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rss version="2.0">
   <channel>
      <title>사회 고조선~삼국시대 by </title>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link>
      <description>편안함을 담아 만듦</description>
      <language>en-us</language>
      <pubDate>2021-08-30 01:06:40 UTC</pubDate>
      <lastBuildDate>2023-02-18 04:35:35 UTC</lastBuildDate>
      <webMaster>hello@padlet.com</webMaster>
      <image>
         <url>https://padlet.net/icons/png/1f923.png</url>
      </image>
      <item>
         <title>주몽의 탄생 설화</title>
         <author>t4mog</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3192061</link>
         <description><![CDATA[<div>《<a href="https://namu.wiki/w/%EC%82%BC%EA%B5%AD%EC%82%AC%EA%B8%B0">삼국사기</a>》에 기록된 고구려 건국 신화에 의하면 동명성왕의 <a href="https://namu.wiki/w/%EC%95%84%EB%B2%84%EC%A7%80">아버지</a>는 천제(天帝)의 아들 <a href="https://namu.wiki/w/%ED%95%B4%EB%AA%A8%EC%88%98">해모수</a>이며, <a href="https://namu.wiki/w/%EC%96%B4%EB%A8%B8%EB%8B%88">어머니</a>는 <a href="https://namu.wiki/w/%EA%B0%95">강</a>의 <a href="https://namu.wiki/w/%EC%8B%A0">신</a>인 <a href="https://namu.wiki/w/%ED%95%98%EB%B0%B1">하백</a>(河伯)의 딸 <a href="https://namu.wiki/w/%EC%9C%A0%ED%99%94%EB%B6%80%EC%9D%B8">유화</a>(柳花)라 전하고 있다. 아마도 <a href="https://namu.wiki/w/%EA%B5%AD%EA%B0%80">국가</a>의 정통성을 부여받기 위한 일종의 장치로 추정된다. 나라의 시조를 하늘의 자손이라고 하는 일은 고대 국가에서 상당히 흔했기 때문. 또한 해모수의 '하늘'과 유화의 '물'이라는 상징으로 볼 때, 고구려의 뿌리는 농경 사회라는 설이 있다.<br><br>《삼국유사》 &lt;왕력&gt; 동명왕 부분에서는 주몽이 '단군(壇君)의 아들이다'라는 기록이 있다. 백제에서는 고구려의 멸칭으로 <strong>박적(狛賊)</strong>이라고 칭했는데, 외관에서 알수 있듯이, '박(狛)= 맥(貊)'에서 유래 했으며, 곰이라는 뜻이다. 고구려도 고조선처럼 곰을 숭상했음을 알수 있는 대목인데, 고조선과의 친연성을 풀수 있는 열쇠인 셈. 흔히 고구려를 맥족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일본어에서 고구려= 고려의 훈독에서도 알수 있는데, 일본어에서는 고려를 'Koma'라고 부르며, 'Kuma'는 곰이라는 뜻이다. '狛'의 경우에도 일본어 훈독은 'koma'라고 한다. 후에 <a href="https://namu.wiki/w/%EC%95%88%EC%9E%A5%EC%99%95">안장왕</a>의 후손이 도일하는데, 그들은 '狛'로 개칭했으며, 'koma'라고 읽힌다고 한다. 고대 한국어가 일본어로 정착된 경우라고 볼수 있다. 백제의 경우 <a href="https://namu.wiki/w/%EC%9B%85%EC%A7%84">웅진</a>은 《일본서기》에서 '고마나리'라고 부른 것을 알 수 있다. '고마'는 백제어로 '웅(熊)'에 해당하는 단어로, 마찬가지로 곰을 뜻한다.<br><br>어느날 <a href="https://namu.wiki/w/%ED%95%B4%EB%AA%A8%EC%88%98">해모수</a>가 동생들과 함께 놀고 있던 <a href="https://namu.wiki/w/%EC%9C%A0%ED%99%94%EB%B6%80%EC%9D%B8">유화</a>를 보고는 꾀어내서 함께 하룻밤을 지냈으나 다음 날에 혼자서 승천해 버렸다고 한다. <a href="https://namu.wiki/w/%EC%9C%A0%ED%99%94%EB%B6%80%EC%9D%B8">유화부인</a>은 중매도 없이 다른 남자와 잤다는 이유로 하백에게서 쫓겨나 떠돌다가 태백산 우발수까지 밀려났다가 <a href="https://namu.wiki/w/%EB%8F%99%EB%B6%80%EC%97%AC">동부여</a>의 왕이었던 <a href="https://namu.wiki/w/%EA%B8%88%EC%99%80%EC%99%95">금와왕</a>과 만나게 되었는데, 유화의 사연을 알게 된 금와가 유화를 거두어서는 궁 안으로 데려와 방안에 두었다.<br><br>이후에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와 유화의 몸을 내리 쬐었는데, 유화가 아무리 이를 피하려 해도 햇빛은 계속 유화의 몸을 비추었다. 그 이후에 유화는 덜컥 <a href="https://namu.wiki/w/%EC%9E%84%EC%8B%A0">임신</a>을 하게 되었는데, 괴상하게도 <a href="https://namu.wiki/w/%EB%82%9C%EC%83%9D%EC%84%A4%ED%99%94"><strong>알</strong></a>을 낳았다. 금와왕이 알을 돼지나 짐승에게 주거나 들판에 내버려도 짐승들이 알을 해치지 않고 보호하려고 하였고, 껍질이 단단해서 깨뜨릴 수가 없어 결국 도로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알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동명성왕, 즉 <a href="https://namu.wiki/w/%EC%A3%BC%EB%AA%BD">주몽</a>이었다.<br><br>《동국이상국집》 &lt;동명왕&gt; 편에 따르면,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걸으며 말을 깨우쳤고 자라서는 힘도 굉장했는데, 어느날 왕자들과 사냥을 나갔다가 다른 왕자들이 하나도 못 잡아 쩔쩔매고 있을 때 혼자 노루를 무더기로 잡고 있었다. 이에 샘이 난 왕자들이 노루를 모두 빼앗고 주몽을 나무에다 묶어놓고 돌아가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주몽이 나무를 뿌리째 뽑아서는(...) 묶여서 나무를 등에 진 채 그대로 걸어 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br><br>하지만 그를 시기한 <a href="https://namu.wiki/w/%EB%8C%80%EC%86%8C%EC%99%95">대소</a>를 비롯한 동부여의 왕자들의 간계로 피살당할 뻔 했고, 부인 예씨와 모친 유화, 그리고 예씨의 배 속의 아이 <a href="https://namu.wiki/w/%EC%9C%A0%EB%A6%AC%EB%AA%85%EC%99%95">유리</a>를 남긴 채 떠난다. 이때 뱃속의 아이를 위해 자신의 아들임을 증명할 부러진 칼조각을 남기는데, 관련된 내용이 <a href="https://namu.wiki/w/%EA%B7%B8%EB%A6%AC%EC%8A%A4">그리스</a>의 <a href="https://namu.wiki/w/%ED%85%8C%EC%84%B8%EC%9A%B0%EC%8A%A4">테세우스</a>에 대한 설화와 거의 같다. 위에 소나무(기둥)가 있는 칠각형 돌(주춧돌) 아래에 부러진 칼의 일부를 묻어뒀으니 찾을 나이가 되거든 그 칼 조각을 가지고 오라는 것. 동명성왕은 떠날 때 <a href="https://namu.wiki/w/%EC%98%A4%EC%9D%B4(%EA%B3%A0%EA%B5%AC%EB%A0%A4)">오이</a>, <a href="https://namu.wiki/w/%EB%A7%88%EB%A6%AC(%EA%B3%A0%EA%B5%AC%EB%A0%A4)">마리</a>, <a href="https://namu.wiki/w/%ED%98%91%EB%B3%B4">협보</a> 등의 친구들과 자신을 따르는 여러 무리를 이끌고 자신이 하늘의 자식임을 이용해 자라와 물고기로 다리를 만들어 큰 강을 건너 동부여를 탈출하였다.<br><br>이후에 동명성왕의 일행은 <a href="https://namu.wiki/w/%EC%A1%B8%EB%B3%B8">졸본</a> 땅에 도착하였고, 훗날 이곳을 도읍으로 하여 <a href="https://namu.wiki/w/%EA%B3%A0%EA%B5%AC%EB%A0%A4">고구려</a>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div><ul><li>《<a href="https://namu.wiki/w/%EA%B5%AC%EC%82%BC%EA%B5%AD%EC%82%AC">구삼국사</a>》를 보고 쓴 이규보의 &lt;동명왕&gt;편에도 거의 동일한 설화가 기록 되어 있다. 다만 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존재한다. <a href="http://db.itkc.or.kr/dir/item?itemId=BT#/dir/node?dataId=ITKC_BT_0004A_0050_010_0010">이규보의 &lt;동명왕&gt;편</a>.</li><li>『<a href="https://namu.wiki/w/%EA%B4%91%EA%B0%9C%ED%86%A0%EB%8C%80%EC%99%95%EB%A6%89%EB%B9%84">광개토대왕릉비</a>』에도 해당 설화가 나와있다. 다만 광개토왕릉비는 왕의 권위와 그의 신성함에 대해서만 적혀있을 뿐 시련에 대한 언급은 없다.</li></ul>]]></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g1.daumcdn.net/thumb/R80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k.kakaocdn.net%2Fdn%2FotQqD%2FbtqDj11Xgjr%2F95lYjL7NzyUexz9Y6NlxY0%2Fimg.jpg" />
         <pubDate>2021-08-30 01:11: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3192061</guid>
      </item>
      <item>
         <title>가야</title>
         <author>KimMinJun100723</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39713</link>
         <description><![CDATA[<div>원래 나라 이름은 "변한 이었다,하지만 김수로왕이 가야를 세웠다.<br>-가야의 6국가 의 전설........어느 날 부족의 간들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령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구지봉(옛 구수봉)에 가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면 임금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간들이 예언대로 했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왔다. 상자 안에는 여섯 개의 황금알이 있었는데, 그 알에서 여섯 명의 아이가 나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나라 이름은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였다<br>이 전설 처럼 가야는 1개의 국가가 아닌 여러 국가로 나뉘어있었다.금관가야,대가야,아라가야,소가야,성산가야,고령가야 중 처음으론 금관가야가 권력을 휘둘렀고, 점차 금관가야가 전쟁에 약해지지자,대가야가 금관가야를 밟고 일어서서 권력을 잡았다.</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blogthumb.pstatic.net/MjAxNzEwMTlfNCAg/MDAxNTA4MzkyMzA5NTkw.Gq1EYSswrsmla4_CkMBsLNpXYnmPzlflAi3XzEn7VlUg.qqysa0A-CDs2uahszlUNgkCaI7I0p_6hf7zIXRKM7vYg.PNG.ssunn1444/20171019_144716.png?type=w2" />
         <pubDate>2021-08-31 01:57:1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39713</guid>
      </item>
      <item>
         <title>박혁거세 전설</title>
         <author>koyuna0702</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54577</link>
         <description><![CDATA[<div>옛날에 진한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의 언덕에 모였다. 그들은 덕이 있는 자를 왕으로 받들어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다. 멀리 남쪽을 살펴보니 양산 아랫자락에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처럼 번쩍하는 기이한 기운이 땅으로 비추고 있었다. 그곳에는 흰 말이 절을 하는 모습으로 엎드려 있었다. 흰 말이 있는 곳을 찾아가 살피니 붉은 알이 하나 놓여있었다. 흰 말은 사람들을 보고 소리 내어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붉은 알을 깨뜨리니 남자아이가 나왔다. 모두들 놀랍고 신기하게 여기면서 동천의 물로 깨끗이 씻기니 온몸에서 빛이 퍼져 나왔다. 새와 짐승이 춤을 추고 하늘과 땅이 진동하며 해와 달이 맑고 밝았다. 이로 인해 밝다는 뜻을 가진 혁거세왕, 혹은 불거내왕이라 이름을 부르고 위호를 거슬한이라고 하였다.&nbsp; 사람들은 혁거세왕의 탄생을 축하하며 “이제 덕이 있는 배필을 구해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마침 같은 날 사량리 알영이라는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쪽 옆구리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나 입이 닭의 부리처럼 생긴 것이 특이하였다. 월성의 북천 물로 깨끗이 씻기니 부리처럼 생긴 것이 바로 떨어졌다. 남산 서쪽에 궁실을 세워 두 아이를 받들어 봉양하였다. 남자아이가 알에서 나왔기 때문에 알이 박의 모양과 비슷하여 남자아이의 성을 박씨로 하였다. 여자아이는 태어난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불렀다. 두 아이가 열 세 살이 되자 혁거세는 왕으로, 알영은 왕후로 삼았으며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지었다. 왕후가 태어날 적에 계정이라는 우물가에서 태어나서 계림국이라고도 했지만 후에 '신라'라고 고쳐졌다. 박혁거세는 61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죽음에 임박하여 하늘에 올라갔다. 그 후 7일 뒤에 죽은 몸이 땅으로 떨어지며 흩어졌다. 이에 왕후가 따라 죽었다. 나라의 사람들은 흩어진 왕의 몸을 합쳐 장사를 치르려고 하였으나 어디선가 큰 뱀이 나와서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다. 할 수 없이 다섯 부분으로 나뉘어진 몸을 각각 장사를 지내 다섯 개의 능을 만들었다. 뱀의 방해를 받았다고 해서 '사릉'이라고도 불렸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ytimg.com/vi/d7ow4TW5ZY8/hqdefault.jpg" />
         <pubDate>2021-08-31 02:03:0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54577</guid>
      </item>
      <item>
         <title>태조 이성계</title>
         <author>andyoohs</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301</link>
         <description><![CDATA[<div><br></div><div><strong>태조</strong>(太祖,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35%EB%85%84">1335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0%EC%9B%94_27%EC%9D%BC">10월 27일</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10%EC%9B%94_11%EC%9D%BC">음력 10월 11일</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408%EB%85%84">1408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6%EC%9B%94_18%EC%9D%BC">6월 18일</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5%EC%9B%94_24%EC%9D%BC">음력 5월 24일</a>))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고려</a> 말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C%B4%EC%8B%A0_(%EA%B4%80%EC%A7%81)">무신</a>이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C%B9%98%EA%B0%80">정치가</a>이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을 건국한 초대 국왕(재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92%EB%85%84">1392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8%EC%9B%94_5%EC%9D%BC">8월 5일</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7%EC%9B%94_17%EC%9D%BC">음력 7월 17일</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98%EB%85%84">1398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0%EC%9B%94_14%EC%9D%BC">10월 14일</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9%EC%9B%94_5%EC%9D%BC">음력 9월 5일</a>))이다. 또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대한제국</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EC%9D%98_%ED%99%A9%EC%A0%9C">추존 황제</a>이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35%EB%85%84">1335년</a>(<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6%A9%EC%88%99%EC%99%95">충숙왕</a> 후4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고려</a> 동북면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C%95%BC%EA%B5%B0">화령</a>에서 출생하였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고려</a>의 장수이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A%B3%B5%EB%AF%BC%EC%99%95">공민왕</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C%9A%B0%EC%99%95">우왕</a> 시대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9%8D%EA%B1%B4%EC%A0%81%EC%9D%98_%EB%82%9C">홍건적</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9%9C%EA%B5%AC">왜구</a>토벌에서 영웅적 공로를 쌓아 입지를 다졌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88%EB%85%84">1388년</a>(우왕 14년) 철령 이북의 영토문제를 두고 명나라와 갈등이 빚어지자, 이에 대한 타개책으로 명나라의 요동을 정벌할 것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C%9A%B0%EC%99%95">우왕</a>으로부터 명을 받았다. 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B%8F%99">요동</a> 정벌을 위하여 북진을 하다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99%94%EB%8F%84">위화도</a>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하였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A%B3%B5%EC%96%91%EC%99%95">공양왕</a>으로부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4%A0%EC%9C%84">선위</a>의 형식으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9C%EC%84%B1%ED%8A%B9%EA%B8%89%EC%8B%9C">개경</a> 수창궁에서 즉위함으로써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을 개국하였다.<br><br></div><div><br>조선을 개국한 후에 '단(旦)'으로 개명하였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95%EB%8F%84%EC%A0%84">정도전</a>과 조준을 비롯한 혁명파 신진사대부들과 전제 개혁을 비롯한 각종 사회 개혁을 단행한 끝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을 개국했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B1%EB%B6%80">한양</a>으로 천도해 왕조의 기틀을 다졌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388%EB%85%84">1388년</a>(우왕 14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2%EC%9B%94">2월</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B%82%98%EB%9D%BC">명나라</a>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0%EB%A0%B9">철령</a> 이북의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였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83%9C%EC%A1%B0#cite_note-chung153-10"><sup>[10]</sup></a> 본래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B%90%EB%82%98%EB%9D%BC">원나라</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C%8D%EC%84%B1%EC%B4%9D%EA%B4%80%EB%B6%80">쌍성총관부</a>가 있던 지역이니, 이제는 원을 계승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B%82%98%EB%9D%BC">명나라</a>의 땅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0%EB%A0%B9%EC%9C%84">철령위</a>라는 관청을 설치하고 관리를 파견했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83%9C%EC%A1%B0#cite_note-chung153-10"><sup>[10]<br></sup></a><br></div><div>1388년 4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98%81">최영</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B%A0%A4_%EC%9A%B0%EC%99%95">우왕</a>은 이 기회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B%8F%99">요동</a>을 공격해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A%85%EB%82%98%EB%9D%BC">명나라</a>의 야심을 꺾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반대하면서 그 이유로 4가지를 들었다.<br><br></div><ol><li>소(小)로서 대(大)를 거역하는 것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공격하는 것).</li><li>농번기인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li><li>온 나라의 군대를 동원하여 북쪽으로 원정하러 간 사이 왜구가 그 틈을 노릴 소지가 있는 것.</li><li>곧 여름철이라 비가 자주 내리므로 아교가 녹아 활이 녹고 군사들은 질병을 앓게 될 것.</li></ol><div><br><br></div><div><br></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4.bp.blogspot.com/-j_JWLK2MHyE/T5uHWqevoXI/AAAAAAAABiQ/xZrOtu_K2rs/s1600/untitled_jjy0501.jpg" />
         <pubDate>2021-08-31 02:06:1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301</guid>
      </item>
      <item>
         <title>고구려의 영토확장과 전성기</title>
         <author>gosumi</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489</link>
         <description><![CDATA[<div>고구려는 소수림왕 때 불교 공인과 태학설립, 율명 반포 등으로 국가체제<br>정비와 정치적 안정기반이 구축되었다.이와 같은 단계에서 즉위한 광계토대왕은 정복 군주로서 백제의 한성을침공하여 임진강과 한강선까지 진출하였고, 신라 내물왕을 원조하여 왜구를 격퇴하였다.북으로 후연을 쳐서 요동을 차지하고 숙신을 복속시켜 만주와 항반도에서 우월한위치를 확보하였다,장수왕은 과계토대왕의 업적을물려받아 제도와 정비를 확보드으로 전성기를 맞았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honey.why-be.co.kr/data/editor/1607/thumb-a6637034c2c0b2808fa4f11d9147e8d7_1469598112_2178_600x834.jpg" />
         <pubDate>2021-08-31 02:06:2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489</guid>
      </item>
      <item>
         <title>온조왕의 출생</title>
         <author>river2155</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634</link>
         <description><![CDATA[<div>&lt;삼국사기&gt;의 &lt;백제본기&gt; 에서는 여러 전승을 한꺼번에 전하고 있는데, 첫번째가 졸본부여 왕의 차녀가 고주몽과 결혼하여 낳은 차남이라는 이야기이다.<br><br>두번째는 북부여 왕 해부루의 서손인 우태가 졸본 사람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와 결혼하여 낳은 둘째아들이라는 것인데 우태가 먼저 죽고 소서노는 과부로 살다가 주몽과 재혼한다는 이야기다.<br><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19248559/4b093b03d32eace65679db270fa64ab3/__.jpg" />
         <pubDate>2021-08-31 02:06: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3634</guid>
      </item>
      <item>
         <title>박혁거세 탄생 설화</title>
         <author>hellozenotv</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6660</link>
         <description><![CDATA[<div>&nbsp;진한(辰韓)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알천 상류에 모였다. 군왕을 정하여 받들고자 하여 높은 곳에 올라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진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서 그곳을 살폈더니 자줏빛 알이 있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postfiles14.naver.net/20130325_77/akcenter_1364178282067ltSQl_JPEG/%B3%AD%BB%FD%BC%B3%C8%AD.jpg?type=w2" />
         <pubDate>2021-08-31 02:07:2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6660</guid>
      </item>
      <item>
         <title>고조선의 탄생 신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9307</link>
         <description><![CDATA[<div>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인간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목적으로 비 신, 곡식 신, 구름 신 등과 함께 태백산에 내려왔다.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 되고자 찾아왔다. (중략) 웅녀와 환웅이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40224&amp;ref=y">단군 왕검</a>이라 하고 조선을 건국하였다.”이다. 이 건국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39960&amp;ref=y">신화</a>의 내용을 통해 고조선 사회는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40235&amp;ref=y">선민 사상</a>과 홍익 인간의 이념을 바탕으로 하여 <a href="https://m.terms.naver.com/entry.nhn?docId=943161&amp;ref=y">국가</a>를 건국하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g1.daumcdn.net/thumb/R720x0.q80/?scode=mtistory2&amp;fname=http:%2F%2Fcfile27.uf.tistory.com%2Fimage%2F27506038542CB46C1D05B5" />
         <pubDate>2021-08-31 02:08:2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69307</guid>
      </item>
      <item>
         <title>고구려의 최대영토와 건국(임선제)</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0793</link>
         <description><![CDATA[<div>고구려의 최대영토는 장수왕 시기에 남쪽으로는 아산만에서 동쪽에 죽령까지고 북쪽으로는 랴오혀강과 동쪽의 만주직역 대부분이다.&nbsp;<br>고구려는 부여에서 탈출한 주몽이세웠다.주몽은 동부여 금와왕의 아들 가운데 하나로, 배다른 형제들과의 갈등 때문에 동부여를 떠나 남하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운 뒤 비류국을 점령하는 등 점차 세력을 키워간 인물이다. 그러나 주몽의 신화는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주몽의 혈통과 능력을 신성화한다. 이를 위해 먼저 부여계 민족이 공통으로 인정하는 천신의 권위와 혈통을 끌어들인다. 주몽은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를 아버지로 삼는다. 해씨는 주몽의 성인 고씨와 혈통이 다른 고구려 지배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주몽이 해모수의 아들이 된 것은 천제의 권위와 해씨 집단의 힘을 동시에 끌어들이려는 계책에 따른 것이다. 주몽은 해모수만이 아니라 하백계 집단도 끌어들인다. 왕의 시비가 빛에 의해 임신을 한다는 부여계 전승이 있지만, 유화는 단지 시비가 아니라 하백의 딸로 자리매김 되어 압록강의 수신을 숭배하는 또 하나의 세력을 신화를 통해 통합한다. 천신과 지신(수신)의 결합에 의해 건국주가 탄생했다는 신화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ile210.uf.daum.net/image/146236084945D6820FD9E5" />
         <pubDate>2021-08-31 02:09: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0793</guid>
      </item>
      <item>
         <title>우리나라와 중국의 청동기!                                            고조선 시대에 사용되었던 청동기는 만주와 한반도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만주와 한반도에서 발견된 청동기는 청동 검과 같은 무기나 청동 거울처럼 제사 지낼 때 쓰는 도구가 대부분이다. 반면 중국에서 발견되는 청동기는 청동 술 잔이나 청동 솥 등이에요. 청동 솥은 아예 향을 넣고 연기를 피우는 제사 도구이다.이처럼 우리나라와 중구은 서로 문화가 다르다.  </title>
         <author>ten0108</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0876</link>
         <description><![CDATA[]]></description>
         <enclosure url="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18/0427/IE002324763_STD.jpg" />
         <pubDate>2021-08-31 02:09:0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0876</guid>
      </item>
      <item>
         <title>의자왕</title>
         <author>dkssklove1</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1935</link>
         <description><![CDATA[<div>흔히 의자왕 하면 삼천궁녀를 떠올리지만, 삼천궁녀는 진짜 삼천명의 궁녀를 거느렸다는 게 아니라 문학적인 수사에 불과합니다. 애당초 삼천궁녀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도 조선 초기에 와서의 일이며, 삼국사기에는 낙화암에 대해 아예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도 단지 의자왕과 후궁들이 뛰어내렸다는 이야기가 있을 뿐입니다. 조선 시대의 문인들이 낙화암과 백제를 소재로 한 글을 쓰면서 '백제가 멸망하면서 삼천궁녀들이 이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구나'와 같은 표현을 남긴 사례가 많습니다. 여기서 '삼천'이라는 것은 그냥 많은 수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nbsp;<br>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7세기 때의 백제에 삼천명의 궁녀가 나오기도 힘들죠. 이보다 훨씬 후대의 고려왕조의 막장왕이었던 충혜왕이 전국의 미녀란 미녀를 다 긁어 모아서 100명이 넘는 궁녀를 모았다는 기록이 남아있고, 조선왕조에서도 궁녀가 가장 많았던 게 연산군 시절인데 그때도 1,000명만 살짝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 이외에는 조선왕조는 궁녀숫자를 600명 정도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고려, 조선보다도 인구가 더 적었던 백제가 이렇게 많은 궁녀를 데리고 있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죠.</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19396200/884128925b47f45339d16b1fe22c5f04/dfs.png" />
         <pubDate>2021-08-31 02:09: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1935</guid>
      </item>
      <item>
         <title></title>
         <author>fishaaa66</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3081</link>
         <description><![CDATA[<div><br>고구려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9B%90%EC%A0%84_37%EB%85%84">기원전 35년</a>에서 서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668%EB%85%84">668년</a>까지 한반도 북부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7%8C%EC%A3%BC">만주</a> 일대를 지배한 고대 국가이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3%BC%EB%AA%BD">주몽</a>이 이끄는 부여족의 한 갈래가 압록강 지류인 동가강(佟佳江) 유역에 건국함으로써 성립되었다. 고구려는 초기부터 한족(漢族)과의 투쟁 과정을 통해 강대해졌다. 1세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_%ED%83%9C%EC%A1%B0%EB%8C%80%EC%99%95">태조왕</a> 대에 들어서 고구려는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또한 태조왕은 동예와 옥저를 복속시키고, 낙랑군과 현도군은 압박하여 영토를 넓혔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_%EA%B3%A0%EA%B5%AD%EC%B2%9C%EC%99%95">고국천왕</a>은 왕위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B%B6%80%EC%9E%90%EC%83%81%EC%86%8D%EC%A0%9C&amp;action=edit&amp;redlink=1">부자상속제</a>를 마련하였고, 5부의 행정구역을 설정하는 등 체제 정비를 단행하여 왕권이 보다 강화되었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_%EB%AF%B8%EC%B2%9C%EC%99%95"><br>미천왕</a>은 서안평을 확보하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2%99%EB%9E%91%EA%B5%B0">낙랑군</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B%B0%A9%EA%B5%B0">대방군</a>을 정복하여 한반도에서 한사군의 세력을 완전히 몰아내 고조선의 옛 땅을 회복하였다. 고구려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_%EA%B3%A0%EA%B5%AD%EC%9B%90%EC%99%95">고국원왕</a>때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C%A0%9C">백제</a>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0%84%EC%97%B0">전연</a>의 공격으로 일시적인 국가적 위기를 겪었으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C%88%98%EB%A6%BC%EC%99%95">소수림왕</a> 대에 들어서 고구려는 태학(太學)을 설립하고 불교를 국가적으로 공인하였으며, 율령을 제정함으로써 중앙집권국가를 완성시키고 다시 나라를 정비하였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5%EC%84%B8%EA%B8%B0"><br>5세기</a>, 고구려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4%91%EA%B0%9C%ED%86%A0%EC%99%95">광개토왕</a>은 백제의 수도인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남쪽 영토를 임진강과 한강까지 확장시켰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9D%BC">신라</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2%B4%EB%AC%BC%EC%99%95">내물왕</a>을 원조하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9%9C%EA%B5%AC">왜구</a>를 격퇴하였다. 또한 북으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B%84%EC%97%B0">후연</a>을 쳐서 요동을 완전히 차지하고, 아울러 요서 지방의 일부까지 진출하였다. 광개토왕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8%99%EC%8B%A0">숙신</a>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B%B6%80%EC%97%AC">동부여</a>를 복속시켜 만주와 한반도에서 우월한 위치를 확보하였다.<br><br></div><div><br>그의 아들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88%98%EC%99%95">장수왕</a>은 중국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B%B6%81%EC%A1%B0_%EC%8B%9C%EB%8C%80">남북조</a>와 통교하였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C%97%B0_(%EB%82%98%EB%9D%BC)">유연</a>(柔然) 등 새외(塞外) 민족과도 통교하면서 외교관계를 확대하여 중국을 견제하였다. 427년 남하정책의 일환으로 수도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8F%89%EC%96%91">평양</a>으로 천도하여 중앙 집권적 정치기구를 정비하였다. 475년 고구려는 백제의 한성을 침공하여 함락하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9C%EB%A1%9C%EC%99%95">개로왕</a>을 죽여 고국원왕의 한을 풀고 남쪽의 아산만(牙山灣)까지 지배하였다. 이때 백제는 수도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B%85%EC%A7%84">웅진</a>으로 옮겼고, 함께 공격당한 신라는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잃었다.<br><br></div><div><br>6세기 중반에 들어서 내우 외환에 시달리던 고구려는 국력이 크게 쇠약해졌다. 신라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D%9D%A5%EC%99%95">진흥왕</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A0%9C%EB%8F%99%EB%A7%B9">나제동맹</a>(羅濟同盟)을 깨고 고구려에게서 빼앗은 한강 유역을 독차지 하였으며, 지금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A8%EA%B2%BD%EB%8F%84">함경도</a> 지역 일부에까지 진출해 고구려를 압박하였다.<br><br></div><div><br>589년 중국에 새로 들어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8%98%EB%82%98%EB%9D%BC">수나라</a>는 고구려를 4차례에 걸쳐 침공하였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A%B5%AC%EB%A0%A4-%EC%88%98_%EC%A0%84%EC%9F%81">고구려-수 전쟁</a>에서 고구려는 612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4%EC%A7%80%EB%AC%B8%EB%8D%95">을지문덕</a>이 이끈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4%EC%88%98_%EB%8C%80%EC%B2%A9">살수 대첩</a>과 같은 중요한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수나라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이 전쟁은 수나라의 멸망의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곧이어 중국을 통일한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B9%EB%82%98%EB%9D%BC">당나라</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B9_%ED%83%9C%EC%A2%85">태종</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A%B0%9C%EC%86%8C%EB%AC%B8">연개소문</a>의 대당강경책을 구실로 고구려를 침입하여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B%8F%99%EC%84%B1">요동성</a> 등을 함락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C%8B%9C%EC%84%B1">안시성</a>에서 성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B%A7%8C%EC%B6%98">양만춘</a>(楊萬春 혹은 梁萬春)에게 대패하였다.<br><br></div><div><br>이처럼 고구려는 중국 세력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으나, 공격을 받으며 국력이 쇠퇴해갔다. 특히 연개소문 사후 지배층이 분열되어 정치 상황이 어지러웠고 민심이 혼란해져 있었다.<br><br></div><div><a href="https://ko.wikipedia.org/wiki/668%EB%85%84"><br>668년</a>, 나당연합군은 혼란해진 고구려를 공격하여 수도인 평양을 차지하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당나라는 고구려의 옛 땅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5%88%EB%8F%99%EB%8F%84%ED%98%B8%EB%B6%80">안동도호부</a>를 설치하였고, 고구려 영토의 일부는 신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고구려의 공백은 후일 그 계승국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0%9C%ED%95%B4">발해</a>로 이어진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19245930/0687f5746bac79c197b91486eda92685/345px_Goguryeo_tomb_mural.jpg" />
         <pubDate>2021-08-31 02:09:5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3081</guid>
      </item>
      <item>
         <title>박혁거세 </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4338</link>
         <description><![CDATA[<div>한반도의 동남쪽 진한 땅에 여섯마을이 있었는데 그중 고허촌장 소벌도리가<br>양상 밑 나정 우물 곁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곧 우물 옆 숲 속에서 오묘한 광채가 하늘로 부터 드리웠는데 금빛 속에 흰말 한마리가&nbsp; 무릎을 꿇은 채 울고있었다.가까이 다가가자 말은 사라지고 알이 나탄났다.그것을ㄲ니 사내아이가 나왔는데 그아이가 바로 박혁거세있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s8.blog.daum.net/upload_control/download.blog?fhandle=MDlUcDRAZnM4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AvMy5qcGc=&amp;filename=3.jpg" />
         <pubDate>2021-08-31 02:10:2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4338</guid>
      </item>
      <item>
         <title>김유신장군의업적</title>
         <author>jadenkim518</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4646</link>
         <description><![CDATA[<div>김유신장군은 595년673년 8월 18일까지 신라 의 화랑우두머리고 가야의 왕족후손이고 태종무열왕과 문무왕을 도와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을 보좌하고왕족이아닌데도 돌아가시고 순충장렬흥무대왕(純忠壯烈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br>또한 관창, 사다함과 함께 신라의 3대화랑이다<br>진평왕 51년 가을에 왕명을받고 고구려의 낭비성을 아버지를따라 치러갔을때 그의 나이는 35세이다. 1차접전에서졌었다.<br>많은성을함락시켜나중엔결국 백제,고구려가멸망해삼국통일을이루고돌아가셨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34823697/96d63e3e432d72fcd1513647bc78cd07/_____.jpg" />
         <pubDate>2021-08-31 02:10:2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4646</guid>
      </item>
      <item>
         <title>왕검성</title>
         <author>hyunwooryu0</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5396</link>
         <description><![CDATA[<div><br>왕검성은 왕험성(王險城)이라고 표기하기도 하였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9C%A0%EC%82%AC">삼국유사</a>》 고조선조에는 《위서》(魏書)를 인용해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8B%A8%EA%B5%B0%EC%99%95%EA%B2%80">단군왕검</a>(檀君王儉)이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C%82%AC%EB%8B%AC">아사달</a>(阿斯達)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면서, 또 《고기》(古記)를 인용해 단군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했다고 하였다.<br><br></div><div><br>그리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82%AC%EA%B8%B0">삼국사기</a>》 권17 동천왕 21년조에는 “평양성은 본래 선인 왕검의 택이다. 또는 왕의 도읍을 왕험이라 한다(平壤城 本仙人王儉之宅也 或云 王之都王險).”라고 하였다.<br><br></div><div><br>한편 중국 사서인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A%B8%B0">사기</a>》(史記) 조선전에는 공손수(公孫遂)의 군대와 좌장군(左將軍)의 군대가 왕험성을 공격하자 조선의 신하들이 투항하고 조선 왕 우거(右渠)가 피살되었으나, 왕험성은 성기(成己)가 일시나마 완강히 항거했다고 하였다.<br><br></div><div><br>이렇게 고조선의 수도는 기록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9C%A0%EC%82%AC">삼국유사</a>》〈기이〉 제1 고조선 조에는 '아사달'(阿斯達) 및 '평양성'(平壤城)이 초기 수도로 기록되어 있으며 후에 백악산(白岳山, 묘향산의 별칭)으로 천도했다고 한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82%AC%EA%B8%B0">삼국사기</a>》 〈고구려본기〉 제6권 동천왕 21년 조에는 '왕험'이 왕검(王儉)의 집이자 수도라고 기록하고 있다.<br><br></div><div><br>《<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A%B8%B0_(%EC%97%AD%EC%82%AC%EC%84%9C)">사기</a>》〈조선열전〉,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C%84%9C">한서</a>》〈서남이양월조선전〉 등의 중국 기록에 따르면 고조선의 수도는 왕검성 또는 왕험성으로 나타난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C%9B%90%EC%A0%84_109%EB%85%84">기원전 109년</a>에 무제가 고조선을 공격하자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A%B1%B0%EC%99%95">우거왕</a>은 1년 동안 왕검성에서 농성하였고 이듬해 왕검성이 함락되어 고조선은 멸망하였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10: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5396</guid>
      </item>
      <item>
         <title>단군신화</title>
         <author>msha0222</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6341</link>
         <description><![CDATA[<div>옛날에&nbsp;환인의 서자 환웅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 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할 만한지라, 아예 천부인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려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렸다.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곡,명,병,형,선,악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19963417/0271e99f4683c47e6a721966de7c54f4/____.jpg" />
         <pubDate>2021-08-31 02:11:0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6341</guid>
      </item>
      <item>
         <title>가야 김수로왕</title>
         <author>shinkenjohn</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131</link>
         <description><![CDATA[<div><br>김해 김씨1대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82%AC%EA%B8%B0">삼국사기</a>》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9C%A0%EC%82%AC">삼국유사</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B%9D%BD%EA%B5%AD%EA%B8%B0">가락국기</a>에 의하면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B3%80%ED%95%9C">변한</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95%BC%EA%B5%AD">구야국</a>에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42%EB%85%84">42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3%EC%9B%94">3월</a> 변한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95%BC%EA%B5%AD">구야국</a> 왕들인 9명의 간(干)들에게 하늘에서부터 "너희들의 왕을 내려 보낸다"라는 계시를 주고 왕을 내려보내기 위해선 "<strong>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strong>"라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계시를 들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B%9D%BD%EA%B5%AD">가락국</a> 9명의 간들과 2백 3명의 백성들이 김해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A7%80%EB%B4%89">구지봉</a>(龜旨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말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A7%80%EA%B0%80">구지가</a>(龜旨歌)를 불렀다.<br><br></div><div><br>변한의 구야국 백성들이 모여들며 노랫소리가 커지자 하늘에서 빛이 나더니 곧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안에 둥근 여섯의 황금 알이 들어있었다. 12일 후 이들 금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수로였다. 9명의 간들은 그를 6가야 중 수도이자 영토가 넓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B%9D%BD%EA%B5%AD">가락국</a>(금관가야)의 왕으로 추대하여 주민들은 그를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B%9D%BD%EA%B5%AD">가락국</a>(금관가야)의 왕으로 받들었고, 또한 나머지 아이들도 각각 5<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0%EC%95%BC">가야</a>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br><br>부인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B%94%EC%A7%80%EA%B5%AD">월지국</a> 혹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C%9A%B0%EB%A6%AC%EC%95%84_%EC%99%95%EC%A1%B0">마우리아 왕조</a> 공주로 추측되는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D%99%A9%EC%98%A5">허황옥</a>(許黃玉)이며, 189년까지 무려 158년 동안이나 살았다는 신화적 인물이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8%98%EB%A1%9C%EC%99%95#cite_note-4"><sup>[4]</sup></a> 수로왕은 허황옥을 태우고 온 15명의 아유타국 선원들에게 450필의 비단을 내렸는데 이는 대단히 많은 물량이며 또한 옷감 450필, 쌀 150섬을 싣고 움직일 수 있는 배를 이미 갖고 있었다는 것은 가야가 연안 항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뱃길도 꿰뚫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blog/123EBC4B503ADC6A2E" />
         <pubDate>2021-08-31 02:11:2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131</guid>
      </item>
      <item>
         <title>광개토 대왕의 업적</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781</link>
         <description><![CDATA[<div>광개토대왕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영토확장 입니다. 광개토대왕의 '광개토'도 땅을 넓게 열었다는 뜻인데요. 한강 이북에서 만주까지 영토를 확장한 업적이 있습니다. 먼저 광개토대왕이 태어난 시기부터 알아봅시다.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의 아들로 374년에 태어나 이 시기는 불교가 장려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광개토대왕이 적대적나라인 신라를 도와준 적이 있습니다 신라에 침입한 왜 세력을 격퇴한 업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고구려와 대립관계였던 백제가 왜 세력과 가야 세력을 이끌어 신라를 공격한거였는데요. 고구려는 신라 땅에 침입한 세력을 격퇴한 뒤 군대를 계속해서 주둔시켰는데.그곳에서 유물이 발견됩니다.바로 경주의 호우총에서 '호우명 그릇'이 발견됩니다. 호우명 그릇은 침입세력을 토벌한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기념하며 만든 그릇이라고 합니다. 이외 많은 업적이 있지만 생략하갰습니다 . 이런 업적을 한눈에 담은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광개토대왕릉비인데<a href="https://ko.wikipedia.org/wiki/414%EB%85%84"><br>414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4%91%EA%B0%9C%ED%86%A0%EC%99%95">광개토왕</a>의 아들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C%88%98%EC%99%95">장수왕</a>이 세웠으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91%ED%9A%8C%EC%95%94">응회암</a>(凝灰岩) 재질로 높이가 약 6.39m, 면의 너비는 1.38~2.00m이고, 측면은 1.35~1.46m지만 고르지 않다. 대석은 3.35×2.7m이다.네 면에 걸쳐 1,775자가 화강암에 예서로 새겨져 있다.<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4%91%EA%B0%9C%ED%86%A0%EC%99%95%EB%A6%89%EB%B9%84#cite_note-%EC%A2%85%ED%95%A9%EC%98%81%EC%83%81-1"><sup>[1]</sup></a> 그 가운데 150여 자는 판독이 어렵다. 내용은 대체로 고구려의 역사와 광개토왕의 업적이 주된 내용이며, 고구려사 연구에서 중요한 사료(史料)가 된다. 또한 전한(前漢) 예서(隸書)의 서풍으로 기록되어 있어 금석문 연구의 좋은 자료가 된다.<br><br></div><div><br>이 비석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조선</a> 후기까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B%82%98%EB%9D%BC">금나라</a> 황제의 비(碑)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B2%AD">청</a>의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A%B0%84%EB%8F%84#18%EC%84%B8%EA%B8%B0%EA%B9%8C%EC%A7%80">봉금제도</a>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80%EB%85%84%EB%8C%80">1880년대</a>에 해제된 뒤에야 비로소 발견되었고,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1888%EB%85%84">1888년</a>에 일본인 학자 <a href="https://ko.wikipedia.org/w/index.php?title=%EC%9A%94%EC%BD%94%EC%9D%B4_%EB%8B%A4%EB%8B%A4%EB%82%98%EC%98%A4&amp;action=edit&amp;redlink=1">요코이 다다나오</a>가 쌍구가묵본(雙鉤加墨本)을 바탕으로 한 비문의 내용을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11: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781</guid>
      </item>
      <item>
         <title>광개토대왕</title>
         <author>t4mog</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848</link>
         <description><![CDATA[<div>고구려의 제19대 태왕. 고구려 전성기의 서막을 알린 한민족 최대,최고의 정복군주이다.18세에 보위에 올라 39세의 젊은 나이에 죽기까지 수많은 업적들을 남겼으며 할아버지대에 멸망 직전까지 갔던 고구려를 동북아의 패권국으로 만든 군주로, 전쟁에 대해서는 한국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먼치킨이다. 국강상광개토지호태왕, 국강상대개토지호태성왕 등으로도 표기되었다.&lt;삼국사기&gt;에서는 이것을 줄여 광개토왕이라 표기하였다.<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11:4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7848</guid>
      </item>
      <item>
         <title>고조선</title>
         <author>52mgz9t96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9759</link>
         <description><![CDATA[<div>지금까지 우리는 역사상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 대해 알아봤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는 고조선이라고 불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계셨나요? 사실 우리가 고조선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 이름은 그냥 조선이었답니다<br>이유는 일연스님이 조선과 위만 조선을 구분하기 위해 한자 옛고를 써서 고조선이라고 불렸습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34007550/cafaa85e7eeecb1a216038d8ddf51ba3/_______________________.html" />
         <pubDate>2021-08-31 02:12:2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79759</guid>
      </item>
      <item>
         <title>주몽의 업적(주익)</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0041</link>
         <description><![CDATA[<div>주몽이&nbsp;태어나고나서 많은 업적을 세웠다 고구려를 세우고 여러 성도 가져갔다. 그럼으로 고구려를 확장시켰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age.fmkorea.com/files/attach/new/20171018/486616/163866/809684923/f9d25cd4e0190ce1438544b83dcb8389.jpg" />
         <pubDate>2021-08-31 02:12:31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0041</guid>
      </item>
      <item>
         <title>옥저</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1068</link>
         <description><![CDATA[<div>옥저는&nbsp;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 함경도에서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남쪽,연해주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에 퍼져 있던 부족 국가 집단이다. 남옥저,동옥저, 북옥저가 존재히였다.남옥저의 경우,삼국지와 후한서의 동이전에서 북옥저의 위치에 대해서 언급할 때 한 번 언급되는 것이 전부이다.따라서 남옥저를 동옥저와 동일한 집단으로 보기도 하고, 별개의 집단으로 보기도 한다.기원전 3세기경 북옥저와 남옥저가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blogthumb2.naver.net/20150102_164/lwsjakka_1420128621032f2rKs_GIF/01.gif?type=w2" />
         <pubDate>2021-08-31 02:12:5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1068</guid>
      </item>
      <item>
         <title>우리나라 지역에 있었던 나라</title>
         <author>nezuko0526</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1179</link>
         <description><![CDATA[<div>삼국 시대에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는 다른 지역에 어떤 나라들이 있었을까?&nbsp;<br><br>먼저 남한 지역에는 삼한이 있었다. 삼한은 진한, 마한, 변한을 포함했다. 삼한은 벼농사가 발달했고, 변한에서는 철이 많이 생산되었다. 삼한은 5월과 10월에 제천 행사가 있었다. 여기서 제천 행사는 나라마다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뜻한다. 이 제사를 지내는 곳을 '소도'라 하였는데,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죄인이 그 곳으로 도망가도 함부로 잡을 수 없었다.<br><br>그럼 북한 지역에는 어떤 나라가 자리잡고 있을가? 북한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가 있다. 옥저는 지금의 함경도 해안에 있었다. 바다가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해산물이 많이 났다. 옥저에는 신부가 10살이 되면 신랑 집에 가서 살다가 결혼하는 민며느리 제도가 있었다. 삼한과 마찬가지로, 동예에도 제천 행사가 있었다. 동예에서는 음력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냈었다. 이 제사를 '무천'이라고 한다. '무천'이란 '하늘을 향해 춤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비록 작은 나라들이지만 흥미로운 점들도 많다는 점을 알 수 있다.&nbsp;<br><br>북한, 남한 지역의 위쪽에는 부여와 고구려가 있었다. 고구려는 주몽이 시조이고 백제와 신라만큼 우리에게 익숙하다. 부여는 고조선에 멸망하기 전, 기원전 3세기 쯤에 세워져 약 600년 동안 자리 잡았던, 우리 역사상 두번째에 등장하는 나라이다. 송화강 유역의 넓은 평야에서 일어난 부여는 철제 기구를 사용했다. 평야이기 때문에 농사와 말, 돼지, 소, 개 등의 여러가지 목축이 발달하였다.&nbsp; 한창 잘 나갈 때는 사방 2천 리에 누려 8만 가구가 살았다고 한다.&nbsp;<br><br>그렇다면 부여에는 왕만 있었을까? 정답은 X다. 부여에는 왕이 중앙을 다스렸고, 나머지 지역는 마가, 우가, 저가, 구가라는 족장들이 다스렸다. 왕은 중앙을 다스리는데, 과연 왕권이 강했을까? 부여는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가뭄이나 홍수가 심해져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왕에게 책임을 물어 부여에서 쫓아내거나, 심지어 죽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부여의 왕권이 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br><br>아까 옥저에는 민며느리 제도가 있었다면 부여에는 순장 풍습이 있었다. 순장 풍습은 매우 무서운 풍습이다. 왜냐하면 이 풍습은 신분이 높거나 귀한 사람이 죽으면 산 사람을 함께 묻는 풍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조선엔 8조법이 있다면 부여에는 '1책 12법'이 존재했다. 도둑질을 했다면 물건 값의 12배를 물게 하였고, 살인을 저지르면 살인자와 살인자의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그리고 질투를 많이 하는 부인을 사형에 처했다. 이를 통해 신분제도 존재, 화폐 존재, 그리고 죄를 엄격하게 다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여에는 삼한, 옥저, 동예처럼 제천행사가 있다. 부여의 제천 행사로는 '영고'가 잇었다. '영고'는 음력 12월에 하였다.<br><br></div><div><br>제천 행사란 나라마다 하늘을 숭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행사를 뜻한다</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www.geojeoneul.com/news/photo/201601/4313_4826_4950.jpg" />
         <pubDate>2021-08-31 02:12:57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1179</guid>
      </item>
      <item>
         <title>고구려</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4151</link>
         <description><![CDATA[<div>고구려는&nbsp;부여의 왕자 주몽이 세운 나라다. 주몽은 알에서 태어났으며 형님이 죽이려고 하자 졸본 지역으로 도망쳐서 고구려를 세웠다. 졸본 부여의 왕의 딸과 결혼했었다. 사실 부여에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이 있었다. 제 2대 왕의 왕일 때 수도를 옮긴다. 3대 왕 때는 부여를 공격하여 왕을 죽인다. 2세기 후반부터는 왕의 아들이 왕이 되는 부자 상속제가 시작됬다. 고구려는 농사짓기 어려워 주로 다른 나라를 공격해 식량과 영토를 빼앗았다. 주몽의 두명의 아들은 백제를 세웠다. 휼륭한 왕은  광개토 대왕으로 영토를 크게 넓혔다. 수나라가 침입했을 때는 훌률한 장군 을지문덕이 있었고 고구려의 마지막에는 포악했지만 강한 연개소문이 있었다. </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14:0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4151</guid>
      </item>
      <item>
         <title>가야</title>
         <author>orangetree0621</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6169</link>
         <description><![CDATA[<div>어느 날 부족의 간들이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령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구지봉(옛 구수봉)에 가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밀어라. 내밀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하고 노래하며 춤을 추면 임금을 얻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에 간들이 예언대로 했더니,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에 싸인 황금 상자가 내려왔다. 상자 안에는 여섯 개의 황금알이 있었는데, 그 알에서 여섯 명의 아이가 나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임금이 되었다. 나라 이름은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성산가야, 고령가야였다. 이후 가야 왕국들은 서로 도우며 발전했다.<br><br></div><div>&nbsp;가야에서는 낙동강 하류 지역의 기름진 평야를 바탕으로 벼농사가 발달했고, 품질 좋은 철을 생산해 중국과 왜(일본) 등지에 수출하기도 했다. 발달한 문물을 왜에 전해주었는가 하면, 바다를 주름잡는 해상 강국이 되어 신라를 위협하기도 했다.<br><br>백제의 성왕이 “한강은 원래 우리 것이니 돌려 달라.” 하고 주장하며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했다. 신라에게 시달리던 가야는 백제를 돕기 위해 군사 1만 명을 그곳으로 보냈었다.<br>하지만 이 전투에서 백제가 크게 패하고 가야의 군사들도 대부분 죽었다.<br>전투에서 많은 군사들을 잃은 가야는 흔들리기 시작했다.</div><div>그로부터 8년 뒤인 562년, 대가야는 신라 진흥왕의 공격으로 멸망했다.</div><div><br><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14:5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6169</guid>
      </item>
      <item>
         <title>고조선</title>
         <author>andyoohs</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7184</link>
         <description><![CDATA[<div><br>단군신화의 내용은, 환인의 서자인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내려와서,곰이 사람이 되자 그 곰과 결혼하여 단군왕검이 태어나서 단군이 고조선을 세웠다.<br><br></div><div>고조선의 8조법&nbsp; *대개 사람을 죽인 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그 죄를 갚는다도둑질을 한 자는 노비로 삼는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고자 하는 사람은 한 사람마다 50만 전을 내야 한다.</div><div><br></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6565141587790A709" />
         <pubDate>2021-08-31 02:15:1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7184</guid>
      </item>
      <item>
         <title>가야</title>
         <author>yeonhee20100820</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8739</link>
         <description><![CDATA[<div>금관가야를 세운 사람:김수로왕<br>금관가야뜻:쇠를 관리하는 나라<br>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신라, 백제, 고구려가 생기고 지금의 경상도에 낙동강 서쪽에 작은 나라가 하나씩 들어섰다.<br>총 12나라였고 동맹을 맺고 서로 돕기로 했지.<br>이 12나라 중 가장 센 나라가 금관가야 였다.<br>금관가야가 가장 센 이유는 철의 힘이 컸다.<br>금관가야가 자리 잡은 김해에는 질 좋은 철이 나는 철광산이 많았다.<br>이러다 보니 금관 가야는 다른 나라들과 교역을 많이 할 수 있었었다.<br>다른 나라들과 교역을 하다 보니 금세 부자가 되었다.<br>중요한 교역 상대였던 낙랑이 어느 날 고구려에게 침략을 받고 가야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금관가야가 약해지자 다른 나라들은 금관가야를 차지 하려고 했어.<br>마침내 8개의 나라가 합쳐서 금관가야를 공격했다.<br>하지만 결국 막아냈다. 그 다음엔 힘을 키워나가던 백제와 교역을 시작했지.<br>이로서 다시 금관 가야가 잘 살게 되었지.<br>금관가야,백제,신라,고구려,왜가 전쟁을 버리게 되어서 무너졌지, 하지만 점차 가야 사람들이 모여저서 대가야가 되었지.<br>대가야가 백제를 치려고 하자 백제는 공격을 했고, 대가야는 신라에 도움을 요청했다.하지만 신라는 대가야응 쳤고, 대가야는 다시 백제와 손을 잡았다.하지만 가야의 땅을 조금씩 가져가던 신라는 500여년을 이룬 가야를 무너뜨렸다.526년 가야가 무너진 날이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19253097/3abe9cdf9b36810839122a62ad2ce4f1/drawing.png" />
         <pubDate>2021-08-31 02:15:46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8739</guid>
      </item>
      <item>
         <title>가야의 이야기</title>
         <author>lucid100yj</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9012</link>
         <description><![CDATA[<div>[건국신화]<br>하늘에서 황금알 여섯 개가 내려왔는데, 국가가 되기전 가야지역의 촌장들이 모여 "거북아 거북아 네 머리를 내 놓아라. 안그러면 구워먹겠다"... 라고 하니 여섯개의 알이 깨어났고, 그 중 맨 먼저 수로왕이 나와서 가야의 왕의 되었다<br>[가야의 대표적 문화유산]<br>철제옷 과 투구 등등<br>[가야의 발전]<br>금관가야: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br>[멸망]<br>신라에 멸망을 당함<br>금관가야 멸망: 신라의 법흥왕<br>대가야 멸망:     신라의 진흥왕 </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tistory/2233594955E3CC7A34" />
         <pubDate>2021-08-31 02:15:52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9012</guid>
      </item>
      <item>
         <title>주몽</title>
         <author>color2245</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9780</link>
         <description><![CDATA[<div>주몽은 기원전 58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19년에 사망&nbsp;<br>주몽은고구려의 시조왕<br>성은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다<br>해모수와 유화 부인 사이에서 태어남<br>유화 부인은 집에서 쫓겨났지만 금와왕은 그녀를 불쌍하게 여겨 자신의 궁궐로 데려감<br>그녀는 큰 알을 낳았다 그리고 알에서 주몽이 나왔다<br>주몽은 무럭무럭 자랐고 일곱살에 이미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쏘는것마다 백발백중이다&nbsp;<br>그래서 활을 잘쏘는 사람이라고 해서 주몽이라고 불렀다<br>하지만 금와왕의 왕자들이 주몽을 질투해서 죽일려고 알아챈 유화부인은 주몽을 도망치게함<br>주몽은 남쪽으로 도망치다가 큰 강을 만났다 하지만 건너갈 배가 없었는데 물고기랑 자라들이 다리를 만들어 주웠다<br>그리고 졸본이란 나라에 도착하고 기원전 37년에 고구려를 세워 임금이 되었다<br>졸본의 위치는 지금의 중국 랴오닝 성 환런 현으로 추정</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blog/99A1B8385B0D483C2A" />
         <pubDate>2021-08-31 02:16:08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89780</guid>
      </item>
      <item>
         <title>동명왕(주몽) 설화</title>
         <author>HeyDude</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91320</link>
         <description><![CDATA[<div>어머니인 유화는 알을 낳았다. 부여왕조의 금와왕은 버리라고 하려고 하지만 동물들과 새들이 그 알을 보호해줬다. 왕은 깨려고 했는데 도저히 안 깨져서 그냥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따뜻한 곳에 알을 놔두다보니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매우 출중하고, 특히 활을 잘 쏘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몽’이라고 불렀다. 금와왕의 일곱 왕자들은 주몽을 시기하여 없애려고 하였다. 주몽의 어머니는 계략을 써서 주몽이 기르고 있던 왕실의 말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게 하고, 주몽에게 몸을 피하여 큰일을 도모하게 하였다. 주몽이 도망하여 엄수 에 도달하였으나 왕자들의 추격이 급박하였다. 주몽은 물을 향해서 “내가 천제의 아들이고 강의 신의 손주(외손)인데 이제 이 추격을 어찌하리오.” 하고 말하자 고기 떼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 추격을 면하게 되었다. 주몽은 남쪽으로 달아나서 졸본(卒本)에 도착하여 작은 집을 엮어 나라의 기틀로 삼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였다. 비류국 바로 이웃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비류국의 송양왕과 주종 관계를 결정짓는 싸움을 벌이게 되었다. 주몽은 활쏘기에 이기고, 계략을 써서 북과 나팔을 빼앗고 마침내 주술로 비류땅이 물에 잠기게 함으로써 송양왕의 항복을 얻게 되고 그 뒤 그의 왕국은 더욱 세력을 떨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내용의 「동명왕신화」는, 동명왕의 부신과 그의 아들 유리에 관해서는 생략한 것으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그리고 「동명왕편」의 기록을 절충한 것이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img1.daumcdn.net/thumb/R80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k.kakaocdn.net%2Fdn%2FotQqD%2FbtqDj11Xgjr%2F95lYjL7NzyUexz9Y6NlxY0%2Fimg.jpg" />
         <pubDate>2021-08-31 02:16: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91320</guid>
      </item>
      <item>
         <title>고구려</title>
         <author>hij18</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96255</link>
         <description><![CDATA[<div>고구려는 한국의 고대 왕조 중 하나이다.국성은 횡성 고씨이다. 본래의 국호는 고구려였으나 당시의 금석문과 역사 기록을 토대로 장수왕대에 고려로 개칭한것으로 추정된다. 이후에도 궁예가 세운 '고려'와 왕건이세운 '고려'가 계승하여&nbsp;<br>'고려'국호는 천년이상 지속됐다. 현재 한국의&nbsp;<br>국호인 '코리아'도 역시 고려에서 유래됬다.&nbsp;&nbsp;</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t1.daumcdn.net/cfile/blog/99A1B8385B0D483C2A" />
         <pubDate>2021-08-31 02:18:3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896255</guid>
      </item>
      <item>
         <title>백제의 역사</title>
         <author>jiyoonkim0605</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1968</link>
         <description><![CDATA[<div>&lt;십제는 백제의 옛 이름입니다&gt;<br>백제는 고구려 건국 세력에 밀려 부여에서 해상으로 피난한 온조 부족이 기원전 18년 한강 하류의 하남위례성에 도읍을 정해 건국되었다. 삼국지에서는 십제가 마한의 일부였다고 전해진다. 마한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삼한 중 가장 큰 정치 집단으로,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다. 마한은 지금의 충청도, 전라도에 해당하며, 초창기에는 강원도 서부와 황해도(지금의 북한) 남부까지도 영향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여 계통의 온조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십제국이 마한에서 세력을 확대한다.<br><br>십제국은 1세기에서 3세기에 걸쳐서 한반도 남부의 소국들 및 한사군과 대립하면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되며, 4세기부터 전하도 지역으로 세력을 넓혔다. 4세기 중엽에는 전라도 부족국가 일부를 멸망시키고, 고구려와 대립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5세기 초부터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아신왕이 굴복하고 개로왕이 전사하는 등 수난을 당하고, 475년에는 한강 유역을 상실하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다. 538년 성왕 시절에는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기고 국호를 일시적으로 '남부여' 로 변경하였으며, 신라와 동맹을 맺고 고구려를 협공하여 한강 유역을 일시적으로 되찾았으나 신라의 전숭오 인해 한강 유역을 다시 상실하였고, 결국 성왕은 관산성에서 사망하였다. 국력이 계속 약화되며 영토가 수축하다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 공격을 받고 수도 사비성이 함락되며 멸망했다. 그 후 부흥운동이 일어나 왜국의 인질이었던 풍을 임시왕으로 추대하며 투쟁을 이어갔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 내분이 발생하면서 3년 만에 전멸하였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20:44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1968</guid>
      </item>
      <item>
         <title>박혁거세 신화</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2960</link>
         <description><![CDATA[<div>신라가 세워지기 전에 경주지역은 진한의 땅으로 6명의 촌장들이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다.<br>&nbsp;그중 고허촌장인 소벌리공이 우물가에서 흰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여 그곳으로 가보니 빛이 나는 큰 알이 하나 있었다.<br>&nbsp;알속에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자 하늘에서 보내준 아이라고 생각해서 잘 길렀다.<br>박처럼 생긴 알에서 태어나서 성을 박이라 하고, 세상을 밝게한다는 뜻에서 이름을 혁거세라고 지었다.&nbsp;<br>아이가 13살이 되던 해에 왕의 자리에 올라 나라를 세우고 서라벌이라고 이름지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cfs11.blog.daum.net/image/25/blog/2008/08/15/15/12/48a51e61f0fa4" />
         <pubDate>2021-08-31 02:21:03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2960</guid>
      </item>
      <item>
         <title>고구려의 멸망</title>
         <author>unstopkdy</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4496</link>
         <description><![CDATA[<div>이&nbsp;시대에 고구려의 권력은 연개소문이 꽉 잡고있었다.그는 자신의 말을 왕이 듣지 않자 왕이었던 영류왕을 살해하고 보장왕을 세웠다. 연개소문은 높은 대막리지라는 벼슬을 만들어 자신이 대막리지를 하였다.왕은 연개소문의 허수아비였다.이럴 때 당나라는 연개소문의 반역을 구실로계속 고구려를 멸망 시키려 했으나 연개소문과양만춘등의 장군 때문에  실패하였다.(양만춘은 안시성에서 싸운 사람)또 신라는 백제의 침략 떄문에 고구려에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했으나 고구려가 신라가 고구려한테 뺴앗아 간 땅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머뭇거리는 김춘추를 감옥에 가뒀다가 김춘추가 왕을 속여 겨우 탈출한 적도 있어 안 좋은 감정이 있었다.이 때 신라와 당나라는 나당연합을 해 힘을 합쳐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 시키고 땅을 나눠 가지자고 했다.먼저 나당연합은 백제를 황산벌 전투에서 멸망시켰다.그리고 고구려는 생각보다 조금 쉽게 멸망시켰다.이 때는 강력했던 연개소문이 죽었을 떈데 그는 아들들에게 사이좋게 나라를 다스리라고 했다.하지만 권력을 잡고 있던 첫째가 어딜 갔을 때 둘째 아들이 권력을 빼앗아 버렸다.이로 인해 첫 째는 당에 가 도움을 청했고 첫 째아들의 도움과 함께 고구려의 정보에 대해 알게 되어 나당연합은 고구려를 멸망 시키게 된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 />
         <pubDate>2021-08-31 02:21:39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05904496</guid>
      </item>
      <item>
         <title>김유신장군의업적</title>
         <author>jadenkim518</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11082007</link>
         <description><![CDATA[<div><strong>김유신</strong>(金庾信,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595%EB%85%84">595년</a> ~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673%EB%85%84">673년</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8%EC%9B%94_18%EC%9D%BC">8월 18일</a>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_7%EC%9B%94_1%EC%9D%BC">음력 7월 1일</a>))은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B%9D%BC">신라</a>의 화랑의 우두머리였으며 <a href="https://ko.wikipedia.org/wiki/%ED%83%9C%EB%8C%80%EA%B0%81%EA%B0%84">태대각간</a>(太大角干)이었고 나중에 아버지와 낭비성을 치러갈때 그의 나이는32세다 나중엔 79세때 돌아가셨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s://padlet-uploads.storage.googleapis.com/1234823697/fc1071c7cc88a96463db8c00b493452d/_____.jpg" />
         <pubDate>2021-09-02 00:03:45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11082007</guid>
      </item>
      <item>
         <title>광개토대왕의 업적 [한석민]</title>
         <author></author>
         <link>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11127080</link>
         <description><![CDATA[<div>광개토대왕 업적은 뭐니뭐니해도 영토확장 입니다. 광개토대왕의 '광개토'도 땅을 넓게 열었다는 뜻인데요. 한강 이북에서 만주까지 영토를 확장한 업적이 있습니다. 먼저 광개토 대왕이 태어난 시기 부터 알아봅시다 광개토대왕은 고국양왕의 아들로 374년에 태어나 이 시기는 불교가 장려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광개토 대왕은 18세에 고구려의 19대 왕으로 즉위하게 됩니다. 최초로 연호를 사용했는데 연호는 '영락' 이었습니다. 연연호 사용은 중국에게 고구려는 강대국임을, 중국과 대등함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투를 하기만 한것은 아닙니다 그 증거가 바로 이사건이죠 북쪽으로는 만주까지 영토를 넓혔다면 남쪽으로는 신라에 침입한 왜 세력을 격퇴한 업적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고구려와 대립관계였던 백제가 왜 세력과 가야 세력을 이끌어 신라를 공격한거였는데요. 고구려는 신라 땅에 침입한 세력을 격퇴한 뒤 군대를 계속해서 주둔시켰습니다 그곳이 경주(신라땅) 에서 호우명이라는 그릇이 발견됩니다 그 그릇도 뜻이 있습니다 바로 호우명 그릇은 침입세력을 토벌한 광개토대왕의 공적을 기념하며 만든 그릇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기위해 만든 바석은 광개토대왕릉비 입니다 그것에 대해 한번 알아봅시다 영토확장은 물론 광개토대왕은 불교장려 정책을 내세웁니다. 평양에 9개의 절을 만들어 고구려에 불교를 장려했습니다. 이러한 광개토대왕의 공적은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이 441년에 만든 광개토대왕릉비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div>]]></description>
         <enclosure url="http://imgnews.naver.com/image/001/2012/01/12/C0A8CA3C00000133A5067E9A00002CF6_P2.jpeg" />
         <pubDate>2021-09-02 00:23:50 UTC</pubDate>
         <guid>https://padlet.com/t4mog/19yaklbhrm34wyoy/wish/1711127080</guid>
      </item>
   </channel>
</rss>
