 띄는데, 능력주의의 출발점에 기독교(칼뱅주의와 청교도)가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고 혼란스러움</p></li><li><p>칼뱅주의적 관념, 청교도의 직업윤리 부분을 읽으며 불편하기도 했고, 내 신앙의 모습은 이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마저도 인간의 한끗 오만함으로 인해 달라질 수 있겠다 싶어짐</p></li><li><p>교사라는 직업에 신앙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입장으로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시다면 이야기를 좀 더 나눠보고 싶음</p></li><li><p>기독교인으로서 번영신앙, 번영주의를 굉장히 비판적으로 바라보는데, 이와 같은 번영의 복음을 전파하는 미국의 대형 교회에 100만명이 넘는 교인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으면서도 놀라움 </p></li><li><p>그리고 이러한 번영 신앙의 믿음이 '미국은 선하다. 미국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 미국은 위대하다.'라고 까지 연결된 것에 대해 안타깝고 두려운 마음을 갖게 됨</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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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0 04:31: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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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4286616</link>
         <description><![CDATA[<p>경제적 빈곤과 동반되어 오는 다양하고 다면적인 영역의 빈곤이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p><p>비판적 교육학을 바탕으로 (이미 내가 속해 있다 하더라도) 공동체의 헤게모니가 누구에게 주어져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누구의 지식을 배우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그러한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질문을 제시하고, 함께 이야기해주는 것. 구조에 권력에 부딪히더라도 목소리를 내는 것.</p><p><br/></p><ul><li><p>빈곤에 대한 고민</p></li></ul><p>빈곤 문제에 있어서 가장 답답하다고 느끼는 지점은, 빈곤에 대한 논의가 너무 자주 빈곤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빈곤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빈곤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주로 이야기하게 됩니다. 중요한 모든 디테일이 소거된 채로 탁상공론을 하게 되기 쉽다는 이야기입니다.</p><p><br/></p><p>빈곤한 사람들이 빈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경제적 빈곤이 다른 빈곤과 너무나 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돈이 없으면 쉽게 건강을 잃게 되고 안정적인 가정 환경을 잃게 되기도 쉽죠. 또한 정보의 부족, 교육의 부족, 주거의 부족, 사회적 자본의 부족... 빈곤은 경제적 차원 뿐 아니라 너무나 다양한 차원의 빈곤과 연결되어 있고 이것은 악순환을 일으켜 빈곤을 심화시킵니다. 이런 구체적인 사실들은 빈곤을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상상하기 매우 어렵습니다.</p><p><br/></p><p>복지제도가 이렇게 잘 되어 있는데 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냐고 물으신다면...</p><p>복지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모르기 때문이고</p><p>누군가 나를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고</p><p>주민센터가 문을 여는 시간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기 때문이고</p><p>복지제도를 쓰려면 내 명의이 통장이 있어야 하는데 압류된 상태이거나 신용불량자거나 혹은 이 문제를 해결할 때 사용할 인터넷이, 컴퓨터가 없어서 등.. 다양한 상황이 제게는 떠오르네요.</p><p><br/></p><p>빈곤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의 박탈 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빈곤은 인간이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매우 다양하고 다면적인 방식으로 제한합니다. 그중 하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는 것이기도 합니다. 교육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 당하면 빈곤에 대한 구조적인 측면을 바라보기 어려워지죠. </p><p>이는 빈곤한 자가 "빈곤은 개인의 책임이다. 곧 내 책임이다. 내가 무능력해서다" 라는 관점을 스스로 내면화 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p><p><br/></p><ul><li><p>빈곤의 현실과 관련된 추천 서적: 1인칭 가난 (안온)</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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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1 06:05: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4286616</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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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6354823</link>
         <description><![CDATA[<p>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p><p><br/></p><blockquote><p>최고의 인재들: 오바마는 2000년대 초에 전문직업인들의 상식이 되어버린 이런 능력주의적 사고의 기수나 다름없었다. 조너선 알터의 글에서처럼 "언젠가부터 오바마는 최고 지위의 전문 직업인들은 공정한 '선별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빠져버렸다. 그 선별 과정은 그와 미셸이 아이비리그에 진학하도록 해준 과정이기도 하기에, 이는 곧 그런 과정을 거친 사람들의 높은 지위를 정당화해주는 것이었다." -p.151</p></blockquote><p><br/></p><ul><li><p>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서 오바마가 가진 신화적 이미지는 흑인과 유색인종들에게 희망적인듯 보였다. 미국 사회 내 만연한 유색인종에 대한 시스템적, 인식적, 문화적 편견과 불평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많은 이들이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오바마 그 자신도 능력주의 사회에서 성공을 거머쥔 인재였기에 단지 피부색이 같다는 이유 만으로 (억압받는) 유색 인종을 대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그래서 어쩌면 그들이 마주한 인종, 계급, 집단과 관련된 구조적 차별을 타파하는 결과의 평등 보다는 교육을 통한 기회의 평등을 강조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바마는 기존의 백인 대통령과 미국 시민들에게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피부색만 검은 well-educated elite. </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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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4 11:23:4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6354823</gu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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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6369955</link>
         <description><![CDATA[<p>그래서 샌델은 능력주의의 대안으로 무엇을 이야기 할까 궁금했는데</p><p><br/></p><ul><li><p>고등학교 때 배운 롤스의 정의론 ;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가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사회가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을까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도 해보게 됐음. 나 역시 사회 정의 이슈와 계급 간 불평등을 볼 때면 늘 언제나 내가 어떤 계급과 계층에 속하더라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 안전장치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의식변화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음. </p><p><br/></p></li><li><p>we belong everywhere : 우리는 언제나 어디에나 속할 수 있다는 말. 사회를 어떻게 카테고리화 시키느냐에 따라 우리는 다수가 되기도 소수가 되기도 함. 때로는 권력을 쥐기도, 혹은 종속되거나 핍박을 받기도 함. 시대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 모두의 계급과 카테고리가 변할 수 있는거라면, 그래서 모두가 그 사실을 인지하고 서로를 대한다면 좀 더 나은 공동선을 찾을 수 있을까.</p></li></ul><p><br/></p><ul><li><p>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으로 제시된 </p><p>(1) 자유시장 자유주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 경제적 보상, 소득과 부, 수요공급에 따른 가치는 '능력, 도덕적 의미'와는 무관하다. 고로 누군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은 그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거나 그가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의미가 있어서라기 보다 사회적인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값이 매겨진 것 뿐이므로 둘을 연관 짓지 마라. '보상의 차이가 각자의 능력 차이와 별 상관이 없다' 사람들이 버는 돈이 각자의 자격과 비례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으며, 그가 벌어들인 수익도 그냥 그 사람것임.</p><p><br/></p><p>(2) 복지국가 자유주의: 존 롤스 - 자연적 재능 분배 상태가 공동의 자산이므로 그 분배에서 비롯되는 편익은 무엇이든 공동체적으로 향유되어야 함. 능력 발휘해서 많이 성공한걸로 부를 재분배하고 덜 가진 이들을 도와라. (세금에 의한 소득 재분배 찬성). 능력도 노력도 모두 다 우연의 행운이라고 보기도 함.</p><p><br/></p><p>&gt; 하이에크와 롤스 모두 '경제적 보상이 개인의 자격에 근거하면 안된다.'라고 봄</p><p>  </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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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4 11:49:5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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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6377890</link>
         <description><![CDATA[<p>이번 세션 주제와 관련해서 공유하고 싶은 자료나 글, 영상 등을 올려주세요.</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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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4 12:02:44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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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주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7453582</link>
         <description><![CDATA[<p>주류 정당과 정치인들은 기회의 평등을 늘림으로써 증가하는 불평등에 대응해왔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으로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을 억누르고, 고등교육 이수 기회를 넓혔다. ‘기회 균등’이라는 수사는 규칙을 지키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재능이 이끄는 만큼 높이 올라갈 수 있다”는 구호로 요약되었다. 49쪽</p><p>&nbsp;</p><p>최근 수십 년 동안의 폭발적인 불평등 증가는 사회적 상승을 가속화 시킨 게 아니라, 정반대로 상류층이 그 지위를 대물림해줄 힘만 키워주고 말았다. 50쪽</p><p>&nbsp;</p><p>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59쪽</p><p>&nbsp;</p><p>기술 혁신과 아웃소싱에 따른 일자리 감소는 노동자들이 종사하는 유형의 일에 대한 사회적 평판도 하락과 맞물렸다. 경제 활동이 ‘물건 만들기’에서 ‘돈 관리하기’ 쪽으로 넘어가면서, 또한 헤지펀드 매니저나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 전문 직업인들이 사회적 보상을 과하게 챙기면서 전통적인 일자리에 대한 명망은 급락 약화되었다. 60쪽</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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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5 09:48:20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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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주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7453854</link>
         <description><![CDATA[<p>능력주의 이상의 어두운 면은 가장 매혹적인 약속, 즉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고 자수성가할 수 있다’는 말 안에 숨어 있다. 이 약속은 견디기 힘든 부담을 준다. 능력주의의 이상은 개인의 책임에 큰 무게를 싣는다. 67쪽</p><p>&nbsp;</p><p>부는 재능과 노력의 상징이며, 가난은 나태의 상징이라는 현대의 친숙한 시각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68쪽</p><p>&nbsp;</p><p>프로테스탄트의 직업윤리는 자본주의 정신을 생겨나게 할 뿐만이 아니다. 자기 구제와 자기 운명에 대한 책임의 윤리, 즉 능력주의적 사고 방식에 적합한 윤리를 장려한다. 이런 윤리의식은 큰 부를 축적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책임과 함께, 자수성가의 어두운 면이라 볼 수 있는 ‘불안하면서도 치열한 경쟁’을 초래한다. 은총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주었던 겸손함. 그것은 이제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는 데서 나오는 오만으로 대체된다. 76쪽</p><p>&nbsp;</p><p>(번영 복음) 세속적으로 말하면, ‘사람들에게 충분한 노력과 믿음만 있다면 부와 건강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85쪽</p><p>&nbsp;</p><p>부와 건강을 상과 벌의 문제로 보는 관점은 능력주의적 생활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운이나 은총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 자신이 전적으로 우리 운명을 책임진다고 여긴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취한 선택과 삶의 태도에 대한 상 또는 벌인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자수성가와 자기 통제의 윤리를 확고히 찬양하며, 능력주의적 오만에 빠질 길을 열어준다. 87쪽</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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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5 09:48:4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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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주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7454196</link>
         <description><![CDATA[<p>요즘 우리는 성공을 청교도들이 구원을 바라보던 방식과 비슷하게 본다. 행운이나 은총의 결과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노력과 분투로 얻은 성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능력주의 윤리의 핵심이다. 자유와 당당한 자격을 한껏 강조한다. 내가 많은 세속적 재화를 손에 넣는 데 스스로 책임이 있다면, 그러한 취득의 자격기 있을 것이다. 성공은 미덕의 증표다. 나의 부유함은 나의 몫이다. 105쪽</p><p>&nbsp;</p><p>우리 운명이 개인 책임이라는 생각이 강할수록 우리가 다른 사람까지 챙길 필요를 느끼기 힘들다. 106쪽</p><p>&nbsp;</p><p>능력주의적 직관은 정치적 성향을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었다. 107쪽</p><p>&nbsp;</p><p>능력주의로의 전환이 갖는 일부 측면은 부정적인 성격을 드러내 준다.</p><p>첫째, 책임을 특히 강조함으로써 복지국가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련 리스크 부담을 정부와 기업에서 개인으로 옮기려는 태도다.</p><p>둘째 측면은 더 야심적이다. .... 열심히 일하고 규칙대로 행동하면 누구나 자기 재능과 희망이 허용하는 한 사회적 상승을 할 수 있으리라는 약속 말이다. 111쪽</p><p><br/></p><p>복지국가를 둘러싼 논쟁은 연대와 관련되었다. 다시 말해 우리 시민들이 서로에게 얼마나 빚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한 쪽에서는 더 강력한 연대를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보다 제한적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1980년대 복지국가 관련 논쟁의 중점은 연대보다는 불우한 사람들이 자신의 물우함에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느냐로 옮아갔다. 한 쪽에서는 개인 책임을 더 강하게 주장했고, 다른 쪽에서는 그보다 덜 책임지는 게 마땅하다 여겼다. 112쪽</p><p>&nbsp;</p><p>클린턴, 오바마 그들은 레이건처럼 은연중에 도움 받을 자격이 있는 가난한 사람과 그런 자격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구분했다. 113쪽</p><p>&nbsp;</p><p>트럼프와 브렉시트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포퓰리스트 정당들에 표를 던진 많은 노동계급 사람들은 사회적 상승에 대한 약속보다는 국민 주권 원칙의 재확인, 국가 정체성과 국가적 자존심 등의 강조에 동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123쪽</p><p>&nbsp;</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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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5 09:49:2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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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천주연</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7463734</link>
         <description><![CDATA[<p>기회의 평등이 기본적인 도덕적, 정치적 프로젝트 과제였다면 고학력을 이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정책의 제1목표였다. 148쪽</p><p>&nbsp;</p><p>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가 지지받기 힘들 때, 학력주의는 최후의 면책적 편견이 된다. 159쪽</p><p>&nbsp;</p><p>엘리트는 가난이나 출신 계층을 따지기보다 학력을 따져 노동게급을 멸시한다. 학력 이외의 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낮은 학력은 개인의 노력 부족을 나타낸다고 본다. 160쪽</p><p>&nbsp;</p><p>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164쪽</p><p>&nbsp;</p><p>오늘날 고학력자들은 중도좌파 정당에 투표하며, 저학력자들은 우파 정당에 투표한다. 168쪽</p><p>&nbsp;</p><p>높은 학력을 못 가진 사람들은 엘리트가 밀어붙이는 세계화에 반발하고 포퓰리스트, 국수주의자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다. 170쪽</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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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5 10:04:32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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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북클럽 발제 자료(김화선)</title>
         <author>hseon1118</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7535624</link>
         <description><![CDATA[<p>스위치의 세번째 오픈마이크 (24.06.25)</p><p>프레젠테이션 자료입니다 :)</p><p>못다한 이야기는 패들릿과 7월 오프모임에서 나눠요!</p><p><br></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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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5 12:05:3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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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픈마이크 운영 모습</title>
         <author></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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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CDATA[<p>발제: 김화선</p><p>참여자: 김화선, 박덕현, 박종하, 배현명, 천주연</p>]]></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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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7 04:02:28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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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픈마이크 논의 주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hseon1118/socialjustice/wish/3039359069</link>
         <description><![CDATA[<p>(1) 교육의 역할</p><ul><li><p>사회적 상승기반 vs 그 외의 역할</p></li><li><p>표준화 시험(standardized test)의 기능</p></li></ul><p>(2) 미국과 오바마</p><ul><li><p>복잡하고 다면적인 계급과 집단, 그리고 차별 이슈</p></li></ul><p>(3) 빈곤과 복지</p><ul><li><p>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이유</p></li><li><p>진짜 빈곤이 뭔지 우리가 알까?</p></li></ul><p>(4) 이상적인 사회</p><ul><li><p>어떠한 공정이 이상적인 사회와 공동체를 만들까?</p></li><li><p>지금의 현실에서 공동선이란 어떤 모습일까?</p></li></ul>]]></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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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2024-06-27 04:02:53 UTC</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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